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5.포식자를 노리는 포식자, 두 딸의 어머니 하루나
미네르바의 지식폭격을 맞고 그녀의 배웅을 받으며 밀림 입구에서 헤어졌다.
“내일 아침에 이곳에서 기다릴테니 늦지말고 오세요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꾸벅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자 미네르바는 나를 흘겨보며 턱에 손을 받힌체 조심스레 말했다.
“정말 무대포인 남자네요오. 의사도 묻지않고 싸우겠다니 당신도 꽤 독선적이군요오.”
하루나를 탓할게 되냐- 라고 질책하는듯한 말투, 나는 그런 미네르바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어제 싸워본 결과, 무조건 벌어지게 되있습니다. 딸들이 보장한 내용입니다.”
“...후후 그건 보면 알겠죠오? 오히려 그게 더 재밌겠네요오. 그럼 저는 이마안~”
늘어지는 말투와 함께 천천히 하늘에 떠오른 미네르바, 눈 깜빡한 사이에 없어진 미네르바가 있던 곳을 멍하니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이미 어둑하게 물든 하늘과 저문 해는 기온을 쌀쌀하게 만들었다.
“안녕하심까-”
마을로 향하자 몇 번 본적있는 수인이 해맑게 인사해왔다. 나는 꾸벅 목례한뒤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당신! 당신이 카사노지?”
탄탄한 검은 가죽으로 볼륨감 넘치는 몸매를 꽉 조인 한 여자가 내게 다가왔다. 날카로운 목소리의 여성은 쏘아붙이듯이 내게 말했다.
“딱봐도 알겠네, 족장님이 널 보면 연무장으로 오라고 전해달라하셨어. 난 말했다?”
까칠한 여성이 제 할말만 하고 호다닥 뛰어갔다. 일행들이 서있는곳으로 뛰어가 꺅꺅 거리며 떠드는 여성들을 뒤로하고 나는 연무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퍼억!
에루카와 걸었던 기억을 되새기며 연무장으로 향하자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수인 여성 하나가 땅을 등으로 쓸며 내쪽으로 날아왔다. 빨갛게 부은 복부와 고통에 침음을 삼키며 침을 퉤 뱉은 그녀는 나를 본체만체 하고 다시 달려들었다.
“음.”
발톱을 세운체 오른쪽 사각으로 접근한 그녀를 사전에 걷어차 차단한 하루나는 다가오는 나를 보고 뒷짐진 손을 풀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만!”
-우뚝
달려들 준비를 하던 여성이 중지신호를 듣자마자 정자세를 유지한체 하루나를 바라봤다. 군기가 바짝 든 군인처럼 서있는 그녀를 본 하루나는 이내 가볍게 손짓해 물러가라고 신호를 내렸다.
“감사합니다!”
90도 인사를 꾸벅 박고 물러난 여성은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하루나의 뒤편으로 가서 섰다. 이미 하루나의 뒤에 줄지어 서있던 다른 수인들이 거리를 벌리며 대열을 유지했다.
“낮부터 찾았는데 없더군, 어디 다녀왔나?”
“볼일이 있어서 잠시 다녀왔습니다.”
“음. 미네르바를 보고 왔나보군.”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인 하루나는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아주 미약하게 벌름거리는 코를 보니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딱히 알려지면 좋을게 없을거 같아 숨길 요량이였는데 단번에 들켜버렸다.
“만나보니 어떻던가?”
“친절하더군요. 자문을 구할게 있어 만나봤습니다.”
“흠, 그럼 지금부터 잠시 시간을 빌려도 되겠나?”
정중하게 묻는 하루나의 요청에 나는 어쩔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돌아가봤자 츠루카와 에루카랑 뒹구는것뿐이고 하루나와는 짧게라도 이야기 할게 많았기 때문에 사실상 거절은 불가였다.
“당연하죠.”
“그래, 다름이 아니라 단련을 도와주겠다고 했으니 내가 데려온 이들과 한번 겨뤄보는게 어떤가싶어서.”
겨루자는 말에 하루나의 뒤에 대열을 맞추고 서있는 수인들의 눈이 번뜩였다. 타오르는 적대감과 호승심, 질투의 시선까지 느낀 나는 한번 더 고개를 끄덕이며 하루나의 제안을 수락했다.
“하루나님같은 분한테 배울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시간을 낼수 있죠.”
“후후, 어제 죽일 듯이 달려든 사람치곤 겸손하군.”
짓궂은 농담을 던진 하루나는 미세한 미소를 지으며 슬쩍 뒤에 대열을 유지한 부하들을 바라보며 슬쩍 눈짓을 줬다. 하루나의 눈짓에 앞으로 나선건 상당히 작은 늑대귀를 한 소년이었다.
“배울게 많은 아이라 그대에게 도움을 구하자하네, 그리 쉽지만은 않을거야.”
하루나의 칭찬에 기세등등해진 소년은 어깨를 으쓱이며 내게 다가왔다. 나를 올려다보면서도 투쟁심이 깃든 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럼 이 소년을 이기면 하나 여쭤보고싶은게 있는데 대답을 들을수 있겠습니까?”
“호오, 내기를 하자는건가?”
씨익- 웃으며 송곳니를 드러내는 하루나, 처음 보는 해맑는 미소에 잠시 흠칫했다. 에루카를 닮은 듯한 활달한 미소는 금세 무표정에 덮혀 사라졌지만 나는 자꾸 하루나의 미소가 생각났다.
“좋다, 그대가 이기면 뭐든 대답해주지, 단 이 아이가 이기면...”
흠- 침음을 흘리며 팔짱을 낀체 고민에 빠진 하루나, 고민도 잠시 결정했는지 꽉 쥔 팔을 풀고 허리에 손을 얹은체 하루나는 짓궂은 미소를 미약하게 띄우며 말했다.
“하루동안 내가 시키는데로 해줘야겠다. 단 나도 그대가 묻는 질문이 뭐든 5개까지 대답해주지.”
“그정도면 좋습니다. 지금 당장 하면 됩니까?”
내 질문에 뒤를 돌아본 소년이 하루나를 향해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됐다는 신호에 하루나는 다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답했다.
“한번 지켜보도록하지, 미네르바한테 뭘 배우고 왔는지.”
어깨를 돌리며 몸을 푸는 나를 지켜보던 하루나는 한참을 바라보다 몸을 돌리고 장외로 빠졌다. 하루나의 뒤에 서서 대열을 지키던 수인들도 그녀의 뒤를 따라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잘부탁한다.”
연무장 밖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시선을 흘리며 눈앞의 소년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던 소년은 내 인사에 삐뚜름하게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흥, 하루나님의 노예나 될 준비해라.”
이세계의 애새끼들은 기본적으로 예의가 없는 듯 했다. 이름도 기억 안나는 애새끼를 떠올리며 나는 버릇없는 늑대의 앞으로 다가갔다.
거의 머리 한 개반 정도 차이나는 키차이, 그렇다고 무시하지는 않았다. 츠루카와 얘기할 때 들었던 기억으론 수인족의 성장은 느리다고 했으니 소년정도의 외향이면 성인인게 분명했다.
“준비됐나?”
장외에서 우릴 지켜보던 하루나는 흉폭한 가슴을 팔짱으로 짓누른체 큰소리로 의사를 물어왔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준비됐습니다!”
큰소리로 대답한 애새끼는 투지로 불타는 눈으로 나롤 노려봤다. 나도 곧 떨어질 하루나의 시작신호를 기다리며 애새끼를 내려다봤다.
“시작!”
우레같은 시작 신호와 함께 소년이 달려들었다. 온힘을 실은 도약과 함께 턱을 노리는 주먹이 쏜살같이 꽂혔다. 재빨리 손을 뻗어 붙잡은 주먹을 그대로 휘두르니 흔들리는 균형속에서도 소년은 다리를 뻗어 내 턱을 노린 발차기를 날렸다.
-탁!
비어있던 오른손으로 발차기를 막은 직후 공중을 돌며 착지하는 놈에게 똑같이 발차기를 날렸다. 체공 시간이 길어 균형을 잃은 놈은 그대로 얻어맞아 허공을 날며 바닥에 부딪혔다.
“큿!”
아무런 심리전도 없이 달려들다니, 무식한 싸움법에 당황했지만 방심하지않고 가드를 올린체 지켜봤다. 자세를 추스린 놈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타다닥- 내게 다시 뛰어왔다.
“후웁...!”
타악- 달려든 놈이 손톱을 세운체 높이 뛰어올랐다. 나는 슬쩍 하루나를 쳐다봤지만 허용범위인듯했다. 번뜩이는 손톱이 머리를 향해 내려찍는걸 본 나는 결국 뒤로 뛰어들 듯 물러선뒤 다시 거리를 벌렸다.
“쥐새끼마냥 도망치긴...!”
“미친놈.”
맨손으로 당당하게 싸우는게 병신 아니야? 탁 탁- 제자리에서 뛰며 자세를 다듬은 놈은 다시 땅을 박차고 뛰어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읏...?!”
어리숙하게 시간을 잡아먹기에 이번엔 내가 먼저 달려들었다. 땅을 박차며 달려드는 놈의 배를 강하게 걷어차자 양팔을 교차해 막는 듯 했지만 체급차이로 인해 지익- 밀려나며 팔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나는 붙잡히기전에 다리를 빼낸뒤 어정쩡한 자세를 잡은 놈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뻐억- 수박을 내려치는 소리가 울리며 고개가 휙 돌았다.
“크으윽!!!”
이를 빠득 갈며 머리통을 원위치하는 놈을 보며 이번엔 뺨을 갈겼다. 온힘을 다해 후린 손바닥이 뺨에 닿이기 직전 놈의 머리가 뒤로 휙 빠졌다. 힘이 실란탓에 상체가 돌며 가드가 비는걸 포착한 놈은 그대로 손톱을 세운체 내 가슴팍을 긁었다.
-촤악!
옷에 걸리는 손톱을 느낀 순간 상체를 뒤로 빼냈다. 쭈욱- 손톱에 걸린 옷이 늘어나며 찣기는 순간 걸린 손톱탓에 놈이 내 움직임에 작은 몸이 그대로 달려왔다.
기회를 포착한 나는 손톱을 빼내기 직전 가느다란 다리를 걸고 그대로 걷어찼다. 찌익- 강하게 걷어찬 탓에 몸이 홱 돌며 손톱에 걸린 옷이 찢어졌지만 무시하고 넘어진 놈에게 달려들었다.
-뻐억! 뻐억! 뻐억!
“끄아악...!”
땅을 짚으며 일어나려는 놈의 팔을 무릎으로 짓누르며 뺨을 후려갈겼다. 골통을 갈기는 뼈소리가 오싹하게 흘렀지만 내 머리가 아니기 때문에 무시하고 계속 손을 휘둘렀다.
-촤악! 촤악!
놈은 퉁퉁 부은 뺨을 얻어맞으면서도 손톱을 세워 내 종아리를 긁었다. 파고드는 손톱의 감촉을 무시하며 뺨을 내려치다 고통어린 비명을 지르며 송곳니로 내 손가락을 깨무려고 하기에 곧바로 주먹을 꽉 쥔뒤 광대를 내려찍었다.
-빠악! 빠악! 빠악!
점점 다리를 할퀴는 손톱의 강도가 약해졌다. 아려오는 상처가 신경 쓰였지만 걸을수 있을거 같아 신경쓰지않고 놈의 머리를 계속 내려찍으며 주먹을 갈겼다.
“흐으, 흐으으...!”
고통어린 침음이 흐르며 다리를 긁는 손톱이 결국 멎었다. 나는 빨갛게 붓고 코피를 질질 흘리며 침을 흘리는 놈의 머리통을 한번 더 내려찍으려고 주먹을 치켜들었다. 텁- 주먹을 꽉 붙잡는 악력에 슬쩍 뒤를 돌아보니 표정을 굳힌 하루나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까지 하지.”
“제가 이긴겁니까?”
“전의를 상실한거같으니 그런셈이지.”
히이- 히이- 바람빠진 소리를 내며 온갖 분비물을 흘리는 놈을 지켜보다 더러워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욱씬거리는 종아리의 고통이 느껴졌지만 못걷는 정도는 아니었기에 붙잡힌 주먹을 잡아당겨 하루나의 손아귀에서 주먹을 빼냈다.
“제가 저만한 나이때는 친구들과 놀기 바빴는데 잘싸우는군요.”
“아마 그대와 나이가 비슷할거다. 수인족은 성장이 느린 탓에 소년같아 보이지만 이미 성인이다.”
하루나는 눈물을 흘리며 분해하는 놈의 손을 잡고 일으켜줬다. 후들후들- 갓 태어난 소동물처럼 다리를 떨던 놈은 하루나의 손짓에 불려온 수인의 손에 붙잡힌체 천천히 자리를 옮겼다.
가늠이 안되는 크기의 가슴을 팔로 짓누른체 고민에 빠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하루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역시 그대는 전사의 자질이 충분하군.”
욱씬거리는 다리를 애써 무시하며 하루나의 맞은편에 선 나는 가볍게 칭찬을 받아넘겼다.
“하루나님에 비하면 벌거 아닙니다.”
“살아온 세월이 다르니 어쩔 수 없지, 이제 승부의 대가를 받아갈 차례인가?”
얼굴이 퉁퉁 부은 놈을 치료하는걸 지켜본 하루나는 조용히 나를 데리고 구석으로 이동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으로 들어선 하루나는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질문을 종용했다.
“차기 족장은 누구입니까?”
일단 제일 궁금한것부터 물었다. 예언대로라면 내가 차기 족장이란 자에게 굴복하던가 그놈이 내게 굴복하던가 둘중 하나였다. 예언을 맹신하는건 아니지만 예언을 믿는 마을 사람들과 하루나의 의지를 꺾으려면 예언을 따르는게 가장 좋았다.
“이미 만났다, 라고 말하면 무효라고 할테지?”
“하하, 아시는군요.”
짓궂은 농담을 던진 하루나는 슬쩍 입고리를 올리며 말했다.
“아까 싸운 그 아이가 차기 족장이다. 그대의 칭찬과 얘기를 듣고 한참을 성내더군.”
감정 조절도 못하던 애새끼가 차기 족장이라니. 전혀 예상 못한 답변에 얼이 빠져 하루나를 바라봤다. 하루나는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침착하게 싸웠다면 더 힘겨웠을테지. 아직 마나도 못다루는 미숙한 아이긴 하지만 본능만큼은 타고 났다.”
이미 한번 붙어본 만큼 놈에 대한 전력은 이미 파악했다. 놈이 침착하게 상황을 재며 싸운다고 해도 마나까지 끌어모으면 내가 놈을 충분히 때려눕히고도 남을 실력이었다.
“두번째 질문입니다. 제가 얼마나 강해져야 하루나님과 대등하게 싸울수 있습니까?”
“호오... 그대가 나와? 흐음...”
침음을 삼키며 생각에 잠긴 하루나, 풍만한 가슴을 흔들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하루나는 생각의 정리를 끝마쳤는지 걸음을 멈추고 또렷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보름정도는 나에게 단련을 받고, 검기를 두를수 있는 정도의 마나 운용을 보인다면 적어도 밀리진 않을테지.”
“밀리지 않는다- 인가요?”
“그대는 검을 사용하고 나는 격투를 주로 한다. 그렇다고 그대는 검에 능통한것도 아니고 격투에 능통한것도 아니지.”
슬쩍 내게 졸렸던 목을 매만지며 하루나가 나를 바라봤다. 살짝 붉어진 얼굴과 함께 하루나는 내게 한발 떨어지며 다시 설명했다.
“공정한 결투를 벌인다면 둘다 격투로 싸우겠지. 그대의 싸움기술은 종잡을수 없기에 나도 예상하기는 쉽지않다. 그정도가 가장 대등한 싸움의 조건이겠군.”
아무런 무기도 사용하지않고 격투로 승부를 보는게 하루나를 이길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이라- 고개를 끄덕인 나는 다음 질문을 기다리는 하루나에게 세 번째 질문을 물었다.
“갈라진 마을이 합쳐지고 대륙에 벌어질 전쟁의 선두로 나선다고 하루나님이 말씀하셨죠.”
“음, 분명히 그랬지.”
“마을이 합쳐진다면 족장은 누구로 세울겁니까?”
세 번째 질문의 저의를 파악한듯한 하루나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흠... 혹시 그대의 생각을 먼저 물어도 되겠나?”
“저는 츠루카나 에루카를 세웠으면 합니다.”
“호오... 그대가 아닌가? 지금 족장은 그대가 아닌가.”
나는 고개를 끄덕인후 마을의 교역에 대해 설명했다. 호르미아에 있는 상단과 긴말하게 맺고 있는 관계와 마을이 볼수 있는 이득을 설명하고 하루나의 눈치를 살폈다.
“호오... 그런 일까지 진행한건가?”
“우연히 연이 생겨서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인간 상단과 교역을 맺은 지금 만약 강경파들이 들고 일어서 인간들과의 관계 단절을 시도하면 모든게 무산이 되니까요.”
“그렇군. 확실히 그렇게 되면 곤란하겠어.”
“그럼...”
“그렇지만 족장의 의견은 절대적이다. 오히려 그런 상황을 막고싶다면 그대가 족장이 되면 될텐데.”
“제가 되고 싶다고 될수 있나요?”
피식 웃은 하루나는 팔짱을 풀며 내게 다가왔다. 턱- 내 어깨에 손을 얹은 하루나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성한 결투를 벌여야지. 온건파의 족장 카사노.”
예상대로였다. 나는 피어오르는 미소를 가라앉히고 하루나를 내려다보며 되물었다.
“상대는 하루나님인가요?”
“나는 제사장이라고 말했을텐데, 그렇기에 그대 상대는 아까 본 그 아이...여야하지만.”
일순간 하루나의 눈빛이 짐승의 그것으로 변했다. 날카로운 동공과 함께 먹이를 바라보는 오싹한 눈빛을 맞받아친 나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미소짓는 하루나에게 되물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 재미없지. 족장 대리로 내가 나서는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면 너무 비겁한거 아닙니까? 저는 하루나님의 상대도 안되는데요.”
“아니면 별개의 내기를 거는건 어떤가? 보름 후 결투의 승패에 따라 승자의 요청을 따르는거지.”
“내기말입니까?”
고개를 끄덕인 하루나는 환한 미소로 답했다.“
“보름후 결투에서 이긴 승자는 족장이 되어 통합된 마을을 다스리는거지. 거기다 패자는 승자의 소원까지 들어주는거지.”
“하루나님은 저에게 바라는게 많으신가보군요.”
“후후... 그대도 내게 바라는게 있지않나?”
-뭉클
커다란 가슴을 팔로 짓누르며 가슴골을 드러내는 하루나, 살짝 붉힌 얼굴과 당당한 표정의 갭이 상당히 독특했다.
“내가 이긴다면 그대는 마을의 부족장으로 남아줘야겠어. 전쟁의 선두로 나와 같이 나서는거지.”
“제가 이기면 어떻게 되는겁니까?”
“이 마을이 그대의 것이지. 나는 한발 물러날테지만 전쟁의 순간과 그대의 요청에 따라 언제든 도울 생각이다.”
“결국 저는 지든 이기든 마을에 남아야 하는군요.”
“아니지, 그대가 족장이 되고 츠루카에게 족장 대리를 맡겨도 무방하다. 간간히 마을에만 들러주면 그걸로 충분하다.”
우리는 서로 상대의 승리와 패배의 순간을 예측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예측한 우리는 모든 상황을 따져본 후 다시 대화를 나눴다.
“그대의 소원은 뭐지?”
“그건 제가 이기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후후, 좋다. 그럼 앞으로 보름 뒤에 마을의 모두가 지켜보는 곳에서 결투를 벌이는데 동의하나?”
“동의하겠습니다.”
“결투 조건은 정리한뒤 말해주지. 아, 단련은 예정대로 할테니 앞으로 오후마다 이곳으로 오도록.”
“알겠습니다. 오늘은 피곤하니 이쯤하고 돌아갔으면 하는데...”
“그러도록하지, 나머지 질문은 나중에 물어볼 심산인가?”
대화가 끝날 조짐이 보여 몸을 돌린 하루나가 아직 질문이 끝나지 않았다는걸 깨닫고 내게 되물었다. 나는 계속 궁금했던걸 물어볼지 말지 고민하다 앙 다물린 하루나의 입술이 눈에 들어와 결국 물어봤다.
“어제 방으로 돌아가서 자위 하셨습니까?”
“......”
“......”
우리는 그저 침묵했다. 시간이 멈춘것처럼 바람 소리 하나 들리지않는 공터에 서서 마주 본 우리는 그저 서로의 눈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천천히 하루나의 눈이 깜빡이며 도톰한 분홍색 입술이 서서히 열렸다.
“하지않았다.”
태연한 목소리로 부정한 하루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사과처럼 빨갛게 익은 얼굴과 귀는 뒤에서 봐도 그 열기를 짐작할수 있었다. 파들파들- 꽉 쥔 주먹을 떠는 하루나가 뒤돈체로 다시 내게 말했다.
“먼저 가보지. 마지막 질문은 나중에 하도록.”
-터벅터벅터벅
점점 빨라지는 걸음으로 자리에서 벗어나는 하루나, 보름 후의 결투를 생각할수록 하루나와의 결판을 어떻게 지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나는 복잡한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낸뒤 조용히 츠루카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