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성장하게 될 거야.
그런 생각이 들자 가슴이 벅차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난 핸들을 붙잡고 고개를 들어 멀리 내다봤다.
어두운 새벽, 병원 위에 추락해 있는 치누크.
그리고 거기에 달라붙어 있는 검은 그림자들.
우리 헬기 조종사들.
구해야 돼.
천사교 놈들을 척살하려면 저들이 필요해.
여기서 조종사를 잃을 수는 없다.
난 손을 내뻗어, 아파트 상공을 겨누고는 움켜쥐었다.
슈화확!
공중으로 치솟아, 아파트 옥상을 뛰어넘은 그 순간.
가속이 끝났다.
그리고, 수류탄이 폭발했다.
콰콰콰콰쾅!
가속상태에서 뿌린 수류탄.
거의 동시에 14개의 수류탄을 내던진거나 다름없다.
마찬가지로, 거의 동시에 수류탄은 터졌고, 연쇄적인 쇼크웨이브는 서로 부딪히고 어우러지고 반응하며 더욱 격렬하게 퍼져나갔다.
수류탄 14발의 충격파를 얻어맞은 인근 아파트 유리창이 모조리 박살났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좋아.
좋아!
수류탄 14발.
마찬가지로 100마리까지는 죽이지 못했을 것이다.
수십마리가 수류탄에 폭사해 뒤졌을 것이고, 또다시 레벨업했다.
한 순간에 2렙업.
서울시 전역에, 또 경기도 전역에 발생하고 있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대규모 좀비웨이브.
누군가에게는 공포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막막함일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먹음직스러운 만찬일 뿐이다.
모조리...
잡아먹어주지.
천사교.
좀비웨이브를 일으켜, 그나마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전부 죽여 없애버릴 생각이었겠지만, 틀렸어.
너희가 한 행동은 나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줄 뿐이다.
감사하는 마음, 가슴에 가득 담아, 너희들을 전부 죽여 없애주겠다.
단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
바퀴벌레가 말했던, 선택받은 자.
무슨 예수의 재림인지 개소리를 엄청 나불댔는데, 여러 호칭을 되는대로 갖다붙인 결과인건지, 아니면 놈이 말한 선택받은 자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만약 놈이 나와 같다면.
어떠한 능력을 가진 놈이라면, 놈도 죽여 없앤다.
나와 같은 특수한 인간이라 쳐도, 천사교를 이용해 좃같은 짓을 한 시점에서 이미 나하고는 엮일 수 없어.
아파트 옥상 위로 공중을 활공해 날아가던 돌개바람이 추진력을 서서히 잃으며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
병원은 멀지 않다.
심장의 피가 위로 쏠려 올라가는, 바닥이 꺼지는 느낌.
추락하고 있다.
난 손을 내밀어 병원을 향했다.
병원 옥상은 어둡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도 검은 그림자들이 퍼덕이며 발광하고 있다.
끼에에엑! 이에에엑!
작은 그림자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울부짖음.
쇠를 긁는, 두드려대는 어지러운 소리 사이에서도 분명히 들려온다.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있다.
저기에.
난 주먹을 움켜쥐어 공간발톱을 발동했다.
슈화확!
단숨에 거대한 쇳덩어리가 확대된다.
치누크의 머리 위로 솟아오른 나는, 즉시 가속을 발동하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느닷없이 하늘에 하얀 바이크가 나타나 당황한 듯, 놈들은 날개와 대가리를 휘저어대며 일제히 날아오르고 있었다.
놈들이 나를 올려다본다.
그러나 나를 정확히 본 놈은 몇 되지 않는다.
가속상태라 그저 느릿할 뿐이다.
수류탄은 쓸 수 없다.
가능하면 대위들과 치누크 둘 다 살리고 싶다.
추락했는데 다시 쓸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선 핀포인트로 대가리만 뚫는다.
난 허벅지에서 잉그램을 하나씩 움켜쥐고 꺼내들었다.
놈들을 향해 잉그램을 내민다.
보인다.
잉그램 총구에 형성된 적중의 원 안에서 붉게 타오르는 놈들의 몸뚱아리가.
딛고 앉은 돌개바람 위에서, 나는 놈들을 조준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드득, 드득, 드득, 드득!
쏘는 와중에도 돌개바람은 속도에 밀려 점차 멀어져가고 있었다.
탄창 하나를 다 비우고, 새로 탄창을 갈아끼우는 사이에 벌써 꽤나 멀리 날라가버렸다.
난 손을 내밀어, 먼 아래 치누크가 추락한 옥상을 향해 공간발톱을 발동했다.
돌개바람이 단숨에 옥상의 콘크리트를 박살내며 내려앉았다.
쿠-우--우---
파편이 느릿하게 올라오며 충격파가 렌즈처럼 둥글게 퍼져나간다.
그러나 충격면역으로 보호받고 있어 충격파를 얻어맞았음에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난 즉시 돌개바람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봤다.
둥글게 회전하는 긴 꼬리를 일렁이듯 만들어내며 날아든 잉그램의 탄환이 이제서야 박쥐들 대가리에 꽂히기 시작하고 있었다.
난 미소짓고는, 잉그램 하나를 허벅지에 집어넣고, 검을 꺼내어 위로 집어던졌다.
슈화확!
내 손 끝에서 피어오른 그림자 전사가 검을 움켜쥐고 치누크 위에 내려앉는다.
박쥐들 다 죽여.
괴물들 전부 죽여버려.
그림자 전사가 응답하듯 검을 치켜세우더니, 곧장 놈들에게로 쇄도해 들어가며 검을 휘둘렀다.
잠깐만 둘러봐도 알겠다.
별로 많지 않다.
평택에서 동굴을 지배하고 있던 그때 그 위상, 꽤나 꺾여버렸는데.
그런데, 대위들은 어떻게 됐지?
설마 죽은건가.
잉그램 하나만을 손에 든 채 주위를 둘러보는데, 가속이 끝나버렸다.
후두두두둑!
잉그램의 탄환에 대가리가 꿰뚫린 박쥐들이 피와 뇌수를 흩뿌리며 와르르 죽어 떨어져내렸다.
피의 비가 내린다.
싸악! 파칵!
그림자 전사가 박쥐들을 썰어내고 있는 소리가 치누크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다.
얼굴에 묻은 피의 비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나는 치누크를 둘러봤다.
대위들이 무사한지 확인해야 돼.
하지만 그 전에...
어디에 있는거지?
놈은.
그 때, 치누크의 커다란 몸뚱아리 너머에서 쇠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육중한 발소리.
그리고, 고막을 괴롭히는 높은 톤의 으르렁.
치누크에 가리워져 있던, 거대한 괴물 박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움 속에서도 번뜩이는 여섯개의... 눈?
변했다.
놈은 변해있었다.
평택에서 마주쳤을 땐 그래도 박쥐의 원형을 유지는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저 앞에 있는 놈은, 박쥐라고 하기엔 너무 멀리 가버렸다.
턱이 양갈래로 찢어지고 벌어져, 가슴께까지 내려와 있다.
벌어진 틈새에 무수한 이빨들이 돋아나, 상체 전부가 입인 것같다.
그리고 그 길쭉하게 찢어진 아가리 안에서, 사람의 팔 여러개가 마치 혀인 것마냥 낼름대고 있었다.
날개와 몸 곳곳에 사람의 얼굴과 팔다리가 비죽비죽 튀어나와 있는 것이,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사람을 잡아먹고 또 잡아먹어 몸에 다 담아둘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같다.
흉측하기로는 전에 터뜨려 죽인 곰보다도 한 수 위다.
흐르르르륵-
놈이 나를 보고는 온 몸의 털과 팔다리를 바들바들 떨어댔다.
난 그런 놈을 보고는 미소지었다.
"...나 알아본거냐?"
흐르르르륵-
놈은 대답 대신 털과 수족을 부들부들 떨며 한 발을 내딛었다.
적개심.
분노.
증오.
그 모든 것이 들어있는 몸짓이다.
나를 죽여 없애버리겠다는 생각 뿐이다.
나는 그런 놈을 바라보며 웃었다.
"오랜만이지? 그 때 못 죽었으니 이제 죽어야지."
죽었으니, 라고 말하며 웃음을 거두었고, 죽어야지, 라고 말하며 이를 갈았다.
말이 끝나는 동시에 나는 잉그램을 내밀었고, 빈 손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슈르릉- 드르르르륵!
잉그램 탄환 서른발이 불과 1,2초 사이에 모조리 뿜어나가 놈에게 적중했다.
약점 따윈 없다.
온 몸이 약점이다.
놈의 온 몸에 퍼져, 뭉쳐있는 인간 하나 하나를 전부 죽여 없애지 않으면 안 된다.
탄환은 마치 산탄총을 쏜 듯이 넓은 탄착군을 형성하며 놈의 몸에 박혔고, 놈은 비명을 질렀다.
끼에에에에엑!
총알 다 썼다.
잉그램을 허벅지에 끼워넣는 그 순간, 놈이 지붕을 짓밟았다.
거대한 몸체로 날개를 펼친 놈이 갈라진 아가리를 가슴까지 쩌억 벌리며 달려든다.
느리다, 이 새끼야.
난 사납게 미소지으며, 검을 움켜쥐고,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뛰어들어 검을 내리베었다.
"흡!"
날개가 쇄도해 온다.
검이 날아들어 간다.
눈 앞이 캄캄해지는 그 순간, 가속을 발동했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내게 쇄도해 오던 놈의 날개가 일순간 멈췄다.
내 검이 놈의 날개에 들이박힌다.
파칵!
검이 놈의 뼈에 들이박혔다.
굵다.
단단하다!
검은 뼈를 반쯤 파고들어가 그대로 멈춰버렸다.
제법인데.
괴물새끼.
난 혀를 차고는 두 손으로 검을 붙잡고 들어올려 빼냈다.
그리고는 곧장 놈의 쩍 벌린 아가리를 향해 휘둘렀다.
아래로, 위로, 그리고 좌우로.
검을 세차게 휘둘러 놈의 아가리를 이루던 살점과 인간의 수족을 모조리 잘라 걸레짝을 만들어놨다.
써걱, 써거걱!
좌우로 놈의 날개가 덮쳐온다.
뒤로 힘껏 뛰어 벗어나서는, 비죽 튀어나와 있는 날개뼈를 짓밟고 성큼성큼 뛰어올라갔다.
겉모습만 바뀐게 아니다.
흉물스럽게 변하며, 동시에 강해졌다.
날개뼈를 절단낼 수 없다면, 대가리와 몸통.
날개를 타고 어깻죽지의 굵은 털을 밟고 서서는, 놈의 대가리에 검을 내리찍었다.
파각!
움찔.
아가리가 너덜해진 놈이 한 템포 늦게 경련했다.
검을 뽑아 어깨를 찌르고는, 곧장 아래로 그어내린다.
가죽이 질기다.
보기보다 두껍다.
두 손으로 잡고 야구방망이 휘두르듯 힘껏 베어내리는데도 묵직한 감각이 온 몸으로 올라온다.
제법인데.
"흡!"
검을 힘껏 내려 등줄기를 갈라내고는, 박차고 뛰어나가 바닥에 내려섰다.
놈의 갈라진 등가죽.
그 안에서 바글바글 뒤엉겨 있는 인간들.
괴물의 몸 안에서 팔이, 다리가, 몸통이, 그리고 머리가 일직선으로 베이고 썰린, 울부짖는 표정의 무수한 인간들.
아니, 인간이 아니다.
이 놈들은 변해버린 놈들이다.
좀비들이다.
검을 도로 검집에 꽂아넣었다.
그리곤 잉그램을 꺼내 탄창을 교체했다.
남은 탄창은 두 개.
죄다 쏟아부어도 이 놈을 죽일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탄환 수만큼 이 안에 있는 놈들을 죽여 없애버릴 수 있다.
난 가속을 계속 유지시키며, 갈라진 등의 틈새로 잉그램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드득, 드득, 드득!
탄환이 갈라진 가죽 틈새로, 등과 대가리로, 그리고 날개로 퍼져나가 들이박혔다.
파파팟!
핏방울이, 잘려나간 굵은 털들이 허공에 휘날린다.
가속.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또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정신이 소모되고 있다.
언제까지 유지될지 알 수 없다.
가속이 유지되는 동안 이 놈을 죽여야, 죽이지 못한다면 기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입혀놔야 된다.
드득, 철컥!
드라이 파이어.
탄환이 없다.
즉시 남은 탄창 두 개를 갈아끼우곤, 계속해서 탄을 꽂아넣었다.
끼-이--에---에----
뒤늦게 놈의 쩍 벌린, 걸레짝이 된 아가리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뒤돌아서려 몸을 비틀지만, 내 화망에 약점을 노출할 뿐이다.
근거리에서 발사된 잉그램의 탄환은 놈의 얇은 날개를 뚫고 들어가 몸통에, 대가리에 정확히 들이박혔고, 그럴 때마다 놈의 목숨은 하나씩 줄어들어갔다.
드득, 드득, 드득!
단숨에 120발의 탄환을 쏟아붓고는, 잉그램을 허벅지에 꽂아두고 다시 검을 빼들었다.
적중.
스텟을 꽤나 써버렸어.
아마 쏘는 도중에 바닥나버렸지 싶다.
이제 남은건, 근거리.
나는 검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놈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