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110화 (110/395)

-퍼억!

“씨발, 기생오라비 같은 게...!”

못생긴 들창코로 피를 줄줄 흘리던 놈은 코를 부여잡고 노려보면서 천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놈의 뒤에서 보호받던 여자는 쥐똥만 한 눈깔을 데굴데굴 굴리며 상황을 살피기 바빠 보였다.

“먼저 시비 건 게 누군데 욕이야?”

“네가 먼저 나오한테 집적거렸잖아!”

-흠칫

나오라고 불린 여자가 놈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며 잡아당겼다.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가자아- 됐어어- 하고 앙탈 부리는 꼴을 보니 내게 까이고는 놈한테 징징거린 게 분명했다.

“뭐라는 거야. 그년이 먼저 한번 자보자고 떡하니 다리 벌리면서 왔는데.”

“뭐, 뭐? 나오가 그랬을 리 없잖아...!”

긴장과 흥분으로 덜덜 이를 떨며 부정하던 놈은 힐끗 나오라는 여자를 바라보며 혹시- 하는 눈빛을 띄웠다. 여기서 더 손 안 대도 알아서 파국으로 치달을 둘이었기에 나는 주먹을 들어 위협하며 놈을 쫓아냈다.

“알아들었으면 꺼져, 씨발놈이 한 번만 더 깝죽거려봐, 응?”

“여자들 등쳐먹고 다니는 새끼가...! 퉷!”

“빨리 가자- 응?”

-타다닥

골목 벽에 등을 기대 놈을 노려보자 코를 부여잡고 한참을 이 갈던 놈은 나오라는 여자의 손을 잡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이세계에 와서 제일 적응 안 되는 건 대뜸 시비 거는 미친놈들이었고 다음으로 이해가 안 가는 건 처맞고 나서야 등을 돌리는 멍청한 행동이었다.

[아까 저놈이 한 말, 진짜야...?]

[아니지- 설마 너, 나 의심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떠나는 둘을 지켜보던 나는 욱신거리는 옆구리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뭔 이름도 모르는 세상에 떨어진 지 1년, 마을 교회에 떨어져 나이 많은 수녀님이 성심껏 글과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여기 있지도 못했겠지.

“후우...”

그분이 돌아가시면서 쥐여준 몇 푼으로 어찌어찌 뭐시기 왕국 수도에 도착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21살 애새끼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든 용병들이 다니는 곳에서 빌붙고 지내면서 짐꾼이나 장비를 닦으며 부하 노릇을 하며 버텼다.

그런데 생각보다 놀라운 점은 이세계의 여자들은 지구에서 평타정도 치는 내 얼굴을 좋아했다. 아니 얼굴보다는 말끔하고 있어 보이는 외모를 좋아했다. 그 덕에 용병 파티에 한둘 껴있는 여자들의 추파를 받아내며 한푼 두푼씩 더 받는 일도 있었다.

-파악!

갑자기 치솟는 짜증에 발 앞에 나뒹구는 돌멩이를 걷어찬 나는 차라리 그때 돈 받지 말걸- 후회했다.

여자 용병들에게 한푼 두푼씩 받으며 여자들의 입소문에 나라는 존재가 갑자기 확 퍼져버렸다. 여자들은 못 먹는 감 찔러라도 보듯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내게 말을 걸거나 추파를 던지며 장난스레 대했지만 남자 동료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분풀이로 나를 쥐어패는 놈도 하나씩 나왔고 주변에서 알짱거리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놈도 있었다. 하지만 칼밥 먹기도 전인 짐꾼 시절의 나는 그런 협박하는 새끼들의 눈치를 보며 지냈다.

이세계에 떨어진 지 반년이 돼서야 겨우 스스로 칼을 손에 넣은 나는 그나마 호의적인 용병들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칼질을 겨우 시작했었다.

초딩때 검도를 다녔던 기억을 떠올리며 마구잡이로 휘두른 칼질은 이세계에서 가장 든든한 목숨줄이 됐다. 그렇게 엉성한 칼질로 살아남은 지도 1년- 용병 길드에서 의뢰도 몇 개 골라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여자들을 후리고 다니는 기생오라비로 소문난 나는 아직도 혼자였다.

-저벅

할 것도 없는데 그냥 숙소에 자러 가야겠다, 생각을 정리하고 골목을 떠나려는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떠난 머저리들이 다시 왔나 싶어 인상을 쓰며 뒤돈 순간 처음 보는 미인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꿀꺽

날개뼈쯤 내려온 윤기 나는 주황색 단발에 싱그러운 풀밭 같은 밝은 녹색의 눈동자. 오밀조밀한 귀여운 얼굴의 얼굴과 그렇지 않은 여우 같은 눈매. 싱긋 웃는 미소가 걸린 분홍색 도톰한 입술이 서서히 벌어지며 내 이름이 툭 튀어나왔다.

“당신이 카사노?”

나보다 머리 하나 작은 키면서도 당당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물은 그녀가 천천히 다가왔다. 온몸을 덮는 초록색 로브였지만 가릴 수 없는 볼륨이란 게 느껴졌다. 항아리처럼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골반과 꽉 들어차 보이는 가슴, 이 세계에 와서 처음 보는 제대로 된 미인이었다.

“너무 빤히 보는 거 아니야?”

“아, 죄송합니다.”

“흐응, 뭐 됐어. 어쨌든 카사노 맞지?”

“네, 네. 제가 카사노입니다.”

이런 여자가 나를 찾는 이유가 뭘까? 호의적인 관계가 거의 전무함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 나는 눈앞의 여자가 나를 해치지 않기를 빌며 그녀의 초록빛 눈동자를 바라봤다.

-저벅

서로의 눈을 몇 분간 바라볼 동안 발소리가 하나 추가됐지만, 그쪽을 쳐다보진 않았다. 의미 없는 눈싸움을 지속하던 나는 전혀 시선을 피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여자의 태도에 먼저 고개를 틀며 눈길을 피했다.

“음, 합격이려나?”

“네?”

시선을 피하자 손가락을 입술에 얹고 으응- 목 울리는 소리를 내던 그녀는 미소와 함께 손을 떼며 대뜸 합격이라고 말했다. 의아한 대답에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니 해맑은 미소와 함께 내게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 나는 레미아. 작은 용병단의 부단장을 맡고 있어.”

그녀, 아니 레미아의 소개가 끝나자 뒤편에 서 있던 정체 모를 무언가가 옆에 나란히 섰다. 온몸을 회색 로브로 둘둘 덮은 모습을 빤히 바라보자 레미아가 쿡쿡- 입가를 가리고 웃더니 팔꿈치로 툭 때렸다.

“네 부사수니까 인사해야지. 얼른 벗어.”

“알겠어요.”

-스르륵

흉흉한 안광이 엿보이는 후드를 집는 가냘픈 손가락, 천 스치는 소리와 함께 벗겨진 후드 안에는 감탄했던 레미아의외모보다 더 아름다운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완전히 벗겨진 후드 속 여성은 분홍색 입술을 오물거리며 뜸 들이다가 잠시 후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반갑습니다. 에릴다라고 해요.”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검푸른 머리칼, 멍하니 윤기 나는 머리칼을 바라보다가 머리색과 동일한 두 눈동자와 마주쳤다. 눈동자를 표현하기엔 맞지 않는 표현이었지만 무색무취라고 해야 하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공허한 눈빛에 나는 한걸음 물러나며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카사노입니다.”

“자, 그럼 서로 인사도 끝났고- 용병단으로 가볼까?”

“바로요?”

용병 길드에서 허가받은 용병단 숙소들이 밀집한 구역을 떠올리며 한 걸음 더 물러섰다. 짐꾼 노릇 하며 몇 번 들린 적 있는 곳인 만큼 거기서 겪었던 잦은 실랑이와 시비가 떠올라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단장한테 허락은 받아야 하니까, 바로지?”

-텁

웃으면서 대화를 마무리한 레미아가 휙- 뒤도는 순간 서 있던 에릴다가 무표정으로 내 손목을 움켜쥐고 끌고 갔다. 그래도 남잔데 맥없이 끌려가는 기분에 혀를 찬 나는 강하게 옥죄는 악력에 입술을 곱씹으며 둘의 뒤를 따랐다.

-저벅 저벅 저벅

“내일 고블린 토벌 갈 거냐?”

“괜히 갔다가 똥독 오른 단검에 찔리게?”

미소짓는 레미아와 다시 후드를 뒤집어쓴 에릴다, 그리고 붙잡힌 나까지. 시끄럽고 난리 통 그 자체인 수도 골목길임에도 우리 셋은 꽤 눈에 띄는 행색이었는지 떠들던 행인들이 우리를 한 번씩 흘겨봤다.

복잡하고 시끄럽고 난잡하기까지. 속 터지는 골목길을 한참을 가로지르며 걷는 중 돌연 에릴다가 멈췄다. 갑작스러운 정지에 쿵- 그녀의 등에 부딪혔지만 미동도 없던 에릴다였다.

“뭡니까?”

갑작스러운 제동에 그대로 눈을 찍은 나는 얼얼한 눈두덩을 쓰다듬으며 에릴다에게 물었다. 후드를 쓴 채 검푸른 안광만을 내뿜던 그녀는 슥- 손가락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지구에서 본 대학 기숙사처럼 줄지어 지어진 숙소와 땀 내냐는 용병들, 그들의 장비를 짊어지고 걷는 짐꾼들과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뻔뻔하게 떠들고 있는 행상인들까지. 뒤만 따라 왔을 뿐인데 어느새 용병단 숙소에 도착했었다.

“레미아를 따라가세요.”

“저, 그쪽은요?”

“저는 이제 자유시간입니다.”

내 손목을 놓은 에릴다가 꾸벅-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그대로 떠나버렸다. 펄럭이는 로브와 함께 뒷모습을 지켜본 나는 미련 없이 뒤돌아 저벅저벅 걷고 있는 레미아에게 따라붙었다.

“어머, 에릴다는 갔어?”

“네, 자유시간이라던데요.”

“어차피 도박이나 하러 갈 거면서 자유시간은 꼬박꼬박 챙겨요.”

“도박이요?”

도박하는 여성이라, 얼굴을 덮는 검푸른 머리칼을 벅벅 긁으며 카드를 내던지고 배팅하는 모습을 상상한 나는 그래도 예쁘니까 그림이 되네- 혼자 중얼거리며 상상을 마쳤다.

“그러고 보니 엘프 본 적 있어? 에릴다를 보고 안 놀라는 건 네가 처음인 거 같은데.”

“엘프요?”

나는 레미아의 말에 눈을 감고 곰곰이 떠올렸다, 에릴다의 어디를 보고 엘프라고 하는 거지? 검푸른 머리칼, 머리카락 색과 똑같은 눈동자, 조각 같은 코와 달콤해 보이는 입술, 쫑긋거리는 기다란 귀.

“엘프였어요?”

“몰랐어?”

“얼굴만 본다고 귀는 대충 봤었죠.”

그래도 본 기억은 있구나, 그제야 말도 안 되는 아름다움에 납득한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레미아의 뒤를 따랐다. 얼빠졌네- 가벼운 말투로 나를 힐난한 레미아는 작은 미소를 짓고는 이내 걸음을 멈추고 굳게 닫힌 나무문을 가리켰다.

“도착했네, 열어봐.”

-끼이이익

직접 열면 되지- 목구멍에 차오른 말을 집어삼킨 나는 군말 없이 문을 열고 손짓했다. 가벼운 에스코트에 장난스레 로브 끝자락을 쥐고 들어 올린 레미아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문 안으로 들어섰다. 괜히 긴장된 나는 입안에 고이는 침을 삼키고 그대로 건물 안으로 들어간 뒤 조용히 문을 닫았다.

-쿵

“몇 명 없어서 조용해. 일단 나랑 단장실로 가자.”

“네.”

우리 둘은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오르며 잡담을 나눴다. 가벼운 근황부터 시작해 용병을 시작한 계기까지 꼬치꼬치 캐묻는 레미아였지만 딱히 숨길 것도 없었고 숨겨봤자 수도 골목길에서 나를 찾아온 레미아에게 숨기는 게 가능한가 싶어 솔직히 털어놨다.

“음음, 음... 그럼 수도에 온건 20살 때?”

“그렇게 됐네요. 지금은 21살이지만요.”

“흐응...”

구체적인 나이를 말하고 괜히 너무 어려 보이나- 눈치 보인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레미아의 눈치를 살폈다. 내 나이를 곱씹던 레미아는 이내 짧은 혀를 날름 이며 입술을 축이고는 눈앞의 커다란 문을 똑똑 두들겼다.

[누구야!]

좋게 말하면 호쾌한, 나쁘게 말하면 성질 더러워 보이는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움찔하며 레미아를 바라봤지만 레미아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다시 똑똑- 두들기며 말했다.

“부단장이에요- 들어갈게요-”

[어, 어어어!]

-쿠당탕! 탕!

단장실 안에서 들리는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쿵쿵쿵- 바닥이 울렸다. 삐꺽이는 판자 소리와 떨리는 바닥에 데굴데굴 눈을 굴리며 레미아를 바라봤지만 익숙한 풍경이었는지 휘파람을 불며 딴청 피우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말 없이 옆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벌컥!

“어, 어서 와! 무슨 일이야? ...응?”

문을 열고 나오는 건 산적처럼 마구 뻗은 수염을 기른 아저씨였다. 그런데 그냥 아저씨가 아니라 온몸이 근육으로 뒤덮인 고릴라같은 아저씨였다. 레미아를 바라보며 순박한 미소를 짓던 아저씨가 옆에 서 있던 나를 보더니, 순식간에 일그러진 얼굴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 새끼는 또 뭐야?”

초면부터 욕질이라니, 싸가지 없는 태도에 화가 났지만 아무런 힘도 없는 나는 약자였다. 여기서 불만을 표하거나 대든다? 그냥 소리 소문 없이 으깬 카사노가 돼서 뒷골목에 나뒹구는 거지. 합죽이처럼 입술을 꾹 다물고 바라보니 싱글벙글 웃던 레미아가설명했다.

“저희도 슬슬 막내가 필요하잖아요? 괜찮아 보여서 데려왔어요.”

“아, 그래도 우리가 신입 받을 때는 좀 공개적으로-”

“되죠?”

“물론 레미아가 그러고 싶으면 가능하지. 응! 너, 이름이 뭐냐?”

매우 저자세로 쭈뼛거리던 아재는 레미아가단호하게 대답하자 해맑은 미소로 붕붕붕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일그러진 얼굴로 내 이름을 되묻는 그 이중성에 치가 떨린 나는 불만을 억누르며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고 내뱉었다.

“카. 사. 노.입니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서 여자들 덕택 좀 보겠다고 유명했던 카사노바의 이름을 따서 지었지만 결국 내가 보게 된 건 여자들의 장난질에 왕따가 된 나 자신이었다. 끔찍한 의도가 담긴 이름을 한 글자씩 불러주자 되새기던 아재는 안 그래도 거지 같던 얼굴을 더 일그러뜨리며 내게 물었다.

“카사노? 네가 순진한 여자들 등쳐먹으면서 돈 뜯고 다닌다던 그 새끼냐?”

“그런 적 없습니다.”

진짜 받았으면 억울하지도 않지- 어디서 들은 지도 모를 소문을 읊으며 다가오는 아재에게 억울하다는 듯이 양손을 뻗으며 말했지만 등쳐먹은 놈팡이로 확신했는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내게 천천히 다가올 뿐이었다.

“제가 알아봤는데 그런 애 아니더라고요. 걱정 안 해도 돼요.”

“그, 그래? 레미아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그래 내가 명단에 올려둘게.”

“감사해요.”

“그러면 그, 오늘 저녁에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갈래? 저번에 관심 있다고 한 레스토랑 예약했는데...”

“어머, 정말요?”

짝- 가볍게 손뼉 치며 나를 흘겨보는 레미아였지만 다시 눈을 돌려 단장을 바라보고는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그럼 카사노한테 방 알려주고 올 테니까, 준비하고 계세요?”

“저, 정말? 같이 가주는 거야?”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여태 안 간 것처럼 들리잖아요.”

“하하하! 미안, 그 얼른 준비할게! 막내 너는 얼른 방으로 꺼지고!”

-쾅!

귀에 걸리는 게 아닐까 봐 의심될 정도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문을 닫는 단장. 폭풍이 지나간 현장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콧노래를 부르며 계단을 내려가는 레미아를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니 1층까지 내려오고 나서야 레미아가 내게 물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저 단장, 원래 저럽니까?”

“원래 성격이 포악해, 네가 이해해.”

“죽이려고 하는 것 같던데요.”

두 눈에 죽인다고 써 붙인 것마냥 이를 갈며 바라보던 단장의 얼굴을 떠올린 나는 등줄기를 핥는 듯한 오싹함에 몸부림치며 애써 고개를 저었다.

“나를 너무 좋아해서 그래, 웃기지? 나는 생각도 없는데.”

“아...”

단장을 등쳐먹는 거구나. 꽃뱀 같은 레미아를 바라보며 혀를 내두른 나는 숙소로 안내해주겠다는 그녀를 계속 뒤따랐다. 가끔 복도에서 스치는 용병들에게 목레하며 뒤따르던 나는 너무 갑작스러워 와닿지 않았던 현실을 다시 한번 물었다.

“저, 그럼 저 진짜 용병단에 들어가는 겁니까?”

“네가 우리 용병단 제일 막내야.”

“저, 저는 제대로 할줄 아는 것도 없고 짐꾼 노릇만 죽어라 했는데요. 기껏해야 고블린 몇 마리 죽여본 게 다고...”

“그래서 데려왔어.”

“네?”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는 레미아를 바라봤다. 태평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던 레미아가 입술을 달싹였다.

“소문은 좆같이 났는데 매일같이 길드에 알짱거리면서 일 받아 간다고 하길래, 데려왔다고.”

“아...”

“보통 용병 길드 소문이 그래, 진짜거나 헛소문이거나. 딱 봐도 헛소문인 거 같더라고.”

“감사, 합니다...”

“에릴다가 항상 가는 주점이 있으니까, 어딘지 알려줄게. 나는 방만 알려주고 갈 거니까 찾지마?”

“네, 네.”

-뚝 뚝

바닥에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단장의 심보가 고약하더니 숙소의 누수도 확인 안 하나 보다. 부단장이 단장보다 나은 용병단이 말이 되는 건가?

“...울지말고.”

여전히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는 레미아. 꾸역꾸역 벌던 돈으로 지내던 돼지우리 같은 여관이 떠오른 나는 기쁜 마음으로 웃으며 레미아에게 말했다.

“아, 안 울어요, 흡, 와 숙소 기대된다. 아 원래 지내던 여관에 말 안 하고 왔는데!”

뿌연 시야로 레미아의 눈을 바라보며 해맑게 말하자 측은한 미소를 지은 레미아가내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내가 에릴다한테 돌려받으라고 말해놨어. 아마 그걸로 도박하고 있을걸?”

“그 사람은 왜 남의 숙박비로 도박을 한대요? 웃기네.”

눈에 먼지라도 가라앉은 건가? 보이지 않는 시야를 소매로 닦아낸 나는 숙소 관리도 안 하는 단장을 욕하며 멈춰선 레미아의 뒤에 똑같이 섰다.

“이방이야.”

간단한 마법진으로 보이는 명패가 걸려있는 나무문, 문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사과향에 코를 벌름거리며 향을 맡은 나는 문을 열라는 레미아의 손짓에 문고리를 잡고 그대로 문을 열었다.

-벌컥!

“오...”

마주 보는 침대 두 개와 옷장, 책상이 자리 잡은 평범한 방, 여관과 다른 점은 가구가 새것이라는 것과 침대가 편해 보이는 것. 그리고 방향제라도 뒀는지 사과향이 계속 코끝에 스친다는 것. 그게 매우 다른 점이었다.

“우린 사수랑 부사수 같은 방 쓰거든? 다음 의뢰가 이주 정도니까 에릴다랑 알아서 잘 지내.”

사수와 부사수, 에릴다? 에릴다에게 카사노가 네 부사수야- 라고 설명하던 레미아의 목소리가 뇌리를 스쳤다. 난데없는 여성과의 동거에 놀란 나는 입술을 뻐끔거리며 레미아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능글맞은 미소와 함께 손사래를 쳤다.

“무슨 말 할지 알겠는데, 걔는 그럴 애도 아니고 너는 에릴다를 덮칠 배짱도 없잖아? 그냥 둘이 지내.”

“그래도 남녀가 유별한데...”

“유별은 무슨... 간다. 딸기코의 무덤이라는 주점으로 가봐. 여기서 쭉 직진하면 나온다?”

괜히 드는 야릇한 생각에 몸을 베베 꼬며 레미아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그냥 콧방귀를 픽- 끼고는 그대로 떠나버렸다. 단장하고 밥 먹으러 간 뎄지- 나는 아름다웠던 에릴다를 떠올리며 책상에 올려진 키를 챙기고 문을 잠갔다.

그런 미녀랑 같은 방이라니, 설마 나 아다도 떼는 거 아니야? 짐꾼 시절 용병들이 하루 일당으로 창부들에게 가는 걸 지켜보며 얼마나 치를 떨었는지... 조각 같던 에릴다의 얼굴을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에 빠져든 나는 손에 쥔 키를 혹여나 흘릴까 품에 넣으며 들뜬 걸음으로 주점을 향해 걸었다.

“후후, 후우...!”

하루 벌어먹고 사는 좆밥 용병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보다 미녀, 거기다 엘프와 동거하게 된 사실이 더 흥분된 나는 품 안의 열쇠를 강하게 움켜쥐며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억눌렀다.

레미아는 에릴다가 도박이나 하고 있을 거라 했지만 장난을 잘 치는 레미아가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나는 술이나 한잔 마시고 있을 에릴다의 말동무를 하기 위해 걸음을 서둘렀다.

주황빛으로 가득 물든 노을이 수도를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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