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1화 (171/187)

난 고개를 끄덕이곤 귀를 톡톡 두드렸다.

대화는 이걸로 하자는 제스쳐.

특임대장 성규혁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가연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나도 그대로 몸을 돌려 방을 나와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귀의 이어폰으로 특임대장 성규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연아. 대원들 데리고 여기 머무르면서 자료 수색해. 하드 드라이브, 노트, 태블릿, 냉장고에 포스트잇 붙어있으면 그것까지 하여튼 전부 다 챙겨."

"알았어. 오빠는?"

"난 대원 둘 데리고 시설 둘러보러 간다."

"오빠."

"음?"

"...조심해."

건물을 빠져나와 돌개바람을 타고 도로로 달려나갔다.

가로등 가득한 한밤의 도로.

한강을 끼고있어 운치있는 풍경이어야 할 도로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가아아앙!

달리는건 좋은데 정수장이 어딘데?

한강 따라 네 개 있다고 했던가?

그럼 방금 저 정수장 포함해서 다섯개?

서울 사람도 아니고 길도 모르는데 무작정 달릴려니 참.

그나저나, 물.

"정수장은 하나만 있어도 괜찮겠죠."

수돗물은 어쨋든 나와주기만 해도 충분하고, 살아남은 사람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대답해왔다.

"지금 서울경기 다 합쳐봐야 살아남은 사람들 만 명 될까 싶군요. 아니, 만 명도 안 될 겁니다. 정수장은 하나만 있어도 차고 넘칠것 같군요."

정차해있는 트럭 옆으로 돌개바람을 비틀어 몰아달리며 말했다.

"그럼 괜히 협박 같은거 듣지 말고 다 터뜨려버립시다. 정수장 하나는 내가 어떻게 확보해 볼 테니까."

"들어야 될 말은 어차피 다 들었습니다. 남은건 놈들 세력이 얼마나 되는지, 어디까지 퍼져있는지, 작전을 어떤 식으로 구사하는지, 다음 목표가 있는지, 있다면 어딘지 같은걸 알아내야 되겠죠."

카아...

난 갸웃하며 쓰게 미소지었다.

"복잡하네요. 해봤자 미친 종교쟁이들인데 그렇게까지 조사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때 성가연이 말했다.

"특임대장. 지금 두꺼비집 내려요. 불 완전히 다 나갈거야."

특임대장 성규혁이 음, 하더니 말했다.

"성훈씨. 놈들은 종교쟁이가 아닙니다. ...문 따봐. 진입하기 전에 충분히 관측한다. 야시경."

시설을 수색하는 모양이군.

종교쟁이가 아니라고?

그럼 뭐지?

묻고싶은데 지금 물으면 안 될 것같다.

발소리들, 그리고 발소리.

돌개바람 엔진소리 위에 조심스런 저벅임이 이어폰으로 들려오고 있다.

쒸익, 쐐액!

풀악셀로 도로를 달리는 돌개바람의 좌우로 승용차와 트럭들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그럴 때마다 공기압이 터지며 종이 찢어지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정수장.

어디냐.

나와라, 빨리.

정수장이라고 할 만한, 혹은 그정도 규모의 꽤 큰 시설물은 지금 달리고 있는 도로 쪽으론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찾았다.

젠장, 강 건너편에 있어.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내가 무슨 정수장을 다녀본 것도 아니고.

고민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구리 암사대교]

라고 써있는 돌기둥을 힐끗 쳐다보곤 곧장 옆으로 드러누워 커브를 돌았다.

가아아앙!

대교를 달려나아가는 그 때.

"주, 주여!"

피슛, 키슛!

여자의 외침.

여자 종교쟁이의 무의미한 부르짖음은 순식간에 멎었다.

특임대원들이 어둠 속에서 발소리를 죽이고 파고들어 방아쇠를 당긴거다.

광신도년이 특임대원을 발견했을 땐 이미 늦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수소가 터지면 그대로 목숨이 날아가는 상황에서도 특임대원들은 평정심을 유지하며 시설 내부를 수색하고 있다.

대교 끝 무렵에 다다랐을 때, 나는 다리 너머에 있는 것이 정수장임을 확신했다.

길고 두터운 시설건물들과 둥근 정수처리기가 줄이어 늘어서있는 거대한 시설이 스스로 수많은 조명을 밝히며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저기에도 있겠지.

광신도들이.

특임대원 한명이 말했다.

"클리어."

"좋아. 다음 건물."

특임대장 성규혁이 그렇게 말하곤 소리죽여 나직이 말했다.

"성훈씨. 풍선입니다. 재질이 꽤나 두터워 보이는군요. 축제 같은걸 할 때 쓰는 두꺼운 풍선을 발견하면 조심하십시오."

수소풍선이었나.

난 눈을 가늘게 뜨곤 말했다.

"정수장 하나 발견했습니다. 풍선이라고요? 알겠습니다. 저 안에 종교쟁이들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죠."

특임대는 그들이 훈련해 온 절차에 따라 적을 사살하고 미식별자를 포획해 구속했다.

나는 그런 훈련따윈 받지 못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종교쟁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아까도 그런 말을 했었지.

난 커브를 꺾어 대교를 빙글 돌아 내려가며 물었다.

"그럼 뭐죠?"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놈들은 테러리스트요."

테러리스트라...

꽤나... 울림이 깊은걸.

어디가 정수장 입구인지 모르겠다.

테러리스트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을 느끼는 와중 돌개바람은 이미 나를 싣고 양재대로까지 달려가버렸다.

차들이 드문드문 서 있는 대로 위.

나는 왼쪽을 돌아봤다.

커다란 간판처럼 붙어있는 이름.

암사 아리수 정수센터.

난 눈을 가늘게 뜨고는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봤다.

이렇게 밖에서 봐선 도무지 모르겠는걸.

...그렇다면.

"광신도 테러리스트라고요."

난 미소지으며 커브를 꺾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적당히 위험한 민간인 취급하면 안 됩니다. 놈들은 위험분자들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

난 미소지으며 손을 내뻗었다.

카카카카!

도로를 밀며 드리프트하고 있는 돌개바람 위에서, 나는 주먹쥐었다.

슈확!

공간이 빨려들어온다.

나는 순식간에 허공으로 솟구쳐 정수장 내부로 진입해 들어갔다.

발 아래에 거대한, 둥근 하수처리장들이 줄이어 늘어서 있다.

다시 먼 하늘을 향해 손을 내밀어 주먹쥐었다.

슈화확!

두 번 발동시킨 공간발톱.

백여미터 가까운 거리를 한 순간에 건너뛰어, 수십미터 상공을 돌개바람에 앉아 활공하며 나는 나아가고 있다.

나는 미소지었다.

"그럼 다 죽여버려도 되겠네."

보인다.

멀리, 운용상황실이 있음이 분명한, 한 눈에 보기에도 시설 전체를 관리함이 분명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있다.

사람이.

순식간에 확대되듯 들이닥쳐, 하늘 위에서 바이크를 타고 활공해 내려오고 있는 나를 발견한 사람들이.

모두가 당황하고 있다.

들린다.

그들이 외치는 소리가.

"주, 주여! 저, 저건!"

아, 자기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아주 훌륭한 외침이었어.

두 번 할 필요는 없겠는걸.

"뭐야!"

"하, 하늘에!"

사람들이 웅성인다.

고속으로 활강하며 전진하듯, 그렇게 공중에서 추락해 나아가던 나는 즉시 손을 내밀어 놈들을 조준했다.

난 미소지었다.

"테러리스트."

주먹을 쥐었다.

슈확!

아마도 50대쯤 되어보이는 두툼한 아재.

그 자리에 있었다.

한 순간에 돌개바람과 부딪혀, 터져나가 피바람이 되어 사방으로 흐트러졌다.

후두둑.

피와 내장과 잡다한 것들이 내 얼굴에, 온 몸에 묻어난다.

난 피를 뒤집어 쓴 채, 한껏 웃으며 돌개바람에서 내렸다. 그리고 즉시 돌개바람을 소환해제했다.

"으, 으아아! 으아아악!"

참사를 눈 앞에서 목격한 중년 남녀.

모두가 얼굴에 역십자를 칼로 그어놨다.

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찾았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으아- 아-- 아----"

눈동자가 작아보일 만큼 두 눈을 부릅뜬 사람들.

공포에 질려, 소스라쳐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아아...

즐거워 미치겠네.

난 웃으며, 환하게 웃으며 검 두 자루를 뽑아들었다.

그림자 전사?

아니야.

난 너무나 즐거워 환하게 웃으며, 사람들에게 뛰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목에 칼을 박아넣었다.

검을 쓰는건 오랜만인걸.

느낌이 있었어.

목뼈가 끊어지는 느낌이.

검을 뽑자마자 피어나는 핏방울들.

이게 다가 아니지?

더 있을거야.

이 건물에.

이 시설에.

난 곧장 건물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있다.

사람들이.

뺨에 십자를 그려놓은 사람들이.

누가 종교쟁이냐.

누가 테러리스트냐.

누가 잡혀와서 노리개가 된 여자냐.

누가 누군지 가려내기엔 시간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미안한데, 안 미안하다.

"하하, 하하하! 크하핫하하!"

나는 눈에 보이는 모든 인간을 모조리 썰어버렸다.

검이 목을 뚫는다.

옆으로 휘두르자 뼈채 끊어져 너덜해진다.

느릿하게 피어오르는 핏방울.

이 여자는 아직 살아있다.

그러나 죽었다.

아직 죽지 않았을 뿐이다.

40대 중반, 혹은 후반.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공포에 질린 눈빛만이 형형한 여자의 목을 썰어버리곤, 난 그대로 몸을 돌려 창문으로 돌진했다.

"하하, 크하핫하!"

콰-드-득--

가속상태에서 박살난 유리창이 느릿하게 사방으로 퍼져오른다.

정수장은 넓다.

수많은 건물들이 있다.

그러나 수색은 순식간이었다.

공간발톱으로 이동해, 가속상태에서 문을 박차고 들어가, 순식간에 사람을 수색해, 그대로 목을 찔러버린다.

내 검에서 피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

협박질을 일삼고 도시를 터뜨려버리겠다고 선언한 시점에서 이미 다 죽여 없애버리겠다고 마음먹은 차였다.

알고보니 피해자였다, 잡혀왔을 뿐이다, 강제노역 당하던 가여운 노예였다 따위는 내가 알 바 아니다.

여기에 있는 놈은 다 죽인다.

푹!

검을 찔러넣어, 가로벤다.

이제 갓 20대가 되었을까 싶은,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한 듯한 애송이의 목이 통째로 떨어져 나간다.

수염도 안 난 얼굴이 느릿하게 허공으로 떠오른다.

기묘한 감각이다.

즐거움이 가슴 속에 차오른다.

웃음이 입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하하, 하하핫하! 크하하핫하하!"

난 미친듯이 웃으며 정수장에 있는 모든 인간을 베어버렸다.

모두 없앴다.

라는 확신이 든다.

마지막 건물.

풍선이 천장에 가득한, 기계설비가 가득 들어찬 건물에서 나오며 나는 눈을 감았다.

목이 바들바들 떨린다.

턱이, 입이, 숨을 쉴 때마다 떨려와 마음 속에 충만하게 차오르는 기쁨을 드러내고 있다.

스텟을 제법 써버렸어.

그림자 전사를 활용했다면 좀 더 일찍 마무리할 수 있었겠는데.

아니.

여기선 이게 맞아.

왜냐하면, 기분 좋으니까.

"...하아."

나는 눈을 감은 채 덜덜 떨리는 턱을 진정하려 애쓰며, 검을 내리쳤다.

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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