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1 황실 (1)
시험이 끝난 뒤. 데이지의 강력한 요청과 누님의 동의로 두 사람을 데리고 아카데미 밖으로 나왔다.
정확히는 아카데미 부지 내에 속해 있는 상가 거리인데, 웬만한 것들은 모두 이곳에서 구할 수 있었다.
“스칼렛. 저기 봐.”
“어디?”
누님이 손가락을 뻗어 가리킨 곳은 동물카페였는데, 귀여운 걸 좋아하는 데이지가, 티는 못 내고 옆에서 발을 동동 굴리길래 한 번 들어가보기로 했다.
“와아.”
설레는 기분으로 동물카페에 들어간 데이지는, 기대했던대로 카페 내부를 쫄쫄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보곤 작게 탄성을 뱉었다.
무뚝뚝한 메이드 컨셉은 어떻게 잘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쪼르르 달려와 발치에 앉아 데이지를 올려다보며 혀를 헥헥 대는 강아지를 보니, 아무래도 이건 참기 어려웠는지 데이지의 눈썹이 꿈틀 떨린다.
“마음에 드나본데.”
“그러게.”
나와 누님이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강아지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고 있는 데이지를 지켜봤다.
아. 방금 입꼬리 올라갔어.
“저 컨셉 언제 그만둘 것 같니?”
“왜? 나는 마음에 드는데. 놀리는 맛도 있고.”
“으휴.”
툭.
누님의 발 끝이 내 정강이를 가볍게 건드렸다. 약한 심술이었다.
잠시 그렇게 누님과 티격태격 하다, 다가온 종업원에게 커피 세 잔과 조각 케이크 하나를 주문했다.
“그나저나 이런 곳도 있네. 생도들한테 수요가 있나?”
“저기 보렴.”
누님이 데이지를 가리켰다. 어느샌가 무뚝뚝 메이드 컨셉을 깨고, 와아 와아 하며 강아지를 쓰다듬는 데이지가 있었다.
“수요가 없겠니?”
“누님은?”
“나?”
누님이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아까 누님이 했던 것처럼 다리를 뻗어 누님의 허벅지를 툭 건드렸다.
“야아….”
“누님은 강아지 안 좋아해?”
“으응. 안 좋아하는 건 아닌데─.”
“아닌데?”
스윽, 슥, 내 발 끝이 누님의 허벅지를 간지럽혔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허벅지가, 내 발끝에 콕콕 닿는다.
“저렇게 막 달라붙을만큼은 아니…. 하, 하지마. 변태야.”
누님이 얼굴을 붉히곤 나지막이 타박했다. 샐쭉하게 뜬 눈이 나를 흘겨본다. 붉은 눈동자에 은은한 욕정이 깃든 게 보여서 작게 웃자, 누님이 뭐가 그리 웃기냐는 듯 발로 내 발등을 꾹꾹 밟았다.
“아아파.”
“흥.”
누님이 삐진 듯 고개를 돌리고, 종업원이 주문했던 커피와 케이크를 내오자, 데이지는그제야 아쉬운 듯 강아지를.
….
“주인님. 얘 너무 귀여워요. 어떡하죠?”
“멍!”
아쉬운 듯 손을 떼고 혼자 온 줄 알았더니, 아예 강아지를 번쩍 들어서는 데려온 데이지가 방긋방긋 웃는다.
“그렇게 웃어도 돼?”
“앗…. 그, 아카데미 밖이니까 괜찮아요.”
허술한 기준이구만.
아무튼 발치에 강아지를 내려둔 데이지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자기 몫의 커피를 마시는가 싶더니, 발치에 몸을 비비적 대는 강아지를 내려다보곤.
“헤헤. 강아지 너무 귀엽죠.”
또 헤헤 웃으며 강아지를 쓰다듬는 게 아닌가.
나는 딱히 별 생각은 없었는데, 누님이 문득 진지한 얼굴로 데이지에게 말했다.
“데이지. 스칼렛이 좋아 강아지가 좋아?”
“어.”
“넷?”
순간, 데이지가 강아지를 만지던 손을 팍 뒤로 빼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나도 깜짝 놀라긴 했지만. 슬쩍 살핀 누님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걸 보곤, 냉큼 누님의 장난에 동참하기로 했다.
“그러게. 나도 궁금하다. 귀여운 강아지가 주인님보다 좋아?”
“엣, 에.”
당황한 데이지가 나와 누님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휙휙 돌리다가, 두 손을 꼬옥 모은다.
“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세요?”
“아니. 그렇잖니. 기껏 이렇게 데이트를 나왔는데, 스칼렛이 아니라 강아지한테만 신경이 팔려있구.”
손가락 대신 케이크를 먹던 포크로 데이지를 가리키며 냉정하게 말하는 누님.
하지만 나는 보았다. 순간 누님이 참지 못 하고 웃어버릴 뻔 한 것을. 데이지는 못 본 듯 하지만.
“그, 그게. 당연히 주인님이 더 좋죠…?”
순진한 데이지.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왜 이런 질문을 받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다.
하지만 아직 만족하지 못 한 누님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데이지를 추궁했다.
“그럼 스칼렛한테 집중해야지. 강아지한테 손 떼.”
“흐잉….”
누님의 심술에도 데이지는 순순히 강아지를 풀어줬다. 완전 울상이 돼서는, 쫄래쫄래 떠나는 강아지의 뒷꽁무니를 아련하게 쳐다본다….
“푸흣.”
아.
누님이 참지 못 하고 터졌다.
“흣, 아, 진짜. 귀엽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 채, 어안이 벙벙한 듯 입을 헤 벌린 데이지를 향해 누님이 손을 뻗어서는, 분홍빛의 컬이 들어간 단발을 슥슥 쓰다듬어 준다.
“그, 에, 네?”
“강아지 데려와도 돼. 장난이었으니까.”
상황 파악이 덜 된 데이지에게 누님이 다정하게 속삭인다. 데이지는 심술 궂은 장난의 대상이 되었음을 알았으면서도, 서운해 하기보단 신이 나서는 다시 강아지를 데리러 갔다.
“심술 궂기는.”
“자기두 거들었으면서.”
내 핀잔에 툴툴 입술을 삐죽 내미는 누님. 나는 주변에 보는 눈이 없는 것을 확인하곤.
쪽.
“읏.”
“그런 면도 좋아하는 거야.”
“…말은 잘 하지.”
“아! 또 저만 빼놓고!”
강아지를 품에 안고 돌아온 데이지가, 나와 누님이 밀착해 있는 걸 봤는지 서운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이리온. 옆에 앉아.”
“….”
내가 그리 말하면, 싫다고 하지 않고 내 옆에 앉는다.
그러면서도 “나 서운해요. 나한테도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듯 한 기색을 마구 풍긴다. 그런 모습이 귀여워서, 머리칼을 쓰다듬어준다.
“힝.”
“왜 힝 해.”
“주인님이 쓰다듬어주기만 하고 뽀뽀는 안 해주셔서 힝이에요.”
“풋.”
데이지의 칭얼거림을 들은 누님이 대놓고 웃는다. 흘깃, 누님을 슬쩍 보고는, 되려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댄다. 누님이 좀 비웃어도 나한테 뽀뽀를 받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주인님. 뽀뽀─.”
나는 그만 애태우기로 하고 데이지의 뺨에 쪽 뽀뽀를 해줬다.
“헤헤.”
웃는 얼굴이 너무 행복해보여서, 나는 차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 강아지가 좋아?”
“주인니임!”
미안.
*
카페를 나온 우리는 좀 더 상가를 걸어보기로 했다. 강아지와 헤어져야 해서 데이지가 아쉬운 기색이기도 했고.
“아, 저기 옷가게 가볼래?”
“옷?”
누님과 데이지를 데리고 옷가게에 들어갔다.
귀족들로 구성된 아카데미의 생도들을 대상으로 한 상가의 옷가게라 그런지, 내부로 들어서자 보이는 세련된 인테리어에 작게 감탄했다.
“괜찮네. 누님, 사고 싶은 거 있어?”
“옷은 충분한데…. 그래도 한 번 볼까?”
누님은 살짝 빼는 듯 하다가도, 내가 옷을 사준다고 하니 신이 나서는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신분이 신분인데 그야 옷이 부족하진 않을테지만, 사주는 사람이 나라는 게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데이지는?”
“아. 그럼 저도 안에 들어가서 좀 볼게요.”
누님에게만 사주기는 뭐 해서, 옆에 서 있던 데이지에게 말을 꺼내자 데이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누님을 따라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스칼렛─.”
이윽고, 안쪽에서 나를 부르는 누님의 목소리.
안으로 들어가자, 누님이 마침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듯 몸에 착 달라붙는 디자인의 원피스에 하얀 가디건을 걸친 채 나를 반겼다.
“어때?”
내게 과시하듯 한 팔로 가슴을 받치고, 당당히 내 앞에 선 누님.
나는 슬쩍 아래서부터 전체적으로 훑어보곤 어깨에 걸친 가디건을 여며주었다.
“내 앞에서만 입기.”
“그으런 거 말구. 예뻐?”
참 나.
코웃음을 지으며, 누님의 코를 손가락으로 꾹 잡아 눌렀다.
“에윽.”
“그럼 예쁘니까 내가 그런 말 하지.”
“히.”
다 알고서 그런 거겠지. 하여튼 요망한 여자 같으니.
“그걸로 살 거야?”
“응? 아니?”
당연히 긍정의 대답이 돌아올 거라 생각했는데, 누님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데.
“예쁜데 왜 안 사?”
“다른 것도 봐야지.”
“이거 사놓고 다른 것도 보면 되잖아.”
“낭비하면 못 써.”
“아니 낭비가 아니라.”
내가 뭐라 마저 말하기도 전에, 누님이 쌩 하고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황망히 서 있는 내게, 데이지가 도도도 다가오더니.
“주인님! 이거 입어보실래요?”
“어?”
내게 웬 수트를 건네는 게 아닌가.
어어, 하면서 데이지에게 밀려 탈의실로 들어가서는, 갈아입고 나오자,
“멋져요. 이거 살래요.”
“응?”
아까의 누님처럼, 다시 쌩 하고 들어가버린 데이지.
그렇게.
“스칼렛. 어떤 게 더 예쁜 것 같아?”
“어. 둘 다.”
“굳이 하나만 고르면?”
“둘 다 사도 되는데 왜 굳이 하나만 골라?”
돈도 많으면서 굳이 여러 옷을 들고 비교하는 누님과.
“주인님! 이거 입어보세요!”
“너 입을 거 사라고 데려온 건데?”
“에이 참. 어서요. 어서!”
자기 입을 건 안 고르고 자꾸 나를 인형옷갈아입히기 하는 데이지의 무한 러쉬에 그만.
“조, 조금만 쉬자.”
나는 항복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