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결전의 날
* * *
진동벨이 울려 알바생에게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받아가 마시기를 잠시 카페에 들어온 박이현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오...빠?”
“안녕?”
“안녕하세요.”
카페에 들어와 처음 이진석의 얼굴을 본 박이현은 상당히 당황했다.
저번의 모습도 분명 잘생겼다고 할 만한 모습이었는데 한 단계가 아닌 몇 단계를 뛰어넘은 그의 모습에 말문이 알아서 막혔다.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머리스타일도 전보다 훨씬 깔끔해진 상태에 얼굴은 약간 화장을 했는지 선이 더욱 짙어 보여 훨씬 남자다운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준비 끝났어?”
“네...다들 약속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연락 왔어요.”
“그럼 바로 출발할까? 아니면 여기서 시간 좀 보낼래?”
“아니요, 바로가요.”
내 얼굴을 보고 무표정이 깨져 눈이 동그래진 그녀의 모습에 속으로 웃은 나는 처음 봤을 때 표정변화가 많이 없고
무뚝뚝한 줄 알았는데 만날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를 보니 상당히 귀여웠다.
‘외모가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녀의 얼굴도 충분히 미인의 반열에 들을만한 얼굴이었으나.
지금 만나고 있는 이세연이나 학교에서 만났던 한예령과 비교하기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오빠 저희 어디 가는 거예요?”
다른 생각하면서 길을 걷느라 정류장을 지나친 내게 박이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차 가지고 왔으니까 그거 타고 갈 거야.”
“오빠 운전도 할 줄 알아요?”
“응, 군대에서도 운전했었으니까.”
서로 이야기하며 차에 올라탄 우리는 곧바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여기야?”
“네, 여기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남자친구와 만나는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한 우리는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안으로 들어간 박이현이 먼저 도착해 있는 다른 여성들과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네, 안녕하세요.”
그리고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간 나도 그녀들과 마주쳐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네...”
“….”
꾸민 덕분인지 내 얼굴을 본 한 여성은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고.
다른 여성은 내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본 채 대답도 하지 않았다.
두 여성의 외모는 박이현보다 떨어지지만 그래도 화장해서 예쁜 얼굴 정도라고 할 수 있었는데.
몸매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라 성욕의 눈조차 사용하지 않은 나는 그들에게 다른 일행에 대해 물었다.
“다른 일행들은 어디 갔나요?”
“따로 오고 있어요.”
“같이 안 오셨어요?”
“오늘 하루 만나서 남친 행세만 해주는 거라 따로 오기로 했어요.”
처음 내 인사에 대답해준 여성이 꼬박꼬박 대답해주었다.
한 남자가 다른 여성 세 명을 동시에 사귀는 어이없는 상황이라 그런지 박이현을 제외한 그 둘은 신랄하게 남자를 깠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군대 가는 거 속이는 정도야 이해해줄 수 있다고 쳐도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군대 가는 거 속이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데.’
군대 간다는 걸 속이고 사귀는 것도 절대 정상은 아니었지만 워낙 세 다리를 걸친 게
충격이 커서 그런지 그녀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만 신랄하게 놈을 비판했다.
그렇게 그녀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을 때 남성 두 명이 카페로 들어와 우리 쪽으로 다가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넨 그들은 주변을 훑어보다 나와 시선을 마주치고는 움찔거리더니 곧 자신들의 짝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눴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제대로 시간 맞춰서 왔잖아.”
“그래도 조금 일찍 와줘야 준비를 하지.”
“준비할 게 따로 있나? 그냥 가서 남자친구 있으니까 헤어지자고 하면 되잖아.”
약간 키가 큰 훈훈하게 생긴 남성은 내 대답에 꼬박꼬박 대답해준 여성과 실랑이를 벌였고.
“왔어?”
“어, 늦어서 미안...”
“아니야, 늦지 않았어. 오늘 와줘서 고마워.”
그리고 그 옆에서 남성 평균 키 정도 되어 보이고 길에서 흔하게 볼 수 있게 생긴 남성은 조용한 성격의 여성과 함께 대화를 나눴다.
‘서로 끼리끼리 성격에 맞는 사람들을 데리고 왔네.’
훈훈하게 생긴 남성은 꽤 당당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 이번 일에 상당히 적합해 보였지만.
그 옆에 조용히 쭈구리처럼 있는 남성은 그냥 뒤에서 조용히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기를 잠시 키 큰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이 녀석 오빠인 구하운이라고 합니다.”
“아! 그런 소리 왜 하냐고!”
“오늘 한 배를 탄 사람들인데 소개 정도는 해줘야지.”
“그냥 이름만 말하면 되잖아!”
‘이걸 가족이 오네.’
아까 들어와서 같이 얘기할 때부터 둘이 상당히 친숙하다 싶었더니 서로 가족이었다.
누가 남매 아니랄까 봐 계속해서 말싸움을 하는 그들을 보자 끝나지 않을 거 같아 내가 말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이현이 대학교 선배인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대학교 선배요?”
“네.”
“엄청 친하신가 봐요? 대학교 선배이신데 이런 자리에 나와주시고.”
“제 동기랑 친해서요, 도와줄 겸 왔습니다.”
잠시 나에 대해서 소개하는 시간이 끝나자 옆에서 조용히 있던 여성이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김소은이라고 합니다.”
그녀의 소개가 끝나자마자 옆에 있는 소심하게 생긴 남성이 자신을 소개했다.
“이우혁이라고 합니다.”
“박이현이에요.”
마지막으로 박이현까지 모두 소개가 끝나자 다들 쓰레기를 만나서 어떻게 할지 의논했다.
“그냥 다른 남자친구 사귀었으니까, 헤어지자고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너무 간단하잖아. 나는 그 쓰레기가 더 고통받았으면 좋겠어.”
서로 어떤 의견이 좋을지 의논하기를 잠시 주제에 상관없지만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내가 말을 꺼냈다.
“그런데 설마 오늘 데이트하러 오는데 군복입고 오지는 않겠죠?”
“에이, 설마 처음 휴가 나와서 하는 데이트인데 군복입고 나오겠어요?”
“입고 나오면 어떠실 거 같으세요?”
“별로죠, 갈아입을 시간도 충분히 있는데 그냥 뽐내려고 군복입고 오는 거잖아요.”
“저도 군대 다녀왔는데, 휴가 나와서 그렇게 나오면 진짜 생각이 없는 거죠.”
내 말에 두 남매는 얼굴을 찌푸리며 극혐해 했다.
“이현이 너는 어떻게 생각해?”
자신을 소개할 때 빼고는 조용히 있는 박이현에게 의견을 물어보자 그녀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걔한테는 이제 관심을 꺼버려서 뭘 입고 오던 상관없어요.”
“이게 가장 맞는 말이네.”
서로 쓰레기 남자친구를 까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기를 잠시 박이현의 휴대폰에 연락이 왔다.
“벌써 도착했다는 데요?”
“그럼 아까 말했던 대로 할까요?”
“네, 저희가 먼저 나가서 얘기할 테니까 이후에 바로 와주세요.”
“알겠습니다.”
이미 여성들끼리 정한 계획인 먼저 한 커플이 가서 헤어지자 말하고 그 다음 다른 커플들이 같이 나오기로 한 계획을 따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연락을 받은 나와 박이현은 서로 팔짱을 낀 채 놈이 말했던 거리로 걸어갔다.
“저놈이야?”
“네, 맞아요.”
“와...진짜 입고 나올 줄은 몰랐네?”
저 멀리 골목길에서 군복을 입고 있는 놈이 보이길래 혹시 몰라 물어봤는데 정말 그 놈이었다.
‘데이트를 하는데 꼴랑 이등병이 군복이라...’
병장이 그런 짓을 해도 이해가 안 되는데 짬도 낮은 이등병이 왜 군복을 입고 나왔는지 정말 궁금했지만 꾹 참았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말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혹시라도 박이현이 불편해할까 봐 걱정하자 그녀는 단호하게 말하면서 당당히 놈의 앞으로 걸어갔다.
이어 서로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담배를 피며 휴대폰을 보고 있던 놈의 눈이 박이현과 마주쳤다.
“이현...아?”
박이현과 눈을 마주치자 환한 얼굴로 인사를 하려고 하던 놈은 옆에 팔짱을 끼고 있는 나를 보자 의아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옆에 그 사람은 누구야...?”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나와 박이현이 팔짱 낀 모습을 빤히 쳐다본 놈은 이어 언성을 높였다.
“응? 옆에 그 사람 누구냐니까?!”
그리고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나는 놈이 최대한 기분 나쁘도록 말을 걸었다.
“안녕 쓰레기?”
“누구신데 초면에 그런 말씀을 하시죠?”
“나? 이현이 남자친구.”
“무슨 말도 안 돼는 헛소리세요. 이현이 남자친구는 전데.”
“아니지, 너는 ‘전’남자친구지 나는 ‘현’남자친구고.”
그러자 전 남자친구라는 말에 놈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박이현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박이현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왜 너는 다른 여자랑 사귀는데 나는 다른 남자랑 사귀면 안 돼?”
‘어우...쎈데?’
초반부터 돌직구를 날린 그녀의 말에 찔리는 게 있는지 멈칫한 놈은 모르는 척을 하며 말을 이었다.
“다른 여자랑 사귄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너밖에 없어 이현아.”
고민조차 하지 않고 발뺌하는 모습에 박이현은 더 이상 놈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는지 뒤를 돌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렇다네요.”
박이현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누군가에게 말하자 똑같이 시선을 옮긴
놈은 아까까지의 그 당당한 얼굴을 어디 갔는지 놈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 새끼야?”
그 말에 기다리고 있던 짝들 중 남매인 커플의 오빠가 얼굴을 찌푸리며 다가왔다.
“응, 오빠 저 새끼가 군대 간다는 것도 속이고 바람도 폈어.”
꽤 덩치가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험악한 느낌이 들었다.
“이현아 저 사람들은 누구야?”
하지만 이 쓰레기는 보통 쓰레기가 아닌지 하얗게 질려가는 표정을 고치고 모르는 척을 시전했다.
“하?”
“와...”
“….”
너무나도 뻔뻔한 작태에 모두가 말을 잃었을 때 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거 혹시 몰래카메라 하는 거야? 이런 몰래카메라는 좀 재미없는데...”
“저 개새끼가!”
“오빠, 주먹질하면 안 돼!”
개드립 이연타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 뒤에 있는 남매 오빠가 주먹을 쥔 채 달려오려 했지만.
다행히도 옆에 팔짱을 끼고 있던 여동생이 필사적으로 막아서 계획이 망하지는 않았다.
“응? 이현아 왜 말이 없어?”
박이현은 자신은 전혀 모른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놈을 가만히 바라보다 말을 했다.
“헤어지자 쓰레기야.”
“그게 무슨 소리야...이현아 우리가 왜 헤어져.”
“넌 지금 이 상황에 그런 말이 나오니?”
“저기 뒤에 있는 사람들을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라니까?”
“됐어, 그냥 꺼져.”
“그래 이 쓰레기 같은 새끼야 나도 너랑 헤어질 거니까 연락하면 죽여버린다!!!”
“쓰레기 새끼...”
박이현의 말을 끝으로 뒤에 있는 여성들 모두 헤어지자는 통보를 했다.
그리고 하루 만에 세 명의 여성과 헤어지게 된 놈은 가만히 고개를 숙이더니 혼자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현아 농담이지? 우리가 왜 헤어지냐니까?”
“…….”
박이현은 혼자 중얼거리는 놈을 잠깐 바라보다 이제는 상대조차 하고 싶지 않은지 놈을 무시하고 내 팔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오빠 우리 이제 가요.”
“그래, 여기 쓰레기 냄새가 너무 나서 못 있겠다. 다들 갑시다.”
멘탈이 터졌는지 혼자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리는 놈을 무시하고 우리는 각자 집으로 가기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우리 모두 놈을 무시한 채 움직이고 있을 때 뒤에서 그놈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박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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