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0화 (170/187)

특임대장 성규혁이 MP5를 들어올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3층 진압 개시."

계단을 올라간 특임대장 성규혁이 힘주어 말했다.

"인질이다."

인질이라고?

나는 고개를 들어 계단 너머를 바라봤다.

계단 너머엔 층 전체를 사용하나 싶을 정도의, 창문이 가득한 거대한 방이 하나 있었고, 창 너머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내가 서있는 계단 아래에선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건 천장 뿐이다.

그게 내 행동이었다.

고개를 들어 본 것.

특임대원들의 행동은 나와는 달랐다.

그들은 즉시 계단을 올라 몸을 숙여 창문 아래를 타고 좌우로 퍼졌다.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행위 자체를 일절 하지 않는다.

창문 너머에서 누가 무기를 들고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내 양 옆, 계단 벽과 난간쪽에 특임대원 두 명이 창문을 향해 MP5를 들어 겨누었다.

뭐라도 나오면 바로 쏴버리겠다는 듯한 태도.

동료를 믿고 들어간거군.

그래서 창문 너머를 아예 보지도 않고 곧장 숙이고 들어갈 수 있었던거다.

영화에서나 보던 특수부대 작전을 눈 앞에서 보고있자니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에 감탄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훈련을 거쳐왔는지가 눈에 보인다.

물론, 나 정도쯤 되면 총알이고 뭐고 다 튕겨내고 들이닥쳐 베어버릴 수 있으니 특임대원들같은 움직임은 보일 필요 없지만.

"거기, 나와."

굵은, 허스키한 목소리.

대통령과 대화를 나눈 자다.

창문과 창문 사이 기둥에 엄폐하고 있던 특임대장 성규혁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부군이다. 이미 건물은 진압되었다. 인질을 풀고 항복해라."

허스키한 목소리가 웃더니 말했다.

"항복? 왜 우리가 항복하겠나. 어이가 없군."

인질이 얼마나 있길래?

허스키한 목소리가 말하는 사이 계단을 올라가봤다.

...대략 수십명이다.

수십명이 저 넓은 방 안에 모여있다.

총을 든 남자가 대충 열 몇명.

나머지는 무릎을 꿇고있다.

꿇은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들이다.

"...하."

옷이 찢어지고 늘어나 헤집어진게 딱 봐도 노리개로 유린한 모양새다.

불쾌한 기억이 떠오른다.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남자들을 바라보는데, 하얗게 머리가 샌 할배가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정부군이라는건 알고보니 애송이였군."

애송이?

나한테 한 말인가?

할배가 뒤질라고.

"...처늙은게 인생 다 살았나."

나도 모르게 낮게 으르렁대며 말했더니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를 힐끗 돌아보곤 손을 내밀었다.

진정하라는 의미같은데.

진정해야 되나?

특임대장 성규혁이 창문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경고한다.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해. 다시 경고하지 않는다."

그러며 손짓한다.

그의 신호를 본 성가연이 품에서 섬광탄을 꺼내들었다.

흰 머리의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할려면 해라, 애송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여 봐.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죽는건 똑같지 않으냐. 아니, 오히려 죽는게 더 낫겠지. 이런 세상이니 말이야."

특임대장 성규혁이 눈썹을 찡그렸다.

"죽는게 두렵지 않은 모양이군."

"죽는게 왜 두렵나. 죽으면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네. 보게."

할배가 손짓했다.

옆에 서있던 남자가 손을 들어올렸다.

탕!

할배 앞에 무릎꿇고 있었던 20대 초반의 젊은 여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머리에서 피를 뿜으며 고꾸라져 죽었다.

여자들이 비명을 지른다.

소스라치게 지르는 비명을 들으며, 나도 놀라버렸다.

행동거지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슬쩍 손을 들어 방아쇠를 당겨버리는데, 보고도 막지 못했다.

총알이 내게 날아온게 아니라서 가속도 발동하지 않았다.

막을 수 없었다.

"미친!"

내가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것과 동시에, 특임대장 성규혁이 외쳤다.

"진압해!"

성가연이 창문을 박살내며 섬광탄을 집어던졌다.

펑!

삽시간에  섬광단이 터지며 창문이 번쩍거렸다.

"으아악!"

"아윽!"

빛과 소음에 눈과 귀가 멀어버린 자들을 향해 특임대원들이 일제히 MP5를 들어올렸다.

타타탁! 타탁!

섬광탄에 의해 이명이 지속되는 탓인지 MP5의 총소리마저 이상하게 들려온다.

난 인상을 찌푸린채 귀에 손가락을 넣어 빙빙 돌렸다.

고막 터지겠네 진짜.

특임대원들은 섬광탄의 폭음이 익숙한건지, 귀마개를 따로 한건지 전혀 영향이 없어보였다.

그들은 즉시 문을 박살내며 내부로 진입해 들어갔다.

나도 오만상을 찌푸리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들은 섬광탄에 충격받은 얼굴로 엎어져 신음하고 있었고 남자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특임대원들은 여자들을 붙잡아 즉시 수갑을 채우며 구속했다.

여자들은 쇼크상태에 빠져 저항하지 않았다.

가까이서 보니 쓰러진 자들 모두, 그리고 지도자 할배 마저도 얼굴에 역십자의 흉터가 나 있었다.

...맙소사.

여자들 얼굴에도 칼로 줄을 그어놨어.

미친 놈들이네 진짜.

흰머리 할배는 죽지 않았다.

섬광탄을 맞고 비틀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어째서지?

의문은 금새 사라졌다.

할배는 비무장이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즉시 할배에게 들이닥쳐 두 팔을 붙잡고 뒤로 꺾어 수갑을 채웠다.

"으윽."

팔이 심하게 꺾인 탓인지 할배가 신음을 흘렸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어설픈 협박은 통하지 않아. 무슨 짓을 하려했든, 이제 끝났다."

무릎꿇려져 신음하던 할배가 그 말을 듣고는 미소지었다.

고통에 젖은 미소.

주름살 가득한 얼굴로 그는 웃으며 말했다.

"...끝났다고?"

그러더니 껄껄 소리내어 웃는다.

"애송이. 나를 잡았다고 이 모든 일들이 끝났다고 생각하나? 믿음 없는 자가 발버둥치는건 애처롭기까지 하군."

특임대원들이 구속한 여자들을 1층으로 옮기는걸 보고있던 성규혁이 할배에게 물었다.

"믿음 없는 자?"

할배가 웃음을 멈추곤 특임대장 성규혁을 올려다봤다.

"그래. 네 놈은 믿음 없는 자다. 종말을 믿지 않고 살려고 발버둥치는 놈. 모든게 무의미하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할배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종말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걸 알고, 대비해왔지. 저걸 봐라. 붉게 점멸하는 빛이 보이나?"

할배가 턱으로 가리킨 곳은 여러 판넬이 늘어서 있는 상황판이었다. 특임대장 성규혁의 시선이 옮겨가는 와중 할배가 말했다.

"경고등이다. 정수과정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지. 밸브를 수동으로 완전히 개방해놨다. 이미 산성화는 진행되고 있어."

특임대장 성규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디지? 어디서 조작하는건가."

할배는 웃더니 말했다.

"어딘지 알려줘서 밸브를 잠그면 해결될거라고 생각하나? 우리가 도대체 언제부터 준비해 왔는줄 알기나 해? 종말이 온다고 수십년 전부터 경고해 온 우리 교단을 너희같은 놈들은 사이비 취급하고 범죄자처럼 몰아갔지. 어리석은 놈들!"

듣고있던 성가연이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휴거론자인가?"

할배가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이를 드러내며 크게 말했다.

"휴거론이라니! 이론 따위가 아니다! 휴거 그 자체다! 지금은 종말이란 말이다! 이 무지몽매한 년아! 죽은 성도들은 부활하고 살아있는 성도들은 들어올려져 끝내 주님을 영접하게 될지어다!"

특임대장 성규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람들 얼굴을 그렇게 그어놓은 것도 그렇다면 그런 이유인가?"

할배는 무릎꿇은 채 몸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올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우리의 가르침을 받고 믿음에 귀의한 자들은 마땅히 표식을 새겨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천사들께서 우릴 맞이하러 왔을 때 우리가 바로 섬기는 자들임을 확인하실 수 있도록 말이다."

미친새끼네.

늙으려면 곱게 처늙을 것이지.

난 입술을 비틀며 말했다.

"그래서 저거 어떻게 끄냐고, 이 씹새끼야."

할배가 나를 왈칵 돌아봤다.

불길이 일어날것만 같은 눈빛으로 나를 노려본다.

"무지몽매한데다 믿음도 없는 놈이 안하무인이기까지. 버릇이 없군. 네 놈은 불구덩이에 빠져 영원토록 고통받을 것이다."

하?

욕을 한바가지 퍼부어버릴까.

아니면.

검에 손을 얹는데, 할배가 말했다.

"나는 이미 늦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종말을 언제부터 준비해 왔다고 생각하나? 산성 수돗물을 만드는걸로 끝일거라고 생각하나? 진심으로?"

그는 고개를 숙이곤 주름살을 구기며 웃었다.

비웃음이었다.

"염산은 말이야. 이런데서 일하면 정말로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지. 약간만 신경써도 35% 순도의 염산을 손에 넣는건 일도 아니야."

"그래서 그걸 수도관에 흘려보내겠다는 건가요? 어차피 물에 섞이면 의미 없어질텐데?"

성가연의 말에 할배가 웃더니 말했다.

"의미가 있을 정도로 산성화시키면 되는 일 아닌가. 여러번 말했다. 오래 전부터 준비해 왔다고. 1천 톤에 달하는 응집제가 물에 들어가도 무사할 성 싶으냐? 게다가. 지금 물을 쓰는 사람은 몇이나 되지? 살아 숨쉬는 자들이 물을 쓴다. 종말 이후 지금까지 살아있는 자들은 몇이지?"

물을 쓰는 사람이 없다.

물이 회전되지 않는다.

특임대장 성규혁과 성가연의 눈이 동시에 가늘어졌다.

할배가 비릿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 뿐이겠나. 한강에 정수장이 어디 여기 뿐인가. 더 있다네."

특임대장 성규혁의 눈이 꿈틀거렸다.

"무슨 뜻이지? 다른 곳에서도 이런 짓을 하고 있나?"

"아아, 물론이지."

할배가 고개를 들더니 천천히 눈을 감았다.

"네 군데 정수장 모두 우리 천사교단이 장악했다. 물은 이미 우리 성도들이 장악한지 오래란 말이다. 아아, 믿음이 충만한 자들이여. 함께 하늘로 올라 주님을 맞이할 자들이여. 기쁘도다."

...천사교단?

특임대장 성규혁이 혀를 차고는 나를 돌아봤다.

그의 생각을 나는 즉시 이해했다.

지금 이 순간, 고속으로 기동할 수 있는건 나 뿐이다.

한강에 있는 정수장이라고?

그럼 한강 따라 돌개바람 달리면 어쨋든 찾아낼 수 있단 소리겠네.

"내가 가보죠."

여긴 특임대원들이 알아서 하겠지.

몸을 돌리려는데, 할배가 비릿하게 웃더니 말했다.

"왜, 다른 곳에 가려고? 그러지 않는게 좋을걸."

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할배가 말했다.

"염산에 넣어볼 만한게 여러가지가 있다네. 개인적으론 마그네슘을 추천하지. 중국산이라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데다, 염산과의 반응이 굉장히... 극적이거든."

할배의 주름살진 얼굴은 미소짓고 있었다.

악의가 가득한, 흉한 미소.

"수소는 덤이고 말이지."

그는 그렇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수소가스가 가득 든 용기를 우리 정수장에, 또 다른 정수장에도 설치해놨다. 여차하면 불이 붙어버릴거야, 애송이."

특임대장 성규혁이 희미하게 신음을 흘렸다.

"정수장을 터뜨려버리겠다는 건가."

"정수장 뿐만이 아닐세."

할배는 악의에 가득한 미소를 띈 채 우리를 하나 하나 돌아봤다.

"상수도관에, 하수도관에, 아파트 수조에, 버려진 탱크로리와 컨테이너에, 사람들이 흔히 들여다보지 않는 곳 모두에! 마그네슘 덩어리와 수소가스를 채워놨다. 그 덩어리들은 산성화된 수돗물로부터 수소가스를 만들어 낼 것이고, 곧 수도관에 가득 채워지겠지. 수소가스를 실은 트럭이 건물과 주유소, 충전소 따위를 향해 돌진할 것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천사교의 훌륭한 교도들이 폭죽을 하나씩 들고 대기하고 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아, 훌륭하도다. 믿음 충만한 자들이여."

수소폭발을 이용한 자살폭탄테러를 저지르겠다는 말을 할배는 태연하게 지껄이고 있다.

성가연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어."

"도대체 몇 번을 말해도 듣질 않는군. 우린 오래 전부터 종말을 준비해 왔다. 종말을 맞이하고도 믿음을 갖지 못한 우매한 놈들을 우리 손으로 승천시킬 준비를 말이야. 그리고 마침내, 우리도 그들을 따라 주님을 뵈올 것이다."

그는 무릎꿇리고 구속당해 있다.

그러나 표정은 사나웠다.

"우리는 이미 도시를 장악했다."

할배는 어깨를 들썩였다.

손을 들어올리려 한 것 같은데, 등 뒤로 구속되어 손을 내밀 수가 없다.

할배는 개의치않고 경건하게 말했다.

"물은 생명이다. 그 생명... 우리가 거둬갈 것이다. 주님의 곁으로."

할배는 비장하게 말했다고 하지만 나나 성가연에게, 특히 특임대장 성규혁에게 별 감흥은 주진 못했다.

특임대장 성규혁은 희미하게 코웃음치고는 내게 다가왔다.

할배에게 등돌리고 선 특임대장 성규혁이 내게 나직이 말했다.

"저 자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확인해볼 필요는 있을겁니다. 저희는 여기서 시설 확보하고 있을테니 성훈씨가 다른 정수장을 확인해보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성가연이 권총으로 할배의 머리를 겨누고 있다.

할배.

동료가 특임대원들에 의해 다 죽었고, 본인도 죽기 일보직전인 상황에서도 여유롭다. 오히려 당당하기까지 하다.

이 미친 광신도가 한 말은 진짜다.

나는 이 정신나간 할배가 한 말을 믿는다.

"괜찮겠어요? 수소가스 위험할텐데."

나직이 말한다고 했는데 할배가 내 말을 들은 모양이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어리석은 놈. 위험하다니! 믿음 없는 자들마저 주님을 영접하도록 돕는 일을 어찌 위험하다 말하는 것이냐!"

특임대장 성규혁이 힐끗 뒤돌아봤다.

그가 할배를 바라보는 눈빛이 참...

같잖고 하찮고 어이없다는 심정이 뒤섞여 뭐라고 표현하기가 힘들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내게 시선을 돌리곤 나직이 말했다.

"진짜 있는지는 찾아봐야 되겠죠. 설령 있다 해도, 여차하면 정수장 통째로 터뜨려버리면 됩니다."

즉시 깨달았다.

정수장을 날려버린다?

나쁘지 않은데.

어차피 건물이고 뭐고 이 광신도 미친새끼들이 터뜨린다 어쩐다 지랄해대도, 거기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죽는건 대부분 좀비들 혹은 괴물짐승들과 터뜨린 본인들 정도겠지.

몇몇 피해자가 생긴다 해도, 솔직히 말해, 얼굴도 모르는 누군지도 모르는 인간들 몇이나 죽든 내가 알 바 아니다.

흠.

나쁘지 않아.

문제는 물인데.

아무래도 정수장 전부를 날려버리면 곤란할거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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