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윽..."
박대위는 이제 대답도 못 한다.
내 몸을 움켜잡는 손도 바들바들 떨고 있다.
난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는, 돌개바람의 액셀을 당겼다.
서래마을로 돌아가니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모텔은 불이 완전히 꺼져 창문으로 물을 주륵주륵 토해내고 있다.
그 주위에 선 사람들.
그리고 중화기와 폭발물로 좀비웨이브를 상대해 온 특임대원들과 민간인들.
모두가 얼굴에 피로가 역력하다.
"대위님! 정신차리세요! 괜찮으세요?"
다가와 박대위를 챙기는 성가연도 눈가에 다크서클이 살짝 내려와 있다.
박대위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미...민준이는. 민준..."
"김대위님은 아직 살아있어요. 대위님도 치료받으셔야죠."
박대위가 성가연의 팔을 꽉 붙잡고 말했다.
"아, 안돼. 헤... 헬기로. 헬기로 데려다 주시오."
"헬기요?"
박대위가 고통스러운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성가연에게 말했다.
"저... 좀비웨이브. 이끌고... 가야돼. 헬기... 하나 남았습, 니다. 우, 우리가 쓰던 구조헬기. ...크윽."
성가연이 나를 돌아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 상태로 헬기를 조종하면 공중에서 기절해버릴거다.
성가연이 박대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 치료부터 받아요. 거기 두 사람! 어서 와서 대위님 데려가!"
특임대원 두 명이 중화기를 놓고 내려와 박대위를 들쳐메고 약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의 빈자리를 성가연이 올라가 메웠다.
타타타타! 콰쾅!
좀비웨이브는 지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지친다.
전격전이 벌어진지 벌써 몇시간째, 좀비웨이브는 쉴 새 없이 몰려오고 있다.
난 혀를 차고는, 돌개바람에 얹어놓은 더플백에서 유탄발사기를 꺼내 바리케이트로 올라갔다.
유탄은 바리케이트 바닥에 상자째로 놓여있다.
난 성가연의 옆에 서서 유탄발사기에 유탄을 장전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부우우웃! 부우우우웃!
미니건을 두 손으로 잡고 좌우로 쏴대는 성가연의 뺨에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철컥.
유탄을 장전하고 일어서서 멀리서 꿈질거리며 다가오는 좀비웨이브의 물결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토옹, 투웅!
천둥치는 소리와 함께 오체분시된 인간이 사방으로 휘날린다.
이래갖고는 안 되는데.
성가연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나를 향해 크게 외쳤다.
"박대위님 회복할 때까지만 같이 버텨요, 성훈씨!"
투웅, 토옹!
유탄을 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대위.
부상이 심각하다.
몸도 못 가눌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쏴대면 탄약이 몇톤이 있든 박대위가 회복할 때까지 못 버틴다.
투웅, 토옹!
나는 어찌어찌 살아나갈 수 있을거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아니다.
탄약이 떨어지거나, 화력이 약해진다면 좀비웨이브의 해일에 휩쓸리고 말겠지.
지금 상황에서 유일한 해답은 헬기가 뜨는 것 뿐이다.
저고도로 날며 굉음과 광풍을 뿌려 어그로를 끌어, 좀비웨이브를 우르르 이끌고 물에 수장시켜버리는 것.
그러나 헬기를 조종할 사람이 없다.
아, 진짜 답이 없네.
성가연이 크게 말했다.
"다들 힘내! 버티는거야!"
그래.
버텨보자.
유탄발사기에 유탄을 재장전해 쏘는 와중에도 레벨업 했다는 메세지는 드문드문 올라오고 있다.
레벨 93.
진짜 얼마 안 남았다.
유탄을 수십발쯤 쐈을 때, 이어폰에서 특임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연씨! 지금 박대위님이 헬기로 가고 있습니다!"
성가연이 쥐고있던 미니건이 멈췄다.
그녀와 함께 뒤돌아보니, 멀리 약국에서 박대위가 비틀거리며 헬기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고, 특임대원들이 그를 따라가며 붙잡으려 들고 있었다.
"가연씨. 어떻게 합니까? 대위님 다시 데려가서 눕힙니까?"
성가연의 얼굴에 갈등이 피어났다.
지금 박대위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는 부상당했다.
자칫하다간 공중에서 죽는다.
그녀가 말을 못하고 있는 사이, 박대위의 목소리가 특임대원의 이어폰을 통해서 가늘게 들려왔다.
"진통제 맞았으니까, 괜, 괜찮아. 헤, 헬기에 앉으면, 괜찮을거야."
전혀 괜찮지 않은 목소리다.
식은땀이 눈에 들어갔는지 눈을 비벼댄다.
성가연이 그런 박대위를 바라보다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박대위님 다시 약국으로..."
난 손을 들어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난 들고있던 유탄발사기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바리케이트를 내려갔다.
"내가 같이 갈게."
그렇게 말하고는, 하나 남은 수류탄 더플백을 돌개바람의 안장에서 풀어 어깨에 맸다.
"성훈씨. 박대위님 많이 다쳤어요. 자칫하면... 자칫하면 하늘 위에서."
기절하거나, 추락해 죽을 지도 모른다.
난 돌개바람을 소환해제하곤 박대위를 향해 걸어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차하면 헬기에서 빼내서 탈출할 거야."
그렇게 되는 경우 운 나쁘면 좀비웨이브 한 가운데에 착지하게 되겠지.
최악의 경우는 그렇게 착지했는데 남은 스킬 횟수가 없는거다.
그러면 아마 둘 다 죽는다.
아, 젠장.
좀 안전하게 렙업하고 싶은데.
스킬을 좀 더 넉넉하게 쓸 수만 있다면.
조금만 더 여유롭게 쓸 수 있으면.
그랬다면 괴물박쥐도 진작에 죽여 없앴을 테고, 지금 이런 상황도 위기가 아닐텐데.
광렙의 기쁨을 느끼느라 잠깐 잊고 있었지만 좀비웨이브를 상대로 답이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곧 만렙이라고는 해도, 남은 전문화 하나를 연다 해도, 지금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성훈씨. 자칫하면 당신까지 위험해져요."
그렇게 말하는 성가연도 지금 상황에서 다른 방법이 없다는걸 안다.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종말이라잖아. 안전한 데가 어디 있어?"
성가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박대위는 특임대원들의 팔을 뿌리치며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박대위에게 다가가, 팔을 붙잡아 부축했다.
박대위가 나를 돌아본다.
얼굴이 창백하다.
식은땀으로 흥건하다.
난 그런 박대위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갑시다. 헬기에."
그 말에 박대위의 얼굴이 살짝 풀어진다.
금새 내 부축에 몸을 맡겨오는걸 보니 걷는것도 힘들었나보다.
구조헬기가 앉아있는 공용주차장은 그리 멀지 않았다.
도로 하나만 건너니 바로 헬기 프로펠러가 보인다.
만렙은 헬기 위에서 찍어야 되겠네.
"대위님. 아무쪼록 몸조심 하십시오."
"성훈씨. 잘 부탁드립니다."
우릴 따라오던 특임대원들이 그렇게 말하곤 바리케이트를 향해 되돌아갔다.
구조헬기의 조종석에 박대위를 앉히고, 나는 승객칸에 앉아 문을 양쪽으로 활짝 열어놨다.
수류탄이 반쯤 들어있는 더플백을 두 발 사이에 두고.
그리고는 헬기 헤드셋을 끼고 말했다.
"준비됐습니다. 박대위님. 진짜 괜찮은겁니까?"
박대위의 목소리가 헤드셋을 통해 오래된 라디오같은 소리가 되어 들려왔다.
"아픕니다. 쉬고싶습니다."
난 뒤돌아봤다.
박대위는 조종석 시트에 머리를 기대어 눈을 감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박대위가 숨을 들이키더니 눈을 뜨고 말했다.
"갑시다."
헬기의 엔진이 기동하기 시작했다.
기이이이잉-
구조헬기의 프로펠러가 회전한다.
점점 빨라지며 바람을 만들어 낸다.
이윽고, 육중한 몸체를 공중으로 띄워올렸다.
콰콰콰콰콰!
서서히 아래로 멀어지는 빈 주차장.
건물들의 옥상이 보이고, 이내 서래마을 좌우사방에 설치된 바리케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더욱 잘 보인다.
서래마을을 에감싸고 있는 새카만 좀비웨이브가.
바리케이트에서 쏴댈 때는 우리 화력이 압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
수박 껍데기 핥듯, 그저 서래마을을 휘감싸고 있는 거대한 좀비 웨이브의 표면만을 불꽃과 파편을 동원해 긁어내고 있을 뿐이다.
활짝 열어놓은 문 아래를 바라보며, 한 손에 수류탄을 쥔 채 나는 그 광경을 내려다봤다.
하아, 하아, 하아.
박대위의 숨소리가 헤드셋으로 들려온다.
위로의 말 같은건 할 수 없다.
스스로 조종석에 앉아 이 악물고 임무 완수를 위해 헬기를 운전하는 사람에게 힘내라든가 아파서 어쩝니까 같은 소리를 지껄여 대는건 그냥 힘빠지는 개소리일 뿐이다.
박대위는 좀비웨이브를 몰이한다.
나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지켜본다.
그게 그와 내가 할 일이다.
좌석에 앉아 헬기가 선회하며 서래마을을 벗어나는 광경을, 나는 수류탄을 두 손에 움켜쥔 채 내려다봤다.
우루루룽- 우루루룽-
좀비웨이브에선 엄청난 소리가 난다.
폭탄이 터지고 대전차로켓이 터지는건 천둥처럼 한 순간 번쩍이는 소리이지만, 좀비웨이브는 지진을 일으키려는 듯한, 우퍼스피커 수만대를 동시에 켜놓은 것같은 소리를 낸다.
공기를 두드려대는 좀비웨이브를 압도하기 위해선 낮게 날아야 된다.
조명도 거의 없는 밤에 저고도로 나는건 자살행위다.
그걸 박대위는 부상당한 몸으로 하고있다.
묘기나 다름없다.
콰콰콰콰콰!
구조헬기는 좀비웨이브가 일어나고 있는 도로를 따라 서행하며 날아갔다.
도로가 안 보인다.
너무나 몰려들어 건물이라는 건물에는 벌떼처럼 매달려 탑을 쌓아 올릴 정도다.
크아아악! 쿠와아악!
헬기에 이끌린 좀비웨이브가 괴성을 질러댄다.
나는 그런 놈들을 머리위로, 수류탄을 떨구었다.
콰콰콰콰콰!
쾅! 쾅! 쾅!
머리를 공기로 두드려대며 굉음을 뿌리는 헬기와, 지면에서 폭발하는 수류탄이 좀비웨이브의 어그로를 제대로 끌었다.
놈들이 움직인다.
도로 전체가 애벌레가 된 듯이 꾸물럭 물결치며 헬기를 따라온다.
나는 그런 놈들의 머리 위로 계속 수류탄을 떨구었다.
쾅! 쾅! 쾅! 쾅!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도 별로 기쁘지 않다.
하아, 하아, 하아.
박대위의, 고통스럽게 헐떡이는 숨소리가 헤드셋으로 계속 들려온다.
그러나 그는 훌륭히.
신음 한 번 흘리지 않고, 의식을 유지한 채, 서래마을을 중심으로 나선을 그리며 도로 위 좀비웨이브를 몰았다.
그리고, 한강으로.
빠져들어간다.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던, 개미떼처럼 바글바글하던 좀비웨이브가 한강으로 꿀럭꿀럭 기어들어간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서래마을로 다시 돌아와, 아직도 남아있는 좀비웨이브와, 멀리서 뭉쳐있는 좀비웨이브들까지, 큰 나선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아 몰아, 한강으로 천천히 날아들어 수장시켰다.
환호.
헤드셋 안쪽, 한쪽 귀에 꽂아둔 이어폰에서 서래마을 인원의 환호가 터져올랐다.
헬기 프로펠러 소리 너머, 문 밖에서도 들릴 정도다.
저렇게 소리지르면 또 어그로 끌릴텐데.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 없는 모양이다.
살았다.
기쁘다.
오직 그것 뿐이다.
나는 입을 열었다.
훌륭합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아, 하아, 하아.
귓가에 박대위의 거친 숨소리가 맴돈다.
지금 이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뻔히 아는데, 잘했다든가 하는 소릴 지껄이며 기뻐할 수 없다.
그저 그가 몰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수류탄을 계속 떨굴 뿐이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 98.
이제 곧 만렙이다.
박대위가 후, 하며 숨을 깊게 내쉬더니 말했다.
"서래마을. 구조헬기 이제 귀환... 합니다."
성가연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해왔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박대위님! 어서 돌아오세요!"
헬기가 서서히 선회한다.
그래.
돌아가자.
나도 쥐고있던 수류탄을 더플백에 도로 집어넣었다.
남은 수류탄은 기껏해야 50개 정도.
거의 500개 챙겨와서 진짜 무지막지하게 던져댔다.
돌아가자.
그렇지 않아도 특임대원들, 원자력 발전소에서 곧장 정수장 임무 수행하느라 잠도 못 자고 쉬지도 못했는데, 이제야 숨 좀 돌리겠네.
"후우..."
남은 레벨은 2.
그깟 2레벨, 천천히 올리면 돼.
그런 생각을 하며 시트에 기대어 나도 눈을 감았다.
별 일 없어서 다행이다.
그런 내 귀에, 수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