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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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빠꾸로 술을 마신다고 정한 지우를 어이없는 눈으로 보고 있을 때.
봄 느낌 물씬 나는 옅은 노란색의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수정이와
검은색 테니스 치마와 스타킹을 신고 상의는 약간 비치는 검정색 시스루 티를 입은 이현이가 다가와 인사를 했다.
“오빠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녀들의 인사를 받은 우리는 손을 위로 들어 올리며 인사를 받아줬다.
“오랜만이네.”
한울이와 수정이가 서로 안부를 묻고 있자 아까부터 나를 빤히 바라고 있는 이현이에게 다가갔다.
“네, 오빠 잘 지내셨어요?”
“나야, 별 일 없이 지냈지. 너는?”
“저는 조금 힘들었어요. 다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처음 사귄 사람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
“처음 만난 상대가 그런 새끼면 충분히 그럴만하지. 오늘 우리 술 마시러 갈 건데 어때 그놈 생각도 지울 겸 같이 갈래?”
“네, 좋아요. 그런데 저 분은...?”
함께 술 마시러 가는 것에 동의한 이현이 손을 들어 내 뒤에 있는 지우를 가리켰다.
오랜만에 만난 박이현과 인사하느라 지우를 소개시킨 것도 까맣게 잊은 나는 그제야 그를 소개 시켜줬다.
“얘는 한울이랑 나랑 같은 동기인 지우야 한지우.”
“안녕하세요. 한지우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19학번 박이현이라고 합니다.”
지우는 자신을 무시하고 우리가 서로 대화하니 살짝 기분이 상한 것 같았지만 사내새끼니까 그 정도는 무시하기로 했다.
‘소개시켜 준 게 어디야.’
이후 한울이와 대화를 끝낸 수정이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이에요, 진석 오빠!”
“오랜만이네.”
“그런데 저 분은 누구신가요?”
수정이에게 지우를 소개시켜주자 서로 인사를 나눴다.
“수정이 너도 술 마시러 갈래?”
“저도요? 저도 가도 괜찮아요?”
“응, 상관없어.”
“좋! 아...이현이 너는 어때?”
혼자 신나서 대답하려던 수정이가 이현이를 바라보며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여 의사를 표현했다.
“좋아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정이가 수락을 했다.
오늘이 OT라 내일 수업도 있고 해서 진탕마시는 것 보다는 그냥 간단하게 마실 겸 우리는 1학년 때 자주 다녔던 호프집으로 갔다.
“삼촌! 저희 왔어요!”
“이거 한울이랑 진석이랑 지우 아니야! 드디어 다들 모인 거냐?”
“네, 드디어 진석이가 돌아왔죠.”
“오랜만이다, 진석아”
“오랜만입니다, 삼촌”
1학년 때 무슨 일만 있으면 여기서 술을 마시고 해서 이곳 사장님과 상당히 친해졌었다.
“군대 갔다가 돌아왔다고 했지?”
“네, 2월에 전역했어요.”
“좋다! 진석이도 오고 그랬으니까 오늘 안주 하나는 내가 사주마 먹고 싶은 대로 마셔!”
“감사합니다! 삼촌!”
느닷없는 안주 서비스에 감사한 우리는 자리를 잡아 앉았다.
“오빠들 여기 많이 와보셨어요?”
“1학년 때는 엄청 많이 왔지.”
“2학년 때도 우리끼리는 꽤 왔잖아.”
수정이의 물음에 한울이와 지우가 대답했다.
둘이 수정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나는 맞은편에 앉은 이현이와 대화를 나눴다.
“그러고 보니까 그때 너무 아쉽네, 그냥 맞아줬으면 영창 보낼 수 있었는데.”
“아니에요, 오빠 그런 쓰레기한테 맞으면 오빠가 손해잖아요.”
“그래도 영창 가서 국방부의 시간이 멈추면 그것만큼 무서운 일이 없어. 내가 한대라도 맞았으면 최소 만창이야.”
“만창이 며칠인데요?”
“15일, 그거 진짜 당해보면 미칠 걸? 분명 시간은 가는데 전역 날이 안 줄거든.”
만창 기간이 15일이라는 말에 꽤 놀랐는지 박이현의 눈이 살짝 크게 떠졌다.
“오빠는 영창 다녀와 본 적 있어요?”
“무슨 그런 끔찍한 질문을 하고 그래, 나는 없어.”
갑자기 영창 다녀왔냐는 물음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박이현이 살짝 웃음 지었다.
그렇게 서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삼촌이 다가와 안주와 맥주를 우리 테이블에 깔아줬다.
“자! 오늘 내가 너희들을 위해 특별히 만든 닭강정이다.”
“삼촌, 원래 소스는 안 만들지 않아요?”
“오랜만에 너희들이 모였으니까 신경 써서 만들었다.”
“감사합니다!”
소스는 손이 많이 간다고, 항상 프라이드로만 나왔던 닭강정에 붉은색 소스가 묻어있자 참 신기했다.
“그럼 맛있게들 먹고 혹시 부족하면 말해.”
“네, 잘 먹겠습니다. 삼촌”
삼촌과 가장 친한 한울이를 시작으로 우리는 모두 감사인사를 전한 뒤 맥주잔을 들었다.
“자 그럼 다들 학교생활이 잘 풀리기를 기원하며 건배!”
“““건배!”””
한울이의 건배사를 끝으로 우리는 각자 술을 마시며 안주를 먹고 시간을 보냈다.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 취기가 올랐을 때 혼자서 소맥으로 말아먹으면서 열심히 달리던 한울이가 술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우리 술 게임 하자!”
“오늘 간단하게 마시기로 했는데 무슨 술 게임이야.”
“안 돼! 오늘 같은 날은 술 게임을 해줘야 해!”
원래 조용히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 내가 거절하려 하자, 이미 잔뜩 취한 한울이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결국 술 게임을 하게 됐다.
“자! 그럼 3,6,9부터 시작!”
“3,6,9 3,6,9 3,6,9 일!”
막무가내로 분위기를 타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이미 어느 정도 취해있던 한울이는 게임에서 연패를 해 벌주를 진탕마시다 뻗어버렸다.
“어우 드디어 보냈네.”
일부러 놈을 빨리 보내기 위해 계속 한울이만 집요하게 공격한 나는 드디어 놈이 뻗자 질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쓸데없이 술 잘 마신다니까.”
이미 취한 상태에서 작은 맥주잔에 1:1 비율로 섞은 소맥을 8번이나 들이키고 나서야 한울이는 쓰러졌다.
“한울이 오빠 쓰러졌는데 저희 계속 마셔요?”
한울이가 뻗게 되자 앞에 앉아 있던 수정이가 물었다.
“대충 마실 만큼 마신 것 같은데 이제 해산하자. 어때?”
“음...”
“왜, 더 마시고 싶어?”
“네! 중간에는 한울이 오빠가 혼자 술을 다 마셔버려서 더 마시고 싶어요.”
“이현이는 어때?”
“저도 아직 괜찮아요.”
“그래? 그럼 이놈 집에 데려다두고 2차 가자.”
둘의 의견을 반영해 이미 취한 한울이를 데려다준 뒤 2차를 가기로 했다.
“저기요? 내 의견은 왜 안 물어봐요?”
자신의 의견은 묻지 않고 2차를 가게 되자 지우가 나를 툭툭 치며 물었다.
“그래서 안 갈 거야?”
“아뇨, 저는 그저 저에게도 관심을 달라 이 말을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남자 새끼가 그런 거 받아서 뭐할 건데. 나가게 한울이나 부축해.”
자고 있는 한울이의 바지에서 익숙하게 지갑을 꺼낸 나는 삼촌에게 카드를 건네줬다.
“이걸로 계산해주세요.”
“아직도 그거 하고 있어?”
“한울이는 오랜만에 와서 잊어버린 거 같지만 저는 아직 기억하고 있거든요.”
1학년 2학기쯤이었나 갓 성인이 돼서 그런지 다들 혼자 독주하다 뻗는 경험이 너무 많아.
술자리에서 가장 먼저 기절하는 사람의 카드로 계산하기로 했던 걸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제일 많이 당했거든.’
그때는 술을 잘 못 마셔서 게임할 때마다 당했지만 진화된 육체가 주량까지 늘려주는지 약간 올라오던 취기가 지금은 다 가셨다.
“다음에 또 올게요.”
“그래 조심히 들어가라!”
지금까지 먹은 술값은 오늘 제외해준다는 삼촌의 말에 어차피 내 카드 아닌 거 다 긁어달라고 말해 계산하고.
밖을 나가자 삼촌이 웃으며 우리를 일층까지 배웅해주었다.
“한울이 데려다주고 어디서 먹을 거냐?”
“1차로 배 좀 채웠으니까 간단하게 먹을 생각인데...너희들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내 말에 서로 고민을 하던 후배 둘은 이내 자신들이 먹고 싶은 것을 말했다.
“저는 칵테일 마시고 싶어요!”
“저는 이자카야 한 번 가보고 싶어요.”
둘의 의견이 서로 갈리자 나는 지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는 뭐 먹고 싶냐?”
“나는 아무거나 다 잘 먹지.”
“미친놈인가 먹고 싶은 걸 말하라고.”
“딱히? 먹고 싶은 거 없는데.”
지우는 무효표를 던졌으니 잠깐 이현이와 수정이를 바라보던 나는 근처에 칵테일 가게가 없다는 걸 핑계로 이자카야로 가자 말했다.
“정말 여기 근처에 없어요?”
“응, 내가 알기로는 여기 근처에 없고 가려면 지하철 타야해.”
“그럼 술도 마셨으니까 가까운 곳으로 가죠!”
그렇게 이자카야로 2차 행선지가 정해지자 나와 지우는 한울이를 침대에 던져놓고 나와 이자카야로 향했다.
“야, 한울이 카드 챙겼냐?”
“아니?”
“왜 안 챙겨왔어. 오늘 하루 종일 술값 걔가 내야하는데.”
“나 오고 나서 첫날이니까 그냥 한 번으로 봐줘야지. 페어플레이 하자.”
카드를 챙겨왔냐는 지우의 물음에 안 챙겨왔다고 말한 나는 애들을 이끌고 이자카야에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자리를 안내받은 우리는 곧바로 사케와 안주로는 튀김을 시켰다.
“다들 따로 먹고 싶은 안주 있으면 시켜 오늘은 우리가 살게.”
내 말에 둘은 잠깐 메뉴판을 보더니 어묵탕과 회를 하나 시켰다.
“너는 주문 안 하냐?”
“튀김 나오는 거 먹으면 될 듯?”
“그래, 그럼.”
이후 모든 안주가 나오고 술을 어느 정도 마셔 알딸딸하게 취한 상태가 되었을 때 수정이가 내게 말을 꺼냈다.
“오빠!”
“응?”
“이현이 남자친구랑 헤어진 거 아세요?”
갑자기 들어오는 질문에 나는 이현이가 수정이에게 내 이야기를 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녀에게 눈치를 보냈다.
그러자 나와 눈이 마주친 이현이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고 뜻을 이해해 다시 수정이와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했다.
“아니, 처음 듣는데?”
“그동안 엄청 답답했는데 저번 주에 드디어 헤어졌대요!”
이현이의 남자친구에 대해서 모르는 척하기 위해 수정이의 이야기를 듣고 이현이를 걱정해주었다.
“괜찮아?”
“아직 좀 생각나긴 하지만 괜찮아요...”
그 말에 옆에서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우가 술잔을 들어 테이블 가운데로 가지고 오더니 말했다.
“전 남자친구 잊는 방법은 진탕 마시는 게 최고지 자 건배!
“건배!”
시간이 흐르고 쉼 없이 달려 술병이 한 8병정도 쌓여갔을 때 완전히 취한 지우가 내게 말했다.
“야...우리 이제 그만 먹자...”
이제 더 이상 마시지 못할 거 같은 모습에 나는 고개를 돌려 앞에 앉은 둘의 상태를 확인했다.
수정이는 취했는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초점이 약간 풀려 있는 상태였고.
이현이는 의외로 술이 강한 건지 아니면 무표정해서 얼굴에 티가 나지 않는 건지 꽤 멀쩡해 보였다.
“둘은 괜찮아?”
“저요?! 네! 아직 더 마실 수 있어여!”
“저는 더 마셔도 괜찮아요.”
내 물음에 수정이는 상당히 높은 텐션으로 대답하며 자신이 취했다는 것을 알렸고.
옆에 앉은 이현이는 전혀 취하지 않은 것처럼 차분하게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답했다.
“둘은 취한 거 같으니까 이제 그만 마시자.”
지우가 자진으로 포기했기 때문에 내가 먼저 술값을 긁은 뒤 그에게 받기로 했다.
계산을 마치고 밖에 나오자 해가 떠있던 하늘은 이제 슬슬 저물어 가고 있었다.
‘아...간단하게 마시기로 했었는데.’
대학교에서 친구들과 마시기만 하면 항상 아침이 밝아오는 걸 보고 집에 돌아간 것을 떠올린 나는 한숨을 쉬었다.
“택시타고 갈 수 있지?”
“그 정도로 취하지는 않았어.”
“조심히 들어가라.”
가장 힘들어하는 지우를 먼저 택시에 태워 보낸 뒤 수정이를 부축하고 있는 이현이에게 말했다.
“수정이 많이 취한 거 같아 보이는데 같이 갈 거야?”
“아니요, 아까 나올 때 수정이 아버지께 연락드렸으니 곧 오실 거예요.”
시간이 흘러 수정이 아버지가 도착해 그녀를 차에 태운 나는 멀쩡해 보이는 이현이를 보며 말했다.
“이현이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오빠는 집에 들어가실 거예요?”
딱 봐도 더 마시고 싶다는 말투에 나는 눈치껏 대답해주었다.
“나? 나는 더 마셔도 상관없는데.”
“저도 아직 조금 부족한 것 같은데 3차 어떠세요?”
“그래 그럼 3차하러 가자. 이번엔 먹고 싶은 거 없어?”
“그전에 조금 걸어요. 우리”
“그래.”
해가 다 저물어 땅에 어둠이 깔리는 시간.
뭔가 말 할 수 없는 묘한 기류가 흐르는 느낌과 함께 우리는 서로 나란히 옆에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거리를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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