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4.꿈을 위해 조교당하는 조숙한 상인 시에라
-달그락 달그락
여관으로 이동하기전 배고프다는 시에라의 요청에 우리는 잠시 간단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시에라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호르미아 중심부에 있는 고급 식당까지 흘러왔지만 그녀는 한톨의 미안함도 없었다.
“당신도 드셔보면 알껄요?”
-서걱 서걱
신신당부한 시에라의 말처럼 버섯을 얹은 송아지 스테이크를 얇게 썰고 한입 넘기는 순간 이정도 맛이라면 여기로 오자고 하는게 당연하다 생각이 들었다.
입안에 착 감기는 감칠맛과 씹자마자 자연스레 녹아드는 극강의 부드러움에 내 손은 멈출줄을 몰랐다. 도도하게 나이프로 고기를 썰던 시에라는 내 식사를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좋아하니 소개해준 보람은 있군요.”
-우물우물
작은입으로 열심히 고기를 씹어 넘긴 시에라는 어느정도 식사가 마무리 되가자 다 사용한 목에 걸린 냅킨을 빼기위해 손을 올렸다가 그만 자신의 가슴을 톡 건드렸다.
“흥긋?!”
잔잔한 피아노 소리가 울리는 식당 안에 음탕한 신음이 흘러넘쳤다. 고급스러운 음식을 향하던 손님들의 이목은 어느새 품위있는 분위기속에 음탕함을 흘린 이질적인 인물을 찾기위해 번들거리고 있었다.
얼굴을 붉힌 시에라는 황급히 물을 들이킨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뚱히 바라보는 내게 일어나요- 하고 핀잔 준뒤 빠른 걸음으로 계산하러 향하는 시에라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는데 뒤에서 본 그녀의 귀는 그 어느때보다 붉게 물들어 있었다.
-딸랑딸랑~
“흐으으... 이게 뭐야아...!”
가게에서 빠져나온 직후 풀이 죽은 시에라가 털썩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직까지도 붉게 물든 귀를 보니 어지간히도 부끄러웠나보다. 나는 무릎을 꿇어안고 얼굴을 가린 시에라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의 한마디를 건넸다.
“그래도 듣기 좋았어요.”
“그 상황에서! 할소리에욧!”
내 칭찬에 시에라는 언제 풀이 죽었냐는 듯 벌떡 일어나 나를 쏘아붙였다. 허리에 손을 얹은체 이게 다 당신 때문이다- 괜히 그런짓을 해서 나도 모르게- 뭘 웃고 있냐- 쫑알쫑알 떠드는 시에라를 보며 나는 그녀의 부드러운 하얀 피부의 턱에 손을 얹었다.
“뭐,뭐에요...”
검지와 엄지에 받혀진체 내 손길에 이끌리는 시에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입술을 혀로 축였다. 흔들흔들- 바다에 널린 부표처럼 방황하던 눈동자는 점점 가까워지는 서로의 얼굴에 질끈 감겼다.
“흐으... 후우...”
눈을 감고 숨을 고르던 시에라는 마치 결심했다는 듯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움켜쥐더니 쭈욱- 입술을 내밀었다. 충동적인 모습과 감정적인 행동, 우리는 그저 이끌리는데로 서로의 입술을 맞췄다.
-쪼옥
가볍게 닿였다 떨어진 시에라의 입술에서 방금까지 먹었던 스테이크 소스 맛이 났다. 마찬가지인지 시에라는 천천히 눈을 뜨면서도 벌어진 입술을 오므리며 괜히 입맛을 다셨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다시 고개를 홱 돌렸다.
나는 갑작스레 피어난 의문의 기류에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팔짱을 껴 도드라진 가슴을 들으민체 입술을 곱씹는 시에라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목을 슬며시 붇잡았다.
“뭐죠? 설마 방금 그거 한번으로...”
“오늘은 여관말고 다른곳으로 가시죠.”
“하아...? 무슨 생각인거죠...?”
“그냥 그럴 기분이라서요. 따라오세요.”
“뭐야아-”
괜히 손목을 빼내며 앙탈부리려던 시에라는 걸음을 옮기며 강하게 이끄는 내 손길에 결국 입을 꾹 다물고 이끌려 따라왔다. 터덜터덜 따라오면서도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흘겨보던 시에라는 점점 자신에게 익숙한 풍경이 드러나자 뚱한 표정이 당황으로 바뀌어갔다.
“여기는...”
시에라를 끌고 온곳은 상인협회 근처의 문화광장이였다. 오페라나 서커스, 신기한 가판대와 광대들이 불을 뿜으며 환호와 돈을 건네받는 거리의 풍경을 둘러보던 시에라는 허리에 손을 얹은체 허탈한 미소를 보였다.
“뭐야...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네요?”
“그냥 구경하고 싶어서요. 안내해주실거죠?”
나는 능글맞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탁탁- 구두를 들썩이며 나를 바라보던 시에라는 피식- 웃고는 내 손을 잡고 어딘가로 끌고 갔다.
“그래도 잘 골랐어요, 저보다 여길 잘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요-!”
“이번에도 믿겠습니다.”
“후후, 후회 안할걸요?”
시에라의 장담대로 그녀의 손에 끌린체 가는 모든곳은 나조차도 처음 겪는 다양한 경험들이 즐비했다. 공간마법을 이용한 마녀의 황천토끼 소환 마술부터 고블린 마술사의 트롤 신체 절단쇼 (진짜로 자르고 재생됐다.) 심지어 사대 정령들을 이용해 만들어낸 솜사탕까지.
어느 도시를 가도 본적없는 신기한 구경거리에 나는 운디네를 데려오지않은걸 진심으로 후회했다. 이걸 보면 얼마나 좋아할지 눈에 아른거렸지만 다음에도 기회는 있으니까, 최대한 신기한것만 기억에 담아두고 시에라와 현재를 즐겼다.
“후후, 신기하죠?”
“제국 수도 빼고는 나름 많이 돌아다녔다 생각했는데 이런건 처음입니다.”
“맞아요, 대부분이 수도에서 건너왔으니까요.”
정령 솜사탕을 함 함 베어물던 시에라는 설탕실을 뺨에 묻힌체 즐겁게 얘기했다.
“희귀한 채집품이 많이 거래되는 도시라, 광산도시에 버금갈 정도로 돈이 많은 인간들이 널렸거든요.”
다 노리고 장사하는거죠- 시에라는 뺨에 덕지덕지 묻혀가며 솜사탕을 맛있게 먹었다. 저러다 녹으면 끈적거릴게 분명해 나는 즐겁게 입을 놀리는 시에라의 뺨에 쪽 쪽 입을 맞추며 솜사탕을 뗴먹었다.
“뭘 그리 흘리고 먹어요. 입이 작아서 그런가?”
“이잇... 이이잇...”
멍하니 입을 벌리던 시에라의 얼굴이 손에 든 분홍색 솜사탕처럼 천천히 물들었다. 시에라의 반응을 보니 확실히 몸만 탐하는 것 보단 이렇게 기분전환으로 같이 노는것도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도 뻣뻣하게 굳은 시에라가 귀여워 그녀의 볼을 쥐고 살살 흔들며 괴롭히자 그제서야 탁 탁 팔로 내 손을 쳐내며 방어하기 시작했다.
“당신, 정말 짓궂네요. 밖에서 남사스럽게...”
“남사스러운건 시에라님 아닌가요, 아까도 식당에서... 끅!”
-콰악
시에라의 구두가 내 발을 질끈 밟았다. 싱긋 웃으며 잘근잘근 밟는 시에라의 모습에 나는 입을 막고 그녀의 손을 잡은체 다음으로 갈곳을 안내해 달라고 애원했다.
“...여긴 정말 웬만하면 안알려주는 곳인데-”
괜히 뜸들이며 애타게 하는 화법에 나는 꽉 움켜쥔 시에라의 손을 흔들며 대답을 재촉했다.
“어딘데요? 괜히 궁금하게 하네.”
“아 가만히 좀 있어욧...! 애도 아니구...”
탁탁- 발을 구르며 나 고민해요- 하는 얼굴로 땅을 바라보던 시에라는 결국 마음을 굳혔는지 내 손을 잡아끌며 어딘가로 향했다.
“비밀이에요? 여기 가족외엔... 처음으로 알려주는 곳이니까.”
시에라가 내 손을 이끌고 도착한 곳은 호르미아 성벽 뒤편에 큰 산이 자리잡은 곳이었다. 향긋한 풀내음을 맡으며 의아해하고 있을 쯤 시에라가 손짓했다.
“진짜 비밀이에요!”
“알겠어요.”
“진짜루!”
“알았데도.”
짧은 만담을 나누고 시에라는 잔디를 더듬으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도와주려고 해도 가만히 있으라는 시에라의 말을 들으며 서있다가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시에라는 미소지으며 나를 불렀다.
“자, 들어요! 하나 둘 셋!”
-끼이이익
시에라 양팔을 힘겹게 들어올린 순간 문짝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부들거리는 시에라의 손 위에 내 손을 덮고 온 힘을 다해 문을 위로 열었다.
-쿠웅
흙먼지와 짓이겨진 잔디가 투둑 투둑 떨어지며 문 아래에 위치한 통로가 드러났다. 쉬잇- 하고 입을 가린 시에라는 통로를 따라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다 내려오고 닫으세요.”
“네에,”
연남색으로 반짝이는 통로에 들어간 시에라의 뒤를 따라 내려온뒤 손잡이를 붙잡고 쿵- 문을 닫았다. 또각또각 소리내며 나아가는 시에라의 꽁무니에 붙어 따라가니 얼마 안가 벽을 더듬으며 길을 따라가는 시에라를 찾았다.
“으으... 간만에 오니까 괜히 무서워...”
연남색의 불빛에 물든 시에라는 뭔가 몽환적이면서 신비로운 분위기였다. 어려보이던 그녀도 조명과 함께 곁들이니 괜히 어른스러웝 보이면서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거의 다왔어요. 응...? 뭘 그렇게 빤히 본데요?”
“이뻐서요.”
툭 까칠한 말을 내던지는 시에라에게 순간 느꼈던 진심을 전하자 그녀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조명 탓에 얼굴색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여태처럼 붉게 물들인체 쑥스러워 하고있다는건 느꺼졌다.
“흥, 능글맞긴... 아무 여자한테나 그런말 하고 다니죠?”
“내 여자한테만 그래요.”
“뭐라는거야... 누구 당신 여잔데에...”
내가 봐도 만족스러운 대답에 시에라는 몸을 홱 돌리고는 벽을 더듬으며 다시 전진했다.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지만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계속 중얼거리는 시에라의 모습을 보니 충분히 만족스러운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다 왔네요. 먼저 나가세요.”
점점 좁아지는 길목을 나아가다 겨우 도착했다고 말한 시에라는 눈앞의 넓직한 구멍을 가리키며 먼저 나가라고 명령했다. 나는 시에라가 시키는데로 구멍 밖으로 몸을 내던졌고 뭔가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주변 풍경이 순식간에 변화했다.
일단 먼저 나왔으니 아직도 아른거리는 구멍에 팔을 뻗어 시에라에게 손짓했다. 안이 보이진 않았지만 턱 턱 내 팔에 손길이 느껴지는걸 보니 시에라가 날 붙잡은게 분명해 나는 팔을 쭉 잡아당겨 구멍에서 시에라를 꺼냈다.
“후우- 그대로네요!”
뽕- 구멍에서 빠져나온 시에라는 툭툭 옷을 털며 주변을 둘러봤다. 나도 그제서야 주변 풍경을 둘러봤는데 울창한 숲과 커다란 고목이 자리잡은 넓직한 공터였다.
“어릴적 아버지가 자주 데려와주신 곳이에요. 여름이면 이곳에 누워 별자리를 보곤 했어요.”
고인과의 추억을 곱씹는 시에라는 슬픈 미소로 땅을 발 끝으로 긁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나는 남색 밤하늘에 수놓인 새하얀 별빛들을 바라보며 시에라의 옆에 섰다.
“여기에 당신을 데리고 올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원랜 데려올 사람이 있었나요?”
“그런 사람이 생기면 여기를 보여주자고 다짐했던적은 있죠.”
“그런 사람이요?”
나는 히죽 웃으며 시에라를 바라봤다. 밤하늘을 눈에 담으며 미소짓던 시에라는 짓궂을 질문에 퍽- 내 팔을 때리고 애써 화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것보다아- 흥, 당신치고 오늘은 충분히 즐거웠어요. 야한것만 머리에 가득 찬 남자일줄 알았는데.”
“저도 오늘같은 날 엄청 좋아해요, 같이 있기만 해도 즐겁잖아요.”
“흥......”
침음을 흘리며 힐끔 나를 바라보던 시에라는 다시 고개를 들고 밤하늘을 쳐다봤다. 맑은 갈색 눈동자에 하늘에 수놓인 별들이 하나씩 하나씩 담기는 풍경에 나는 옆으로 한걸음씩 다가가 시에라와 몸을 착 붙였다.
“......”
팔을 타고 흐르는 시에라의 열기를 느끼며 나는 팔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휘감았다. 흠칫- 잠깐 잘게 떨렸지만 이내 떨림은 순식간에 멎고 오히려 내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시에라의 무게를 느끼며 더욱 강하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하아......”
나지막히 한숨을 쉬며 착 달라붙은 시에라를 끌고 공터 한켠에 자리잡은 벤치로 데려갔다. 시에라를 앉히기 전 가볍게 벤치를 털고 내가 먼저 앉은뒤 시에라를 내 무릎에 앉히고 같이 빔하늘을 바라봤다.
“어때요...? 이쁘죠...?”
손가락으로 수많은 별들을 가리키며 하나씩 이어보던 시에라는 고개를 꺾어 내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품에 쏙 안긴체 질문하는 시에라가 귀여워 그녀의 체온을 느끼며 다정하게 대답해줬다.
“최고의 풍경이네요...”
“눈... 감아봐요...”
고개를 꺾어 내게 속삭이는 시에라의 요청에 나는 단번에 눈을 감았다. 스르륵- 옷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내 무릎에서 일어난 시에라는 차가운 손으로 내 양볼을 움켜쥐고 고개를 치켜들게 했다.
-쪼옥
“아직 뜨지마요...?”
-쪼옥, 쪼옥
“조금만 더, 기다려봐요...”
-쪽쪽쪽쪽
“뜨지말라니까아...!”
-퍼억, 쪽 쪽 쪽
슬쩍 실눈을 뜨자 어깨를 내려찍는 주먹에 다시 눈을 감았다. 차단된 시야와 함께 들려오는 쪽소리, 그리고 뒤이어 느껴지는 촉촉한 입술의 감촉. 앙큼한 행동에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양팔을 크게 벌렸다.
“흐응...”
-꼬옥
분위기에 취한 시에라가 내 품에 쏙 안긴체 허리를 쭉 뻗으며 달라붙었다. 말랑말랑한 시에라의 몸을 즐기며 끌어안은체 더 이상 참을수 없게된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로 내 품에 안긴 그녀의 귀에 조그맣게 속삭였다.
“저, 더 이상 못참겠어요.”
“분위기 깨기는...!”
슬쩍 노려보며 힐난한 시에라는 꿀꺽 침을 삼키고는 자그마한 손을 점점 내 바지춤으로 뻗었다. 톡- 감전된것처럼 불쑥 솟은 고간에서 손을 뗀 시에라는 불겍 물든 얼굴로 연신 침을 삼키며 내게 되물었다.
“진짜 못참겠어요...?”
“너무 사랑스러워요. 계약이고 뭐고... 후회될 정도로 당신이 사랑스러워요.”
적나라한 내 고백에 시에라는 토마토처럼 푹 익은 얼굴을 애써 돌리며 내 시선을 외면했다. 그렇게 분위기에 취했어도 아직은 감성보다 이성인가? 괜히 섣불리 말했나- 후회했으나 이내 시에라의 입에서 달콤한 한마디가 떨어졌다.
“오늘만이라고 약속하면... 못할거두 없는데.”
분위기에 취해 잔뜩 달아오른 시에라의 미소와 함께 떨어진 허락에 나는 더 강하게 시에라를 끌어안으며 그녀에게 속삭였다.
“약속할게요.”
약속대로 오늘만을 즐기고 오늘을 잊지못해 내게 조용히 다가올 시에라에게 최선을 다해서 잊지못할 쾌감을 안겨주기로 나는 굳게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