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108화 (108/395)

-서걱

파공음과 함께 데구루루 고블린의 머리통이 바닥을 굴렀다. 탄탄한 가죽갑옷이 이리저리 헤져 거지꼴을 한 도미닉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 곁에 붙었다.

“후우... 얼마나 남은 것 같습니까?”

고블린 군락안의 고블린들은 심부로 들어갈수록 무장 수준이 높아지는 특징이 있었다. 뒷산에 사는 고블린치고는 준수한 무기인 녹슨 검을 걷어차며 시체를 살펴본 나는 슬슬 끝자락에 가까워짐을 느꼈다.

“얼마 안남은거같은데요?”

전투가 끝나자 구석에 몸을 맡긴 제미니와 그를 보호하던 칼츠가 밝은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고블린 시체를 한곳으로 몰아 치운 나는 그들과 갈무리를 시작했다.

-서걱 서걱

고블린들의 마석과 이빨 따위를 뽑으며 잡담을 나눴다. 굴에 들어온 지 삼일 정도 됐지만 아직까지 분위기는 좋았기에 할 수 있는 잡담이었다. 도미닉과 칼츠는 힘든 기색 없이 갈무리를 하며 웃고 떠들었지만 제미니만이 탐탁지 않은 얼굴로 고블린의 질긴 가죽을 단검으로 벗겨내며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아아- 이놈의 고블린 새끼들은 그만 좀 봤으면 좋겠네요. 형씨 얼마나 남았다고요?”

지나온 공동의 수는 여섯, 여태 잡은 고블린만 해도 삼십 마리는 더 넘겼다. 사실상 방금 잡은 이 고블린들의 굴의 마지막이라고 봐야겠지만 아직 고블린들의 창고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이놈들이 마지막 같긴 한데, 더 들어가 봐야겠죠?”

“에이- 씨발놈의 고블린들 뭐이리 많데?”

마을 자경단에 불과한데 열심히 따라온 칼츠의 끈기를 지켜본 나로서는 그저 투정임을 알았기에 웃어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했어요. 고블린들은 굴 제일 끝에 창고를 짓거나 잡동사니를 쌓아두니 그것만 찾으면 끝입니다.”

“읏차, 그럼 조금만 더 힘냅시다!”

고블린 시체를 내던지며 일어나는 칼츠, 옆에 앉아 이빨을 뽑던 도미닉은 칼츠의 기합에 피식 웃으며 손을 까딱거렸다.

“다 끝냈으면 저기 정찰이나 가봐.”

“알았어요. 알았어―”

입을 삐죽이면서도 도미닉이 시키는 대로 공동에 이어진 통로로 향하는 칼츠, 밝은 분위기속 제미니만이 홀로 우중충한 얼굴로 고블린의 가죽을 헤집고 있었다. 무아지경으로 손을 놀린 덕에 쓰지도 못하게 된 가죽을 채간 나는 제미니의 손에서 단검을 뺏고 그에게 말했다.

“좀 쉬고 있어요. 피곤하죠?”

“...네.”

굴에 들어온 지 삼일, 나는 매일같이 에릴다를 찾아갔다. 첫날에도 쉽게 다리를 벌리며 나를 받아들인 에릴다였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남편의 존재라도 잊은 것 마냥 내게 엉겨 붙으며 음탕한 육체를 갖다 바쳤다.

첫날부터 나를 의심하던 제미니는 매일 밤마다 사과향을 풍기며 자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봤다. 품속의 주문서를 매만지며 당장이라도 아내에게 돌아가고 싶어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도미닉과 칼츠를 이끌고 군락을 토벌했다.

“어? 형씨! 형님! 여기 녹슨 무기들이 잔뜩 있는데요?”

공동에 이어진 통로로 들어갔던 칼츠가 커다란 목소리로 우리를 불렀다. 녹슨 무기라?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곧바로 칼츠가 들어간 통로로 뛰어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칼츠의 말대로 녹슨 무기들과 잡동사니들이 바닥에 널브러진 게 보였다.

“아무래도 이놈들이 마지막이었나 보네요.”

상자나 주머니 같은걸 열며 쓸 만한 게 있나 살폈지만 돈이 될만한 건 없었다. 과일이나 야채 따위가 아무렇지 않게 굴러다녔고 잔뜩 녹슨 갑옷이나 검만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뭐 쓸만한 건 있습니까?”

아닌 척 하면서도 기대하는 도미닉에게 고개를 내저은 나는 녹슨 검을 발로 걷어차며 말했다.

“괜히 들고가봐야 무겁기 만하고, 그냥 마석 몇 개 얻은 걸로 퉁치죠.”

우리가 얻은 마석은 여섯 개. 이정도만 촌장에게 갖다 줘도 충분했다. 부수입이 없는 게 아쉬웠는지 도미닉과 칼츠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갈 채비를 준비했고 뒤에 떨어져있던 제미니도 끝났다는 말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형님 그렇게 좋아요?”

제미니가 신나하자 칼츠가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놀렸다. 짓궂은 장난에 얼굴을 확- 붉힌 제미니였지만 신난 건 사실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빨리 집으로 가고 싶네...”

“그러고 보니까 신혼이었지?”

“하하, 네...”

“언제 한번 밥 한 끼 해야지. 마을에 소개도 하고 말이야.”

도미닉의 질문에 수줍게 답한 제미니는 이내 이어지는 그의 질문에 입술을 달싹였다. 순박한 제미니는 쉽게 거절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능글맞게 넘기지도 못했다. 이대로면 분위기가 가라앉을 거라 느낀 나는 일부러 저급한 농담을 꺼내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에이, 아내랑 둘이서 놀기도 바쁜데 뭘 방해하고 그래요?”

“하하...”

푸욱 고개를 숙이는 제미니와 공동이 울릴 정도로 크게 웃는 도미닉과 칼츠. 너무 적나라한 농담이었지만 괜히 상대를 머쓱하게 만드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너무 쑥스러워하는 제미니에게 미안하다고 짧게 사과한 나는 다시 굴을 오르기 전 앞장서며 셋에게 말했다.

“그럼 바로 올라가도록 하죠, 바깥 시간이 얼마나 됐을지는 모르니 살펴보고 하루 야영하거나 바로 내려가거나 그때 결정합시다.”

“네.”

“네엡!”

“네...”

각자 다른 셋의 대답을 받아낸 나는 곧바로 전위로 자리 잡은 뒤 천천히 전진했다. 계단도 오르고 공동도 지나며 부패하기 시작한 고블린 시체들을 어떻게든 지나친 우리는 삼일동안 지나온 흔적들을 하나씩 되새기듯 살피며 밖으로 나가기 위해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끄으으...”

“하암...”

기지개를 피며 뒤따르는 도미닉과 지루한지 하품을 찍 내뱉는 칼츠, 후미의 제미니만이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초조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집에 있는 에릴다가 신경 쓰이는 걸까? 오늘이 마지막 날임에도 조급해하는 제미니의 모습을 흘겨본 나는 점점 낮아지는 천장을 느끼고 큰소리로 말했다.

“슬슬 밖입니다. 머리 숙이세요.”

“네.”

-스윽

자세를 낮춘 우리는 천천히 굴을 따라 밖으로 걸었다. 처음 들어왔던 입구의 흔적을 손으로 쓸며 천천히 빠져나온 나는 어둡고 싸늘한 바깥 풍경을 보고 나가기 전 셋에게 손짓했다.

“밖은 밤이네요.”

“아, 그렇습니까?”

-부우 부우

약간 오싹한 새소리와 함께 싸늘한 공기가 내 얼굴을 덮었다. 스치는 풀 소리와 미약하게 들리는 풀벌레소리. 홀로 밤공기를 맡은 나는 슬쩍 뒤돌아 도미닉에게 물었다.

“밖에서 야영하는 것보단 안에서 하는 게 낫겠죠?”

“아무래도 그게 더 안전할 거 같습니다.”

“형님, 뒤로 갑시다. 밤이래요.”

“아아... 그냥 내려가는 건... 무리겠지?”

제미니의 철없는 질문에 쓴웃음을 지은 도미닉이 고개만 살짝 꺾어 제미니에게 말했다.

“큰 상관은 없는데 밤의 산이 위험한건 너도 알잖아. 그냥 하루 머물고 다 같이 내려가자.”

다정하게 말하는 도미닉의 어투 속에는 미약한 힐난이 담겨있었다. 뻔히 위험한걸 알면서도 내려가자는 그에게 꾸짖는 그런 힐난이었다. 이런건 또 눈치 챘는지 푹 고개 숙인 제미니는 입술을 달싹이며 우리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빨리 내려가고 싶어 죽겠어요. 오늘은 불침번 없이 얼른 잡시다.”

“그럴까요? 사실 여태 불침번 너무 귀찮았어요. 형씨도 인정이죠?”

“하하, 그러니까요. 고블린도 없고 덩치 큰 짐승이 들어오기엔 버거운 굴이니까 불침번은 안서도 될 거 같네요.”

대충 합의한 우리는 제미니가 통로에서 빠져나간걸 확인하고 다시 뒷걸음질 쳐 공동으로 후퇴했다. 넷이서 자기에는 충분한 넓이였기에 피곤했던 우리는 서둘러 텐트를 폈다.

“읏차...”

“아, 배도 안고프고 저는 그냥 잘랍니다-”

건들거리던 칼츠는 텐트를 피자마자 피곤한 얼굴로 우리에게 대충 인사하며 텐트로 들어갔다. 모닥불을 피우고 육포를 씹던 도미닉도 칼츠를 뒤따라 들어갔다.

“저도 일찍 자야겠네요. 안녕히 주무세요.”

“네, 오늘 고생하셨어요.”

아직 간단한 식사 중이었던 나와 제미니는 둘을 보낸 뒤 침묵을 유지하며 육포를 질겅이며 씹었다. 모닥불을 바라보며 턱을 움직이는데 옆에 있던 제미니가 힐끔힐끔 나를 바라봤다.

“후우... 저는 그럼 오줌 좀...”

가슴을 매만지는 척 하며 일어난 나는 제미니에게 웃는 낯으로 소변 좀 누고 오겠다고 말했다. 육포를 질겅이던 제미니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 다녀오시죠.”

공동 너머의 통로로 들어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제미니를 몰래 바라보며 다음 공동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품에서 에릴다가 건네준 주문서를 아주 느리게 꺼내든 뒤 부욱- 찢었다.

**

느릿한 걸음으로 공동을 넘어가는 카사노를 지켜본 제미니는 곧바로 일어나 뒤따랐다. 저벅- 돌바닥에 울리는 발소리가 왜 이리도 크게 들리는지, 심장이 철렁했지만 최대한 소리 죽여 느릿느릿 걸어가는 카사노를 쫒아갔다.

-저벅

소변을 눈다더니 공동 한가운데 멈춰선 카사노는 곧바로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응...?”

돌돌 말린 종이는 집을 나서기 전 아내가 편지라면서 카사노에게 줬던 그 종이였다. 그걸 왜 꺼내지? 의아한 눈으로 지켜본 제미니는 종이가 펴지자 안에 그려진 익숙한 문자에 눈을 크게 뜨며 이를 악물었다.

기형적인 문자와 알 수 없는 마법진. 아내가 위급할 때 사용하라고 줬던 공간이동 주문서였다. 심장이 쿵쿵 뛰고 식은땀이 절로 나왔다. 치솟는 분노에 손이 덜덜 떨리고 눈가에 힘이 몰려 파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분을 삭인 제미니는 곧바로 품에 손을 넣어 주문서를 꺼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아까 카사노가 펼친 종이에 그려진 똑같은 문양과 무늬가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이해할 수 없는 작금의 상황에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팽팽하게 굴린 제미니는 일단 카사노를 지켜봤다.

느릿한 손짓으로 주문서를 펼친 카사노는 느긋하게 부욱- 세로로 주문서를 찢었다. 쉽게 찢어지는 종이와 함께 일렁이는 빛이 보였고 신형이 투명해지며 흔들거리던 카사노는 이내 촛불처럼 훅- 꺼지며 사라졌다.

-으득

“이이...!”

아닐 거다. 아닐 거야. 아니어야만 한다. 아내가 준건가? 저자식이 뺏은 건가? 단순한 동료라면서...! 실체를 알 수 없는 둘의 사이를 어떻게든 이어 붙이며 가늠하던 제미니는 지금 이럴 때가 아니란 걸 깨닫고 곧바로 부욱- 주문서를 찢었다.

“으윽...!”

일렁이는 불빛과 흔들리는 시야. 토할 것만 같은 역겨움에 정신을 붙들고 집에 있을 아내를 떠올렸다. 제발 아니어아먄 했다. 아내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에게 휘둘리는 거겠지? 호의를 베풀던 카사노가 자신의 아내를 겁박했을 것을 상상한 제미니는 온몸을 불태우는 분노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훅! 그렇게 제미니도 공동에서 모습을 감췄다. 아무것도 모르고 곯아떨어진 도미닉과 칼츠의 코고는 소리만이 공동에 울려펴젔다.

“크윽...”

어지러운 시야를 애써 바로잡으며 고개를 든 제미니는 익숙한 풍경에 치를 떨며 몸의 균형을 바로 잡았다. 집에서 삼십분은 떨어진 마을 중앙에서 정신 차린 제미니는 아무도 없는 거리를 둘러보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다리를 움직였다.

-파악! 파악! 파악!

부드러운 흙이 제미니의 신발에 파헤쳐지고 싸늘한 밤공기는 폐부를 쿡쿡 찌르며 그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 고통과 싸늘한 밤공기는 흐리멍덩했던 제미니의 정신을 두들겨 깨워 더욱 날카롭게 만들어줬다.

“하악, 하악. 하악...!”

잘 정돈된 대로를 따라 열심히 달리던 제미니는 치솟는 분노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아내의 머리칼과 같은 밤하늘에 펼쳐진 드넓은 별들과 중앙에 걸린 커다란 달. 아내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날 밤 풍경과 완전히 같은 오늘의 밤에 분노한 제미니는 더욱 박차를 가해 집으로 향했다.

“흐으, 흐으, 흐으...!”

다리는 후들거리고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거칠게 숨을 내쉴 때마다 싸늘한 밤공기가 쿡쿡 폐부를 찔렀지만 오히려 그 차가운 고통이 제미니의 정신을 더 날카롭게 만들어줬다.

-덜컥 덜컥

차갑게 식은 문고리는 열리지 않았다. 집의 불은 꺼져있었고 거실에는 아무도 없는 듯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열리지 않는 문고리를 잡은 제미니는 애써 합리화하며 아내에 대한 의심을 거두려고 노력했다.

자는가보네, 그래서 문을 잠갔구나. 아무 일 없을 거야. 애써 되뇌며 품에 손을 넣은 제미니는 온 주머니를 더듬었지만 열쇠를 찾지 못했다. 그제야 굴에 두고 온 가방에 열쇠를 넣어둔걸 떠올린 제미니는 쿵쿵쿵- 망치질하듯 두들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문에서 떨어졌다.

“하아...!”

지금이라도 문을 열까? 부수고 들어가야 하나? 만약 그랬는데 에릴다만 있어서 자다 깬 에릴다가 당황한 얼굴로 물어보면 뭐라 얘기하지? 숨길 수 있을까? 복잡한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장작이 추가됐다. 타오르는 머릿속을 활활 불태우던 제미니는 홀린 듯이 집에서 떨어졌다.

“......”

그래, 침실을 확인하자. 커튼이 없는 집이기에 창문만 본다면 집안이 훤히 드러났다. 쿵- 쿵- 쿵- 심장만 뛸 텐데 온몸이 울리는 듯한 고동소리에 몸을 맡긴 제미니는 떨리는 심정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침실로 향했다.

“아...!”

불이 꺼져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카사노는 보이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있는 인형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본 제미니는 곧바로 손을 들어 창문을 두드리려 고했다.

그랬었다.

-벌컥!

난데없이 들리는 문 여는 소리에 제미니는 자신도 모르게 숨었다. 고개를 숙여 눈으로만 침실을 들여다본 제미니는 부부의 보금자리에 펼쳐진 광경에 그저 허망한 울음소리를 흘리며 안을 바라봤다.

“아아...!”

밤하늘처럼 아름다운 검푸른 머리칼을 폭포수처럼 쏟아낸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새하얀 가운을 걸치고 가느다란 손가락엔 붉게 빛나는 등불이 걸려있었다. 우아하게 손을 뻗어 등불을 내려둔 그녀는 교태로운 미소로 사뿐 사뿐 침대로 향하며 천천히 가운을 움켜쥐었다.

“아아아...!”

방안을 환히 밝히는 등불에 침대가 드러났다. 흉터가 가득한 알몸으로 침대에 드러누운 그 남자는 우뚝 솟은 성기를 과시하며 여유롭게 뒤통수에 손을 얹고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후후...”

낮게 웃은 에릴다는 다리를 꼬고 한걸음, 한걸음. 새하얗고 풍만한 나신을 과시하며 다가왔다. 침대 뒤편에 있는 창문에 서서 지켜보던 제미니는 마치 자신에게 다가오는 듯한 착각을 했지만 에릴다가 바라보고 있는 건 카사노였다.

걸을 때마다 따라 흔들리는 풍만한 유방과 흥분으로 솟아오른 분홍색 유두. 온 몸 곳곳에 남은 분홍빛 자국은 누가 봐도 사랑을 나눈 흔적이었다.

“크윽...”

치솟는 분노와 별개로 느껴지는 찢어지는 고통에 눈물이 흘렀다. 시야를 흐리게 하는 눈물을 닦아낸 제미니는 다시 에릴다를 충혈된 눈으로 바라봤다.

“어때요...?”

달뜬 목소리로 음부를 매만지는 에릴다, 검푸른 음모로 수북하던 사타구니는 매끈하게 밀려 거뭇한 자국만이 남았다. 흥분으로 젖어든 음부에서 흐른 애액이 허벅지를 타고 뚝- 바닥에 떨어지자 지켜보던 제미니는 머리를 움켜쥐며 침실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화가 났다.

하지만 분노와 별개로 아름다운 아내의 모습에 흥분됐다. 자신에게 보여주지 않는, 자신이 바라던 누구보다 음탕한 모습에 제미니는 침대에 누운 카사노가 짙은 미소로 자신을 흘기는걸 눈치 채지도 못하고 그저 슬픈 미소를 지으며 에릴다를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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