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2.내가 먼저 만났는데... 중급 정령 운디네 (세인 시점)
세인은 들끓는 시체냄새를 어떻게든 버텨내며 고개를 틀었다. 마음같아서는 벌떡 일어나 시체를 치우든 ,이곳에서 벗어나던지 저 좆같은 냄새만큼은 맡고싶지않았다.
‘다리만 멀쩡했다면...’
왜 하필 재수없이 다리일까? 차라리 팔이었으면 좋았을텐데, 한팔이나 양팔 병신이 되더라도 치료할 방법만 있다면 그게 다리보다는 좋았을게 분명했다.
‘왜 내가 이런꼴을...’
이런걸 바라고 우기면서까지 나선 토벌이 아니었다. 처음 운디네가 고블린 군락을 알려줄때만 해도 이 시궁창같은 인생에 빛이 드는줄 알고 속으로 신에게 기도까지 올렸는데 곧바로 이런 시련을 주다니 신이 있을지 몰라도 만약 있다면 좆같은 신이 분명했다.
‘운디네...’
세인은 눈을 감고 시체냄새에 억지로 고개를 돌리며 운디네와의 첫만남을 떠올렸다.
세인의 고향마을은 도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이었다, 관리들도 그렇게 신경쓰지 않는 구석진 시골 마을, 그곳에서 밭을 빌려 농사짓는 소작농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세인은 그게 불행의 시작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다른 마을 주민들은 죄다 자기 밭을 소지하고 있거나 가축이라도 키우며 안정적인 삶을 살았는데 세인의 부모만은 그러지 못했다, 태생이 어리숙한 사람들이라 마을 주민이나 촌장에게 부려먹히며 매일 매일 고된 노동을 버티며 살아왔다.
그래서 소작농 부부의 장남이자 외동인 세인은 제 몸 하나 간수할만큼 큰 순간부터 부모의 일에 끌려다니며 일손을 보탰다.
땡볕아래에서 잡초를 뽑으며 마을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었고 구름 한점 없는날 뙤약볕 아래에서 쟁기로 땅을 갈며 돌을 골라냈다, 허리는 비명을 질러댔고 마을 아이들은 큰 소리로 웃으며 세인에게 돌을 던졌다.
분노가 온 몸을 뒤덮어 잠식했지만 화를 낼수 없었다. 어느집 자식이던 세인의 부모가 가는 밭의 마을 주민 자식들이었다. 철없는 분노가 가족에게 역풍으로 다가올수 있었기에 세인은 눈을 감고 그저 오늘 하루가 지나기를 빌었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가난을 물려주는건 죄라고 세인은 생각했다. 묽은 감자수프를 저녁으로 먹고 부모가 잠든 날 짚더미 침대에 누운체 생각에 잠긴 세인은 이대로 가다간 죽는게 나을거라 생각이 들었다.
벌떡 일어나자 온몸이 비명을 질렀지만 세인은 아랑곳 하지않고 집밖으로 나섰다, 집 밖에 허름한 창고 안으로 들어서자 온갖 농기구와 잡동사니가 어질러져있었지만 세인이 찾는건 그게 아니었다.
잡동사니들을 헤치고 먼지를 일으키며 사방을 뒤졌지만 찾는게 나오지 않았다. 왜이렇게 되는게 없을까? 꺾일거 같은 마음을 추스르고 바닥을 살펴보는데 뭔가가 발에 걸렸다. 세인의 눈이 커지며 만족감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거였다.
조잡하지만 속에 철심이 박혀있는 목검은 양손으로 들었음에도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래봤자 괭이보다는 가볍다고 세인은 생각했다.
-끼이익
허름한 창고를 벗어나 목검을 챙긴 세인은 빠른 걸음걸이로 마을 뒤편 언덕을 향해 뛰어갔다. 그곳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무슨 연유인지 밤에도 낮처럼 연못이 밝게 빛났다.
횃불이나 양초를 쓸수 없는 세인은 어두운 밤에 연못에서라도 검을 휘두르려고 마음 먹었다. 이 좆같은 마을에서 벗어나려면 용병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에겐 죄송하지만 이대로 농사만 짓고 살면 마음이 부숴질거같았다.
목검을 들고 달려나가는 세인의 마음에는 수많은 상상이 부풀려지고 있었다. 만약 나한테 검술에 재능이 있다면? 용병으로 성공하면 실버를 무더기로 번다던데, 나는 결혼하면 이런 가난을 물려주지 않을거다, 온갖 잡생각이 마구 들었다.
그렇다고 세인의 부부가 세인에게 홀대하는건 아니었다, 일찍 철들어 일을 돕는 세인에게 고마운 마음도 있고 미안한 마음도 가득했다. 그래서 부부는 벌어들인 돈과 가끔 수확하고 남는 농작물들을 다시 되팔아 어떻게든 돈을 모으고 있었지만 세인은 알턱이 없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과 앞머리를 잔뜩 적신 땀이 뺨을 타고 흐를 무렵 세인은 언덕에 올라서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탁 트인 언덕에 허리를 곧게 세우고 마을을 내려다 봤다. 밤이어서 여러집은 불이 꺼져있었고 마을을 둘러싼 목책의 일부가 눈에 들어왔다.
다시 고개를 들고 마을 너머를 봤다, 탁트인 평원과 우뚝 솟은 산. 단편적인 풍경만 봐도 이 좆같은 마을보다 넓었다. 세인은 마을 너머 풍경을 이악물고 눈에 담았다. 이 광경을 잊고싶지 않았다.
언젠가, 내 발로 저 목책을 벗어나 저 넓은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 끓어오르는 열망은 자유였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것이 없었던 세인이 그 누구보다 갈망하는건 자유였다.
알 수 없는 감격을 가라앉히고 세인은 들고 온 목검을 강하게 움켜쥐고 연못가에 선체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무작정 휘두르는게 아니라 한번 한번 내려칠때마다 일직선으로 반듯하게 내려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는걸 귀동냥 한적이 있어서 내려베는것만큼은 쉬웠다.
“100...! 101...!”
농기구보다는 가벼우니 쉽겠지 하고 자만하던 마음은 이미 꺾인지 오래다, 균형을 위해 철심을 박아둔 목검은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고 후들거리는 팔과 온몸을 적신 땀으로 오만의 대가를 철저히 치르고 있었다.
[...]
세인의 발치의 연못가의 빛이 더욱 밝아졌다. 하지만 앞만 바라보며 목검을 휘두르던 세인은 그 변화를 알아챌수 없었다. 그저 정해둔 횟수를 채우기 위해 비명을 지르는 팔을 억지로 움직였다.
‘하, 내일 일은 어떡하지? 가볍게 볼게 아니었는데...’
밀려오는 후회를 애써 무시하며 계속해서 목검을 휘두르는데 그 순간 세인의 발치에서 빛나던 연못에서 뭔가 튀어나와 세인의 시야를 덮쳤다.
[와아악!]
“우와아악!!!”
들고있던 목검을 단숨에 놓치며 꼴불견처럼 발버둥치는 세인을 누군가 내려다 보며 쿡쿡 웃었다. 당황한 세인은 힘이 풀린 다리를 이끌며 자리를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연못 끝자락에서 검을 휘둘러서 그런가 세인의 몸은 조금씩 기울다가 힘없이 연못에 빠져버렸다.
-퐁당!
[와하핫! 안잡아먹어~ 걱정하지마~!]
“푸어, 크윽, 허어! 사, 살려줘!”
[어, 어라??? 어 어쩌지?!]
“씨, 발 구해달라고!! 누구야!!!”
‘모, 목소리가 들리는거같은데... 이 쪽...!’
세인은 최대한 몸부림 치며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팔을 저었다, 다행히 끝자락에 빠진지라 조금만 손을 뻗으니 금세 다시 언덕 위로 올라올수 있었다, 세인은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머릿속을 뒤덮었던 생각을 한숨 쉬듯 내뱉었다.
“누구, 세요...!”
흘러내리는 물에 시야가 흐릿했던 세인은 얼른 소매로 눈가를 비벼 땀을 닦아냈다, 조금씩 돌아오는 시야 너머에는 달을 등진체 자신을 내려다보는 푸른 소녀가 만세 자세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신나하는게 눈에 가득 찼다.
[우와아악! 이래! 크히히! 아~ 재밌다~]
재미? 사람이 빠졌는데 재미라니 미친건가, 순간 울컥하고 분노가 차올랐지만 그 분노는 금세 가라앉았다, 누가봐도 사람이 아닌 소녀의 모습에 호기심과 남모를 기대가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쫑알쫑알 아기새처럼 떠들며 하늘을 떠도는 푸른 소녀를 보니 세인은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 속을 간지럽힌다는걸 깨달았다. 지옥같은 마을, 매일 똑같은 노동, 단조로운 삶에 새로운 변화가 찾아온게 분명했다. 설마 오늘이 내 삶이 바뀌는 날인건가?
딱봐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소녀가 범상치 않다고 느낀 세인은 먼저 자기 소개를 하기로 했다.
“나, 나는 세인이야. 너는?”
[세인... 세인! 세인이네? 세인~!]
뭐가 그리 좋은지 꺄르륵 웃으며 허공에 뒹굴뒹굴 구르던 소녀는 어느 순간 세인의 앞에 순식간에 다가오며 말했다.
[나는 운디네, 이 연못의 정령이야!]
정령! 정령이란 단어는 세인의 뇌리에 각인되어 커다란 충격을 전해줬다, 마을에서 잡일만 하는 세인이었지만 그렇다고 듣는 귀가 없는건 아니었다, 자신을 조롱하는 마을 아이들이 주변에서 떠드는 이야기나 저녁 이후 어른들이 술에 거하게 취해 마구 지껄이는 전설 이야기를 남 모르게 새겨듣던 세인에게 정령은 그만큼 충격이었다.
마음에 드는 인간과 계약해 마나를 사용하여 뭐든 부릴수 있고, 마법보다 더 대단한 일들도 이뤄낼수 있는게 정령이라고 했다, 정령은 쉽게 발견되는것도 아니었고 발견된다해도 정령의 마음에 드는 인간은 더욱 손에 꼽혔다.
세인은 이게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라는걸 완벽하게 알아챘다, 일밖에 없는 삶에서 빠질수없는게 구박과 눈치보기였다. 밭 주인들은 조금만 심기가 뒤틀려도 세인의 온갖 행동에 꼬투리를 잡으며 신경질을 냈다.
그래서 세인은 또래보다 타인의 감정에 더 민감하다고 자부할수 있었다. 그런 세인의 감에 앞에 있는 정령은 자신과의 만남이 무척이나 기뻐보였다, 혹시 나랑 계약하려고 하는건가? 차오르는 희망과 기대감에 세인은 뱃속에서 행복이란게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운디네... 반가워!!!”
[응! 나도 반가워 세인~ 아무도 날 못봤는데 넌 볼수 있구나!]
운디네의 말대로 정령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정령은 실체와 의체를 마음대로 드러낼수 있지만 그걸 볼수있는건 정령 친화력 같은게 있을때의 이야기였다.
친화력 없이 정령의 실체를 볼 수 있는 인간은 정말 드물었지만 세인은 그런걸 알수 없었다. 그래서 운디네의 기뻐하는 감정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그런데 나한테 무슨일이야? 혹시...?”
차오르는 희망에 넌지시 물어본 세인이었지만 운디네의 생각은 달랐었다.
[나는 이 연못에 놀러오는 모든 인간들한테 장난쳐봤는데 아무도 날 못봤어!]
[그래서 맨날 심심했어~ 정말, 물 뿌리고 장난쳐도 아무도 모르더라구.]
[그런데 누가 밤인데 막 붕붕 소리내면서 소리 지르더라고~]
붕붕 소리에 세인은 그게 자신의 얘기인걸 알고 얼굴이 조금 화끈거렸다, 아무도 없는줄 알고 열심히 휘두르며 단련해보려던건데 이런 이웃이 있을줄 누가 알았겠는가?
“시, 시끄럽게해서 미안.”
[나도 놀래켜서 미안! 얕은 연못인데두 그렇게 놀랄줄 몰랐어!]
“얕아?”
[응! 너도 들어와봐!]
방금까지 물속에 빠져 발버둥 친 기억이 머리를 덮친 세인은 손사래치며 운디네의 제안을 거절했다, 내심 처음 만난 세인과 물장난 치고 싶었던 운디네는 세인의 거절에 볼을 조금 부풀린체 한 발짝 물러섰다.
“나, 난 괜찮아!”
[흐응... 알았어...]
운디네의 제안을 거절한 세인은 운디네의 기분이 급격하게 가라앉은걸 파악했다, 뭘 해야 기분 좋게 만들어줄 수 있지? 운디네를 슬쩍 바라보니 생각에 잠긴 세인을 바라보며 발을 휘저으며 작게 물장구를 피우는게 눈에 보였다.
“그, 혹시 맨날 여기에 있는거야?”
[난 여기 연못의 정령이야. 별일 없으면 여기 계속 있어.]
여기서 잘 얘기해야 된다, 긴장감에 손에 땀이 난 세인은 슬쩍 바지춤에 닦으려 했지만 오히려 물에 젖어 더욱 축축해졌다. 혀로 입술을 살짝 축인뒤 세인은 운디네에게 말했다.
“내가 자주 놀러올게! 우리 친구하자!”
세인의 외침에 발을 구르며 물장구 치던 운디네의 움직임이 뚝 그쳤다, 커다란 눈망울로 세인을 바라보는 운디네의 모습에 실수했나 싶어 괜히 후회했다.
‘병신같이 친구하자라니... 정령인데, 기회를 발로 차버렸네.’
하지만 곧 운디네의 커다란 눈망울이 더욱 커지며 물방울 같은 눈동자의 물기를 밝게 빛냈다. 이내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기뻐하던 운디네가 곧장 하늘로 떠오르더니 주변을 마구 날아다니며 말했다.
[응응!! 친구!!! 우리 친구하자!!! 나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어!]
“나, 나도 네가 첫 친구야.”
쓸데없는 말이었지만 세인도 어떻게 보면 운디네가 첫 친구였다, 마을에서 노예같은 세인은 친구라곤 단 한명도 없었다. 예전에는 내심 친구라는걸 바랬지만 이젠 아니었었다. 운디네를 붙잡기위해서 친구라는 단어를 꺼냈을뿐 세인의 마음엔 친구가 되고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오로지 운디네와 계약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운디네를 만나고 나서야 막막하던 삶의 탈출구를 찾은듯한 기분이었으니까. 이 좆같은 마을에서 탈출하는 법은 운디네 뿐이다!
운디네와 계약해서 정령사가 되면 도심에만 나가도 누구나 환영해줄게 분명했다. 그럼 도시에 정착해 용병짓을 해도 되고 다른 정령사를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는것도 가능할거다, 마을에 남으면 매일매일 농사와 잡일, 쓰레기같은 밥만 먹으며 살게 뻔했기에 세인은 이 행복한 상상을 그치고 싶지 않았다.
[세인! 내일도 올거지?]
순진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며 두손을 꼭잡은 운디네를 보니 정말 아이같다고 생각했다, 정령이라 해서 사람같지 않고 엄청 딱딱할거라고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했는데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가보다.
“응, 내일도 올게.”
어느새 완전한 밤이 되었다, 집에서 자신을 찾을수도 있고 이제 경비병들이 본격적으로 주변을 둘러볼 시간이기에 서둘러 돌아가야했다. 오늘 한거라곤 검을 휘두르고 운디네와 만나 짧은 얘기를 나눈 것 뿐이지만 세인은 인생 최초로 뭔가 변하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 거렸다.
‘이 마을을 빠져나가는거야... 그리고 성공해서, 보란 듯이 사는거야!’
벅차오르는 그 감정은 도저히 주체되지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축축한 옷가지들을 통에 쑤셔박고 짚더미에 널부러지듯 누워도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철없던 꼬마 시절의 감정이 생생하게 떠오르던 세인은 저벅저벅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소리에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긴장했지만 발자국 소리를 보면 높은 확률로 형님일게 뻔했다.
‘형님...’
아무에게도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아, 용병들 사이에선 음흉하다고 얘기가 나왔지만 요 근래 계속 어울려다닌 세인 입장에서는 그렇게 음흉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여태 만나본 용병중에 제일 다정했다.
가르쳐줄건 가르쳐주고 다그칠건 다그쳤다. 그러면서 자신을 계속 신경써주며 도와주기까지, 세인은 자기객관화가 철저했다. 솔직히 자신이 데려온 사람이 지금 이꼴로 다리가 부러졌다면 돌봐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 짐덩이를 달고 고블린 군락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불안해.’
그렇지만 그를 향한 의심이 한줄기씩 피어오르고 있었다, 운디네가 보였었다니, 상행중이나 고블린들을 만날때에도 아무런 내색조차 하지않아 모르는줄 알았는데 처음 만날때부터 그는 운디네가 눈에 보였다고 했다.
운디네에 대해 관심없단 태도로 일관했지만 세인은 불안했다, 마석을 모아 강탈해 그걸로 억지로 운디네와 계약한다고 하면 그걸 막아낼 재간이 전혀 없었다.
사지가 멀쩡해도 하나도 상대가 안될텐데 하물며 다리 병신이라니, 상대가 될리 없었다.
차오르는 자기 혐오와 좆같은 상황에 대한 분노를 애써 가라앉히고 세인은 억지로 미소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현재 자신이 살아남을수 있는 법은 그에게 잘보이는것뿐이었기에 그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됐다.
[세이이인~~~]
발걸음 소리가 끊길즈음 멀리서 푸른 여인이 날아와 세인의 얼굴에 부딪혔다, 물컹한 촉감과 함께 자신을 강하게 끌어안는게 느껴졌다.
“운디네! 형님!”
“그래, 아픈건 좀 괜찮고?”
다리의 고통은 어느정도 무감각해졌다, 하지만 언제 악화될지 몰랐기에 조금 가라앉은 표정으로 그에게 대답했다.
“아픈건 조금 괜찮지만, 혹시나 덧날까봐 걱정되네요.”
“그래도 다행히 뼈가 살을 뚫진 않아서 다행이야. 조금만 버텨봐.”
“...네.”
이이상 어떻게 버티라는거야? 자기 다리 아니라고 말이 막나오나 본데 평생 병신이 되도 버티라고만 할건가? 어떻게든 감정을 가라앉히려고 했지만 양 다리가 병신이 된 세인은 예전만큼의 참을성이 없었다. 오히려 마을에 살적보다 여유가 없어져 계속 분노가 차올랐었다.
[세인...! 조금만 기다려! 내일은 좀 더 깊숙이 들어가볼게!]
“그리고 물도 찾았으니까 그쪽으로 캠프를 옮기자, 그러고 한번 더 운디네랑 탐사 다녀올게.”
“네, 그게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형님.”
“별거 아니야, 돕고 살아야지.”
[물 엄청엄청 시원하더라 세인~ 얼른 가자!]
자신에게 볼을 부비며 달라붙는 운디네를 살짝 밀어내면서도 세인은 내심 그의 시선을 즐겼다, 내가 다리 병신에 아무것도 못하지만 그래도 운디네만큼은 나를 더 좋아한다고. 세인은 운디네가 서둘러서 마석을 가져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계약만 마치면 다리도 낫고 나도 뒤처리나 하는 잡일 용병보다 더 대단해질수 있을거야, 마치 어릴적처럼 가슴속에 차오르는 희망을 느낀 세인은 왠지 모르게 미지근한 운디네의 뺨에 한기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손등에 얹어진 운디네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