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로 모자랍니다. 세 개로 하죠."
특임대원의 눈이 살짝 커졌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말 대신 행동으로, 수류탄을 더플백에 쑤셔넣기 시작했다.
족히 백발이 넘게 들어가는 큼직한 군용 더플백 세 개.
시간이 없다.
몇 개나 들어가는지 세고있을 때가 아니다.
그래도 더플백 세 개라면 약간 과장해서 오백개는 되지 않겠나 싶다.
"...후우."
더플백 세개 꽉꽉 채워넣는데 한참 걸렸네.
허리에 손을 짚고 한숨을 내쉬며 두툼한 더플백들을 내려다봤다.
약 오백여개의 세열수류탄.
이걸로도 충분하지 않을지 모른다.
뭐 더 없나?
뭔가...
주위를 둘러보는데, 내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특임대원들이 탄약을 챙기고 있는 광경.
그들이 챙기는 탄약.
유탄이었다.
유탄상자 위쪽 선반에 놓여있는 것.
공장에서 쓰는 두툼한 실린더를 떼다가 붙여놓은 듯한 투박한 모양새.
손잡이와 방아쇠가 있어 총이긴 하나 총구가 너무 커 총알을 쏘는 놈은 아닌 물건.
다연발 유탄발사기다.
내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저거 좀 줘봐요."
특임대원이 내가 가리킨걸 보더니 나를 보고 웃었다.
"M32A1. 괜찮은 선택입니다. 그런데..."
그가 유탄발사기를 하나 꺼내 내게 내밀며 말했다.
"폭탄 너무 많이 갖고 다니시면, 물론 성훈씨가 알아서 잘 하실거고 제가 걱정할 필요 없다는건 압니다만, 유효범위 안에서 터뜨리시면 안 됩니다."
정말로 걱정된다는 얼굴이다.
난 미소짓고는 끄덕였다.
"하나 더 줘봐요."
다연발 유탄발사기 M32A1 두 개를 받아들고는, 더플백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더플백 하나는 돌개바람의 안장 뒤에. 그리고 두 개는 노끈을 감아 안장 양쪽에 매달았다.
묵직한 더플백 세 개를 얹어놓으니 돌개바람이 푹 내려앉는다.
대충 수류탄 가득 채운 더플백 하나가 30KG는 되는 모양인데. 세 개니 거의 100KG다.
여자 둘이 타고있는 셈이니 돌개바람의 서스펜션이라도 무게에 눌리지 않을 수 없다.
유탄발사기는 돌개바람에 유틸리티팩 하나를 붙여 억지로 쑤셔넣었다.
보기엔 흉해도 어차피 뽑아 쓸 수만 있으면 되니 상관없다.
"...성훈씨. 이 많은 수류탄을 혼자서...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난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금고 안에 있던 수류탄 박스 수십개가 텅 비어버렸다.
정말로 많이 챙겼다.
말이 수백발이지 둘이서 꾹꾹 쑤셔넣는데 한참 걸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모텔의 불은 거의 진화되어 가고 있었다. 불길은 줄어들었고, 검은 연기는 더욱 뭉게거리며 치솟아 오르고 있다.
수류탄 챙기느라 시간이 꽤나 지나버렸나보다.
돌개바람에 올라타 핸들에 손을 얹으니 엔진이 깨어나 낮게 으르렁댄다.
"서래마을 잘 지켜주세요. 나 갑니다."
"네. 무운을 빕니다, 성훈씨."
그아아앙-
묵직하구만.
모텔이 다가온다.
복작대는 사람들.
매연을 실은 물보라와 매캐한 연기.
시야를 어지럽히는 풍경을 지나쳐 가로등 불빛이 선명한 도로로 들어가니 곧장 바리케이트가 나왔다.
성가연이 바리케이트의 철문을 당겨 열고 있다.
난 열린 틈을 향해 돌개바람을 달리며 성가연을 바라봤다.
"갔다올게! 마을 잘 지키고 있어요!"
"네! 대위님들 통화는 성훈씨한테 연결해 둘게요!"
"어!"
가까워지니 성가연의 표정이 보인다.
걱정?
혹은 불안?
예쁜 얼굴에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었다.
"실패하면 어떡해요?"
난 열린 틈새를 향해 달려가며 웃었다.
"실패 안 해."
쒸아앙!
좁게 열린 사이로 돌개바람이 뚫고 나가자 공기가 짓눌린 소리가 귓가에서 터진다.
환한 도로.
선명한 가로등 불빛.
그리고, 시커멓게 번져들어오는 좀비웨이브.
그 속으로 몸을 내던진 내 뒤로, 성가연이 외쳤다.
"성훈씨!"
힐끗 뒤돌아봤다.
그녀는 입가에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조심해요! 알았죠? 죽지 마요!"
난 피식 웃고는 액셀을 당겼다.
"여기서 죽을 생각 없다."
가아아앙!
돌개바람이 가속을 받아 도로를 빠르게 달려나갔다.
바람이 머리칼을 휘날린다.
지면에서 올라오는 진동이 손가락을 간지럽힌다.
얼마 남지 않았다.
5분도 채 남지 않았을거다.
좀비웨이브가 이 도로를 가득 메우기까지는.
치누크.
분명히 잠원 쪽으로 날아가다 추락했다.
어디냐.
어디지?
어두운 새벽 밤하늘, 가로등 불빛이 거세게 좌우로 지나가며 시야를 어지럽힌다.
난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내다봤다.
추락했다면, 공격을 받았다면 분명히 뭔가 표가 날텐데.
올림픽대로를 달려나가며 오른쪽으로 늘어서 있는 수많은 건물들과 아파트들을 대충 훑어봤다.
치누크 정도 사이즈 되는 물건이 바닥에 추락해 있으면 대충 보더라도 놓칠 수가 없다.
그러나 멀리 내다봐도, 건물과 아파트들이 지나가며 탁 트인 광경이 눈에 들어와도 치누크는 보이지 않는다.
더 가야되나.
가아아앙-
돌개바람의 엔진만이 새벽의 고요를 채우고 있다.
그 때, 들려왔다.
멀리서.
짐승의 울부짖음이.
끼에에엑- 이에에에엑-
쇠를 긁는 소리.
두드리는 소리.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멀지 않은데?
어디지?
소리가 난 방향의 도로에는 새카맣게 모여들고 있는 좀비웨이브 뿐이다.
날개달린 수십미터짜리 거대한 쇳덩어리 같은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난 깨달았다.
밑이 아니구나.
추락이라는 단어에 너무 매몰되어 있었어.
난 소리를 쫓아 고개를 들었다.
잠원 신반포 2차아파트가 지나가며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에 가리워 사라진다.
있다.
저기에.
종합병원 건물 옥상에 치누크가 반쯤 파묻히듯 내려앉아 있었다.
지붕이 치누크의 추락을 견디지 못했던 것같다.
그리고, 치누크 주위에 퍼덕이던 새카만 것들.
언듯 보였지만, 틀림없다.
괴물 박쥐들이다.
"...찾았다."
내 말에 성가연이 다급하게 대답해왔다.
"찾았어요? 다들 무사해요? 대위님들 어때요?"
"아직 도착 안했어. 연락은 안 돼?"
"네. 지금 계속 전화 걸고있는데 연락이 안 돼요."
설마 죽은건가.
제길, 겨우 두 명 뿐인 헬기조종사를 잃을 순 없는데.
서둘러 가야되겠어.
그러며 액셀을 당기는데,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좀비웨이브다.
이미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우루루루룽- 우루루루룽-
숨소리만으로도 공기가 바들바들 떨린다.
"...쯧."
난 이를 드러내며 혀를 차고는, 핸들을 꽉 붙잡고 몸을 숙였다. 그리고 액셀을 힘껏 당겼다.
돌개바람이 도로를 박차고 달려나아간다.
가아아앙!
새벽의 도로를 헤드라이트를 밝힌 채 실감나게 좌우로 달려나가며 움직이고 있는건 오직 나 뿐이다.
멀리서 나를 발견한 좀비들이 괴성을 짖어대기 시작했다.
캬아아악! 크아아악!
"그래, 와라."
놈들이 달려온다.
도로를 가득 메우며.
왼쪽으로 공원을 가득 뒤덮으며.
오른쪽으론 아파트 철망과 담벼락을 뛰어넘으며.
놈들이 내게 달려온다.
셀 수도 없이 수많은, 바글바글한 좀비웨이브가.
캬아아악! 크아아아악!
사방에서 놈들의 울부짖음이 공기를 뒤흔들어댄다.
나는 그 속으로 돌개바람을 달려나아가고 있다.
놈들은 나에게로.
나는 놈들에게로.
나와 좀비웨이브의 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온다.
온다!
"크아아앍!"
한 놈이 뛰어오른다.
정면.
부딪힌다.
난 이를 악물고, 손을 위로 내뻗어 움켜쥐었다.
좀비의, 목까지 찢어져 쩌억 벌어진 턱주가리가 순식간에 내 밑으로 멀어졌다
슈화확!
수십미터 상공으로 단숨에 날아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저 새카맣다.
초목도, 거리도, 도로도 없다.
그저 새카맣게 메우고 있는 좀비밖에 보이지 않는다.
난 공중을 활공하는 돌개바람에 몸을 맡긴 채, 핸들에서 손을 놓고 유탄발사기를 움켜쥐어 뽑아들었다.
그리고, 두 팔을 아래로 내리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유탄발사기가 반탄한다.
뚜껑따는 상쾌한 소리가 좀비웨이브의 기괴한 소리 속에서 경쾌하게 울려퍼진다.
토통, 토통, 토통!
순식간에 12발의 유탄을 활강하는 돌개바람 위에서 내리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폭발했다.
대지가 격렬하게 춤을 춘다.
폭발의 폭풍이 줄이어 회오리친다.
휘말려든 인간의 파편이 사방으로 휘몰아치고, 나무가 꺾어지고, 풀잎이 핏방울을 싣고 휘날린다.
가슴 속에서 시원한 감각이 차올라온다.
물샐 틈 없이 바글바글 모여있던 좀비웨이브.
거기에 떨군 12발의 유탄.
[레벨이 올랐습니다.]
순식간에 100마리를 죽였다.
아니, 수십여마리쯤이겠지.
겨우 12발로.
"...하하."
웃음이 나온다.
스킬에 대응해 소모되는 스텟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꽂아서 터뜨려 폭발의 파편폭풍으로 쓸어버리면 애초에 스텟과는 상관이 없다.
레벨이 오른다.
나는 웃으며, 가속을 발동했다.
[자동 시전 : 가속]
"아아, 이거지."
세상이 느릿해졌다.
떨어지며, 활강하며, 나는 그렇게 공중에서 멈춘 채 움직였다.
유탄발사기를 집어넣고, 더플백에 손을 넣어, 수류탄을 꺼내들며.
나는 웃었다.
한 손에 하나씩 수류탄을 움켜쥐고 꺼냈다.
감귤 하나 정도 사이즈의 둥근 금속체의 감촉.
손에 착 감긴다.
난 웃으며 두 주먹을 맞대고, 검지손가락 두 개를 들어 핀에 걸었다.
그리고, 두 팔을 펼쳤다.
티틱!
핀이 뽑힌 수류탄을 양 손에 들고, 스트라이크 클립에 손가락을 넣고는 튕겼다.
수류탄에 단단히 물려있던 손잡이가 이격되어 허공으로 느릿하게 떠오른다.
좋은 광경이다.
"하핫, 하하하!"
웃음이 나온다.
손을 펼쳐 수류탄을 놔버리는 순간에 차오르는 기묘한 감각이 웃음신경을 자극하는 것같다.
터질거라는 기대감.
터지며, 여럿이 죽어나갈 거라는 설레임.
그저 즐겁다.
난 수류탄을 계속 꺼내 두 주먹을 맞대어 핀을 뽑고, 클립에 손가락을 걸어 튕겨내고는, 아래로 떨구었다.
두 발, 네 발, 여섯 발, 여덟 발.
수류탄 열 네개를 떨궜을 때에야 비로소 가속을 생각보다 많이 써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벌써 5회째인가.
아껴야 돼.
수류탄을 더플백에 집어넣는 과정에서 시간을 꽤 쓰는 바람에 스텟은 어느정도 회복됐지만, 그러나 그렇다 해도 마구 써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난 느릿하게 일렁이는, 여유롭게 파도치는 수풀과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그 사이에서 나를 향해 팔을 휘저어대는 어마어마한 물량의 좀비웨이브를 내려다봤다.
이 놈들을 모조리 잡아먹어버리고 싶다.
모조리 죽여 없애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