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2 시험 중 (2)
“바보.”
“응.”
“변태.”
“맞아.”
“맞아요?”
“맞아.”
“나 참…. 짐승.”
“맞나?”
“맞거든요?”
“맞겠지 뭐.”
아침.
격렬한 정사를 치루고 난 뒤, 한 숨 자고 일어났더니 어느새 말끔하게 씻고 나온 크리스티나가 눈을 샐쭉하니 뜨면서 나를 타박했다.
실눈이라 샐쭉하게 떴다고 해도 실눈이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깊게 패인 손톱 자국.
다시 으쓱.
“….”
“짐승은 내가 아니라 너….”
“조용히 해요.”
예.
입을 다물었다.
더 했다간 울 거 같아서.
아니. 우는 모습도 보고 싶긴 한데. 이미 지난 밤 잔뜩 봤으니까.
그땐 잉잉이 아니라 앙앙 우는 거라 좀 다르긴 하지만.
촉촉하게 젖은 머릿결을 말리던 크리스티나가 나가 투덜댔다.
“정말. 생으로는 안 된다구 했는데.”
“안전한 날이잖아.”
“그래도….”
“싫었어?”
“그건 아닌데요….”
궁시렁.
말이 궁해진 그녀가 입술을 비죽거리며 중얼거린다.
“임신하긴 좀 이르긴 하지?”
“…네에.”
더 놀리기도 좀 그렇고, 이쯤 하면 됐다 싶어 크리스티나를 끌어안았다.
부드러운 몸이 내 품에 파고들어서는, 기분 좋은 향기를 풍기며 살살 부벼 온다.
“짓궂어요.”
“알았어. 그래도 좋았지?”
“몰라….”
토닥토닥.
등과 엉덩이를 몇 번 토닥여줬다.
“오늘 시험은?”
“으응. 오후에 하나 있어요.”
그런가.
1학년 강의 중 듣는 게 고대마법이랑 결투학밖에 없으니 잘 모르겠다.
“당신은?”
“나도 오후에 하나.”
뭐였더라.
마물 어쩌고 저쩌고였는데.
뭐.
아무튼 실기였던 걸로 기억하니 별로 걱정 안 해도 되겠지.
“좀 더 할까.”
“네? 네, 뭐를. 앗.”
딱히 뭘 한다는 게 아니라.
그냥 나란히 마주 보고 누운 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아무 생각 없이 떡 치는 것도 좋지만,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
오후가 됐다.
크리스티나와 헤어지고 시험장으로 향하자,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누님이 나를 발견하곤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스칼렛. 늦었잖아. 어디 갔다 왔니?”
빙그르르.
어깨에 기댄 양산을 돌리며, 퉁명스레 묻는 누님.
누님의 옆으로 다가가 어깨를 끌어안았다.
“잠깐 크리스티나랑.”
“잠깐이 아니라 밤새겠지. 좋았니?”
삐죽 입술을 내민 레티 누님.
나는 주변을 살짝 살피곤, 고개를 숙였다.
“읍.”
누님은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보다가, 내가 고개를 떼니,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다 나를 향해 조용히 타박한다.
“너, 너, 밖에서 이런 건….”
“싫어?”
“…밖에서 이런 건.”
“안 돼?”
머뭇거리는 누님의 아랫배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흑!”
화들짝 놀라 한 발짝 뒤로 물러선 누님.
이게 무슨 짓이냐는 듯 동그랗게 뜬 눈이 귀엽다.
“뭐, 뭐, 뭐 하는 거야.”
“자궁마사지.”
“그런 천박한…!”
질색팔색 하는 듯 하면서도 얼굴은 붉어진 채다.
얼굴 뿐 아니라 귀도, 목까지 잔뜩 빨개져서는, 양산을 쥔 손에 힘을 꼭 쥐는 게 보인다.
“다음에 밖에서 해볼래?”
“뭐를…?”
“아기 만들기.”
“안….”
안.
까지 뱉어낸 누님의 입이 순간 다물렸다.
새빨개진 얼굴. 떨리는 눈. 파르르, 입술이 달싹거리곤.
“몰라.”
귀엽긴.
“밖에서 남들 몰래 아기 만들기.”
“히윽.”
움찔.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야하고 천박한 말을 들었다는 듯 누님의 몸이 떨렸다.
나는 짓궂게 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히히.
그런, 짓궂은 악동이나 지을 법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누님의 허리를 토닥거렸다.
“남들 몰래. 조용히. 숨 죽인 채 숨어서 동생 자지로 푹푹.”
“힉. 힉.”
동공이 심하게 떨린다. 숨소리가 조금씩 가빠진다. 머릿속으로 뭘 상상하고 있는 진 모르겠지만 다리를 바르작 비비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천박한 걸 떠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런, 나쁜 말 하는 거 아냐. 밖에서.”
“밖이 아니면 해도 돼?”
“…….”
“밖이 아니라 실내면 누님을 야외에서 개처럼 따먹고 싶다는 말을 해도 되는 거야?”
“…안, 되거든?”
흥.
새침하게 그리 말하는 누님이었지만.
이윽고 잠시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네가 정 하고 싶다면….”
내 눈치를 살피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말로만?”
“…뭐가?”
“말로만 해도 되는 거야? 아님 실천 해?”
“…. 뭘 실천하는데?”
잠시 회로가 망가진 듯, 멍한 얼굴의 누님이 내게 되물었다.
아마 다음에 나올 얘기가 뭔지 알 텐데도, 부끄러움에 모르는 척 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나는 그런 누님에게 냉혹한 진실을 내밀 자신이 있었다.
“밖에서 누님을 개처럼 따먹기.”
“……흐윽.”
아니지.
“발정난 암캐마냥 자지에 매달리면서 헐떡대는 누님을, 야외에서 남들 시선을 피해 숨죽이며 따먹기.”
“헤윽.”
냉혹한 진실을 내미는 수준이 아니라.
누님을 묶어놓고 눈 앞에 들이미는 수준 정도여도 자신 있었다.
“야외에서 짐승처럼 교미하는 걸 진심으로 즐기는 암캐로 조교해버리는 짓. 해도 돼?”
“안 대….”
벌벌 떨면서도 눈동자에 일말의 기대를 품는 누님.
나는 방긋 웃었다.
“누구 마음대로 암캐 주제에 되고 안 되고를 정해?”
양산으로 가려진 누님의 등. 조용히 엉덩이를 쓰다듬다, 길다랗게 늘어뜨린 누님의 머리칼을 손아귀로 움켜쥔 채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건 내가 정해. 알았어?”
“…네헤…♡”
내게 머리채를 붙잡힌 채 대답하는 누님은, 완전히 풀린 눈을 하고 있었다.
움켜쥐었던 머리칼을 풀고, 헝클어졌을 머릿결을 손가락을 사용해 살살 정리해주며 말했다.
“착하다.”
“으응.”
묘하게 얌전해진 태도의 누님.
이렇게 마조 성벽을 한 번 자극해주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얌전하고 헌신적인 태도가 되곤 한다.
평소에도 그런 편이긴 하지만.
“이 얘기는 시험 끝나고 또 하자.”
“으응….”
몽롱한 듯 말끝을 흐리는 대답.
누님의 커다란 엉덩이를 가볍게 찰싹 때렸다.
“힉!”
“정신 차려.”
“으, 응. 무슨 얘기하고 있었지?”
“시험 얘기.”
“그랬나? 으흠…. 오늘 시험 보는 과목은 ‘마물의 생태와 습성’이야.”
“실기지?”
“응. 이론 시험은 원래 1학년 때 ‘마물의 생태와 습성’에서 치루고, 2학년은 실기만 봐.”
아카데미의 졸업생이 대륙 어딜 가나 대접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이론이 아니라 실기와 실적 위주로 성적을 평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순히 스스로 단련해 경지를 끌어올리기만 한 기사는, 실전에서 그 경지를 십분 발휘하지 못 하고 드문 경우지만 눈 먼 화살이나 검 따위에 당하기도 한다.
전장의 잔혹함을 목도하고 두려움에 질린, 이론만 공부하던 마법사가 마법을 잘못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천대 받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론 위주의 마법사는 마탑에서 연구자로 인정받기도 하니까.
다만 확실한 것은, 이론 뿐 아니라 실기에 중점을 둔 아카데미의 졸업생은 졸업한 시점에서 마물과 사람을 상대로 한 실전 경험에 완숙해진 베테랑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지금 시험을 치룰 ‘마물의 생태와 습성’ 과목 역시, 누님에게 듣기론 1학년 때 대부분의 이론을 배우고, 2학년 이후부턴 배운 이론들을 실전에서 적용시키는 법을 배운다고.
1학년 때 트롤의 생태와 습성, 약점 등을 배웠다면 2학년 때는 직접 트롤를 상대해가며, 1학년 때 배웠던 지식을 몸에 체화시키는 식으로.
“나쁘지 않네.”
“응. 옆에 교관들이 항상 보고 있기도 하고.”
나는 옆에 서 있는 누님을 쳐다봤다.
그러고보니 누님이 2학년 수석이었지.
“누님.”
“응?”
“만약에 내가 2학년 과목들에서 수석을 받아버리면, 나는 1학년 수석이 되는 걸까?”
“으음.”
“만약 그렇다면 내가 듣지 않는 1학년 과목에서 수석이 된 생도들은? 억울할 것 같은데.”
“네가 수석을 받는다고 억울해 할 생도는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양산을 빙글빙글 돌리며 골똘히 고민하던 누님이,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모르겠네. 교수가 알아서 하지 않을까? 어차피 스칼렛 네가 서열전 1위가 되는 건 확정일테구.”
음.
그것도 그렇다.
시험의 석차 여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서열전의 순위.
애초에 이론보다 실전을 강조하는 아카데미이니만큼, 아카데미의 졸업생 대부분이 이론 연구보다는 실제 전장에서 몸을 움직이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러니만큼 아카데미 졸업 후 “내가 아카데미 필기 수석이다!”나 “아카데미 실기 수석이다!”보다는 “아카데미 랭킹 1위다!” 쪽이 더 높게 쳐주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서 필기나 실기 1위를 안 쳐주는 건 아니다.
일단 필기나 실기 중 하나라도 1위를 할 정도라면, 서열전에서도 높은 순위를 보일테니까.
아예 이론 자체에만 모든 재능이 집중 돼 있는 경우만 아니라면야.
그런 경우는 드물다.
애초에 그런 경우라면 아카데미에 입학하지 않는다. 입학하더라도 1학년이 끝나기 전에 마탑에서 데려간다.
뭐.
가끔 아카데미의 교수 중 한 명이 대학원으로꼬드긴다는 얘기도 있긴 하지만.
어떤 바보가 개인 연구실을 제공해주고 쾌적한 환경을 보장하는 마탑이 아니라 대학원에 가겠는가?
그야말로 괴담 따위로밖에 생각되지 않을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