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끼치는 녹슨 소리와 함께 문을 열자 덜렁이는 끈이 보였고 깊어 보이는 계단이 나를 반겼다. 들어가기 전 문을 고정시킨 후 허리에 찬 검을 꽉 동여맨 나는 고민하다 끈을 붙잡고 그대로 계단을 향해 내려갔다.
-끼이이이이... 쿵!
“오...”
어디로 이어졌을지 모를 통로지만 지금 갈피를 잡았을 때 마무리짓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들어왔건만 뭔가 잘못된 선택같았다.
뚝- 뚝- 뚝- 썩은 내 풍기는 물이 떨어지고 다닥다닥 벽에 붙은 파이프는 썩은 물들을 흐르게 하는 제역할 조차 못하고 있었다.
“지하수로인가?”
파여진 수로에 흐르는 물줄기를 보며 따라걸었다. 횃불이 일정하게 일렁이는걸 보니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는 모양이고, 갇힐일은 없단 생각에 허리춤에 찬 검을 꽉 움켜쥐고 그대로 앞으로 향했다.
저벅- 저벅- 저벅-
지루하리만큼 길게 이어진 통로를 한참 걷자 예상했던 대로 갈림길이 나왔다. 하지만 갈림길이란 말이 무색하게 한쪽은 아무런 발자취도 없는지 먼지와 물이끼가 바닥에 잔뜩이었고 한쪽은 비교적 깨끗한 바닥에 저 멀리 불빛까지 일렁이고 있었다.
찰박- 찰박- 찰박-
모닥불에 뛰어드는 나방마냥 일렁이는 불빛을 향해 다가가다 그만 고인 물웅덩이를 밟았다. 왕관처럼 튀기는 물방울들을 무시하며 계속 걷자 인기척이 조금씩 느껴졌다.
“으으으...”
어느새 축축한 바닥이 끝나고 돌길이 시작되자 인기척의 정체가 밝혀졌다. 바닥에 입맞추듯 엎드린 걸인과 환자들이 앓는 소리를 내며 사람들에게 손을 내뻗고 있었고 그들을 지나치는 여러 사람들이 수로를 헤집고 있었다.
“오...”
단순한 비밀통로라고 생각했는데 꽤 본격적인 곳임을 자각한 나는 허리춤에 찬 검에 손을 얹고 주변을 둘러봤다. 누가 봐도 험악한 패거리들과 로브를 푹 눌러쓴 수상한 인간들, 허리를 곧게 펴고 움츠러든 기색 하나 없는 강자들까지.
“나리...!”
“제발... 한 푼만...”
감상에 잠기기도 전에 텁- 텁- 갈퀴처럼 바지춤을 움켜쥐려는 손을 피한 나는 통로 깊숙이 들어갈 수록 촘촘해지는 인파에 혀를 내두르며 살짝 몸을 움츠렸다. 어딘지도 모를곳에서 시비가 걸렸다간 뒷수습하기 힘들게 뻔했다.
용병단에 있을 적에 이런 곳을 온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특히나 더 조심해야 했다. 가본 곳이라해 봐야 홍등가나 뒷골목이었지 이런 본격적으로 수상한곳은 아예 처음이었다.
툭-
“아.”
“히발...”
조심해야겠단 다짐이 무색해질 정도로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어깨를 부딪힌 남자는 턱이 으스러졌는지 발음이 새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위아래로 내 몸을 핥듯이 바라봤고 얽힐 생각이 없었던 나는 대충 고개를 까딱인 후 지나가려했지만, 이내 잡혀 버리고 말았다.
텁-
“이 개새히가- 사라믈 므시해?”
발음이 제멋대로 새는지 일관성없는 새는 소리로 지껄이는 남자의 모습에 혀를 내두른 나는 얹어둔 손에 힘을 주며 주변을 둘러봤다.
“저번에 쓴맛 보고도 또 지랄이구만.”
“우리야 구경하는 재미가 있으니 상관없지.”
시비걸린 내 꼴을 보곤 재밌다는 듯이 시시덕거리며 구경하는 놈들이 몇몇있을 뿐 싸우던 말던 신경도 쓰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기에 해결하고 떠나려 했지만 예상 못 한 구원이 내게 벌어졌다.
“조용히 하라 하지 않았나?”
등골을 베는 듯한 차가운 여성의 목소리가 툭- 남자와 나를 갈랐다. 내 어깨를 집고 눈을 부라리던 남자는 여성의 목소리에 겁에 질린 개처럼 으스러진 턱으로 침을 질질 흘리며 으아악- 소리와 함께 도망갔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몇 번이고 넘어졌지만 남자는 끝까지 뒤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 모습에 내 뒤에 있을 여성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저러는걸까- 라는 생각에 두려웠지만 어쨌든 소란을 해결해준 만큼 인사는 건네야했기에 나는 이 악물고 뒤돌았다.
“감사합니다.”
“......”
빙글- 뒤로 돌자마자 인사를 건넸지만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살짝 굽힌 허리를 언제 펴야하나- 하는 생각을 데굴데굴 머릿속으로 굴렸지만 기나긴 침묵에 결국, 내가 먼저 허리를 폈다.
“...!”
검은색 로브를 걸쳤지만 얼마나 쫙 달라붙는지 폭발할것 같은 몸매의 윤곽이 훤히 드러났다. 나도 모르게 몸매부터 봐버려 서둘러 시선을 올리자 더한 충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례하군.”
면사포 너머 입술이 달싹이며 나를 꾸짖었지만 나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눈앞의 여인을 바라봤다. 검은색 면사포로 코와 입가를 가렸지만 눈가의 피부는 훤히 드러났다. 밀크초콜렛같은 달콤한 색, 그 위에 박힌 촘촘한 붉은색 눈은 나와 마찬가지로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무시할 수 없는 아우라에 한 번 더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자 여인은 흐응- 가벼운 콧바람과 함께 나지막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만 가지.”
순간 무슨 소리인가 했지만 사락- 사락- 천 스치는 소리에 내게 한 소리가 아니란 걸 깨달은 나는 떠나가는 두 인영을 눈으로 쫓았다. 당당한 걸음걸이에 따라 씰룩이는 커다란 엉덩이와 터질 것만 같은 가슴, 그에 어울리지 않게 어깨에 메고있는 묵직한 자루까지.
그 뒤를 바짝 쫓던 인영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곤 힐끔- 나를 바라봤다.
“...?”
나를 구해 준 여인보다 꽁꽁 감싼 상태였지만 단 하나, 눈만큼은 훤히 드러났다.
그 눈은 시에라를 따라 휘슬 남작가에 온 이후 페리샤 다음으로 지긋지긋할 정도로 자주 바라본 또렷한 눈매였다.
“당신...”
“......”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온몸을 꽁꽁 싸맨 그녀가 멈칫- 걸음을 멈췄지만 이윽고 몸을 돌려 여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저벅-
날 도와 준 두 명은 어느새 인파에 휩쓸려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마를 짚고 고민했지만 쉽게 정리 될 리 없었기에 오히려 머리만 복잡해진 기분에 나는 머리를 털며 억지로 다리를 움직였다.
일단 상황 정리는 나중에 해도 충분하니 지금 최우선은 빈델의 꼬리를 제대로 잡아채는 것과 확실히 잡아낼 증거였다.
“후우...”
다행히도 후보지가 벌써 눈에 밝힌 나는 파도 같은 인파를 헤집으며 수로 중간중간 차려 둔 가판대나 가게 따위를 유심히 관찰하며 전부 살펴봤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볼뿐, 아무런 제재도 없었기에 금방 근처에 있는 곳은 전부 둘러봤지만 광물 같은 걸 취급하는 곳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넓을지 감도 안 잡히는 수로를 전부 뒤져야하나? 골머리가 아파왔지만 해답이 보이지 않는 그때 흘려듣지 못할 대화가 멋대로 들려왔다.
“그 새끼 살판났나 본데, 종일 쪼개고 있잖아?”
“나 같아도 그렇겠다. 푼돈주고 챙긴 월광석을 몇 배로 불려 먹고 있으니까.”
술이라도 한잔 걸쳤는지 이리저리 튀는 발걸음으로 걷던 남자 둘은 불만스러운 어투로 무언가 얘기하고 있었다. 이후 흐르는 침을 스읍 삼킨 남자는 이내 고개를 살짝 낮추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번 예방교육이나 해주러 가 볼까?”
“나쁘지 않지, 혼자 해처먹고 있으니 도우러 올놈들도 없을 거 아니야 크큭.”
휘청- 휘청- 취기로 뱉은 농담따먹기였을까? 결국 아무 일 없다는 듯 어깨로 인파를 헤집는 남자들의 뒷모습에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월광석을 매입했을 만한곳을 눈독들였다.
저벅- 저벅- 저벅-
얼핏 커다란 광장같이 보이지만 여덟갈래 정도 길이 나눠진 곳이었기에 재빠르게 구석진 곳만 둘러본다면 오늘 안에 해결하겠다는 견적이 나와 나는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곳, 두곳-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부랑아들을 피해 가며 세 번째 구불구불한 골목에 발을 들이자 질리게 맡았던 광물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갈피를 잡은 흔적을 놓치기 전 미약하게 마나를 끌어올린 나는 최대한 잔향에 집중하며 달렸고 드디어 첫 번째 목표를 달성할수 있었다.
“응? 뭐요?”
몸집보다 작은 모루에 걸터앉은 드워프는 발치에 놓인 텅 빈 상자를 발끝으로 툭툭 차며 금화를 세고 있었고 그러다 자신을 가리는 내 그림자에 고개를 들곤 삐딱하게 질문을 던졌다.
“여기, 뭐 하는곳입니까?”
슬쩍 보니 바닥에 있는 상자는 시에라가 보관할 때 쓰는 상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코끝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월광석 냄새는 여기라고 내게 확실히 주장하고 있었다.
내 질문에 텅- 모루에 주머니를 소리 나게 얹은 드워프는 오른팔에 달린 갈고리 끝으로 자기 수염을 문지르며 누런 이를 드러냈다.
“어디 똘마니냐? 아님 외지인? 처음같은데 그냥 가던 길 가지?”
고약한 냄새에 코를 찌푸린 나는 굴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러고 싶은데 찾아야 할 게 있어서 말이죠. 여기서 광물 취급하는 곳인 이곳 뿐입니까?”
괜히 떠보거나 숨겼다간 눈앞의 드워프가 변덕을 부릴 거 같아 솔직하게 질문했다. 그런 내 질문에 흐으-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 드워프는 텅- 텅- 텅- 발뒤꿈치로 모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글쎄- 뭘까?”
텅- 마지막 경고라는 듯 크게 울리는 철소리와 함께 드워프는 누런이를 감추고 추악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올려다 봤다. 눈에 보이는 수작에 쓴웃음을 지은 나는 품에 챙겨둔 주머니에서 은화 하나를 꺼내 그대로 던졌다.
텁- 잘근-
“흐흐- 제국 은화구만.”
잽싸게 낚아챈 드워프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은화를 한번 씹곤 그대로 주머니에 홀라당 넣었다. 저런 건 보통 금화에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할때쯤 팔짱을 낀 드워프가 걸걸한목소리로 먼저 내게 물었다.
“값도 치렀겠다. 진짜 외지인 같은데 무슨 볼일이슈? 이근처에서 광석 값 잘쳐주는 건 나밖에 없어.”
“그래 보이긴 하네요.”
드워프의 말에 주변을 슬쩍 둘러봤지만 제대로 된 모양새를 한곳은 여기뿐이었다. 나머진 줘도 안 가질 잡동사니를 대충 널어둔 가판대나 말린 풀들을 어설프게 말아둔 담배라고도 할 수 없는 쓰레기를 파는 놈들 뿐이었으니까.
그런 내 대답에 드워프는 못생긴 얼굴로 활짝 웃으며 갈고리를 까딱거렸다.
“여기에 물건을 제대로 알아볼놈들은 얼마 없어. 안으로 더들어간다면야 있겠다만은.”
“더 들어가면 있긴 합니까? 더 들어가면 수도 쪽인 건가?”
내 질문에 외팔이 드워프는 수염을 파들파들 떨며 껄껄 웃더니 살짝 흐른 침을 손등으로 닦으며 대답하기 시작했다.
“자네 완전 초짜구만? 그런 질문은 여기서 아무도 안 한다고. 여긴 제국의 지하 수로야. 모두 이어져 있다고.”
뭐라도 알아야 그런 질문을 안 하지. 괜히 비웃는 모양새같아 심기가 거슬렸지만 참아낸 나는 찌뿌둥한 손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궁금한걸 마저 물었다.
“그럼 모든 지하수로가 여기처럼 구걸하는 거지들이나 음흉한놈들이 좋을 대로 돌아다닙니까?”
“크크, 어떨거 같나?”
갈고리를 휘적거리며 히죽거리는 드워프에 면상에 나는 결국 이를 살짝 드러내며 대답을 독촉했다.
“빨리 대답이나 해주시죠. 은화 하나 받아먹었으면 됐지 뭘.”
“알았네 알았어, 요즘 젊은이들은 다 성질이 급한가보구만. 여기처럼 뒷세계 인간들이나 잡배들이 자리 잡은곳은 드물어, 웬만한 도시 아래에만 뭉쳐 있지.”
“오가기 편해서 그런가요?”
“그것도 있고 황제의 눈이 안 닿는 낡은쪽 통로는 흑마법사나 연금술사들이 다 먹어둬서 그래, 그치들이 만든 키메라나 크리처들이 도사리는 곳에서 뭘 할 수 있겠나?”
단순히 거래만 하는 드워프인 줄 알았는데 꽤 디테일한 정보가 술술 나오는 걸 보니 여기서 오래 해먹은 놈 같았다.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이 든 나는 지하수로에 대한 정보도 수집했겠다 본론에 들어가기 위한 미끼를 하나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