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복학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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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면 뭐라도 말을 걸어보려 했겠지만 그녀와 같은 학과 그리고 같은 학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다음에 기회가 있다 생각해 괜히 무리하지 않고 그냥 행정실을 나왔다.
“야, 잠깐만 기다리자.”
“갑자기 왜.”
행정실에서 나오자 뜬금없이 기다리자는 말을 하는 한울이에게 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했다.
“당연히 내 운명의 상대를 기다리기 위해서지.”
“아 제발 지랄 좀 하지 말라고.”
“분명 눈을 마주쳤다니까? 서로 피하지도 않고 계속 마주봤다고.”
농담이 아니었는지 한울이는 행정실 문 옆에 계속 서있으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래서 얼굴 보면 어떻게 하려고.”
“일단 어디로 편입할 거냐고 물어봐야지, 그 다음에는 번호를 얻을 거야.”
“지랄도 가지가지다 진짜, 어디로 편입했는지 안 물어봐도 돼.”
“왜...? 너 혹시 아는 사이야?”
“옆에서 신청하면서 같이 들었어.”
안 물어봐도 된다는 말에 무슨 오해를 했는지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한울이에게 옆에서 들었다는 말을 해주자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뭐야 아는 사이인줄 알았잖아.”
“아는 사이면 뭐가 달라지냐?”
“네가 아는 사이면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하려 했는데?”
“진짜 미친놈이네 이거.”
쉽게 볼 수 없는 미모에 제대로 꽂혔는지 한울이는 진지하게 번호를 딸 생각으로 가득해보였다.
“그럼 나 먼저 간다.”
“야,야 친구가 옆에서 용기 내는데 그냥 가겠다고?”
“알아서 잘 하면 되잖아, 내가 옆에 있으면 더 불편하지 않냐?”
“아니지, 그래도 옆에 있으면 든든하잖아.”
결국 한울이의 고집에 져준 나는 안에서 한예령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행정실에서 한예령이 나오자 고한울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
이제 막 문을 열고 나온 한예령은 갑자기 자기 앞에서 튀어 나와 말을 건 한울이를 가만히 쳐다봤다.
“아까 보니까 편입으로 들어오시는 거 같던데 시간 괜찮으시면 제가 학교 좀 안내해드려도 괜찮을까요?”
“…아니요.”
갑자기 믿도 끝도 없이 들이대는 한울이의 작태에 내가 머리를 탁 치고 싶을 때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한예령이 표정변화 없는 얼굴로 단호하게 거절했다.
거절은 당한 한울이는 행정실에서 그렇게 눈을 마주쳤는데 설마 자신을 거절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지.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가 곧 표정을 수습하고 끈질기게 말을 걸었다.
‘거절했으면 거기서 끝내지 어휴...’
딱 봐도 상대가 귀찮음 + 무관심으로 무장하고 있는 상황인데 첫눈에 뿅가버린 한울이는 그런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었고 결국 너무나도 안쓰러운 모습에 내가 움직였다.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어,어? 야 갑자기 왜이래.”
“닥치고 그냥 좀 와라 제발.”
“아 뭔데!”
“…….”
이 이상 더 나가면 분명 한 소리를 들을 것이 분명했기에 내가 놈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끌고 갔다.
끌고 가면서 뒤를 돌아봐 한예령을 한 번 바라보니 그녀도 나를 바라보고 있어 눈이 마주쳤고.
그런 그녀에게 간단한 목례로 인사한 나는 끌려가지 않으려 반항하는 한울이를 진화된 육체의 힘을 사용해 질질 끌고 갔다.
“아! 분위기 좋았는데 뭐하는 거야!”
한울이를 강제로 끌고 가 건물 밖에 도착하자 풀어준 나는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내게 화를 내는 한울이에게 말했다.
“좋긴 뭘 좋아 병신아 관심도 없어 하던데.”
“부끄러워서 그랬겠지.”
정말 눈이 돌아갔는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는 놈의 모습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최대한 손에 힘을 빼 머리에 꿀밤을 날렸다.
“어윽!”
꿀밤을 얻어맞은 한울이는 꽤 아팠는지 머리에 손을 올려 열심히 쓰다듬었고.
이내 진정이 되자 정말 삐졌다는 표정으로 내게 씩씩거리며 말했다.
“야, 너 솔직하게 말해봐 질투 나서 그러지.”
“와...상사병이 이렇게 심각한 병이었나? 아니면 이 새끼가 문제인 건가?”
내가 질투하는 줄 알고 자신을 강제로 데려왔다 생각하는 한울이의 모습에 정이 떨어질 거 같아 아까 옆에서 들었던 정보를 말해줬다.
“아까 옆에서 들었는데 경영학과 2학년으로 편입한단다.”
“진짜?”
“내가 이런 걸로 거짓말해서 뭐하는데, 개강하고 나서도 기회 많으니까 그때 자연스럽게 도전해.”
“아, 뭐야 진작에 말해주지 그랬어.”
“말해주기도 전에 네가 들이박았잖아.”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해주자 또 혼자서 행복회로를 돌렸는지 기분이 풀린 한울이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OT도 오겠네?”
“별 일 없으면 오지 않을까?”
“오케이, 그럼 그때가 기회다.”
혼자서 또 핑크빛 생각을 하는지 헤실거리는 놈과 함께 나는 겨우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예령은 이진석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잘 들어가라.”
“그래 개강할 때 보자.”
아까 불평불만을 토하면서 짜증내던 사람은 어디 갔는지 웃으면서
정류장까지 나를 바래다준 한울이와 헤어진 나는 버스에 올라 집에 도착했다.
‘어디 한 번 확인해볼까?’
집에 도착한 나는 가장 먼저 밥 먹고 난 이후 박이현이 내 가디건 주머니에 넣었던 휴지를 확인했다.
휴지에는 간단하게 볼펜으로 적은 전화번호가 있었다.
무슨 생각으로 몰래 번호를 적었는지 궁금한 나는 곧바로 휴대폰에 번호를 저장한 뒤 크크오톡에 뜨기를 기다리고 있자 시스템이 말을 걸었다.
[그 암컷도 사용자님에게 관심이 있는 거 아닙니까?]
“남자 친구가 있는데?”
[지금 군대에 들어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에이 사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럴까.”
시스템과 대화하며 기다리기를 잠시 새로고침을 누르자 새로 추가된 친구에 박이현이 나타났다.
가장 먼저 국룰인 프로필을 확인한 나는 눈앞에 나타난 화면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남자 친구랑 같이 있는 사진이 아니네?”
남자 친구랑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커플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려둘 텐데 박이현의 프로필에는 그녀 혼자 찍힌 사진만이 올라와있었다.
[이건 분명 그린라이트입니다.]
당당한 말투로 말하는 시스템의 말에 정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 나는 바로 연락을 보냈다.
010xxxxxxxx 이게 내 번호야.
지극히 적은 확률이지만 그냥 내 번호만 알고 싶어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별 말 없이 번호만 알려준 뒤
관심을 끊은 나는 오랜만에 체력 단련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서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휴대폰을 확인했다.
휴대폰에는 박이현에게서 연락이 하나 와있어 읽어봤다.
안녕하세요. 오빠, 오늘 처음 본 사이에 정말 죄송하지만 제 부탁하나 들어주실 수 있나요?
제 부탁은….
첫 문장을 보고 다단계인가 싶었지만 이어 아래 글을 읽어보니 내용이 상당히 가관이었다.
박이현이 말한 부탁은 자신을 속이고 군대로 떠난 남자 친구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는데.
복수를 하려는 이유를 보게 된 나는 군대를 간 남자 친구의 행태에 기가 찼다.
“와 이 새끼 그냥 개 쓰레기였네.”
처음 사귈 때 군대 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말하지 않았어도 별 상관이 없었다는 내용이었고 그 뒷이야기가 진국이었다.
놈이 군대로 떠나기 전 데이트를 하다 우연하게 휴대폰을 본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자신 말고 다른 두 명의 여성과 사귀고 있었다는 것.
그러니까 즉 총 세 명의 여성과 사귀고 있는 상태로 군대에 갔다는 것이다.
[대단한 수컷이군요.]
“대단은 개뿔 걸리는 순간 사회적으로 땅에 파 묻혀서 군대에 말뚝 박아야 될 걸?”
모든 내용을 확인한 나는 손으로 타자를 치는 것보다 말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지금 전화 가능해?”
네 집이라서 상관없어요.
“생각해둔 계획은 있어?”
네 제가 다른 여자분들 번호로 연락해서 다 같이 다른 남자 친구 데리고 걔가 휴가 나오는 날 만나서 헤어지자고 말할 생각이에요.
“그럼 내가 그때 같이 나가주면 되는 거야?”
네...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잠깐 고민해보고 다시 연락할게.”
네, 알겠습니다.
일단 내용이 궁금해 전화를 했던 나는 전화를 끊자 부탁을 들어줘야 할지 고민했다.
‘남의 일이라 나랑은 하등 상관없는 일인데 부탁을 들어줌으로서 내게 오는 이득은 무엇일까.’
[해주시죠.]
“해봤자 이득이 없잖아.”
[그녀의 호감을 살 수 있겠죠. 그리고 그걸 빌미로 나중에 할 수도 있잖습니까.]
“학교는 하렘으로 만들면 안 돼, 진짜 걸리는 순간 바로 나락이야.”
[무슨 상관입니까. 상점과 스킬을 이용하면 하렘도 어렵지 않습니다.]
시스템의 계속되는 설득에도 내가 가만히 고민하고 있자 조용히 있던 시스템이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
[계속해서 그렇게 소극적인 행동을 보이시면 힘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뭐?! 거둬갈 수도 있다는 소리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줄 수 있으면 그 반대도 할 수 있는 법이죠.]
생각지도 못했던 발언에 충격을 받은 나는 시스템이 없어진 삶을 생각해봤다.
게임에서 스킬을 이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히로인들 공략 불가.
게임에서 여성들 겁탈할 때 약점을 잡거나 납치해서 쾌락으로 함락시키지만 그 과정이 넣고 싸는 것 밖에 없어 단조로움.
현실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여성을 만족시키면서 즐겁게 섹스 불가.
성욕의 눈이 없어 누구든지 공략하는 난이도가 상당히 올라감.
앞으로 스킬을 이용해 무궁무진한 플레이를 하고 싶은 나에게 청천병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알겠어, 할게.”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런 능력이 사라져도 충분히 살 수 있고 게임의 히로인들도 공략할 수 있겠지만.
이미 게임 스킬을 이용해 여성들을 공략하는데 중독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사라진다면 내가 애정하는 게임들을 접어버릴 것 같았다.
‘현생이 중요하긴 하지만 걸리지 않으면 장땡이니 조심해서 해야지.’
머릿속을 간단하게 정리한 나는 휴대폰을 들어 박이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해줄게. 그런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뭐든지 말씀하세요.
박이현의 부탁을 수락한 나는 그녀에게 부탁을 받은 이후부터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왜 나야? 한울이도 있잖아.”
내 질문에 잠깐 침묵한 박이현은 남자가 듣기 가장 좋은 소리를 해주었다.
…오빠가 제일 잘 생겨서요.
“그것 때문에?”
네, 걔보다 잘 생긴 사람이랑 사귄다고 하면 더 충격이 클 거 같아서...
“그럼 날짜는?”
다음 주에 신병휴가 나온다고 했어요. 정확한 날짜는 제가 크크오톡으로 보내드릴게요.
“크크오톡 말고 내일 시간 괜찮아?”
내일 수업이 있어서 오후부터 괜찮아요.
“그럼 학교 수업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기다리고 있을 게 만나서 얘기하자.”
네 끝나면 연락드릴게요... 부탁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나중에 오빠가 저에게 부탁하실 거 있으면 언제든지 들어드릴게요.
“그래, 알았어.”
박이현의 감사인사를 받으며 전화를 끊은 나는 이제 게임을 하기 위해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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