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6 아이리스 아르카디아 (1)
끄아아악──.
부알이 소멸한 자리에서, 놈의 단말마가 울려 퍼지는 듯 했다.
“끝났군요.”
내가 안도하며 아이리스에게 말을 걸었을 때였다.
「놈.」
“…윽.”
“체페슈공!”
쿵.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극심한 두통과 어지러움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자, 아이리스가 당황해 나를 부축했다.
걱정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아이리스에게, 대답을 돌려주고 싶었으나.
「마음 같아선 이번에야말로 징벌해주고 싶으나, 제대로 된 강림도 아니고, 시간도 많이 없군. 통탄스러울 일이로다.」
“크으으윽….”
우웅.
머리가 깨질 듯 울리는 소리에 침음을 삼키면서도 나는 목소리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었다.
“…마왕.”
「육신에 뿌리내렸던 짐의 저주는 해주한 듯 하군. 어떤 수를 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가히 짐의 옥체에 치명상을 입힌 숙적이라 할 만 하다.」
72 악마의 서열 1위.
네 명의 군단장 중, 제1 군단의 군단장.
그리고, 모든 악의 종주.
마왕.
──바알.
바알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리자, 나는「부여」로 「부동심」과 「자기방어」「수호」따위를 내 몸에 깃들게 했다.
고통이 없어지진 않았으나, 한결 나아지자 나는 숨을 가다듬었다.
“치근거리지 말고 꺼져.”
「허나 잃어버린 기억은 되찾지 못하였는가.」
바알의 목소리에 웃음이 깃들었다.
「아쉽고도 슬프다. 마계의 군주인 나로써는 그대와 같은 강적이 기억을 잃고 약해졌다는 것에 기뻐해야 마땅하나, 마계의 제1군단장이자 서열 1위의 악마로써, 나의 진정한 숙적인 그대가 다시 한 번 나와 힘을 겨루지 못 하게 되었다는 점이 참으로 슬프구나.」
그리 말하면서도 아쉬운 기색이라곤 없었다. 씨발새끼. 누굴 놀리나?
“약해지긴 누가 약해져, 개새끼야.”
노골적인 욕설에 옆에서 나를 부축하던 아이리스가 흠칫 몸을 떨었다.
아이리스는 마왕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듯 했다. 아마 그녀가 봤을 땐 내가 갑자기 주저 앉더니, 거칠게 욕설을 뱉는 상황일테지.
다만 거기까지 내가 신경 써줄 겨를은 없었다.
「흠. 보아하니 혈귀로써의 잠재력은 착실히 개화했는가.」
허나.
거기까지 말하고서, 마왕은 잠시 말을 멈췄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짐에게는 반년 전의 그대가 훨씬 두려운 존재였다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겐 없는 기억이었으므로.
「나의 숙적이여. 이대로 그대가 다시 순조롭게 성장해, 다시 한 번 내 목을 치러 오기를 나는 한 사람의 마족이자 무인으로써 기대하고 있지만….」
어딘가 즐거운 듯 한 목소리였다.
「그 이전에 나는 마왕으로써, 그대가 강해지는 것을 두고 볼 순 없어.」
씨발새끼.
나는 오싹한 예감과 동시에, 내가「자기방어」와「수호」는 물론이고, 「면역」과 「반사」, 그 외에도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써가며내 몸을 보호했다.
다만.
「이렇게 그대에게 간섭할 수 있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부디 그대가 모두 극복하고서, 다시 한 번 내 목을 치러 오길 기다리고 있겠네.」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만 놈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키는 듯 한 환영과 함께,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의식이.
아득하게 멀어지는 듯 했다──.
*
정신을 차렸을 땐 이틀이 지난 뒤였다.
걱정스럽게 나를 쳐다보던 아이리스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누님과 데이지는 아예 눈가가 퉁퉁 부어있더라. 아이리스의 말로는 한참 울었다고.
막상 나는 눈을 감았다 뜨니 이틀이 지나 있는 상황이라, 엉엉 우는 모습의 두 사람을 보지 못해 아쉽다는 감상이었다.
눈치 없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괜찮은 거 맞지?”
“괜찮대도.”
걱정을 감추지 못 하는 누님과 데이지는 일단 본성으로 돌려보냈다.
내가 쓰러졌다고 해서,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체페슈공.”
“아. 전하.”
아이리스와 함께 숲 정화 작업을 처리하려고 준비하던 중, 심란한 기색의 아이리스가 찾아왔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곳에서 쉬시는 것이….”
눈 앞에서 픽 쓰러졌으니 걱정할만도 한가.
나는 멀쩡하다는 듯 웃어넘겼다.
“전하를 어찌 혼자 보내겠습니까.”
“허나….”
우물쭈물.
당사자인 내가 괜찮다고 밀어붙이니 아이리스도 입술을 오물거릴 뿐 나에게 더 쉬라고 강요하진 않았다.
“…빨리 끝내도록 하죠.”
결국 나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안 아이리스가 체념했다. 체념이라기보단, 이렇게 옥신각신 하는 것보단 빨리 끝내는 쪽이 낫다고 판단한 듯 했다.
그렇게 우리는 넓은 대수림 곳곳을 탐사했다.
위험할 것은 없었다. 여왕에게서 길잡이 역할은 물론이고 호위 병력도 충분히 붙여주었으니.
우리 둘은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길잡이가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 대수림을 탐사하다, 마기에 오염된 구역이 발견 되면 정화하기만 하면 됐다.
다만.
“쉬고 계세요.”
“제가 돕는 쪽이….”
“쉬세요.”
“…네.”
아이리스는 내가 나설 틈을 주지 않았다.
물론 그녀의 신성력이 마기의 천적이긴 해도, 이미 숲을 오염 시킨 마기를 불사르기 위해서는 내 힘을 빌려 마기와 숲을 「분리」하는 쪽이 훨씬 쉽고 빨랐다.
그것을 아이리스라고 모르진 않을텐데.
그렇게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자리만 지킨 채, 대부분을 아이리스가 홀로 나서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전하.”
“말씀하세요, 체페슈공.”
정화 작업을 시작하고 사흘째.
숲의 정화 작업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아마 내일쯤이면, 모두 마무리 되겠지.
나와 아이리스는 궁전으로 돌아와 피로를 풀고 있었다.
사흘째의 강행군이었다. 용사인 아이리스라도 피곤한 기색이었다.
나 역시….
뭐.
그보다.
“죄책감을 품고 계십니까?”
“….”
아이리스의 입이 다물렸다.
긴 은발, 푸른 눈동자. 여러모로 누님과 대조 되면서, 누님과 비견할 정도의 미모를 지닌 그녀가 입을 꾹 닫고 수심 깊은 눈동자로 나를 조용히 응시하는 광경.
그녀에게 흑심은 없었다.
그저, 그 아름다움에 나 역시 잠시 입이 닫혔을 뿐.
아이리스의 입이 열렸다.
“네.”
“어째서 그렇습니까?”
“…용사는 저인데. 체페슈공이 저 때문에 마왕의 공격을 받은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에….”
정신을 되찾은 나는, 누님과 데이지, 그리고 아이리스에게 적당히 사실을 털어놓았다.
마왕의 기습에 당했다.
아직 내게서 마족과 악마의 차이가 무엇인지, 마왕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히 듣지 못한 누님과 데이지는 다만 내가 기습에 당했다는 점에 집중해 나를 걱정하는 것에서 그쳤으나….
아이리스는 용사인 자신이 아니라, 그녀를 돕던 내가 마왕의 공격에 당했다는 점에 대해 죄책감을 품은 듯 했다.
그녀에게 아직 내가 일전에 마왕과 싸우다 기억을 잃었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으니까.
아무래도, 그녀에게는 말해주는 게 맞겠지.
“전하.”
“…네.”
“전하 때문이 아닙니다.”
“…어째서 그렇죠? 저는, 성검을 뽑은 용사인데. 마왕이 노려야 할 상대는 체페슈공이 아니라, 저여야 할텐데….”
나는 손을 뻗었다. 분노로 파르르 떨리는 아이리스의 손등에 손바닥을 올렸다.
흠칫. 그녀의 몸이 떨렸다. 푹 숙여졌던 고개를 들곤,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저는 기억이 없습니다.”
“…!”
“석 달쯤 된 것 같네요. 기억을 잃은 제가, 저택에서 눈을 뜬 지.”
“그런….”
“기억을 잃기 전의 제가 무엇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전하가 기억하는 저에 대해서는, 무척 낯선 기분이 듭니다.”
아이리스의 손이 떨렸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우웅. 그녀의 손목에 새겨져 있던 여신의 문양이 빛났다.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걸까.
나는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마왕이 말했습니다. 자신의 몸에 치명상을 입혔다고.”
“설마…!”
“예. 아마, 제가 기억을 잃은 것도, 그 일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나는 대략의 얼개를 알고 있다. 상태창을 통해 상황 파악을 위한 정보 대부분을 습득한 상황이니까.
하지만 여기서 그것들 전부를 말해줄 순 없었다.
아이리스의 눈동자에는 나에 대한 걱정과, 죄책감, 그런 감정들이 얼룩덜룩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런….”
나는 또한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깃든, 미약한 열등감을.
용사로써의 책임감에 들떠 있던 소녀였다. 그렇기에 나를 동경했다.
그녀가 여신에게서 성검을 하사 받은 용사이기 이전부터, 마치 용사처럼 대륙을 위해 희생한 선배로 여기듯.
하지만, 그녀가 용사가 되었음에도, 용사의 숙적이었어야 할 마왕은 그녀가 아니라 나를 지목했다.
그녀는 그것이 용사로써 동료를 지키지 못 한 스스로의 실책이며, 동료부터 공격하는 비열한 마왕의 간계라고 생각한 듯 했지만.
실제로는 마왕이 그녀가 아니라 나를 더욱 위험시 했기 때문이라고, 내 입으로 말해버린 것이다.
용사야말로 마왕의 숙적.
그리 여기던 아이리스의 가치관이 흔들린 것이다.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지켜보다, 나는 속으로 상태창을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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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칭의 시련(SS)」
▶ 「피의 천칭」「혼의 천칭」「운명의 천칭」의 반대편에 서 있는 각각의 인물들과, 천칭의 계약을 맺을 것.
▶ 남은 기한 : 90일.
▶ 현재 달성도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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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태창에 떠 있는, 「기억상실」 옆에 새롭게 나타난, 아마도 마왕이 걸었을 새로운 저주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개씨발새끼 진짜.
그런 속내를 갈무리하고, 나는 아이리스의 손을 꼬옥 잡았다.
“읏.”
“전하.”
“….”
아이리스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상체를 숙였다.
“…!”
용사의 입술은 사과향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