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감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른다.
그 날.
마트 건물에 좀비웨이브가 덮쳤던 바로 그 날, 자기들끼리 내분이 일어나 일부는 우리 마트로 도망쳐 왔다가 모조리 전멸했다.
그리고 다른 놈들은 식량을 불태우고 도망쳐버렸다.
그 날 도망친 살아남은 바퀴벌레들.
약탈하고 여자들 유린하던 바퀴벌레들이 만족하고 머무를 만한 곳은, 마찬가지로 여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유린하며 노예로 삼고있던 천사교 정도 뿐이다.
"바퀴벌레 새끼들이 아직도 살아있었나."
으드득.
이가 갈린다.
"바퀴벌레?"
중년 남자가 으르렁대며 말했다.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서 아가리를 함부로 놀려. 그 날 이후로 네 놈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났다, 이 좃만한 새끼야. 바퀴벌레? 이 씨발새끼가."
난 눈을 계속 깜빡거렸다.
아까 부딪힌 충격 때문에 아직 어지럽다.
빨리 정신을 차려야 돼.
돌개바람을 달려서 이 바퀴벌레 새끼를 모조리 썰어놔야지.
정신은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다. 뻐근한 감각이 목부터 발끝까지 이어져 마치 나무토막을 대놓고 묶어버린 것같다.
금방 회복하겠지만, 그 금방이라는 시간이 내겐 필요하다.
난 불쾌감을 느끼며 이를 드러내고는 말했다.
"그래서, 그 말 하자고 나하고 전화하겠다고 한거냐? 대통령은 왜 인질로 붙잡고 있냐? 기어나와 이 바퀴벌레 새끼야. 좃같으면 맞짱까. 니 몸뚱아리에서 대가리 분리해줄게, 병신새끼야."
협상이고 지랄병이고는 이미 안중에 없다.
개빡친다.
이 씹새끼들을 죄다 죽여 없애버리고 싶은 생각 뿐이다.
그 때였다.
우루루루룽-
대지가 진동했다.
사방에서 일제히 들려오는, 수천, 수만개의 드럼을 동시에 두드리는 듯한 소리.
수만, 수십만 좀비들의 포효소리다.
옆에서 흐르고 있는 한강이 바람도 없는데 물결치기 시작했다.
가로등이 비추고 있는 먼 도로가 새카맣게 물들어간다.
...좀비웨이브가 발생하고 있다.
천사교 광신도들이 만들어 낸 광역적인 폭발.
아마도 서울 전체, 어쩌면 경기도까지도 일제히 좀비웨이브가 발생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수천만.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쯧, 씨발거.
골때리네 진짜.
중년 바퀴벌레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뭐? 맞짱을 까? 내가 왜? 뭐하러? 칼 두개 든 놈하고 맞짱을 까라니, 제정신이냐? 병신이."
난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칼 빼고 맨 손으로 뜨던가 씨발새끼야. 그래도 니 목 붙잡고 뜯어내는건 일도 아니야. 기어나와, 바퀴벌레 새끼야. 죽여줄게."
중년 바퀴벌레는 껄껄 웃었다.
"맨 손? 좋지. 맨 손이면 너같은 거 충분히 내 손으로 죽여 없앨 수 있지. 그런데 어쩌냐. 우리한테는 신성한 임무가 있거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반포대교다.
난 깊게 심호흡하며 정신을 차리려, 몸을 회복시키려 애썼다.
"스-후-. 임무같은 소리하네. 너같은 바퀴벌레가 임무는 무슨 임무? 그래봤자 딱 너같이 개쓰레기같은 짓거리겠지. 그냥 내 손에 죽어라. 기다려. 가서 죽여줄게, 쓰레기같은 새끼야."
중년 바퀴벌레가 말했다.
"우리의 신성한 임무를 모욕하지 마라, 어린놈의 새끼야. 지금이 종말인걸 네 놈이 알긴 하겠냐만은."
깊게 들려온다.
종말.
나는 지금이 종말인 것을 안다.
메세지창이 알려줬으니까.
그런데 이 놈들은 지금이 종말인걸 어떻게 알지?
의문이나 가설이 아니라 종말임을 확신하고 있다.
종말...
정수장 천사교 할배도 종말에 대해 지껄였는데.
오랫동안 준비해 왔다고 했었던가.
어떻게?
"무슨 말이지?"
중년 바퀴벌레가 말했다.
"우리는 천사교에 귀의하고서야 마침내 진실을 알 수 있었다."
무슨 개소리야. 진실같은 소리하네.
생각은 그대로 말이 되어 튀어나왔다.
"무슨 개소리야. 진실같은 소리하네."
중년 바퀴벌레가 말했다.
"아직도 진실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종말을 맞이해놓고도 종말인줄도 모르는 너같은 병신새끼에게 이렇게나 당했다는게 어이가 없을 정도다. 말해주겠다. 진실을."
놈은 숨을 들이키고는 경건하게 말했다.
"지금은 종말이다. 신께서 우리 인간들이 그동안 지어올린 죄악이라는 바벨탑을 마침내 무너뜨리시는 것이다. 변해버린 자들은 지옥에 떨어질 것이요, 변하지 않은 자들은 마침내 들어올려져 주님을 영접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교주님께서 종말을 맞아 살아남은 자들을 모두 천국으로 올려주실 선택받은 자라는 것. 그것이 진실이다."
내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라고?
선택받은 자?
난 신음하듯 말했다.
"...지금 뭐라고 지껄였냐? 선택받은 자라고?"
"그렇다!"
중년 바퀴벌레가 크게 말했다.
"우리 천사교의 교주님이야 말로 우리를 들어올려줄 성스러운 밧줄, 신의 사자, 예수의 재림, 바로 선택받은 자다!"
말이 안 나온다.
뭘 지껄이고 있는거지 이 바퀴벌레 새끼는?
할 말이 없는, 아니, 너무 할 말이 많아서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버린 내게, 중년 바퀴벌레가 우렁차게 말했다.
"그리고 선택받은 자, 우리의 교주님께 권능을 부여받은 우리의 장로님들이 그 분의 뜻을 받들어 산 자들을 모두 들어올려주실 것이다! 자아, 들어봐라! 장로님의 목소리를!"
반포대교.
이 다리만 건너면 서래마을이다.
난 이를 악물고 돌개바람을 몰아 반포대교로 들어섰다.
우루루루룽-
엄청난 규모의 좀비웨이브가 한강 전체에서, 서울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다.
소리만 들어도 압도될 지경이다.
밤하늘 아래 시커멓던 한강이, 마치 불어나듯 스멀스멀 퍼져나가는 광경이 내 앞뒤로 펼쳐지고 있다.
그걸 바라보며 돌개바람을 달리고 있는데, 중년 바퀴벌레가 켜놓은, 라디오 혹은 무전기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영화로운 성읍들 벧여시못과 바알므온과 기랴다임을 열고, 암몬 족속과 더불어 동방 사람에게 넘겨 주어 기업을 삼게 할 것이라 암몬 족속이 다시는 이방 가운데에서 기억되지 아니하기 하려니와."
나이든 여자 목소리.
뭐야 이건 또.
나이든 여자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내가 모압에 벌을 내리리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마치 거짓말처럼.
우루루루룽!
대지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좀비들이 일제히 부르짖는 소리에 나뭇가지마저 뒤흔들릴 정도다.
설마.
이 놈들이 조종한건 아닐거다.
우연의 일치이겠지.
"...광신도 새끼들이...!"
혐오감에 이를 악물고 중얼거린 소리를 중년 바퀴벌레가 듣고는 말했다.
"광신도라니! 우리는 광신도가 아니다! 신의 뜻을 받드는, 빛의 전사들이다!"
멀리 서래마을이 보인다.
아주 작게, 바리케이트가 보인다.
대통령이 있을 것이 틀림없는 모텔도 보인다.
나는 차와 차 사이를 달려나아가며 이를 악물었다.
광신도들 찾아 죽이느라 스텟을 너무 낭비해버렸어.
남은 스텟으로는 가속을 아무리 발동해도 저기까지 못 간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빨리...!
중년 바퀴벌레가 희미하게 웃더니 말했다.
"그래... 우리는 빛의 전사들이다. 신의 뜻을 받드는, 우리가 바로 광전사다. 내가 모압에 벌을 내리리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몇사람인가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아멘."
모텔 방 안에 몇명이나 있는거지?
바퀴벌레들 죄다 모여있나?
특임대장 성규혁이 외쳤다.
"안돼!"
중년 바퀴벌레가 말했다.
"아멘."
등줄기가 섬칫하다.
다음 순간, 모텔이 폭발했다.
모텔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오르고 있다.
뭔가가 타고있는지 붉은 화염이 연기 속에 숨어 이글거린다.
"...씨발."
대통령 민정우가 죽었다.
난 돌개바람을 기울여 반포대교에 가득한 차를 좌우로 피했다. 그러며 서래마을을 향해 달려 나아갔다.
아직도 한참 남았다.
반포대교, 이렇게 길었나.
우루루룽- 하며 주위사방에서 좀비의 포효가 대지를 뒤흔드는 와중에서도, 여전히 간헐적으로 폭음이 들려오는 가운데서도, 나는 붉은 화염이 검은 연기를 하늘로 밀어올리는 광경을 바라보며 마음이 가라앉는걸 느꼈다.
멀다.
닿을 수 없었다.
머리가 복잡하고, 기분이 더럽다.
좀 더 이야기를 길게 끄는게 나았나.
어떻게 했으면 놈이 무고한 대통령을 데리고 자폭하는걸 막을 수 있었을까.
놈은 광신도다.
이미 부탄가스를 박스째 들고 인질을 잡고있는 상황에서 돌아올 수 없는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고, 실행하겠다 결심한 놈이다.
놈은 자살 폭탄 테러리스트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나와 대화한 끝에 자폭했고, 대통령까지 죽게 되니 머리가 한없이 복잡해진다.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었을 것만 같은 막연한 후회감.
가아아앙-
더러운, 착잡한 기분으로 돌개바람을 달려나가는데, 성가연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이어폰으로 들려왔다.
"...대통령께서 사망하셨어요. 불길이 너무 심해 지금 진화작업중... 이라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다.
그저 가슴 속에서 뭔가가 뜨겁게 올라오고 있을 뿐이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성훈씨. 성훈씨 잘못이 아닙니다."
그런 말이 위로가 되진 않는다.
나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지금 김대위와 박대위가 치누크를 몰고 여기 정수장으로 온다고 합니다. 지금은... 서래마을을 우선 방어해야..."
말을 끝맺질 못한다.
방어한다.
광신도 테러리스트는 도시를, 시 전체를 대상으로 수소폭탄을 터뜨리고 있다.
위험하고, 위협적이나, 특정한 대상을 표적 삼아 터뜨리고 있지는 않다. 그저 다 터져죽어라 라는 식으로 여기저기 폭발시키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천사교로부터의 방어가 아니다.
우루루룽!
반포대교가 바들바들 뒤흔들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는, 서울시와 경기도권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좀비웨이브.
여기서 살아남기 위한 방어.
천사교.
색출해서 모조리 죽여버려야 돼.
하지만 그 전에, 지금 마주한 위기부터 극복해내는 게 먼저다.
지금까지 본 적 없었던, 대규모 좀비웨이브가 지금 일어나고 있다.
타타타타-
치누크가 하늘을 날아 내 머리위를 지나간다.
김대위와 박대위도 가스폭탄 테러 참사를 인근에서 보고 겪었을 텐데 곧장 헬기를 몰아가는걸 보면 꽤나 강심장인 사람들이다.
그만뒀다 돌아오긴 했어도 군인은 군인이다.
반포대교를 건너 서래마을에 가까워지니 벌써부터 열기가 훅 하고 느껴진다.
바리케이트 너머 활활 타오르고 있는, 창문으로 화염을 분출하고 있는 모텔.
가까이서 보니 실감난다.
저기에 있던 사람들은 다 죽었다.
살아있을 가능성 자체가 없다.
바리케이트 위에 있던 특임대원 하나가 나를 발견하곤 철문을 당겨 열어주었다.
그들의 모습에서 망연자실함이 느껴진다.
난 돌개바람에서 내려 소환해제하곤 서래마을로 들어갔다.
모텔 앞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특임대원들과 힘 좀 쓰는 남자들이 소화전에 호스를 연결해 끌어오고 부산을 떨고있다.
하지만 모양새가 영 서투른 것이, 저 중에 소방관 혹은 소방훈련을 받아보기라도 했던 사람은 확실히 없어보인다.
"...많이 죽었습니까?"
문을 열어준 특임대원이 내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광신도 세명을 제외하고는 대통령... 뿐입니다. 나머지 민간인들은 다 대피했습니다."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네요, 라든가 다행이네요 라는 말은 할 수 없다.
...민간인들은?
난 특임대원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특임대원들은요?"
특임대원의 목울대가 올라갔다 내려왔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가, 대답했다.
"대통령 구조임무를 맡고 모텔에 침투해 복도에서 대기하던 대원 세 명이 폭사했습니다."
...할 말이 없다.
위로도 할 수 없다.
그저 그의 어깨를 한 번 짚어주었다.
나는 타오르는 모텔을 바라보며 천천히, 그러나 힘주어 말했다.
"...방비를 튼튼히 해 두세요. 특임대장 없어도 서래마을에 아무 일도 생기지 않도록. 무기도 여기저기 설치해 두시고."
난 이를 악물고 말했다.
"좀비웨이브가 덮칠겁니다."
특임대원이 나를 돌아보더니 물었다.
"특임대장님께서는 별도의 임무를 맡으시는 겁니까? 지금 상황에 외부임무는 위험할 것 같습니다만."
난 고개를 저었다.
"지금 특임대장은 천사교 잔당을 데리고 올 겁니다. 그 잔당에게서 알아내야 될게 많아요."
특임대원은 끄덕이더니 달리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할 말이 남았다.
으드득.
난 이를 악물고 말했다.
"천사교를 모조리 죽여 없애야 돼. 손가락 발가락을 마디마디 끊어버리더라도, 눈알을 파내고 살를 포 뜨더라도, 무슨 고문을 해서라도 놈들이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알아내야 돼."
특임대원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달리 말은 없었다.
난 대원을 돌아보곤 말했다.
"중화기 남은거 아직 있지요? 옥상이 빈 건물이 있다면 전부 설치해 두세요. 특임대장이 정보를 알아내는 동안 여러분은 여길 방어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특임대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귀에 손을 갖다댄다.
그러며 몸을 돌렸다.
내가 딱히 지시할 위치에 있지는 않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말을 특임대원이 들었다는 것은 그가 듣기에도 내 지시가 합리적이었다는 거겠지.
이제야 겨우 소방호스에서 물을 끼릭끼릭 뿜어내려, 혹은 뿜었다가 수압에 밀려 비틀거리는 남자들.
그 사이에서 비서실장 안준규가 나를 발견하곤 뛰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