그러며 성조기 아랫부분의 네모난 마크를 가리켰다.
특수부대들은 별 장비를 다 갖추고 다니는구만. 그냥 국기인줄 알았더니 이런 장치가 되어있단 말이지.
난 고개를 끄덕이곤 웃어버렸다.
"성조기 어깨에 붙이고 있으니 기분 이상하네요."
성가연도 웃었다.
"미군한테 받은거라 어쩔 수 없잖아요. 언제 시간 되면 우리쪽 군부대 한 번 가요."
"그래요. 그래야 되겠네."
성가연이 내게 손가락만한 검은색 원통을 하나 내밀었다.
"방탄모도 안 쓸거죠? 이거, 야시경 대신."
그들의 방탄모에 장착된 야시경은 작은 망원경 네 개를 부채꼴로 이어붙인 형태였다.
그녀가 내게 내민건 꼭 야시경에서 망원경 하나를 떼낸 것처럼 생겼다.
난 그걸 받아들곤 눈에 대봤다.
망원경은 세상을 초록색으로 환원해 내게 비추어 주었다. 성가연의 눈동자가 하얀색으로 변해버리는걸 흔들리는 헬기 안에서 보고있자니 금새 어지러워진다.
이런걸 용케도 눈에 덮어쓰고 다니네.
그때 조종실의 김대위가 말했다.
"도착 1분 전. 반복한다. 도착 1분 전."
특임대장 성규혁이 끄덕이더니 크게 말했다.
"다들 준비는 됐나! 도열하고 강하 준비해!"
특임대원들은 이런건 수만번쯤 해봤다는 듯이 능숙한 태도로 이미 무장을 마치고 한가롭게 잡담을 나누던 차였다.
그들은 짧게 대답하곤 로프를 가지고 치누크의 문으로 걸어가 고리에 로프를 걸었다.
그리고 두 줄로 서서 명령을 기다렸다.
김대위가 말했다.
"현장에 도착했다. 반복한다. 현장에 도착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즉시 치누크의 문을 붙잡고 뒤로 힘주어 걸었다.
콰르르륵!
문이 열렸다.
밤바람이 강풍이 되어 치누크 내부로 훅 들어온다.
순간적으로 공기에 밀려 흔들대지만, 특임대원들은 익숙한 듯 각자 벽이나 시트를 붙잡고 몸을 지탱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로프를 밖으로 집어던졌다.
"강하!"
특임대장 성규혁이 외치자 특임대원들이 즉시 로프를 붙잡고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순차적으로 뛰어내렸고, 마지막으로 성가연과 특임대장 성규혁이 로프를 붙잡고 뛰어내렸다.
암흑이 펼쳐진 세상 속에서 오직 바닥만이 환하다.
가로등 불빛 환한 고속도로.
차들이 드문드문 정차되어, 서로 부딪혀 엎어지거나 방치되어 있는 고속도로가 발 아래 저 멀리 내려앉아 있다.
난 로프를 한 손으로 붙잡고 치누크에서 뛰어내렸다.
촤아아악!
유지장갑이 로프에 힘껏 쓸리는 느낌이 손바닥에서 올라온다.
아, 젠장.
손 너무 뜨거워!
유지장갑 손에 착 붙는 얇은 가죽장갑이라 열기까지는 어떻게 안되네.
중간에서 로프를 놔버리고는 자유낙하하며 빈 고속도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주먹쥐었다.
쒸익- 쾅!
공간발톱으로 아스팔트를 박살내며 내려앉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특임대원들이 나를 보고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내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인다.
아니, 멋 부릴려고 한 게 아니라 손이 뜨거웠다고.
라는 기분을 감추고는 나도 마주 엄지손가락을 올려보였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강하 완료. 반복한다. 강하 완료."
열려있는 치누크의 문으로 머리가 하나 불쑥 나왔다.
김대위였다.
귀에 꽂은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운을 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손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작전 성공시키고 호출하겠습니다."
김대위가 손을 흔들어준다.
그리고 치누크는 서서히 떠올라 멀어지기 시작했다.
로프를 걷어올리고 있는 김대위의 모습이 회전하는 치누크에 가리워 보이지 않을 때가 되었을 즈음,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다들 이어폰 착용했지? 아직 착용 안 한 사람 지금 귀에 꽂아."
몇몇 대원들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내 방탄모를 들어 귀에 착용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여긴 양양 고속도로다. 고산로 국도를 타고 삼패동으로 진입한다."
삼패동?
그게 어딘데.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목적지는 강북 아리수 정수센터. 언덕과 산등성이가 군데군데 있으니 주위 잘 살피도록. 이동한다."
그가 걷자 특임대원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강북 아리수 정수센터라?
난 대원들을 따라 걸으며 물었다.
"거기 그 협박범들이 모여있는겁니까?"
"네."
난 갸웃했다.
"어떻게 알죠?"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를 돌아보며 미소지었다.
"대통령이 방송했을 때 있잖습니까. 그 방송을 본 사람들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아아, 기억난다.
내일도 산책을 나갈겁니다. 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밖으로 끌어내도록 회유했었지.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비서실장이 하는 말로는 방송 올린 이후 연락이 상당히 많이 왔다더군요. 서래마을로 찾아 온 사람도 제법 된답니다. 그 사람들 중에 제보자가 있었어요. 수도를 장악하고 있는 놈들이 있다고."
"제보자가 있었다고요?"
"네. 정수장 인근 주민이었답니다. 여자들이 끌려가는걸 봤다더군요. 멀리서 본거라 무장상태가 어떤지, 조직원이 얼마나 되는지 같은 정보는 얻을 수 없었습니다."
난 눈을 가늘게 떴다.
"...믿을 수 있는겁니까? 그 정보."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를 힐끗 돌아보곤 미소지었다.
"지금부터 확인해야죠."
성가연이 웃으며 말했다.
"혹시 함정이라도 우리한텐 성훈씨가 있잖아요?"
어이...
나한테 뭘 기대하는거야.
"감당 안되면 도망칠건데."
"그럴리가요. 영웅이 어떻게 나쁜 놈을 두고 도망쳐요?"
아오, 진짜.
성규혁도 특임대원들도 그녀의 말에 웃는다.
나도 어이가 없어서 웃어버렸다.
고속도로는 비어있었다.
드문드문 차들이 길을 막고는 있어도 괴물짐승도 좀비도 보이지 않았다.
헬기소리가 꽤나 거창했으니 고속도로 너머 언덕과 숲에서 짐승들이 우르르 몰려들 법도 한데, 조용하다.
우린 조용한 고속도로를 걸어, 고산로 국도로 진입했다.
조용한 집과 나무들.
가로등 켜진 환한 도로 위의 고요를 우리의 발소리만이 메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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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받은 자
[전문화 - 공간탐색자] [레벨 - 42.]
[호칭 - 유능한]
스테이터스
[체력 - 100/100] [감각 - 100/100]
[힘 - 100/100] [민첩 - 54/56]
[정신 - 100/100] [지능 - N/A]
[분배 포인트 - 0]
스킬
[패시브 - 혼의 문신 LV. 3]
[패시브 - 회복]
[패시브 - 한계달성]
[액티브 - 공간발톱]
[액티브 - 잔영] (자동시전 중)
[액티브 - 적중] (자동시전 중)
[액티브 - 가속] (자동시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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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레이드와 한울 원자력 발전소를 거쳐, 공간탐색자 레벨 현재 42.
거대 괴물곰의 몸통에 크레모어 수십개를 쑤셔넣고 터뜨려버릴 땐 생각치 못했는데, 고스란히 카운트 되었다.
놈의 몸에 들어있던 수천의 영혼들은 고스란히 내 경험치가 되었고, 한울 원자력 발전소에서의 며칠간은 예상치못한 폭업을 내게 선사했다.
직접 칼로 쑤시고 화살을 박아넣지 않아도 내 손을 거치면 그대로 카운트 되는거였다니.
박소장을 비롯해 여러 일들이 있긴 했어도 여러모로 괜찮은 경험이 됐다고 말할 수 있겠다.
폭탄을 좀 갖고 다녀도 괜찮겠는데.
하지만 폭탄은 쓸 수 있는 상황이어야 쓸 수 있는 물건이다. 수류탄을 비롯해 크레모어나 지뢰, 소형 로켓이나 미사일류 폭발물은 생각보다 부피가 크다.
수류탄 한두개 정도야 리프팅벨트에 달고 다닐 수 있겠지만, 큼직하고 묵직한 대전차지뢰를 어떻게 휴대하고 다닐 수 있을까.
같은 부피라면 차라리 더 많은 탄약이 더 많은 살상력을 확보하는 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괴물 같은 것만 아니라면.
뭔가 대책이 좀 필요하겠는데.
뭐가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국도를 특임대원들과 함께 걷고 있었다.
"무슨 생각해요?"
고개를 돌리니 상태창이 사라진다.
사라진 상태창 너머 성가연의 얼굴이 나타났다.
참 나.
예쁘잖아.
난 웃고는 말했다.
"대전차지뢰를 어떻게 하면 내 몸에 매달아놓고 다닐 수 있을까 고민 좀 해봤죠."
대충 벤치프레스를 해도 됨직한, 크고 굵고 무거운 폭탄을 몸에 매달고 다닌단 말에 성가연이 소리없이 웃었다.
표정을 보니 내가 농담한건줄 아나본데.
난 진심으로 고민한거라고.
그렇게 걷는 사이 어느새 숲과 언덕을 지나 사람 사는 동네가 나타났다.
가로등만이 거리를 밝히고 있는 깊은 밤.
오도카니, 또 때로는 서로 부딪혀 파편을 흩뿌린 채 엎어져 있는 자동차와 트럭들.
드문드문 차들로 막혀있는 도로를 따라 우리는 걸었다.
도로 너머 멀리 보이는 시설.
동네 하나가 통째로 들어갈 수도 있을 정도로 거대한, 심지어 축구장마저 보유하고 있는 대형 정수장이 드러났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주먹을 가볍게 들어올리곤 몸을 숙여 대형 트레일러 옆으로 걸어들어갔다.
"여기서 관측한다. 드론."
그가 말하자 특임대원 하나가 백팩을 벗어 카메라 장착된 드론을 꺼내들었다.
특임대원의 큼직한 두 손에 가득 들어가는 모니터 달린 컨트롤러.
다른 대원이 받아들고 있던 드론이 말벌 날개짓 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꽤 소리 크니까 너무 가까이 날지 마라."
"알겠습니다."
드론은 꽤나 높이 날아올랐다.
정수장을 아래에 두고 좌로 우로 천천히 이동하며 이따금 멈춰 건물을 비추기도 한다.
정수장 부지 대부분은 정수시설이었다.
침이 하나뿐인 시계같은 거대 정수시설. 그리고 파란 지붕을 덮어둔 긴 건물들이 줄이어 늘어서 있다.
사람이 관리하는 시설일 뿐, 상주하는 곳은 아니다.
드론으로 정수장을 관측한 특임대장 성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네."
드론이 귀환해 오는 동안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청사진에도 나와있었지만 사람이 거주할만한 곳은 관리건물 뿐이군. 다들 아마추어다. 경계 서는 사람도 없어. 외부엔 철조망 뿐이고."
특임대원들이 모두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철조망은 아마 잠겨있을거다. 폭약 설치해 터뜨리고 진입한다. 하지만 그 전에."
그는 띠를 걸어 목에 매어놓은 MP5를 두 손에 쥐고 들어올렸다.
틱.
안전장치를 내리는 소리.
그는 곧장 소총을 들어 가로등을 겨누었다.
"불 끄고 들어간다."
키슛!
MP5의 총구가 가스를 내뿜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가로등이 파편과 스파크를 동시에 내뿜으며 꺼졌다.
빛은 없었다.
장약의 화염도 없었다.
소음기가 장착된 소총은 금새 흐트러지는 소음을 남기곤 도로를 내리비추는 불빛을 거둬들였다.
피슛, 키슛!
성가연. 그리고 특임대원들 몇이 MP5로 가로등을 쏴 꺼트렸다.
도로는 순식간에 어둠에 휩싸였다.
진짜 아무것도 안 보인다.
완전히 암흑이다.
난 성가연에게 받은 야시경을 들어 눈에 갖다댔다.
"야시경."
특임대장 성규혁이 짧게 말했다.
특임대원들이 방탄모에 장착한 야시경을 붙잡아 내리곤 총구를 아래로 향하게 두어 앞 대원을 바라본다.
특임대장 성규혁은 모두가 야시경을 장착한 것을 확인하고는, 몸을 돌리고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손을 가볍게 내렸다.
이동한다.
특임대장 성규혁을 선두로 특임대원들이 트레일러에서 벗어나 도로를 넘어 정수장으로 나아갔다.
그들을 따라 가는 사이, 희미하게.
아주 가늘게 들려왔다.
정수장 울타리 너머 관리건물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소리가.
그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핏, 피슛!
숙인 채 전진하는 특임대원들의 MP5가 연이어 발포됐다.
철조망 너머의 전등들이 초라한 불꽃놀이마냥 번뜩이며 사그라들었고, 정수장 시설 여기저기가 점차적으로 암흑에 물들어갔다.
특임대원들은 신속하게 철조망으로 진입해 철문이 설치되어 있는 양쪽 기둥으로 나누어 섰다.
철문엔 쇠사슬이 감겨 있었다.
대원들이 양쪽에서 정수장 내외부를 경계하는 사이, 성가연이 문으로 다가가 C-4를 붙이고는 뒤로 되돌아가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낮게 말했다.
"폭... 잠깐."
멈칫하더니 그가 고개를 돌렸다.
뭔가를 볼려는 행동은 아니다.
귀를 기울이는 모양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뒤쪽에 서 있던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대통령과 상수도원 패거리가 전화중입니다."
전화중이라고?
특임대장 성규혁이 철조망 앞 수풀로 들어가 몸을 웅크리더니 휴대폰을 꺼냈다.
웅크린 덕에 폰의 빛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는다.
잠시 후,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통령 민정우였다.
"사람들을 억압하고 무례를 저지르고 있다는 제보를 들었습니다만, 사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누군가 대통령의 말에 응답했다.
낮고 허스키한, 나이든 자의 목소리였다.
"...대통령... 대통령, 대통령. 이젠 우리나라라고 부를 만한 것도 사라진 마당에 아직도 본인이 대통령인 척 정부 타령을 하고 있군. 지금 밖에 불이 꺼졌는데, 당신들 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