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9화 (179/187)

"흡!"

숨을 멈추고, 검을 찔러넣는다.

걸레짝이 된 아가리.

무수한 이빨들.

그 사이로, 검을 찔러넣고, 살을 베어내린다.

놈의 몸뚱아리와 구멍이 숭숭 뚫린 날개가 가속 안에서 느리게 경련해댔다.

--에-에-에에엑!

쩌렁!

고막을 파고드는 괴성.

가속이 끝났다.

유지되지 않는다.

적중 스텟과 함께, 가속 횟수도 바닥나버렸다.

난 혀를 차고는 뒤로 물러서려 했다.

한 순간에 등이 썰리고 아가리가 난도질당해버린, 온 몸을 난사당한 괴물박쥐의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끼에에에엑!

물러서려 하는 나를 향해 놈이 날개를 뒤덮었다.

빠르다.

피할 수 없다.

새카매진다.

놈의 몸에서 분출한 피와 날개가 동시에 나를 덮쳐오는 와중, 나는 등줄기에서 치솟아 오르는 본능을 느꼈다.

폭발의 충격파가 나를 덮쳤을 때.

돌개바람에서 떨어져 트럭을 들이받았을 때.

그 찰나의 순간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끼에에에엑!

놈의 괴성과 나를 덮치는 피와 날개. 그 속의 어둠에 갇혀, 나는 본능적으로 놈을 향해 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움켜쥐었다.

쿠콰확!

순식간에 눈 앞이 환해졌다.

멀리 아래로 보이는 가로등 불빛.

급속도로 다가오는 아파트 축구장.

나는 추락하고 있었다.

놈을 뚫고나와, 지붕에서 떨어져내리고 있다.

피 때문에 눈 앞이 흐릿한 와중, 나는 공중에서 몸을 돌려 종합병원을 바라봤다.

손을 내민다.

움켜쥔다.

슈화확!

치누크가 발 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거대 괴물박쥐도 눈에 들어온다.

공간발톱에 의해 몸통이 꿰뚫린 거대한 괴물.

앞뒤로 피를 철철 쏟으며 놈은 비틀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놈에게, 나의 그림자 전사가 검을 꽂아넣고 있다.

자잘한 놈들은 죄다 죽여 없애버린 모양이군.

좋아.

이번에야 말로 저 괴물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릴 수 있겠어.

공간발톱에 의해 가공할 속도로 솟아오른 내 몸은 추진력을 잃을 때까지 계속해서 공중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공중에서 균형을 잡는건 보통 일이 아니다.

체력 업적 스킬이 신체기능을 향상시켜 주지 않았다면 난 아마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겠지.

멀리 내려다보이는 괴물박쥐.

아직 멀어.

추락하기 시작하면, 그 때 놈을 뚫고 들어간다.

이번에야 말로 완전히 끝장내버리겠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공격 스텟을 쓸 수 없다면, 공간발톱으로.

사방에서 휘몰아쳐주겠다.

내려간다.

서서히 힘을 잃고, 아래로 내려간다.

조금 더.

조금만 더!

그림자 전사에 의해 썰리고 찍히고 꽂히며, 온 몸에서 피를 쏟아내던 괴물 박쥐가 느닷없이 날개를 펼쳤다.

대가리를 들어올린다.

가슴께까지 찢어져있는 길쭉한 아가리.

나에 의해 난도질 당해 걸레짝이 된 놈의 아가리에서 괴성이 터졌다.

끼에에에엑!

놈은 그림자 전사를 매단 채,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미친!

안돼!

난 즉시 손을 내밀며 외쳤다.

"어디가냐!"

힘껏 움켜쥐자, 옥상이 급격히 확대된다.

무릎과 주먹에 닿았다, 라는 느낌이 든다.

동시에, 내가 내려앉은 자리가 거미줄처럼 쩌억 갈라진다.

쿠쾅!

먼지구름과 파편이 사방으로 분출한다.

난 즉시 일어나 옥상 벽으로 달려갔다.

철벅, 철벅!

놈이 쏟아낸 피웅덩이를 짓밟으며 옥상 벽에 다다르니, 놈이 피의 길을 남기며 바닥을 기어가는게 보였다.

자동차를 밟아 으깨며, 트럭을 타고 넘으며, 우글우글 모여있는 좀비웨이브를 마구 씹어삼키며.

끼에에에에엑!

"씨발!"

도망치다니!

요전에도 그러더니, 도망치는게 저 괴물의 주특기인가!

난 돌개바람으로 달려가, 대물저격총을 꺼내들고 다시 옥상 벽으로 뛰어갔다.

견착하고, 조준한다.

적중의 원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가깝다.

조준경에 놈이 포착된 즉시 방아쇠를 당겼다.

쾅!

묵직한 충격이 어깨와 등을 거세게 타격한다.

총이 번쩍 들린다.

끼에에에엑!

고통에 젖은 비명소리.

맞았나?

고개를 내려보니, 놈이 비틀대는게 보였다.

맞긴 맞았다.

하지만, 죽이진 못했다.

난 즉시 대물저격총을 내려 다시 놈을 조준했다.

하지만 놈은 순식간에 아파트 뒤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썅."

속터진다.

죽일 수 있었는데.

쫓아가서 죽일려니, 당장 저 아래에 실시간으로 모여들고 있는 좀비웨이브가 문제다.

가속이 있었다면.

가속을 조금만 더 쓸 수 있었다면.

놈을 완전히 죽여 없애버릴 수 있었을텐데.

조금만 더 있었다면.

"쯧."

할 수 없다.

놈을 죽이는건 잠시 미루자.

지금 이 짧은 전투로 다시 2렙 올랐다.

아쉽지만, 당장은 그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범위에서 벗어나 더이상 추적할 수 없게 된 그림자 전사가 내 곁으로 돌아와 내게 검을 내밀고 있다.

검을 받아 검집에 넣자 그림자 전사가 파스스 사라진다.

난 대물저격총을 돌개바람에 도로 넣어두곤, 치누크로 걸어갔다.

커다란 군용헬기, 치누크.

많이 상했다.

이 두터운 군용 헬기가, 어지간한 고폭탄도 막아내는 두터운 철판이 여기저기 우그러져 있다.

치누크의 문은 반쯤 벌어져 엉망이다.

당겨봐도 열리지 않는다.

조종석은?

우그러든 철판에 손을 대어 미끄러트리며 나는 조종석을 향해 걸어갔다.

조종석 부분은 옥상에 반쯤 매몰되어 있었다.

머리가 먼저 떨어진 모양이다.

방탄유리 너머, 김대위와 박대위.

둘 다 엎어져 있었다.

죽었는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치누크를 밟고 올라서서 유리를 두드렸다.

"이봐요! 어이! 살아있어? 김대위! 박대위!"

쾅쾅쾅!

좀비웨이브의 어그로를 끌 것 같지만 상관없다. 이미 여기서 잉그램 탄창을 여러개 비우고 대물저격총까지 쏴댔으니 어그로를 끌었다면 진작에 끌었다.

지금은 이 사람들 살아있는지 확인하는게 중요하다.

쾅쾅쾅!

"어이! 이봐! 살아있냐고!"

안 움직이는데.

치누크에서 내려 조종석의 문을 붙잡아봤다. 이 문도 우그러져 끼이익 소리가 날 뿐 열리질 않는다.

난 숨을 들이키곤, 문틈을 붙잡고 힘껏 당겼다.

"씨발...!"

끼이익-드드득.

손가락이 아프다. 팔이 뜨겁다.

온 몸에서 열이 올라온다.

악문 턱이, 목덜미가 바들바들 떨린다.

"크으읍!"

우드드득!

물려있던 잠금이 박살나며 문이 열렸다.

넘어질 뻔했다.

난 비틀거리곤, 숨을 가다듬었다.

하도 힘을 써서 눈 앞이 번쩍거린다.

힘이 좋아지긴 좋아졌구나.

난 깊게 숨을 들이켜 정신을 차리곤, 개방된 문 안으로 올라 들어갔다.

피냄새.

죽은건가?

설마.

김대위와 박대위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김대위! 박대위! 어이!"

박대위가 천천히 눈을 떴다.

"...으음."

살아있었구만.

그럼 김대위는?

헬멧을 벗겨보니, 입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한 눈에 봐도 이 사람은 중상이다.

코에 손가락을 대어 본다.

...숨은 쉰다.

크고작은 부상은 입었지만 둘 다 살아있다.

다행이다.

"...후우."

난 눈을 살짝 감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연씨. 거의 다 왔어. 이제 곧 도착할거야!"

공중에서 돌개바람을 활공해 내려가며 크게 말했다.

내 뒤에 앉아있는 사람은 김민준 대위.

중상을 입었으니 빨리 데려다주고 치료받게 해야된다.

공중에서 풍경이 확확 바뀌어 가는 와중, 강풍이 얼굴을 때려대는데도 김대위는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성가연이 대답해왔다.

"알겠어요! 정문으로 오시는거죠? 발포 그만하라고 말해둘게요!"

서래마을 인근은 현재 연속적은 폭발이 터지는 중이었다. 유탄과 대전차로켓, 그리고 미니건을 비롯한 중화기가 도로를 거의 갈아엎다시피 하고 있다.

오체분시되어 죽은 시체가 쌓여 언덕을 이룰 지경이다.

덕분에 좀비 웨이브의 진격속도가 늦춰져 좋은 표적이 되고 있다.

성가연이 말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문 쪽에서 뿌려대던 빛의 줄기들이 우뚝 멈췄다.

바리케이트가 저 앞이다.

난 공간발톱으로 바리케이트 앞에 돌개바람을 착지시켰다.

쿠쾅!

바닥이 쩌억 갈라지며 먼지바람이 둥글게 피어난다.

특임대원들이 놀란 얼굴로 나를 내려다본다.

난 외쳤다.

"문 열어!"

내가 외침과 동시에 뒤에서 좀비웨이브의 괴성이 우르릉 울려퍼졌다.

특임대원들이 곧장 로켓과 중화기를 다시 뿌려댄다.

두두두두- 콰콰쾅!

바리케이트의 문이 열린다.

돌개바람을 몰아 안으로 들어가자 문을 붙잡고 있던 성가연이 놀라며 말했다.

"대위님! 죽은거예요?"

난 뒤에 앉은 김대위와 나를 묶고있던 벨트를 풀어내곤 말했다.

"안 죽었어. 의사선생님 아직 살아있죠? 어서 데려가. 빨리!"

"아, 알겠어요! 거기 위에! 네, 거기 두 사람! 이리 내려와요!"

그녀가 외치자 바리케이트 위에서 중화기를 잡고있던 민간인 남자 두 명이 서둘러 내려왔다.

"저기 약국 있죠? 이 분 데리고 빨리 저기로. 어서요!"

"아, 예!"

남자들이 김대위를 함께 둘러메고 약국으로 뛰어갔다.

성가연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박대위님은요? 어? 수류탄은 다 어디 있어요?"

난 핸들에 손을 얹고는 그녀를 바라봤다.

내 돌개바람엔 아무것도 없다.

가벼운 상태다.

"박대위는 아직 저기 있어. 수류탄도. 김대위만 빨리 이송해 온 거야. 지금 다시 돌아갑니다."

성가연은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은 하지 못했다.

으르르릉-

액셀을 당겨 다시 바리케이트를 나가려는데, 성가연이 내게 말했다.

"성훈씨."

뒤돌아봤다.

성가연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화이팅."

음...

뭐지?

화이팅?

몰라, 씨발. 바쁘다.

박대위랑 수류탄!

난 고개를 끄덕이곤 돌개바람을 달려 바리케이트를 빠져나갔다.

뒤에서 성가연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사격중지! 사격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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