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0 용의 산맥 (5)
의식을 차리는 데에는 대략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눈을 뜨고 보니 왠지 아이리스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는데, 내가 잠든 사이 뭐라도 한 걸까.
그렇다기엔 같이 있었을 누나의 표정이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누나 성격이라면 얌전히 두고 보지 않았을 건데.
음.
모르겠다.
“몸은 좀 어때.”
막 일어나 나른한 얼굴로 이마를 짚고 있으니 누나가 물어왔다. 어떠냐니.
“…최고인데.”
“그래?”
솔직하게 답해주니 얼굴이 확 밝아진다. 멋대로 나한테 ‘최초’를 먹인 게 괘씸해서 한 소리 해주려다가도, 그 얼굴을 보니 그럴 기분도 아니게 되어서, 한숨을 푹 쉬곤 넘어가기로 했다.
“어느 정돈데?”
“전에는 검성이랑 붙었을 때 이긴다고 장담은 못 했는데, 이젠 확실히 내가 이겨.”
자신 있는 나의 대답에 누나가 ‘오.’ 하며 감탄했다. 그에 반해 아이리스는 ‘검성’의 이름이 나오자 화들짝 놀라서는.
“거, 검성이요? 북부의 검성?”
“응.”
“대륙 유일의 그랜드 마스터?”
뭐가 그리 놀라운가 했더니.
“나도 원래는 그랜드 메이지였는데?”
“그, 그치만 오빠는 기억이 없잖아요.”
그래서 황궁에서의 일을 해결하는 데에 여신의 도움을 받지 않았느냐, 하는 말인 것 같았다.
하긴, 지금 나는 그랜드 메이지가 아니라 어설픈 반푼이 아크 메이지이긴 했다만.
“흐응. 흐으응.”
그런 아이리스를 기분 나쁘게 히죽거리며 보는 누나.
괜히 입꼬리만 실룩거리는 게 꼴불견이었다.
“왜 그래?”
“어? 아아니. 황녀님은 우리 스칼렛을 못 믿는구나~ 싶어서.”
“뭐, 뭐라구요?”
갑작스런 기습에 아이리스가 발끈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 파직, 허공에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아.
그래. 이게 다 내 업보지.
말리는 데에 삼십 분 걸렸다.
*
나야 ‘최초’를 마시고 최상의 상태이긴 했으나, 그만큼 확 끌어올린 스펙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반대로 갓 저주에서 해주 된 누나 역시 굳은 몸을 좀 풀어줘야 할 시간이 필요했고.
용의 산맥으로 떠나는 건 내일 하기로 하고, 우리는 테일러 저택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밤.
괜히 따로따로 자는 것보단 아예 셋이서 한 방에서 자는 게 낫지 않냐는 말에, 커다란 침대 하나가 놓인 방에서 셋이 나란히 눕게 되었다.
내 위치는 자연스럽게 중앙이었는데, 가장자리에서 자겠다는 의견은 꺼내지조차 못 하고 강제로 침대 한 가운데에 끌려가버렸다.
분명 여기서 내 권위가 제일 높아야 하는데.
「다 업보이니라.」
왠지 여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환청이겠지.
아무튼 셋이 나란히 누운 채 등불조차 끄고, 창 밖에서 커튼 틈으로 스며드는 달빛만이 방 안을 은은하게 밝히는 와중.
….
“으으음….”
“하우음….”
양 옆에서 미묘하게 나한테 달라붙는 두 여자 때문에 잠이 안 왔다.
밤의 흡혈귀에게 이렇게 달라붙다니. 조심성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닌가?
아니면 일부러 이러나?
번뇌가 머릿속에 차올랐다.
참아야 하는데…, 따위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반대로 할까? 여기서 저지르면 이후 여행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달빛이 닿는 곳에서는 군림하고, 달빛에 숨은 그림자 속에서는 암약하는 위대한 밤의 주인인 진조의 몸이었다.
이건 그러니까.
본능적인.
“야.”
소곤소곤. 귓가에 훅 들어오는 숨소리와, 낮게 깔린 목소리. 누나였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눈을 반쯤 뜬 누나가 나를 은근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안 자고 뭐 해.”
“안 자고 뭐하기는.”
게슴츠레 뜬 눈이 괜히 나를 힐난하는 듯 했다. 너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왜.”
“‘진조’는 따지자면 정령이나 다름 없는 거 알지?”
안다.
‘진조’가 있기 전의 흡혈귀가 한낱 그림자 속에 숨은 밤의 언데드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엘프보다도, 드워프보다도, 늑대인간보다도 열등했다. 태양빛에 약했고, 은과 십자가, 그리고 신성력에 극도로 취약했다.
하지만 달의 총애를 받은 정령인 ‘진조’가 나타났다.
언데드였던 흡혈귀는 그렇게 새로 탄생했다. 아예 계통수가 뒤바뀐 것이다. 진조 이전의 흡혈귀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고, 지금의 흡혈귀는 모두 ‘진조’의 후손이나 다름 없다.
개중 ‘진조’의 직계, 제자, 분신이 각각 체페슈와 노스페라투, 드라쿨레아를 창시했고.
아무튼.
지금의 나는 ‘진조’가 되었다. 흡혈귀가 굳이 따지자면 그림자의 정령이고, 나는 그림자의 정령왕쯤 되지 않을까.
“너 몸이 지금 난리가 났는데 정령사인 내가 모를까봐?”
아.
그러니까, ‘최초’와, 밤이라는 시간대 탓에 극도로 활성화 된 몸의 상태를 정령사 특유의 기감으로 느꼈다는 건가.
“…아무리 밤에 욕구가 끓어도 그렇지.”
…으응?
“다 느껴지거든?”
뭐가?
…라고, 묻기도 전에, 나는 알 수 있었다.
누나의 반쯤 뜬 눈이, 파르르 떨리더니 어디를 응시하고 있는지를 보았다.
“…미미친새끼. 옆에 누나를 재워두고. 어? 이렇게. 크게. 어? 미친새끼야.”
나는 존나 억울했다.
“밤이라 어쩔 수 없다고. 난 아무 생각 없었어.”
정말로 아무 생각 없진 않았지만, 여행이 지장이 갈까봐 참을 셈이었으므로 당당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그게 누나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눈가가 매섭게 꿈틀거리더니, 입술을 비틀어 억지로 웃은 누나가 내게 손을 뻗었다.
꽈악.
“윽.”
“아. 그래? 아무 생각 없었다? 그냥 밤이라 그런 거다?”
이 미친 여자가!
어떻게 하지도 못 하고 바들바들 떨고 있을 때였다.
톡 톡.
어깨를 건드리는 손길.
“오빠.”
그리고, 간드러지는 목소리. 아이리스였다. 아니, 평소와는 조금 낯설 정도로 다른, 어딘가 끈적한 목소리였다.
“자요?”
“…안 자.”
“안 자고 뭐 해요.”
글쎄.
누나한테 협박 당하는 중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애써 웃으며 답했다.
“그, 그냥. 잠이 바로 안 와서.”
“흥.”
은근슬쩍 내 옆으로 살짝 밀착한 누나가 우습지도 않다는 듯 콧김을 뿜었다. 이 미친년이 나한테 근친이 어떻니 할 때는 언제고 미친 짓을 하고 있었다.
스윽.
이불 속에서 움직이는 손. 꽈악 쥐던 손아귀에 힘을 풀었는지 고통이 잦아들었다.
“으응?”
예민한 초인의 몸을 지닌 아이리스는 이불 스치는 소리에 의문 어린 소리를 흘렸다.
“오빠. 뭐 하고 있어요?”
나는 직감했다.
아이리스가 아직은 뭘 의심하는 것 같진 않지만, 여기서 말을 잘못 했다간 곧바로 의심하게 될 거라고.
“…아. 자세가 불편해서 좀. 고쳤어.”
“…흐응. 그렇구나.”
안 믿는 것 같은데.
아이리스의 목소리가 한층 가라앉았다.
그리곤 내 옆으로 살짝 붙더니, 내 귀에 입술을 대는 게 아닌가.
쯥.
“윽.”
내 귀에 입술을 붙이고, 무언가 빨아먹는, 쪽 빠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싱글싱글 웃는다.
“오빠는 내가 바보 같아요?”
“…아니.”
나는 깨달았다.
이 두 여자. 서로 깨어있는 걸 알면서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서로 모른 척 하면서.
“좋냐? 어? 어린애가 그런 거 해주니까 좋아?”
오른쪽에선 누나가 시니컬하게 나를 타박하며 기둥을 훑는다. 스윽, 스윽, 이불 속에서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아이리스는 모르는 척 생글생글 웃었다.
그리곤 내 상체로 손가락을 옮기더니.
“야, 야.”
“왜요? 하지마요?”
‘왜 나한테만 하지 말라 그래?’라는 듯, 순간 싸늘해진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다시 방긋 웃고는, 내 상체를 살살 쓰다듬어 간다.
“에잇.”
평소에 들었다면 참 귀엽다고 생각했을텐데. 아이리스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가슴팍을 간질거렸다. 그러다 내 유두를 살짝 스치거나, 톡톡 건드리거나 하는 식으로.
“…으응.”
간질거리는 기다란 손가락. 성검을 쥔 용사답지 않게 굳은살 하나 없이 부드러운 손가락이 나를 간지럽혔다.
대담한 것치곤 좀 어설프긴 했는데. 그걸 신경 쓰기엔 또 한 편에선 누나가 나를 괴롭혀댔다.
‘좋아? 좋냐? 어? 이 변태 새끼.’ 하며. 스윽, 스윽, 여기도 마찬가지로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이불 속에서 움직여댔다. 미친년, 미친년. 밤이라고 몸에 에너지가 쌓이는 건 난데, 왜 이 여자 둘이서 더 신난 것 같지?
다만 여기서 둘이 왜 모른 척 하냐, 왜 나 놀리냐, 하고 말을 꺼냈다간 분위기가 아예 얼어붙을 것 같았기에.
나는 얌전히 밤을 지샜다.
*
아침.
“…아. 씨발. 졸려.”
“후아암….”
“그럴 줄 알았다.”
흡혈귀도 아니면서 밤 샐 때 알아봤다. 그나마 초인인 아이리스는 조금 피곤한 정도인 것 같지만, 갓 저주를 해주해서 허약해진 상태인 누나는 겉보기에도 무척 피곤해 보였다.
그래도 하룻밤 더 자고 갈 정도로 여유롭진 않아서, 일단 움직인 다음 여관에서 일찍 묵기로 했다.
우리는 워프 게이트를 탔다. 목적지는 용의 산맥 바로 앞에 위치한대륙 극동부의 도시, 라비타.
게이트의 빛이 우리를 감쌌다가 흩어졌을 때, 시야에 들어온 풍경에 아이리스가 감탄했다.
“와. 되게 크네요?”
“그렇지.”
크다고 해도 어지간한 도시보다 작았다.
아이리스가 놀란 이유는, 정말로 드래곤의 레어가 다수 존재해 용의 산맥이라 불리우는 산맥의 앞에 이만한 도시가 형성 돼 있다는 것일 터.
하지만 별로 놀라울 건 없었다.
용의 산맥은 드래곤이 산다.
그래서 드래곤 말곤 위험할 게 없다. 자기 영역에, 정도 이상의 마물이 기어들어오는 것을 드래곤이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드래곤이 잠들어 있기 때문에 산맥 전체가 거의 영맥 수준으로 발달 돼 있다.
덕분에 영약도, 영물도 다수 분포 해 있다.
그러니 말 그대로 드래곤만 조심하면, 위험할 게 없는 천혜의 보고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곳의 탐험단은 대부분 말 그대로 ‘탐험’과 ‘모험’에 특화 된 이들이다. 마력을 다루더라도 미약한 수준. 일정 이상의 존재가 산맥에 발을 들이면 용의 분노를 사게 되니까.
“그렇구나….”
그렇게 납득하던 아이리스가 말했다.
“그럼 우리는요?”
나는 뭘 그런 걸 묻냐는 듯 대답했다.
“드래곤잡아야지.”
“네?”
다른 드래곤들은 건드릴 생각 없지만. 한 마리는 여기서 손을 좀 봐둬야 했다.
“…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