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2.내가 먼저 만났는데... 중급 정령 운디네
운디네는 떨리는 팔을 움켜쥐고 앞으로 나아갔다.
‘웃겨...! 멍청이, 바보, 얄미운 인간, 병신새끼!’
자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못된 말과 세인곁에서 엿들은 용병들의 욕설을 되뇌인 운디네는 욕이 나오게 한 인간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착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못된 말만 하고, 안된다는데 계속 멋대로 하고...’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리니 순간 보지가 욱씬거렸다. 카사노가 선사한 쾌감이, 어느새 운디네의 몸에 완벽히 녹아들어 본래 정령이라면 느끼지못한 쾌락과 반응이 아직도 몸에 남아있었다.
[흐읏...]
아랫도리에서 흐르는 물의 감촉에 운디네는 얼굴을 붉히며 손으로 닦기 위해 손을 뻗었다.
‘이런거 나온적 없는데...’
카사노의 주입식 명령으로 이미 정액을 한껏 받은 정령핵으로 인해 의사와 상관없이 쾌감을 느끼면 애액을 뿜게된 운디네였지만 운디네로서는 전혀 알턱이 없었다.
‘이대로면 정말 카사노의 ...노예가 되버려...’
눈만 감으면 미칠듯한 쾌감이 떠올랐다, 여태 연못의 정령으로 태어나 세인과 세상을 둘러보며 느꼈던 행복감과는 차원이 다른 감정이었다.
존재 자체가 뒤흔들리는 느낌, 영혼이 꿰뚫리듯 관통하던 그 쾌감이 아직도 뇌리에 가득 남은 운디네는 애써 고개를 흔들어 감정을 떨쳐냈다.
‘그런것쯤 세인도 가능해, 나는 세인만 있으면 되는걸.’
운디네는 애써 떠오르는 카사노의 능글맞은 얼굴을 지워내고 세인을 떠올렸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건 다정하고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는 세인이 아닌 다친 채 화를 내고 차가운 얼굴의 세인만이 떠올랐다.
어쩔수 없는게 태생부터 연못의 정령으로 태어나 주변 정령들과 어울리며 다정함과 행복만 느껴봤지 제대로된 증오와 분노를 느껴본적 없는 운디네는 부정적인 감정에 더 예민했다.
하지만 그런걸 전혀 모르는 운디네는 그저 당황밖에 할수 없었다. 분명 다정한 세인이었을텐데 어느새 기억나는건 화내고 자신에게 소리치는 세인뿐이었으니까.
‘...카사노는...’
처음 만났을때부터 친절했던 인간 카사노, 얄미운 감정에 짓궂게 대해도 웃어넘기고 다친 세인과 짐덩이라 볼 수 있는 자신을 잔뜩 도와줬다. 그리고 다친 세인을 돕기위한 봉사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친절하게 하나하나 알려주기까지 했다.
‘그래도 너무했어...’
그만해달라고 애원했는데 몇 번이고 정령핵에 정액을 내질렀다. 생명의 마나를 머금은 정액은 운디네의 정령핵에 만나 둘을 이어줬다, 제대로 된 계약식이 없어 망정이지 조금만 더 당했으면 어떻게 됐을지는 운디네도 몰랐다.
둥둥 하늘을 날며 캠프로 움직이면서도 운디네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할수 없었다. 카사노의 말대로 변해가는 세인의 태도를 느끼기도 했고, 세인이 자신의 생각처럼 마냥 착한게 아니란것도 어렴풋이 알았다.
그렇지만 같은 곳에서 벗어나 여태까지 같이 지내온 가족같은 사이인데,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멋대로 판단하는건 정말 옳지않은 행동이라고 운디네는 느꼈다.
‘지금 세인은 그저 다친탓에 많이 힘든 것뿐이야...’
어떻게든 해결만 되면 세인의 다리도 낫고 모든게 잘될거다, 해결만...
운디네는 문득 지금 상황이 떠올랐다.
출구를 찾기위해 세인을 내버려두고 탐사를 나서면 카사노에게 봉사와 기분좋게 해주는 법을 배우며 시간을 보냈다.
계약을 위한 마석을 찾겠다고 고블린들을 찾아 나섰을때도 결국 카사노의 손길에 못이겨 몇 번이고 정액을 받았다.
며칠의 시간이 지났지만 진척은 하나도 없었고, 나아진것도 없었다.
‘...아니야...’
운디네는 허량하게 시간을 내다버린 것을 애써 외면했다,
머릿속을 좀먹는 죄책감과 불안감에 머리가 복잡했다.
사실 최후의 방법이 있긴하다, 카사노를 제외한 모두가 외면했을뿐이지, 운디네는 알고있었다.
괜찮아. 정말 만약 아무것도 못찾는다면... 그때는... 그때는 카사노와 계약해서 어떻게든 해결하면 되는거잖아? 계약만 카사노랑 할뿐이지 세인이랑 같이 다니면 되는거잖아.
세인을 치료하기 위해 나서놓고 결과적으론 카사노와 몸섞은 것뿐이 안남았다는 현실에 운디네는 조금씩 합리화해나가며 죄책감을 애써 덮었다.
결국 음흉한 카사노가 운디네에게 도와준답시고 한 모든 행동들과 말은 조금씩 순진한 운디네의 정신을 좀먹었지만 운디네는 끝까지 알수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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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은 멍하니 입을 벌린체 허공을 응시했다.
다리가 병신이 된 이후로 홀로 캠프에 남아있을 때 생긴 버릇이었다.
‘오늘도, 꽤 늦네...’
세명이 고블린 군락안에서 고립된지 5일째. 고립된 이후 일행의 일정계획을 짠 카사노가 운디네와 정찰을 나서기로 정한뒤로 세인의 일정은 캠프에서 주저앉은체 기다림, 그것뿐이었다.
‘갈수록 친해지는거 같던데...’
세인은 불안했다, 안그래도 별볼일 없던 자신과 그래도 어느정도 알아주는 은등급 용병에 어른스러워보이는 카사노, 운디네와의 관계에서 세인이 가진 강점이라곤 친근한 사이라는 것뿐이었는데, 카사노와 운디네가 정찰을 다녀온 뒤로 둘이 부쩍 친해진게 눈에 보였다.
‘괜한 걱정인걸까?’
하지만 그들의 태도에서 변한건 없었다. 운디네는 처음 만났을때처럼 여전히 친절했고, 상행에서부터 챙겨주던 카사노도 다리가 불편한 세인을 위해 여러 불편을 감수하며 도와줬다.
‘아니야, 순진하게 생각하지말자.’
정령이란 존재는 매우 귀했다, 특히 운디네처럼 중급 이상 되보이는,그러면서도 자아가 뚜렷한 정령은 아마 운디네 하나뿐일거다. 아마 카사노도 운디네와 같이 지내면서 탐욕이 생겼을지도 모를일이었다.
‘그리고 운디네는 내가 먼저 좋아했다고...’
세인은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감정과 분노를 어느정도 사로잡았다. 그 결과 자신이 운디네에게 느끼는 감정이 뚜렷한 애정이라고 정의했다.
처음엔 그저 계약할수 있는 정령으로서, 딱 그정도의 관심이라 생각했지만 같이 지내온 나날이 무의식에서 제법 자리 잡은 모양이었다. 운디네가 카사노의 곁에 붙어먹거나 그와 계약하고, 자신과 떨어지는걸 생각하니 세인은 속이 뒤집어 질것만 같았다.
이게 사랑, 애정인걸까? 쉽사리 단어를 정의하긴 애매했지만 좋아한단 감정만큼은 진심이라고 세인은 생각했다.
‘뭐가 다가오는거 같은데...’
매일 누워있거나 벽에 기댄체 앉아있는탓에 세인은 기감에 제법 예민해졌다. 어쩔수없는게 움직일수있는건 상체뿐,
카사노와 운디네가 정찰나간사이 고블린들이 찾아온다면 어떻게든 반항한다해도 개죽음 당할수도 있었다. 그탓에 세인의 육체는 주변의 기척과 시선, 소리에 민감해져 지금같은 상황에 무언가의 접근을 알아챌수 있었다.
‘발소리가 없는걸 보면 운디네인가?’
세인의 예측대로 저멀리 통로에서 접근하던건 운디네였다. 아까 카사노와의 일로 고민이 많은 운디네는 얼굴을 찌푸린체 낮게 날며 천천히 세인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표정이 어둡네... 무슨일이 있나?’
속이 타들어가듯 쓰렸다. 항상 밝고 웃기만 하는 운디네가 저런 표정을 짓는건 보기 드문데, 아무래도 카사노와 무슨일이 있는건가? 타오르듯 솟구치는 카사노에 대한 의심과 짜증이 가득 찼다.
[...아! 세인!]
고개를 낮추고 고민에 잠겨있던 운디네는 어느새 캠프까지 온걸 깨닫고 고개를 들어 세인을 반갑게 맞이했다.
강아지처럼 세인에게 날아와 살며시 달려드는 행동에 세인은 멋쩍게 웃으면서도 내심 안심했다.
‘...그래 운디네는 그대로야, 나만 잘하면 돼...’
쭈뼛쭈뼛 안길 듯 말 듯 붙는 운디네의 몸짓에 세인은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직접 팔을 뻗어 운디네의 몸체를 슬쩍 끌어안았다.
물컹, 탱글탱글한 운디네의 팔뚝이 손과 팔에 닿이며 감촉이 느껴졌다, 그런데 뭔가 달랐다. 예전엔 강에 손을 담근 듯이 시원한 느낌이 가득했는데 오늘의 운디네는 미지근했다.
카사노의 품에 안겨 그의 온기를 잔뜩 주입당해 그런거라곤 전혀 생각 못한 세인은 그저 무슨일이 있었겠거니 피어오르는 의심을 가라앉히며 운디네를 반겼다.
“별일 없었지?”
[...응...]
슬쩍 세인의 눈을 피하며 대답한 운디네는 혹여나 뒤에서 카사노가 오지 않는지 살피고 대화를 이어갔다.
[안힘들었어? 심심했지?]
-피식
아이같은 모습에 세인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내가 힘들게 뭐있어... 너랑 형님이 더 힘들지.”
[아니야~ 카사노 제법 강해서 쉭쉭 하면 금방 끝나더라고, 쉬웠어!]
별거 아니라는 듯 카사노의 얘기를 하는 운디네의 말에 세인은 또 한번 자격지심에 휩쓸렸다.
‘나는 별로 안강하다는건가?’
약한건 맞았지만, 굳이 다쳐서 이러고 있는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뭔가 마음에 안들었다. 물론 운디네는 그런 의도가 단 일할도 없었지만 이미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에 물든 세인은 괜찮다가도 다시 부정적인 생각에 좀먹혔다.
“그,그런데 형님은 왜 같이 안왔어?”
[어,어?! 아아~ 그, 그냥 먼저 왔어.]
“그래...?”
‘예전같았으면 세인보려고 왔지 이랬을텐데...’
어색한 침묵이 공동에 퍼졌다. 운디네는 운디네대로 기분 좋아 보이지 않는 세인을 건들였다가 또 화를 내는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쉽사리 말걸지 못했고 세인은 머리를 좀먹는 부정적인 감정에 이미 눈앞에 운디네 자체보다 잔뜩 커진 의심에 더 관심을 기울일 뿐이었다.
-터벅터벅
이때 멀리서 무거운 발걸음이 들려왔다. 고블린같이 경박한, 가벼운 발소리가 아닌 제대로 무장된 발소리. 세인은 카사노가 왔다는걸 확신했다.
세인의 품에 어설프게 안겨있던 운디네또한 공동에 퍼지는 발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슬쩍 품에서 벗어났다. 애매하게 벌어진 세인의 팔을 풀고 허공에 자리잡은 운디네는 다가오는 카사노를 살폈다.
“세인, 별일 없었지?”
아무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안부를 묻는 카사노, 그의 손에는 작은 주머니가 들려있었다. 슬쩍 주머니를 살피는 운디네의 시선에 카사노는 멋쩍게 웃으며 주머니를 들어올렸다.
“아, 이거? 운디네 너가 가고나서 계단에서 고블린 몇 마리가 올라오더라고.”
[정말?! 먼저 가버려서 미안...]
“아니야, 두 마리 뿐이긴 했는데 홉고블린도 있어서 뿔도 잘라왔어.”
[잘됐다! 생각보다 챙길게 많네?]
“이대로면 상단 호위로 받는것보다 여기서 벌어가는게 많을걸? 잘됐다 세인.”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둘을 보다 문뜩 호명된 세인은 당황하며 대답했다.
“아, 네. 그, 그렇네요 그래도 전 한게 없는데...”
손사레치는 카사노,
“운디네덕에 군락찾은건데 왜 너가 한게 없어, 조금만 기다려봐. 이제 정말 몇 개 안남았으니까.”
“몇개... 다행이네요.”
“그래, 대충 마무리하고 간단하게 먹을거 빨리 준비해줄게. 잠시 둘이 놀고있어.”
[노는게 아니라 작.전이야. 작.전!]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운디네의 태도에 카사노는 피식 웃으며 운디네의 볼살을 살살 꼬집고는 물가로 움직였다.
잠깐 늘어난 볼을 주무르며 운디네는 세인의 곁으로 둥둥 날아왔다.
세인은 그 둘을 지켜보며 피어오르는 의심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했다. 아니, 가라앉히고 싶지않았다. 이젠 의심이 서서히 확신으로 변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