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습니다."
대통령 민정우가 말했다.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말을 부정하지 않는군요. 지금 이 순간에도 소장님. 당신과 연락을 주고받는 이유는 당신에게 마지막 기회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대원들은 단호하고 무자비합니다. 그들이 들어가면 일말의 자비도 당신에게 보이지 않을겁니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웃었다.
"책임자는 당신이 아니었나? 말하는게 꼭 당신과는 상관 없다는 투로 들리는군. 대통령씨."
"현장의 일은 현장에 직접 나가 눈으로 보고 몸으로 부딪히는 대원들의 판단에 맡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제게 보고할 뿐, 그들이 무엇을 할지를 내가 지시하진 않습니다."
대통령 민정우는 담담한 어투로, 그러나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 통화는 제가 당신에게 드리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겁니다. 억압하고 있는 사람들을 풀어주고, 정부에 협조하세요."
허스키한 목소리가 다시 웃었다.
"마지막 기회라. 그래, 그럼 이렇게 하지. 대통령. 내 말 잘 들어. 당신과 당신이 보살피는 사람들에게 내가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이젠 우리나라 라는건 없다. 있는건 살아남은 사람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작은 공동체 뿐이다. 네 놈들은 정부인 척, 군대인 척, 무슨 대단한 위업을 달성하려 하는 척 하고 있지만 사실은 나라 없는 정부에, 적당히 굴러먹던 놈팽이들 모아서 군대놀이나 하고있는 어리석은 놈들에 지나지 않아."
허스키한 목소리의 말투는 갈수록 낮아져 음산하게 들릴 지경이었다.
그가 말했다.
"이 세상에서 네 놈들은 가짜다. 당장 내 문 앞에서 네 놈의 졸개들을 치워라."
대통령 민정우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가짜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요.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세상은 무너져내렸습니다. 우린 그저 평온한 세상을 되찾아 일상을 다시 누릴 수 있도록 하고싶을 뿐입니다."
"일상?"
허스키한 목소리가 웃었다.
"재미있는 말이군. 일상, 일상이라. 그래, 그런 것이 있었던 때도 있었지. 하지만 말이야, 대통령. 지금은 종말이다. 지금 우리가 하고있는게 바로 일상이야."
"...종말...이라고 했습니까?"
그렇게 반문하는 대통령 민정우의 목소리가 다소 갈라졌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를 돌아본다.
나도 그를, 또 성가연을 바라봤다.
종말이라니.
뭔가 알고 그런 소릴 하는건가?
아니, 설마.
허스키한 목소리가 말했다.
"그래. 지금은 종말이다. 확실히, 더 덧붙일 것도 없이. 완전한 종말이 우리 세상에 내린거다. 우린 그 안에서 이렇게 아직 살아서 숨쉬고 있는거지."
그는 그렇게 말하곤 웃었다.
"종말을 맞이했다는 것도 아직 모르는건가, 대통령. 일상? 일상이라고? 우스워서 배가 아플 지경이로군."
대통령 민정우가 말했다.
"종말을 맞이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세상이 변해버린 것에 대해 아는게 있습니까?"
허스키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대통령. 한담이나 하자고 전화하고 있는건 아닐텐데. 내가 무엇을 알든 모르든 네 놈같은 가짜가 듣고 말고 할 일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말하겠다. 네 놈의 졸개들을 치워. 그러지 않으면."
"그러지 않으면 어쩌겠다는 겁니까?"
허스키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웃더니 말했다.
"대통령. 염소와 물이 만나면 뭐가 되는지 아나?"
특임대장 성규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표정이 심각하다.
대통령 민정우가 희미하게 신음을 흘렸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웃으며 말했다.
"아는군. 염산이다. 졸개들 치우지 않으면 물에 염소를 부어버리겠다, 대통령. 그게 어떤 참사를 불러올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될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곤 낮게,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졸개들을 치워라. 다시 경고하지 않는다."
툭.
전화가 끊겼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대원들을 돌아본다.
그의 고개가 다시 돌아간다.
소리를 듣는 태도다.
잠시 후,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가 나를 바라봤다.
눈 속에 결의가 들어있다.
...물러서지 않는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성가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폭파."
쿠쾅!
폭음과 함께 쇠사슬이 박살나며 파편을 흩뿌렸다.
반딧불이 수천마리가 일제히 날아오르는 듯한 불꽃놀이.
C-4의 화력은 단숨에 문을 벌컥 밀어젖혔다.
삽시간에 암흑이 찾아왔다.
특임대원들이 MP5의 총구를 들어올리며 일제히 안으로 들어갔다.
관리건물.
특임대장 성규혁과 성가연을 비롯한 대원들이 몸을 숙인 채 창문을 지나가 정문 양 옆으로 빠르게 퍼져 섰다.
에어컨 실외기 아래에서 두 대원이 외부로 총구를 겨누고 있는걸 보니 방금 폭음이 뭔가를 끌어들였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혹은 원래 그들이 하던 전술이거나.
마치 짠 듯이 일제히 이동해 자세를 잡는걸 보니 그저 멋지다.
난 폭파한 철문 옆 기둥에 서서 한가로운 기분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괴물 전담 지원팀.
그게 나니까.
하지만, 좀이 쑤시는걸.
나도 들어가볼까.
성가연이 건물 입구 손잡이를 잡았다가 도로 놓는다.
잠겨있는 모양이다.
그녀가 C-4를 문에 다시 붙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에어컨 실외기 밑 대원들을 향해 걸어갔다.
"혹시 뭐가 나오면 알려줘요."
외부경계를 서던 특임대원들이 살짝 고개를 끄덕여 대답해 왔다.
정문으로 진입하려는 대원들도 나를 힐끗 바라볼 뿐 제지하지 않는다.
좋은걸.
오든 가든 내 마음대로라니.
특임대장 성규혁이 손을 살짝 내렸다.
다음 순간, 건물 정문이 폭발했다.
쾅!
폭약은 손잡이가 있었던 자리를 그대로 뚫어버렸다.
매캐한 연기가 공중으로 흐트러지며 걸레짝이 되어버린 문이 나타났다.
성가연이 문을 잡고 연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MP5를 들어올리며 들어간다.
그리고 특임대원들이 일제히 그의 뒤를 따라 건물 내부로 진입해 들어갔다.
흥미로운걸.
특임대원들 어떻게 하는가 좀 구경해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들어갔는데, 이미 특임대장 성규혁과 성가연은 문 하나를 열고 내부를 진압하는 중이었다.
"흐윽, 아아."
남자 목소리.
특임대원들이 2인 1조가 되어 방 하나씩을 탐색하고, 두 명은 복도를 경계하고 있다.
자연스럽다.
정말로 수천번쯤은 해본 듯이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들은 건물 내부를 진압하고 있었다.
급하지 않게, 그러나 신속하고 단호하게 움직이는 특임대원들. 분명히 어떤 전술적인 목적으로 움직이는 것일텐데, 문외한인 나로서는 봐도 뭐가뭔지 모르겠다.
경계와 탐색, 그리고 진압을 수행하는 특임대원들을 힐끗 바라보고는 특임대장 성규혁과 성가연이 들어간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남자가 엎드려 있고 성가연이 그의 등을 무릎으로 찍어누르고 있었다. 이미 두 팔을 뒤로 돌려 결박당해있어 체중으로 누를 필요까지야 없어보이지만, 딱히 말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놈이 한 패거리일지 아니면 그냥 노예노동하던 피해자일지 누가 알겠어.
그런 남자의 앞에 특임대장 성규혁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심문했다.
"여기 책임자 누구야? 어디있나?"
남자가 고통스러워하며 더듬거렸다.
"위, 위에. 위에 있, 있습니다. 위에."
"위?"
"예. 우, 운용상황실, 상황실에."
특임대장 성규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장했나?"
"예, 예. 초, 총을, 총이 있습니다. 궈, 권총."
그들의 대화는 이어폰으로 대원들에게 잘 전달되고 있다. 총이 있음을 인지한 특임대원들은 아마 더욱 경계하며 탐색하겠지.
특임대장 성규혁이 남자에게 물었다.
"총을 어디서 구했나. 몇명이나 무장하고 있지?"
"겨, 경찰서를. 끄윽. 경찰서를 털었다고, 흑. 들었습니다. 마, 많이 무장하고 이, 있습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를 돌아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대원들, 잘 들었나. 주의해라."
그렇게 말하곤 남자를 내려다본다.
특임대원들은 방을 하나 하나 수색하며 클리어, 혹은 수색완료 라는 말을 이따금 전해오고 있다.
남자를 내려다보던 특임대장 성규혁이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허벅지 주머니에서 손전등을 꺼내더니 찰칵, 하고 켜서 남자의 얼굴을 비춘다.
"흐윽."
빛을 정면으로 받은 남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야시경을 들어올리며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의 뒤에 선 내 눈에도 보인다.
20대 초중반쯤 됐을 법한 젊은 남자.
한눈에 봐도 초췌해 보이는, 쩔어있는 땀내를 온 몸으로 풍기는 허름한 차림.
뺨에 기묘한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아래로 그어놓은 긴 작대기.
그리고, 아래쪽에 약간의 틈을 두고 가로로 그어놓은 짧은 작대기.
뭘로 푹 찔러 그어놓은 것 같은데.
거의 낙인처럼 보일 지경이다.
"얼굴은 어쩌다 이렇게 됐나?"
특임대장 성규혁의 말에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눈에 금새 눈물이 고였다.
"그, 그들이 저한테. 제 얼굴에. 카, 칼로."
특임대장 성규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칼로? 왜 얼굴에 이런 짓을 했지?"
"미, 흑. 믿어야 한다며. 조, 종말이 왔다고. 흐윽. 저... 저는 그냥 살고싶어서, 라디오 듣고 온 것 뿐인데... 으흑, 으윽..."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남자는 고개를 파묻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의 등을 무릎으로 찍어누르고 있는 성가연의 얼굴에도 일순간 연민이 피어올랐다.
그런 그녀에게 특임대장 성규혁이 단호하게 말했다.
"미식별자는 구속후 모아둔다. 여긴 정문 앞 첫번째 방이다."
성가연의 얼굴에서 연민이 사라졌다.
그녀는 오빠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1층을 수색하던 특임대원들 몇이 음성채팅으로 전해왔다.
"미식별자를 발견하고 구속했습니다."
"1층 수색 완료했습니다. 3,4번 유닛 2층 진입합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끄덕이곤 말했다.
"알았다. 우리도 뒤따르겠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특임대원 하나가 또다른 남자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40대 초반쯤 됐지 싶은 남자.
마찬가지로 못 먹고 못 씻은지 한참 되어 보이는 초췌한 행색이었다.
노숙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일어나며 말했다.
"가연아. 가자. 넌 미식별자들 감시해."
"알겠습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방을 나서자 성가연도 일어나 뒤따랐다.
구속에 이어 심문까지 정말로 후딱빨리 해치우는걸. 특임대원들도 수색하는걸 보니 건물 진압에는 도가 텄다.
확실히 특수부대는 특수부대네.
방을 나와보니 복도 여기저기 바닥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뭐지?
방 문 앞, 혹은 꺾어지는 복도 따위에 새끼손가락만한, 얇은 플라스틱 조명이 드문드문 놓여있다.
흠...
저건 뭐하는 건지 모르겠군.
그 때였다.
2층에서 짧은, 그러나 강렬한 굉음이 터졌다.
총소리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고개를 번쩍 들더니, 서둘러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2층에서 누군가 우렁차게 외쳤다.
"이 사이비놈의 새끼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탕, 탕, 탕!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대원 두명이 2층 계단벽에 몸을 기대고 MP5를 복도 쪽으로 겨누고 있었고, 두 명의 대원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서 있었다.
나무 문짝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야시경으로 보니 구멍난게 훨씬 잘 보이는걸.
총을 쏘다니.
내가 들어가서 그냥...
아니야.
재밌으니까 좀 더 특임대원들 하는거 보자.
전문가들이니 쉽게 당하진 않을 것같고, 여차하면 가속 박고 들이대서 썰어버리면 돼.
난 검자루에 손을 얹은 채 특임대원들이 어떻게 할건지를 계단 아래에서 바라봤다.
문 손잡이쪽에 위치한 특임대원이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탕, 탕!
"꺼져! 이 씹새끼들아! 꺼져! 이 사이비놈의 새끼들!"
손잡이가 돌아가지 않는다.
계단 아래에서 복도를 경계하던 대원이 그걸 보고는, 곧장 계단을 내려와 백팩을 벗었다.
아래쪽에 있던 대원이 즉시 올라가 복도를 향해 MP5를 겨눈다.
벗은 백팩에서 손잡이 두 개가 달린, 검은색의 두툼한 금속기둥을 꺼낸 대원이 곧장 문으로 다가갔다.
손잡이쪽의 특임대원이 손가락을 들어올린다.
3, 2, 1.
금속기둥이 문을 힘껏 강타했다.
투쾅!
와지끈, 하며 손잡이가 통째로 뜯겨나가고, 문이 벌컥 열렸다.
쇠기둥을 휘두른 대원이 즉시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손잡이쪽의 대원이 실내로 뭔가를 집어던졌다.
"이 놈들!"
탕!
총소리.
그리고 다음 순간, 방이 번쩍 빛났다.
찢어질 듯한 굉음이 터져나왔다.
이이이이-
이명이 고막을 뒤흔든다.
짧은, 숨막히는 비명소리.
섬광탄의 빛이 계단 아래에서도 생각보다 밝아, 살짝 눈을 감았다 떴다.
눈을 떴을 땐 대원들은 문가에 없었다.
그들은 이미 방 안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핏, 타다닥! 하며 MP5의 소음기 소리가 방 밖으로 터져나왔다.
털썩, 하며 묵직한 것이 엎어지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고요해졌다.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발소리들.
잠시 후, 특임대원의 목소리가 이어폰으로 들려왔다.
"진압 완료."
오.
대단한걸.
진압이 완료되었다는 말을 들은 대원들이 특임대장 성규혁을 중심으로 다음 방을 향해 나아갔고, 그들은 빠르고 신속하게 저항하는 자들을 사살하며, 또 구속해가며 2층 수색을 완료했다.
2층에서 발견한 미식별자들은 두명이었다. 그들도 모두 남자들이었으며, 마찬가지로 초췌했다.
미식별자들을 데리고 내려가는 대원들을 바라보던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직이 말했다.
"운용상황실은 3층이다. HVT는 거기에 있을거다. 아마도 여자들이 있을 것같다. 인질상황이 생길 수 있다."
3층을 향해 총구를 겨누며 경계하던 대원들이 짧게 대답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