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7 아르카디아 (2)
장난스러운 대화였지만, 효과는 있었다. 겉으로 내색하진 않아도 상당히 불안해 보이던 아이리스도 진정한 것 같았다.
“저는 괜찮아요.”
아이리스가 내 품에 안겼다. 비록 일선을 넘지는 않았으나, 포옹 수준의 스킨쉽에 대해서는 아이리도 나도 서로 거리낌 없이 할 정도로, 우리 둘 사이의 거리감은 줄어들어 있었다.
얇은 천 너머로 아이리스의 등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으응.”
간지럽다는 듯 콧소리를 흘린 아이리스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나 역시 간질간질한 느낌에 참지 못 하고 웃음을 터뜨리니, 나를 슬쩍 올려다 본 아이리스가 쿡쿡 마주 웃었다.
“왜 그런 소문이 퍼지는 건지…. 저도 알아요.”
한참을 그렇게 웃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소리가 잦아들고 조용해진 가운데, 아이리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괜찮다는 말이 나와?”
소문의 대상이, 다름 아닌 황녀인, 그것도 계승권 경쟁에서 장남인 에드윈과 유일하게 겨룰 수 있는 아이리스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소문이 퍼지는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그녀의 경쟁자인 에드윈이 직접 손을 쓴 게 아니라면, 이렇게 빨리 소문이 퍼질 순 없었다.
아무리 사람들이 가십거리에 환장한다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만만한 상대여야지, 넘볼 수 없는 수준이 되면 입을 조심하게 되는 법이다.
입을 잘못 놀리면 목이 날아가는 이런 세상에서는 특히나.
“심증밖에 없는 상황이라지만, 이대로 가만 있을 순 없어요. 아이리스.”
“…어떡하실 거예요?”
어떡하긴.
나름 치밀하게 움직여서인지, 에드윈이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는 없는 상태였다. 모든 일은 그의 끄나풀인 애런이 했고, 애런은 에드윈과 공식적으로는 거리를 두고 있었으니.
소문의 진상을 쫓아본다한들, 에드윈에게 도달하진 못하겠지.
그럼 어떡해야 하는가.
“일단 애런만이라도 조져야지.”
“…정말로 애런 오라버니가….”
아이리스가 안색을 어둡게 했다. 껄끄러운 상대이긴 했어도, 그래도 꼬박꼬박 오라버니라고 부르며 가족이라 생각했었을텐데.
말 끝을 흐린 아이리스가, 두 손을 꼼지락 거렸다.
순수한 용사 같으니. 이렇게 사람이 착하니, 배신 같은 걸 당하는 거겠지.
아이리스가 먼 훗날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이렇게 진실을 알아두는 게 오히려 나을 것이다.
“아이리스.”
“…네.”
“나 믿어요?”
떨리는 동공. 아이리스가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작지만, 심지 곧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믿어요.”
“여신님에게 인정받은 자라서?”
내 말에, 아이리스가 무슨 소리냐는 듯 눈가를 찌푸렸다.
“아뇨. 오라버니…, 오빠라서요.”
“정말?”
“네…. 정말로.”
“나 좋아해?”
흡.
순간, 숨을 들이킨 아이리스의 눈이 잘게 떨렸다. 아까부터 붉어져선, 더 붉어질 여지도 없어 보이던 얼굴이 아예 터질 것처럼 물들었다.
나는 아이리스가 도망가지 못 하도록, 그녀의 얇은 허리를 팔로 감아 당겼다. 포옥, 내 품에 안긴 채,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리스의 귓가에 속삭였다.
“대답해줄 때까지 안 놔줄건데.”
“아….”
아으. 앓는 소리를 내곤, 아이리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내 가슴팍에 이마를 톡 대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좋아, 하는 거 같아요….”
그런가.
확답이 아니라 조금 아쉽긴 하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가슴팍에 이마를 대 아이리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턱 밑으로 손을 넣어 슬쩍 들어올렸다.
“읏.”
새빨개진 얼굴, 부끄러움에 그렁그렁 거리는 눈망울과, 꾹 다물려 파르르 떨리는 입술.
무표정하게 있으면, 세상 누구보다 차가워 보이는 얼굴로 이다지도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다니.
나는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내가 다 알아서 해줄게.”
“그게 무슨─, 흡.”
부드러운 입술. 갑작스런 접촉에 멎어버린 숨과, 떨리는 입술.
촉촉한 감촉을 즐긴 뒤, 아주 약간, 서로의 숨결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를 남겨둔 채 떨어진 다음, 두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빤히 보는 아이리스에게 속삭였다.
“누구도 감히 너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해줄게.”
“그건, 그건.”
“설령 황제라도.”
“…그럼 안 돼요.”
안 되기는.
나는 부드럽게 웃었다. 아직 키스의 여운에 잠겨, 얼떨떨한 얼굴로 입술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는 아이리스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네가 황제가 되렴.”
“……에드윈 오라버니가.”
“네가 해야해.”
“….”
아이리스는 입을 다물었다. 혼란스러운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황제는 그녀가 되어야 했다.
나와 결혼하게 될 경우 벌어질 일들. 그 뒷감당을 고려하더라도, 역시 나는 아이리스를 지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리스가 황제가 되어야 오러 마스터의 자질이 앞으로도 계승 될 테니까?
에드윈보다는 용사인 아이리스가 황제가 되는 쪽이 더 안정적일테니까?
그런 이유도 컸다.
마왕을 토벌하기 위해서라면, 흔들리지 않고 든든하게 나를 지지해줄 황제가 필요했다.
에드윈이 내전에서 승리해 황제가 된 배드 엔딩의 루트에서, 에드윈은 마왕이 현세에 강림하자마자 냉큼 제국을 바쳐버린다는 것을 알기에 더더욱이나.
그런 다양한 이유들이 있지만.
여기선 역시 그런 것보다는.
“아이리스가 내 여자니까.”
“그건.”
내 여자가 계승권 문제로 형제자매들과 다투고, 정치적인 수작을 부리거나, 당해가며 앓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다 괜찮다.
손에 피 묻히는 일은, 내가 모두 맡아 해주면 된다. 익숙한… 일이다. 기억이 없음에도, 나는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다.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듯.
“아이리스.”
“…네.”
“부탁할 게 한 가지 있어요.”
“…뭔데요?”
진지한 얘기라도 하려는 듯 짐짓 굳은 얼굴로 입을 열자, 아이리스가 똑같이 긴장한 듯 몸을 굳혔다.
“앞으로도 오빠라고 불러주기.”
“…뭐예요, 그게.”
아이리스가 김이 샌다는 듯 픽 웃었다. 나 역시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리스의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는 이 미소를 지키고 싶었다.
감히 누구도 아이리스를 울리게 두지 않으리라.
“그래도 지금 당장은 안 돼. 마음 같아선….”
“안 돼요.”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에드윈 오라버니를 어떻게 한다구 말씀하려던 거 아니었어요?”
어떻게 알았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이리스가 툴툴 웃었다.
“나 이제 오빠에 대해 좀 잘 아는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럼 내가 지금 무슨 생각했는지 맞춰봐요.”
“그런 얘기는 아니었지만…. 음…. 어떻게 해야 좋을 지 계획 중이신가?”
땡─.
일부러 과장스럽게 그리 말하자, 아이리스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그럼 뭔데요? 하고 묻길래.
“아이리스랑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
“흡.”
아.
입 가렸어. 섭섭하다. 내가 보란 듯 서운한 기색을 보이자, 내 눈치를 살피던 아이리스가 슬쩍 손을 치웠다.
귀엽긴.
“그리고, 아이리스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오빠니 오라버니니 하고 부르는 게 싫다는 생각도 했어.”
“욕심쟁이─, 읍.”
소소하게 질투났던 점을 덧붙이자, 아이리스가 그게 뭐냐며 살풋 웃었다.
다만 키스하고 싶다는 충동이, 아까 고백했듯 훨씬 컸기 때문에.
나는 아이리스의 뺨을 잡고, 입술을 포갰다.
“응, 읍….”
아까의 입술만 맞대고 포개었던, 가벼운, 키스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그것과는 달리, 나는 조금 더 밀어붙이기로 했다.
아이리스의 몸이 떨렸다. 허리를 끌어안고, 아이리스의 아랫입술을 약하게 깨물자, 허리에 힘이 풀린 듯 내 몸에 기대왔다.
“츗….”
끈적하고 농밀한 행위였다. 아니, 실제로 따져보자면, 숫처녀에 불과한 아이리스는 그저 입을 얌전히 벌린 채 내게 부드럽고 촉촉한 입술과 말캉한 혀를 대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얌전히 내게 입술을, 구강을 허락한 아이리스의 안으로 침투해, 철저하게 내게 맞춰 농락을 해댔다.
“추읍, 응, 하앗… 오빠, 잠, 깐….”
달뜬 숨소리. 할딱이면서, 겨우 이 정도로 숨이 찰 만큼 폐활량이 모자라지도 않을, 용사인 아이리스가 간헐적으로 몸을 떨며 내게 애걸했다.
“쉬게, 흡, 츄읍. 응, 읍.”
나는 혀를 밀어넣는 것으로 대답해주었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입술을 비비고, 달뜬 숨소리가 거칠어지면, 벌려진 입술 틈으로 혀를 밀어넣는다.
그리고 나면, 어쩔 줄 몰라하고 가만히 굳어있는 아이리스의 촉촉한 혓덩이에, 내 혀를 대고서 부드럽게 간지럽힌다.
“후응, 응…. 하읍, 쮸….”
얽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리스에게 그런 협조를 기대할 수 없으므로, 나는 아이리스의 촉촉한 입 속을 내 혀로 농락하는 데에 치중하기로 했다.
눈을 질끈 감은 채, 내 침입을 허용하는 아이리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아이리스의 몸이 떨려올 때마다, 진정시키듯 등을 쓰다듬고, 또 간질간질, 천천히 아이리스의 굳어버린 몸을 풀어주며, 입술을 비볐다.
“응, 으응, 쭙….”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이리스가 천천히, 혀를 움직여, 내 혀에 톡 맞대어 왔다. 질끈 감았던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은근히 응시하는 그녀. 그리곤 아주 약하게, 조심조심, 내 혓바닥을 쫍 소리 내어 빨았다.
나는 혀를 움직여 오는 그녀가 기특하다는 듯 엉덩이에 손바닥을 올렸다.
“흡…!”
흠칫흠칫 떨리는 아이리스. 평소에도 이따금 접촉하는 부위이지만, 키스하며 손을 댄 적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런 키스는 처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 손이 아이리스의 골반을 쓰다듬듯 지나, 엉덩이를 잡으니 아이리스에게 긴장한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지금 더 진도를 나갈 생각은 없었으므로, 나는 엉덩이에 손을 올려둔 채 일체 그 이상의 행위를 하지 않고, 혀를 얽는 데에 치중하기로 했다.
“응, 츄웁. …헤읍. 응, 이러케, 하는 거… 마자요…?”
몇 분이나 해댔는지 모를, 길고 길었던 입맞춤의 끝에서, 길다랗게 늘어지는 은색 실을 입술에 달고서, 몽롱한 얼굴의 아이리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용사라서 그런가. 배우는 게 빠르네.”
“…부끄러.”
그래도, 칭찬 받아서 좋아요.
아이리스가 수줍게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