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0화 (180/187)

우두두두, 피샤아악! 하며 쏴대던 중화기와 로켓이 일순 멎었다.

좋아.

아직 공간발톱은 남아있다.

가는 데까진 문제 없어.

가는 데까지는.

돌아올 때는...

모른다.

돌아올 때 일은 돌아올 때 생각하자.

좀비 웨이브가 사방에서, 내게로, 서래마을로 몰려들어 온다.

시체와 시체가 겹쳐 쌓인 언덕을 넘어.

목까지 찢어진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캬아아악!"

"크롸라랅!"

난 곧장 손을 내밀어 움켜쥐었다.

쓔화확!

공중으로 치솟아 올라, 가속도를 받아 아파트 옥상에 착지했다.

쾅!

뒤틀리려는 돌개바람을 힘껏 붙잡아 균형을 잡는다.

끼긱, 키이익!

액셀을 당긴다.

가아아앙!

옥상을 달려나가, 다시 공간발톱으로 뛰어오른다.

아파트 옥상과 옥상을 넘나들며, 공중을 날아 종합병원의 옥상에 도착했다.

카칵, 끼이이익!

브레이크를 힘껏 움켜쥐고 몸을 비틀어 돌개바람을 세웠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치누크를 바라보며 안장에 주저앉았다.

"...하아."

방금 그게 마지막이었다.

내가 갖고있는 공간발톱 횟수.

전부 써버렸다.

어떻게 여기까지는 도착했는데, 박대위를 서래마을까지 데려갈 수가 없다.

난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갑갑함, 답답함이 가슴에 머무른다.

괴물박쥐 썰어버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능력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쯧."

허리에 손을 얹고 혀를 차봐도 갑갑함과 답답함이 가시진 않는다.

난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박대위는 조종석에 앉아 반쯤 뜬 눈을 느릿하게 껌뻑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사리분별이 안 되는 얼굴이다.

추락 충격이 컸겠지.

눈은 떴지만 제정신이 돌아오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같다.

눈을 뜨고 의식이 있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박대위도 부상당했다는 사실이 변하진 않는다.

"...후우."

난 돌개바람에서 내려 치누크의 조종석으로 다가가 얹어놓은 수류탄 더플백 하나를 꺼내었다.

방법이 없다.

버티는 수밖에.

더플백을 어깨에 짊어메고 지퍼를 내렸다.

수북하게 들어있는 수류탄 무더기.

하나를 꺼내들고, 옥상 벽으로 걸어갔다.

우르르릉- 으르르릉-

사방이 새카맣다.

좀비 웨이브가 도로를, 공원을, 풀숲을 뒤덮어, 두 팔을 올리며 괴성을 질러대고 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좀비웨이브의 물결과, 굉음이 터져올랐던 종합병원을 향해 기어올라 오는 좀비들.

서로 붙잡고 당기고 짓밟으며 서로가 서로의 받침대가 되어 벽을 타고 올라오는 인간괴물들.

몇마리인지 셀 수가 없다.

이대로 있으면 몇 분 안에 옥상까지 기어올라올거다.

"후우..."

난 깊게 심호흡하고는, 수류탄의 핀을 뽑았다.

자아, 버텨보자.

카륵!

클립에 손가락을 걸어 튕겨내며 밖으로 가볍게 휙 던져 떨군다.

수류탄은 금새 시야에서 사라졌다.

놈들 사이로 떨어진게 분명하다.

안에 파묻혔나?

내려다보고 있는데, 억눌린 폭음이 들려왔다.

투웅!

벽에 달라붙어 있던 좀비웨이브 한무더기가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굳건하게 벽에 쌓아올린 인간의 탑 한귀퉁이가 한 순간에 허공으로 날라가버렸다.

그리고, 좀비의 벽은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오."

족히 수백마리는 되는 놈들이 일거에 우르르 쏟아져 내리는걸 보니 은근히 통쾌하다.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난 즉시 수류탄을 다시 까서 아래로 떨구었다.

그러며, 앞으로 걸었다.

틱, 카륵!

틱, 카륵!

까서, 클립을 튕기고, 떨군다.

계속적으로 나는 수류탄을 까서 아래로 휙휙 던지며 옥상 벽을 따라 걸었다.

다음 순간, 수류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두웅! 쾅! 쾅! 투웅!

수류탄이 터지는 소리 속에, 좀비들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소리가 뒤섞인다.

크아아악! 캬아아악!

폭발하며, 무너지며, 괴성을 질러댄다.

재미있는데 이거?

수류탄은 많아.

실컷 터뜨려주지.

난 웃으며 수류탄을 계속 까서 아래로 떨구었다.

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 올랐다는 메세지가 거의 10초에 한 번씩 뜬다.

난 웃어버렸다.

미치겠네.

완전 광렙인데 이거?

옥상을 한 바퀴, 두 바퀴 돌 때까지도 좀비웨이브의 무더기는 옥상에 올라올 엄두도 내지 못했다.

쿠쾅, 콰쾅! 투웅! 두웅!

수류탄은 끝없이 터졌고, 내 입가에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벌써 60렙이 넘었다.

이대로면 만렙도 순식간이다.

이 상황은 보통은 위기라고 하지.

다친 사람을 구해야 돼서 움직일 수도 없는데, 사방에 좀비웨이브가 나를 죽이려고 건물을 기어올라 오고 있고.

위기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위기다.

그런데 난 왜 이렇게 즐겁냐.

콰쾅! 쿠쾅! 쾅!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 즐거워 미치겠네.

옥상을 세 바퀴 돌았을 때, 스텟을 확인하니 다음 아파트로 건너갈 정도로는 회복되었다.

"후우."

웃음을 거두고 아래를 슬쩍 내려다봤다.

수류탄을 까서 놈들이 올라오는걸 저지하긴 했어도, 여전히 놈들은 꾸역꾸역 올라오고 있고, 올라오는 높이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쯤하면 됐어.

슬슬 다음 아파트로 건너가볼까.

치누크로 돌아가 더플백들을 꺼내 돌개바람에 얹어놓고는, 박대위를 부축해 돌개바람에 태웠다.

"어이, 아저씨. 꽉 잡아."

내 뒤에 앉은 박대위의 손이 내 몸을 꾸욱 움켜쥔다.

그래도 상황을 인지는 하나보네.

"고...고맙..."

음?

박대위, 엄청 과묵한 사람이었는데.

말 할 줄 아네?

난 피식 웃고는, 핸들을 꺾어 돌개바람을 달려나갔다.

빙그르 돌아 아파트를 향해 옥상 위를 달려나가는 와중, 손을 내민다.

"고마우면 죽지 말라고, 아재."

움켜쥐었다.

슈화확!

공중을 치솟아 올라 활공해 나아간다.

슬쩍 뒤돌아보니, 좀비 웨이브가 종합병원에 벌떼처럼 달라붙어 옥상으로 기어올라가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징그럽구만.

아파트 옥상이 다가온다.

활공해 내려가던 돌개바람이 옥상에 착지했다.

쾅! 카칵, 카아악!

균형을 잡으며 브레이크를 잡는 와중에 박대위가 크윽 하며 신음을 흘렸다.

꽤나 아픈 모양인데.

이 사람도 치료가 필요하다.

"잠깐 여기 있어요. 돌아갈려면 시간 좀 걸릴거야."

난 그렇게 말하곤 돌개바람에서 내렸다.

박대위는 기대고 있던 내가 없어지자 몸을 가눌 수 없는지 앞으로 웅크리고 엎드려버렸다.

안쓰럽네.

빨리 치료받게 해야 되겠는데.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

어깨에 메고 있는 더플백.

나는 더플백의 지퍼를 내리고는, 수류탄을 다시 꺼내들었다.

"후우..."

자아, 다시 놀아볼까.

좀비 웨이브가 덮친 건물은 종합병원 뿐만이 아니었다.

놈들은 눈에 띄는 모든 것에 달려들고 있었다.

어떤 건물엔 많이, 어떤 건물엔 적게 달라붙어 있을 뿐, 놈들이 몰려들어 도시를 잠식하고 있다는 점은 매한가지다.

우리 마트 건물은 괜찮은건가.

난 수류탄을 까서 아래로 떨구며 멀리 바라봤다.

"수현아. 거기 좀 어때? 내 말 들려?"

옥상 벽을 걸어가며 수류탄을 떨구고, 또 떨군다.

콰쾅! 쿠쾅! 쾅!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렇게 떨구며 걷는데, 수현이가 대답해왔다.

"응, 오빠! 여기 지금 좀비웨이브! 좀비웨이브!"

역시.

난 이를 악물고는 마트 건물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제기랄, 내가 몸이 두 개도 아니고 한 번에 두군데에 어떻게 있을 수 있냐고.

지금 상태론 날 수도 없고 길 수도 없다.

"누가 다쳤어? 어떻게 되고 있어?"

"으응, 다친 사람 없어. 훈이 아저씨랑 준혁씨랑 다들 옥상에서 잘 싸우고 있어. 폭탄 펑펑 터뜨리고 있구, 그, 옛날에 우리가 살던 집 있잖아. 하숙집."

"어. 그 집. 왜?"

"터졌엉."

그렇게 말하며 헤헤 웃는다.

웃... 웃었다고?

상황이 엄청 다급하고 그런건 아닌가본데.

잠깐.

주변 건물들 터뜨렸다고?

그러면, 좀비 웨이브는 그 쪽으로 어그로가 많이 끌렸겠는데.

아아.

여기저기 분산됐겠구나.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돌아가면 건물 주변에 폭발물 설치해놓고 지뢰 깔아놓느라 수고했다고 칭찬 좀 해줘야 되겠네.

"다행이다. 수현아. 무슨 일 있으면 말해. 알았지?"

"으응, 오빠는 괜찮아?"

틱, 카륵.

핀을 뽑고 손가락으로 클립을 튕겨내곤 수류탄을 휙 던져 떨군다.

그러며 말했다.

"난 괜찮아."

쾅!

[레벨이 올랐습니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지.

얼마 안 가서 만렙이다.

수류탄을 어찌나 던져댔는지 더플백 두 개는 아예 비어버렸다. 족히 300개는 던져댄 것 같은데, 몇마리나 죽였는지 셀 수도 없을 정도다.

그렇게 아파트 옥상과 옥상을 건너가며 수류탄을 던져대기를, 어느새 레벨 91.

미친듯한 폭업.

지금 이 순간에도 좀비웨이브를 향해 중화기와 폭발물을 난사하며 버티고 있는 우리 건물 사람들과 서래마을에는 좀 미안하지만, 좀비웨이브가 터진건 오히려 내겐 너무나 잘 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좀비웨이브를 만들어 낸 천사교를 그냥 놔 둘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찾아내는대로 죽여 없애야지.

바퀴벌레 때와 같은 전철은 밟지 않겠다.

어쨋든, 9렙.

9렙만 더 올리면 만렙이다.

서래마을을 바로 앞에 두고 있고, 공간발톱을 한 번 쓸 정도로 스텟도 회복됐지만, 아무래도 만렙이 코 앞이라 조금만 더 여기 머무르고 싶다.

수류탄 하나를 까서 아래로 떨구는데, 뒤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박대위가 안장에 엎어진 채 숨을 헐떡이며 힘겨운 듯 신음하고 있었다.

하는 모양새가 아무래도 갈비뼈가 여럿 나간 것같다.

숨을 들이킬라 치면 가슴에서 찢어지는 통증이 올라오는게 갈비뼈 부상이다.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으니 더욱 괴롭다.

난 더플백에서 수류탄을 꺼내려다 뒤돌아봤다.

...진통제든 붕대든 지금 저 사람은 의료적인 손길이 필요하다.

제길, 아깝네.

난 수류탄을 넣어두고는 돌개바람으로 걸어가 박대위의 어깨를 잡고 일으켰다.

투툭.

박대위의 코와 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다.

온 몸이 푹 젖은게, 이만저만 고통스러운게 아닌 모양이다.

난 창백해진 박대위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봐요. 어이, 아저씨. 이제 다 왔어. 정신차려요."

박대위는 짧게 숨을 끊어쉴 뿐 대답하지 못했다.

아, 진짜 안 되겠네.

일단 데려다주자.

이 좋은 사냥터를 놔두고, 만렙을 코 앞에 두고 움직이자니 아깝다.

하지만 지금 발생하고 있는, 서울경기 전체를 아우르는 대규모 좀비웨이브는 내가 레벨을 얼마를 올리든 혼자 감당 못한다.

결국 헬기조종사가 필요해.

이 쥐떼같은 놈들을 상대로 피리부는 사나이를 해 줄.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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