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6화 (176/187)

그리고 밤하늘.

달이라도 떠 있으면 좋겠는데.

매캐한 매연이 도심 속 검은 나무처럼 여기저기 솟아올라 있는 광경이 밤하늘에 녹아들어 어두워지고 있었다.

폭발 굉음은 치누크의 엔진 소리 속에서도 분명히 구별 가능하다.

하지만 들려오지 않는다.

폭발은 더이상 발생하고 있지 않다.

다 죽이겠다는 심산으로 여기저기 터뜨린 모양인데 그렇다 해도 정말로 서울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 정도로 폭발시킬 순 없는 노릇이겠지.

수소가 어쩌고 해도 놈들에게도 한계는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 한계로 인해 너무 많은 피해를 입었다.

당장 눈 앞에서 바글바글 일어나고 있는 좀비웨이브만 하더라도 놈들의 작품이니.

특임대원들이 바리케이트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방금 작전을 완수했음에도 쉬지도 못하고 곧장 여러 건물들로 흩어져 옥상을 향해 올라갔다.

천사교 집사 할배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있는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를 올려다보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서로 말은 필요 없었다.

나도 끄덕여줬다.

그런 특임대장 성규혁에게, 어떤 남자가 다가와 뭐라고 귓속말을 했다. 특임대장 성규혁의 시선이 노래방 건물로 향한다.

"알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곤, 나를 한 번 보고는, 천사교 집사의 목을 움켜쥔 채 노래방 건물로 걸어갔다.

천사교 할배.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게 얼굴이 많이 상했던데.

동정심은 눈꼽만큼도 들지 않는다.

모가지를 썰어버리고 싶은 마음 뿐이다.

끌려가는 뒷모습을 보고있자니 뒤통수에 검을 박아넣고 싶어진다.

난 혀를 차고는 멀리 한강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런 내게, 성가연이 바리케이트 위로 올라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어요. 난 알아요."

대통령 죽은걸 말하는 모양인데.

솔직히, 신경 안 쓴다.

동맹 맺고 있을 뿐, 내 그룹이 아니다.

바퀴벌레 새끼 때문에 기분이 더러울 뿐이다.

기회가 있을 때 내 손으로 모조리 죽였어야 했는데.

말없이 한숨을 내쉬니 성가연이 말했다.

"아까 헬기에서 송중사랑 통화했어요."

아, 송중사.

난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 쪽은 좀 어떻습니까?"

성가연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거기도 폭발했어요."

제기랄.

멀리, 한강.

번져나가고 있는 좀비웨이브를 바라보며 성가연이 말했다.

"하지만 몇 번 터지지 않았대요. 발전소 밖으로 나갈 수 없어서 정수장인지는 확인 못 했다던데, 아무래도 사람들 별로 없는 작은 마을들 뿐이라 피해가 크진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이 많이 있는, 좀비웨이브가 발생할 만한 곳을 중심으로 타격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면 대도시 위주였겠군.

자세한건 특임대장 성규혁이 알아내겠지.

성가연이 말했다.

"좀비웨이브도 없다더라구요. 사람이 원래부터 별로 없는 지역이었던데다, 온통 산이잖아요. 거긴 오히려 짐승이 사람보다 더 많았으니까요."

"그 짐승들은 대부분 우리가 다 죽여버렸고."

내 말에 성가연이 미소지었다.

"맞아요. 그러니 발전소는 꽤나 안전해요."

"평택 쪽은 어떻습니까?"

성가연이 끄덕이며 말했다.

"그쪽도 괜찮은 것 같아요. 산이고 강이고 거기 있던 놈들 우두머리를 당신이 죄다 없애버렸잖아요? 짐승도 안 나오고, 농촌이잖아요. 번화가라고 해도 서울시 동네 하나 정도 규모라 좀비웨이브도 그리 크지 않을것 같대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웃었다.

"그런데도 우리한테 와줄 수 없냐고 하더라구요. 지금 우리 코가 석잔데."

"와달라고 했습니까?"

"네. 노인들이 대부분이라 걱정되나봐요. 여기 처리하고 여유되는 대로 가겠다고 오빠가 말해줬어요."

"...여유라..."

난 한강을 바라봤다.

한강 속에 얼마나 많은 좀비들이 잠들어 있었는지 가늠도 못 할 정도다.

썩은 음식물 쓰레기 속에서 바퀴벌레 떼가 우르르 기어나오듯, 놈들도 그렇게 한강 속에서 파도처럼 기어나오고 있었다.

셀 수가 없다.

"처리할 수... 있겠... 죠?"

난 대답하지 않았다.

내 스텟을 총동원해도 저건 어떻게 못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무지 모르겠다.

지금 의지할 수 있는건 치누크 뿐이다.

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김대위랑 박대위가 잘 해주면 좋겠네요."

성가연도 내 시선을 따라 하늘을 바라봤다.

이미 치누크는 한강을 따라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방향을 보니 이 일대를 한 번 몰았다가 강을 건너갈 모양이다.

"네에. 잘 해주시겠죠. 저 분들이라면."

난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타타타타-

새벽의 고요를 좀비웨이브의 짖음과 헬기 엔진이 흐트러트린다.

영화 같은데선 이쯤에서 비장한 음악 같은게 나오던데, 현실은 그냥 시궁창같은 냄새와 기분나쁜 소리 뿐이다.

성가연의 미모로도 이 더러운 긴장감이 해소가 안 된다.

그때, 성가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 여보세요? 안 들려요. 뭐라구요?"

표정이 심상찮다.

그녀도 나를 바라본다.

"무슨 일입니까?"

성가연은 고개를 젓더니 서둘러 바지에서 폰을 꺼냈다.

단톡방이 아니라 그냥 통화중이다.

그녀가 스피커모드로 전환했다.

"쿠콰크큭! -연아! 특임대장- 지금, 콰콰큭! -에게 공격받고 있다!"

헬기소리와 뭐가 긁는 소리가 대위의 외침을 씹어먹고 있다.

소리만으로도 어지러울 정도다.

"공격받고 있다고요? 누구한테, 어디서요? 여보세요?!"

"콰콰콰콰! -받고 있다! 크콰콱! -에게!"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난 고개를 들어 멀리 헬기를 바라봤다.

달도 없는 밤인데다 이미 너무 멀어 육안으론 확인이 안 된다. 간헐적으로 깜빡이는 헬기의 불빛이 거기에 치누크가 있음을 알려오고 있을 뿐이다.

난 성가연이 들고있는 폰을 내려다보며 크게 말했다.

"대위님! 성훈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어떻게 된 겁니까?"

"카카카캌! -훈씨! 우리 지금- 크콰콰콱! -고 있습니다! 콰콰콰! -에게!"

하?

대위가 외쳤다.

"추락한다! 추락한다! 콰콰콰콰!"

그 순간, 먼 하늘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귀에 익은 괴성이다.

들어봤다.

분명히 들어본 소리다.

난 눈을 크게 뜨고 먼 하늘을 노려봤다.

나도 모르게 바리케이트를 이루고 있는 책상을 움켜쥐었다.

와자작!

아귀힘으로 책상 모서리가 박살났다.

대위가 외쳤다.

"콰콰콱! 추락한다! 공격받고 있다! 크콰콰! 박쥐에게! 반복한다! 박쥐에게 -크직, 콰크큭! -고 있다!"

평택에서 본 놈이다.

내 몸을 움켜쥐고, 갈비뼈를 박살내고, 나를 거의 죽일 뻔했던, 내 그림자 전사가 몸통의 절반을 썰어버렸던 바로 그 놈이다.

안 죽고 강물 속으로 빠져 도망쳤었는데.

역시 안 죽었어.

놈은 살아있었어.

그런데 여기서?

왜?

먼 하늘에서 괴성이 메아리쳐왔다.

끼에에에엑-

성가연이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성훈씨! 이, 이거... 설마, 그때 그."

"아아. 놈이다. 그 놈 맞을겁니다."

성가연이 헛숨을 들이키고는 치누크가 있는 먼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녀는 헬멧을 쓰고있지 않다.

야시경이 없다.

보이지 않는다.

"도, 도대체 어떻게 평택에 있던게 여기까지..."

평택.

여기서 헬기로 한시간 거리다.

멀지 않다.

산에 숨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몸을 회복시키고 힘을 키우다가, 폭발하는 소리에 이끌려 날아왔다.

그런건가.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놈이니 어디에 숨어있다가 기어나왔는지 알 수도 없고, 그저 그렇게 추측할 뿐이다.

성가연이 들고있는 폰에선 대위가 여전히 외치고 있었다.

"콰크큭! 콰직! -락한다! 추락한다악! 콰득, 으지직!"

성가연이 다급하게 말했다.

"오, 오빠에게 알려야..."

"아니."

난 손을 내밀어 성가연의 핸드폰을 덮었다.

"당신 오빠는 지금 할 일이 있어. 천사교에 대해 정보를 얻어내야 돼. 어차피 당신들이 할 수 있는것도 없어."

"하, 하지만 대위님이. 성훈씨."

먼 밤하늘에 깜빡이던 치누크의 빛이 천천히 내려가고 있다.

멀어지는게 아니다.

떨어지고 있다.

난 이를 악물고는 몸을 돌렸다.

"내가 갈게."

"하, 하지만 성훈씨! 좀비웨이브가...! 당신 혼자서 안 돼요!"

바리케이트에서 뛰어내려 땅을 딛고 섰다.

그러나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이 옳다.

좀비웨이브.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규모.

안 된다.

내가 가도 감당 못한다.

내 스텟이 허락을 안 한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되지?

쏴아아.

물줄기소리.

눈 앞에선 남자들이 여전히 모텔의 불을 끄려고 애쓰고 있고, 여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뛰어다니는 사람들과 소리지르는 사람들. 그리고 좀비웨이브가 만들어내는, 지면을 뒤흔드는 소리와 거대 괴물박쥐의 짖음이 뒤섞여 아비규환이다.

난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방법이 있을거야.

이 상황을 타개할 파훼법이 있을거야.

어떻게?

무슨 수로 좀비웨이브를...

괴물 박쥐를...

내 머리에, 뭔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가연씨."

"네?"

뒤돌아보니 그녀가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새삼 느끼지만 존나 예쁘네 진짜.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이고 있어 가슴도...

...그게 지금 중요한게 아니고.

난 억지로 시선을 끌어올려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폭탄 아직 많이 남았지. 어디 있어?"

성가연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천천히 손을 들어 모텔 건너 건너 건물을 가리켰다.

"...국민은행이요. 안전장치가 제일 튼튼하게 되어있어서 거기에 다..."

은행.

고개돌려 보니 과연 특임대원 하나가 이 상황에서도 소총을 들고 은행 앞에 서서 경계를 보고있었다.

난 끄덕이곤 걸음을 옮겼다.

"서, 성훈씨!"

난 귀에 손을 살짝 갖다댔다.

내 의도를 알아들은 성가연이 단톡으로 말해왔다.

"성훈씨! 혼자서 안 돼요! 성훈씨!"

"안에 더플백은 충분히 있겠지. 저 앞에 경비서고 있는 특임대원한테 문 좀 열어달라고 말해줘."

"하지만 성훈씨!"

나는 단호하게 힘주어 말했다.

"얼른."

"...아, 알았어요."

잠시 기다리자 국민은행 앞에 서있던 특임대원이 내 쪽을 돌아보더니 셔터를 올렸다.

그리고는 안에 들어간다.

성가연에게 지시를 받은 모양이다.

더플백에 폭탄 넣으라고.

그래.

더플백에 폭탄.

가득 넣고 가주지.

죄다 터뜨려버리겠다.

두터운 철문이 굳게 닫혀있는 국민은행 금고.

내부엔 온갖 총기류와 탄약, 그리고 폭발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미군부대에서 갖고 온 무기는 10톤에 달한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상당량을 써버렸지만, 그러나 아직도 엄청난 양이 남아있을 것이다.

은행 금고라고 했는데, 여기 말고 근처 다른 은행 금고에도 가득 채워놨겠지.

내가 들어가니 특임대원들 몇이 같이 뛰어들어왔다. 그리곤 내게 살짝 목례해 보이더니 곧장 탄약상자를 집어든다.

탄약만 챙기는걸 보니 옥상에 중화기는 대충 설치 다 했나본데.

"C-4도 쓰십니까?"

더플백에 수류탄을 넣고있던 특임대원이 내게 물었다.

금고 입구엔 비어 납작해진 군용 더플백 십여개가 놓여있었다.

난 그중 하나를 들어 지퍼를 열며 말했다.

"아뇨. 별도조작이나 설정 같은게 필요한건 안 씁니다. 수류탄만 있는대로 채워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GRENADE] 라고 씌어있는 납작한 상자 하나를 당겨 열었다.

어두운 흙색의 둥근 수류탄이 가득하다.

"...더플백 두 개나 쓰십니까?"

난 고개를 저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