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5.포식자를 노리는 포식자, 두 딸의 어머니 하루나
“하루나님 힘내십시오!!!”
“외지인놈의 콧대를 뭉개주시지요!”
“쓰레기같은 인간놈!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오는거냐!”
원색적인 비난과 함께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가 광장을 뒤덮었다. 하루나의 뒤편에 위치한 테브라 마을의 주민들이 응원의 열기에 잔뜩 취해 흥분한 듯 했다.
“저놈들이...!”
“에루카, 참으렴.”
[카사노 이겨라앗!!!]
반대로 거짓말처럼 조용한 히네라 마을의 주민들 대다수는 에루카와 츠루카 뒤에서 응원해야하는거야-? 족장이라지만 이방인이잖아- 대장님의 남편이라는데-? 등의 잡담만을 나누며 소곤거리기 바빴다. 귓가를 때리는 운디네의 응원에 힘을 얻는 나는 두 다리에 힘을 주며 하루나를 바라봤다.
“후우... 미안하군. 아무래도 다들 흥분한 모양이라.”
“이해합니다. 이런 축제같은 광경 보기 힘드니까요.”
“후후, 우리 둘의 싸움이 그정도라 이말인가.”
“하루나님의 패배라면 제국 수도의 축제보다 더 대단한 광경이죠.”
“후훗... 그런가...?”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며 하루나의 움직임을 살폈다. 멀리서 느껴지는 미네르바의 기척과 함께 이제 본격적으로 벌어질 싸움에 집중하기 위해 숨을 몰아 내쉬며 잡념을 털어냈다.
“후우...”
귓가를 때리는 고함소리와 웅성거리는 불협화음을 무시하고 일렁이는 긴장감을 꺼트렸지만 몸의 떨림은 쉽게 멎지않았다. 후우- 한번 더 숨을 내뱉은 순간 곧 벌어질 싸움의 흥분감인지 아니면 강자에게 느껴지는 기백으로 인한 긴장감인지 모를 떨림이 완전히 멎었다.
순간- 하루나가 달려들었다, 아니- 날아올랐다.
-콰아아악!
광장을 뒤흔드는 폭력적인 소리, 발치가 흔들리며 자세가 무너지는 순간 바닥에서 무언가가 쏘아졌다. 다급하게 든 팔을 찍어올리는 하루나의 맨발이 뻗어올린 팔을 그대로 꺾으며 전진했다.
-뻐억!
팔꿈치에 힘을 주며 버텨낸뒤 그대로 휘둘러 발을 쳐냈다. 가볍게 공중을 돌며 착지한 하루나는 타닥- 발이 바닥에 닿이는 순간 한번 더 뛰어올랐다.
“크윽...!”
하루나와의 대련에서도 항상 애먹었던게 지금같은 페이스 조절이었다. 압도적인 강자라는 지위를 지닌 하루나가 원하는대로 휘두르는 싸움의 흐름을 어떻게 가져오냐가 내 승리의 관건이었기에 나는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방어에 집중했다.
“와아...”
“호오...”
[힘내애애-!!!]
함성소리로 가득찬 광장이 조금씩 고요해졌다. 압도적인 폭력을 선보이는 하루나의 무위에 전부 입을 벌린체 구경만 하는 듯 했다.
“딴눈 팔기 있나?”
잠시 주변을 둘러본 순간 귓가에 울리는 섬뜩한 목소리, 귓가를 스치며 옆구리에 주먹을 꽂는 하루나의 기습에 나는 그대로 일격을 허용해버렸다.
-뻐어억!!!
사람 몸이 아니라 샌드백을 후려도 이런 소리는 안날텐데. 순간 집중해 옆구리에 힘을 준덕에 버틸만 했다. 꽂아넣은 주먹을 회수하기전에 풀었던 오른팔을 그대로 조여 하루나의 주먹을 붙잡았다.
-꽈악...!
옆구리에 딱 붙은체 파들거리는 하루나의 팔을 오른팔로 짓누르며 몸을 돌렸다. 왼손으로 하루나의 손목을 움켜쥐고 꺾은 나는 그대로 광장 바닥에 누으며 균형을 잃고 갸우뚱하는 하루나를 바닥에 깔아뭉개며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탔다.
-터억!
바닥에 쓰러진 하루나의 위에 올라타 팔을 꺾으려는 순간 풀려있던 하루나의 왼팔이 내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살을 옥죄는 악력에 눈을 찌푸리며 참아냈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상체가 조금씩 밀려났다.
“후으읍...!”
내 밑에 깔려있던 하루나가 숨을 크게 몰아쉰뒤 반동을 이용해 쏘아올리듯 상체를 튕기며 나를 거세게 밀어냈다. 지금 밀리면 자세가 역전되 그대로 당할걸 직감한 나는 이를 악물고 체중을 실어 그대로 하루나의 팔을 깔아뭉겠다.
“끄으으읍...!”
앙 다문 입에서 꼴사나운 신음이 새어나왔지만 무시하고 온 힘을 다해 하루나를 짓눌렀다. 점점 어깨를 밀어내는 힘이 약해지며 꽉 깨문 하루나의 입술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좋아- 이대로 짓누르고 꺾기만 하면-
돌연, 내 아래의 하루나의 기세가 역변했다.
“후우우...!”
순간 온몸이 가벼워졌다. 휙 돌아가는 시야와 함께 정신을 차리니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이 훤하게 시야에 잡혔다. 어리둥절해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피는 순간 보이는건 인파들의 발과 다리뿐이란걸 깨달았다. 무언가 이상해-
“대단하군, 하마터면 아무런 반격도 못할뻔했다.”
-터벅터벅
공허한 광장에 울리는 발소리.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상한건 모두가 아니라 나였다. 하루나의 반격에 그대로 뒤집어진 나는 광장을 날아 바닥에 엎어져 모두를 올려다보고 있는거였다.
“그대와의 결투에선 마나를 사용하지 않으려했는데...”
터벅- 발소리가 끊기며 하루나가 나를 내려다봤다. 머리맡에 선 하루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눈에 보일정도로 아주 천천히 발을 들었다.
천천히 내려오는 신발 밑창, 처음엔 하루나의 모습도 같이 보였지만 점점 내려오는 밑창에 가려지는 하늘과 인파에 한번 눈을 감았다 뜬 순간 시야를 뒤덮은 밑창에 나는 온힘을 다해 몸을 돌렸다.
-쿠웅!
잘게 떨리는 진동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경악한 눈빛의 하루나가 그대로 내리꽂은 발을 드는 순간 나도 바닥을 박차고 그대로 튕기듯 하루나를 향해 날아갔다.
-뻐어억!
푸른 잔영이 휘감은 내 주먹이 그대로 하루나의 복부에 꽂혔다. 어떻게든 몸을 틀어 피한 발차기는 그와중에 허벅지를 찍고 지나쳤는지 허벅지가 욱씬거렸다.
“끄흑...!”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찌르르- 솟아오르는 고통을 억누르며 고개를 들고 상체를 숙인체 얻어맞은 복부를 감싸고 있는 하루나에게 그대로 한번 더 달려들었다.
-빠아악!
텅 빈 하루나의 턱에 그대로 주먹을 꽂아올렸다. 고개가 꺾이며 머리통이 들리는 그 순간에도 주먹을 밀어내는 하루나의 턱힘에 감탄하며 다시 복부가 비는 순간을 노려 다리를 꽂아넣었다.
“크흐윽...!”
날카로운 송곳니를 빛내며 위태로운 미소를 짓는 하루나, 점점 풀려가는 눈빛에 나는 가능성을 느끼고 웃으며 주먹을 뻗었다. 한걸음 물러나 자세를 바로잡은 하루나도 웃으며 내게 똑같이 달려들었다.
“말도 안돼...!”
“이런적이 있었나...?”
[카사노 힘내라니까아-!!!]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잡소리를 흘려들으며 하루나와 웃으며 난타전을 펼쳤다. 처음엔 서로의 주먹을 쳐냈고, 갈수록 빈 상체를 두들겼으며, 최후엔 제대로 뻗어지지도 않는 주먹을 피하며 달라붙었다.
-터억
“흐읍, 흐으읍...!”
고통을 억누르고 신음을 참으며 하루나에게 달라붙었다. 푹 젖은 무복과 밀어내는 하루나의 손길을 이악물고 무시한 나는 그대로 팔을 하루나의 목에 휘감고 다리에 힘을 풀었다.
“끄읏...?!”
힘이 없는건 하루나도 마찬가지였는지 맥없이 바닥에 툭- 쓰러졌다. 나는 휘감은 팔과 함께 하루나의 목을 조르며 몸을 돌려 내가 하루나의 밑에 깔리도록 유도했다.
“끄으읏... 이러헌...!”
-콰하악!
“끄아아압...!”
휘감은 팔을 꽉 조이며 오른팔로 거들어 최후의 최후까지 하루나의 목을 졸랐다. 발버둥치며 다리를 차내던 하루나는 그대로 자신의 목을 조이는 팔을 긁으며 마지막까지 반항했다.
-측 측 측 측
살을 긁는 손톱소리와 함께 눈물이 핑 돌았지만 꾹 참고 팔을 조였다. 품에서 느껴지는 하루나의 몸이 마구 진동하며 발버둥쳤지만 어떻게든 버텨냈다.
-측 측 츠윽 츠으윽... 츠으으윽... 툭.
살결을 긁는 거친소리가 점점 늘어졌다. 송글송글 맺히는 땀에 가려져 흐린 시야가 불편해 고개를 흔들면서도 팔의 힘은 풀지 않았다. 점점 멎는 팔의 고통과 소리, 마지막까지 팔을 긁던 손이 길게 호선을 그리다 툭 떨어졌다.
“그르륵... 졌... 다...”
하루나의 갈라진 목소리가 귓가에 떨어졌다. 방심할줄 알았나? 나는 이를 악물고 거세게 목을 조이며 하루나를 제압했다. 꽈아악- 바닥에 등을 비비며 온힘을 쏟아냈고 이내 우리를 둘러싼 인파들이 우리를 휘감기 시작했다.
“그...!”
“어...! 동해...!”
“팔을 ...리...어...!”
[...사...! 고...했어...!]
흐려지는 시야와 함께 귓가를 찌르는 고성들이 달콤한 자장가처럼 들렸다. 무거워지는 눈꺼풀과 함께 천천히 내 정신이 완전히 끊겼다.
**
광장을 뛰어다니는 인파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던 미네르바가 쿠쿡- 나른한 미소와 함께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예상 못했는데요오- 솔직히 제대로 실력으로 진것같지도 않고오-”
품속에서 꺼낸 양피지를 솜씨좋게 펼친 미네르바는 허공에서 뽑아낸 깃털펜으로 슥 슥- 양피지를 그으며 쓰게 웃었다.
“이래서는 좀 더 지켜봐야겠어요오- 하루나씨의 의중도 파악해야하고... 흐음... 카사노님의 분전도 놀라웠지만 왜 마지막에 포기한걸까요오-”
-구구구구
허공에 드러누우며 빙글- 몸을 돌린 미네르바가 갑작스런 비둘기 소리에 흠칫 놀라며 다시 몸을 돌렸다. 멍청한 눈으로 구국국- 바라보는 비둘기의 발에 묶인 통을 확인한 미네르바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뻗어 통을 빼냈다.
“에릴다가 흐음- 아아- 한동안 연락이 없다했더니 남편이- 으음... 아하!”
홀로 즐겁게 편지를 읽은 미네르바는 똑같은 편지지를 품에서 꺼내 정성스레 휘갈기기 시작했다. 고개를 까딱이는 비둘기를 뒤로하고 편지지 두장을 꽉 채운 미네르바는 돌돌 묶은 편지지를 통에 넣고 비둘기에게 다시 묶었다.
-구구국
갸웃 갸웃- 고개를 까딱이던 비둘기가 푸드득- 하늘을 날았다. 자신의 친우에게 도착하리라- 안심한 미네르바는 오랜만에 들은 친우의 소식을 곱씹으며 여러 가지를 예측했다. 관찰의 마녀인 미네르바는 모든걸 관찰하기 좋아했고 다음으로 좋아하는건 관찰한걸 토대로 추리하는것이었다.
“그러고보니 에릴다가 빠져나온 용병단이 왕국 수도쪽에 있던데가 아니던가아-?”
자주 연락하던 친우의 정보를 떠올린 미네르바는 무언가 연결될것만 같은 정보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눈을 감고 조합했지만 끝끝내 맞아떨어지는 조각을 찾지 못했다.
“하아- 나중에 다시 생각해봐야겠네요오-”
추리를 멈춘 미네르바는 에루카의 등에 엎혀 츠루카의 숙소로 옮겨지는 카사노의 얼빠진 얼굴을 바라봤다. 단순히 표본으로 생각했던 남자였지만 저정도라면 더 뽑아낼게 많을 듯 했다.
“후후훗-”
카사노에게서 뽑아낼 미지의 정보를 관찰할 생각에 신이난 미네르바는 달뜬 육체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둥실둥실- 날아가는 신형과 함께 미네르바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카사노님이 족장이라- 결국 예언은 이뤄졌네요오- 후후훗-”
몽환의 밀림을 지키는 마녀 미네르바는 곧 찾아올 파란에 기분이 들떴다. 쿠쿡- 후후훗- 푸른 하늘에 짓궂은 웃음을 퍼뜨리는 마녀의 신형이 조금씩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