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판타지 세계의 용사
* * *
마을을 침공한 블하임을 막기 위해 전투인원들이 밖으로 나가고 비전투인원들은 모두 마을에 마련된 땅굴로 몸을 숨겼다.
“괜찮을까요?”
“괜찮을 거다. 용병 생활하다 온 아르칸도 있고 오크들을 혼자서 죽인 진석이도 있으며 그동안 훈련을 받아온 사람들까지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생각할 시간에 저기 나간 사람들이 무사하길 바라는 소원이라도 빌어라!”
매사에 불만을 토해내는 사이라 아줌마가 마을을 침공한 마족들로 인해 불안한 소리를 하고 있자.
옆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촌장님이 그렇지 않아도 우울한 분위기를 더 곱창 내는 그녀에게 화를 냈다.
촌장의 일갈로 사이라 아줌마는 조용해졌지만 이미 그 불안함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혹시 사람들이 지면 어떡하지.
혹시 놈들이 이곳으로 쳐 들어오면 어떡하지.
밖에 나간 사람들이 마족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등
단 한 사람의 공포가 이곳 전체에게 점점 전염되어가고 있을 무렵.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에리카가 나서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다들 걱정하지 마세요. 분명 이길 수 있을 거예요!”
“맞아요, 우리 많이 준비했고 포션도 가지고 있잖아요!”
에리카의 기운찬 소리에 옆에 조용히 있던 루이도 거들었고 마을에서 그래도 젊은 층에 속하는 그녀들의 말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그래 여기서 한탄하고 있어봤자 되는 것도 없다. 그냥 기도나 해주자.”
“맞아 맞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꼭 이길 수 있도록 여기서 기도를 드리자.”
부정으로 가득 찬 공간에 희망이 점점 피어오르고 있을 무렵.
언데드를 사역하는 술사인 네크로맨서 블하임을 죽이기 위해 쐐기형으로 전환하느라.
사람들은 피치 못하게 스켈레톤 워리어 몇 마리를 놓쳤고 무리에서 떨어져 다시 돌아가려던.
놈들은 마침 이진석이 블하임의 아끼는 언데드를 상처 입힌 탓에 통제력이 풀어져 서로 본능적으로 생명력이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앞으로 더 붙어!”
“방패 내리지 말라고! 팔이 부러지더라도 계속 들고 있어!”
그렇게 사람들이 뼈다귀들과 싸우느라 빠져나간 놈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때
무리에서 떨어진 스켈레톤 워리어들 중 한 마리가 저 멀리 축축한 땅속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을 느꼈다.
스윽 덜그럭 스윽 덜그럭
뼈로만 이루어져 있고 술사와 거리가 벌어진 탓에 제대로 된 마력을 받지 못한
스켈레톤 워리어는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생명력이 느껴진 촌장의 집에 도착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사람들 오고 있는 거 아니에요?”
“아니 벌써, 이겼다고?”
“생각보다 별 거 아니었을 수도 있잖아요.”
이곳과 전투를 벌이는 곳의 거리가 꽤 떨어져 있어 전투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아.
밖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은 밖에서 들리는 무언가 덜그럭거리는 소리에 반응했다.
“일단 계속 기다리자 끝났으면 얘기를 해주겠지.”
끝났는지 아닌지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자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촌장이 그들을 진정시켰다.
이후 계속해서 무언가가 끌리는 소리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리더니 땅굴이 만들어진 곳 바로 위에 멈췄다.
마을 사람들밖에 모르는 땅굴 입구의 바로 앞에 멈추는 소리가 들리자.
촌장에게 한 소리 듣고 나서 구석에 쭈구려 있던 사이라 아줌마가 밖을 향해 말했다.
“저기 다 끝난 거야?”
“…….”
밖에 분명 인기척은 느껴지는데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촌장에게 한 소리 듣고 난 이후에도 혼자 계속 부정적인 생각을 하던 사이라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싶어 다시 말을 꺼냈다.
“저기! 대답 좀 해줘! 끝났냐니깐?”
그렇지 않아도 이 답답한 곳에 구박까지 받으며 갇혀있어 짜증이 난 사이라 아줌마가 큰소리로 물어보는 순간.
덜컹 덜컹!
끝까지 침묵하던 누군가가 갑자기 땅굴의 입구를 덜그럭거리며 강제로 열려했다.
“뭐 하는...읍!”
안에서 닫힌 땅굴의 문을 대답도 하지 않고 강제로 열려는 행동에 사이라가 다시 말을 하려하자.
저 밖에 있는 것이 마을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촌장이 곧바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닥치고 있어라.”
자신에게 또 왜 그러냐고 사이라가 반항하려 발버둥치려 하자 완전히 굳은 얼굴의 촌장이 그녀에게 닥치라고 말하며 그녀를 침묵시켰다.
덜컹 쿵! 쿵! 쿵!
밖에서 문을 계속 흔들던 자는 문이 열리지 않자 화가 났는지 문을 향해 부딪히기 시작했고.
그런 자의 행동에 겁을 먹은 사람들은 재빨리 안에 있는 무거운 물건을 꺼내 입구를 막으려 했다.
그렇게 계속 문을 열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싸움이 계속되다 지속된 충격으로 문의 경첩 부분이 파괴되었다.
콰앙!
경첩의 한쪽이 파괴되면서 충격에 약해진 문이 결국 열려버렸고.
열린 문 밖에 망치를 들고 있는 스켈레톤 워리어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그 흉측한 모습에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산자를 증오하는 언데드의 특성상 눈앞에 넘치는 생명력을 느낀 스켈레톤 워리어는 곧바로 자신이 들고 있는 망치를 휘둘렀다.
까앙!
다행히 입구가 좁은 탓에 휘두른 망치가 벽에 걸려 누구도 다치지 않은 상황.
하지만 방금 전 놈의 공격으로 인해 사람들은 겁을 먹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덜그럭 덜그럭
그런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뼈들을 덜그럭거리며 다가온 스켈레톤 워리어가 다시 망치를 들어.
아직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한 마을 사람에게 휘두르려는 순간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야 이 뼈다귀 새끼야!”
비명소리가 들리자마자 다리에 마력을 가득 실어 최대한 빨리 이곳으로 뛰어온 이진석은 벌써 땅굴로 들어간 뼈다귀가.
망치를 들어 올리는 것을 목격하고는 아직 거리가 있는 상황이라 늦을 수도 있어 놈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고함을 질렀다.
덜그럭!
다행히 크게 지른 고함소리가 효과가 있었는지 놈의 움직임이 잠깐 멈췄고.
그 틈을 타 다시 한 번 다리에 마력을 가득 담은 이진석이 순식간에 촌장의 집으로 들어왔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놈을 부숴버릴 수 있는 순간.
잠깐 멈칫한 놈의 망치가 공포로 아직까지 얼어붙어 있는 마을사람에게 휘둘러졌다.
부우웅!
“움직여라 이놈아!”
스켈레톤 워리어가 휘두른 망치가 정확하게 앞에 있는 사람의 머리를 가격하려는 순간.
뒤에서 자신들을 구하러 올 사람이 왔다는 것에 공포감을 이겨낸 촌장이 앞에 가만히 서있는 여성의 팔을 잡아 이끌었고.
놈이 휘두른 망치는 다행히도 여성의 팔꿈치를 부수는데 그쳤다.
“꺽!”
다행히 치명상은 피했지만 그래도 그 무거운 망치에 연약한 팔을 얻어맞은 여성은 고통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한 채 팔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격통에 곧바로 실신해버렸다.
“이 뼈다귀 새끼!”
블하임도 처리하고 마을사람들끼리 조직적으로 잘 대처해 이제 곧 있으면.
튜토리얼 침공을 막아낸 보상과 사망자가 없다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기록할 수 있어.
기뻐하고 있을 때 이놈 하나 때문에 그 기록이 깨질 뻔하자 화가 단단히 난 나는 촌장이 마을 사람을 도와준 사이.
순식간에 접근해 놈의 약간 굽은 목뼈를 손으로 잡아 뒤로 던져버렸다.
“넌 편하게 뒤질 생각하지 마라.”
다행히 촌장의 도움으로 팔만 부서진 것을 확인한 나는 마음속으로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며 있는 힘껏 던지느라 저 멀리 바닥에서 뒹굴 거리고 있는 놈에게 다가갔다.
떨어진 충격이 꽤 컸는지 아직 땅바닥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놈에게 다가간
나는 곧바로 검을 검집에 넣은 후 검집 채로 가죽 벨트에서 꺼내 놈에게 휘둘렀다.
빠악!
일단 무장을 해제시키기 위해 망치를 들고 있는 손뼈를 가루로 만들어버린 다음.
막 일어나려고 버둥거리는 무릎을 다리에 마력까지 담아 밟아 부숴버렸다.
콰직 콰직
이후에도 버둥거리면서 일어나려는 놈의 뼈를 검집으로 부수고 발로 밟고 주먹으로 다져준 뒤
이제 완전히 형체는 사라지고 하얀 가루만 남은 뼈다귀였던 것을 바라본 나는 마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진석아!”
내가 올 줄은 몰랐는지 땅굴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어 내가 놈을 가루로 만드는 모습을 지켜본 에리카가.
모든 작업이 끝나자 안에서 울먹거리는 얼굴로 내게 뛰어와 안겼다.
“진석아, 어디 다친 곳은 없어?”
“응, 난 멀쩡해. 에리카 너는?”
“나도 없어...”
사람들이 있을 때는 태연한 척 했지만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오자.
완전히 긴장이 풀린 에키라는 이진석에게 살포시 안겨 혹시 죽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대로 에리카를 껴안아 풍만한 가슴을 배로 계속 느끼고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상기시킨 나는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준 뒤 품에서 떨어뜨리고 부상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땅굴로 들어갔다.
“상태는 어때요?”
“진석이 네가 준 포션 덕에 많이 좋아진 것 같구나.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 없는 것 같다.”
“다행이네요.”
목숨에 지장이 없다는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땅굴 밖으로 사람들을 데리고 나왔다.
“지금 여기 있어봤자 다시 놈들이 쳐들어올 테니 차라리 저랑 같이 이동하죠.”
“밖은 다 정리가 된 거니?”
“마족은 죽였는데 아직 다른 마물들 처리가 안 끝났어요.”
“그럼 나가도 위험한 거 아니야?”
“저도 지금 여기 한 곳에만 있을 수 없어서 이동하면 혼자 갈 텐데 다른 놈들 오면 버틸 수 있어요?”
스켈레톤 워리어를 한 번 봐서 몸에 공포가 새겨졌는지 이동하려는 걸 거절하려는 사람에게 말하니.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다 내 의견이 맞다고 판단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네...아직 다들 싸우고 있겠지?”
“네, 제가 다시 가면 금방 정리 될 겁니다.”
“그럼 빨리 도와주러 갔다 오거라, 우리는 최대한 이곳에서 입구를 막고 있을 테니.”
가장 연장자에 마을 사람들 중 가장 현명한 촌장이 혼자 다녀오라는 말을 꺼냈다.
솔직히 나도 맘 같아서는 혼자 다 무쌍찍고 싶었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진짜 지금 내가 없는 이상.
툭하면 죽는 개복치나 다름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자.
“잠시만 기다리게.”
내가 어떤 마음인지 이해한 촌장이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굴뚝으로 가 무언가 조작을 했다.
찰칵! 기이익...
철이 서로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화로 옆에 있는 벽이 갑자기 들어가더니 안에 꽤 넓어 보이는 공간이 나타났다.
“이건...?”
“땅굴이 뚫렸을 때를 대비해 만들어둔 곳이라네.”
혹시라도 땅굴이 뚫렸을 때 이곳에 있는 사람들끼리 시간을 벌어 다른 은신처로 들어갈 생각이었다고.
말해준 촌장은 곧 사람들을 그 안으로 모두 들여보낸 뒤 내게 말했다.
“그럼 우리는 여기서 안전하게 있을 테니 꼭 마을 사람들을 안전하게 데리고 와주게 내 부탁함세.”
“맡겨주십시오.”
다른 은신처를 만들어놨다는 현명한 촌장의 판단에 감탄한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내게 부탁하는 촌장에게 대답한 뒤 곧바로 아직까지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