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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170화 (170/395)

화륵-

화륵-

화륵-

뒷걸음질 치는 빈델을 에워싼듯 일렁이는 불빛이 하나씩 켜졌다. 눈앞도 잘 보이지 않던 어둡던 가게가 환하게 밝아졌지만 도리어 빈델의 얼굴은 새까맣게 썩어갔다.

철그럭- 철그럭-

차갑게 식은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남작과 그의 걸음에 맞춰 다가오는 기사들, 그리고 자기 뒤에 자리 잡은 병사들까지.

손짓 한 번이면 사냥개처럼 달려들어 흔들거리는 머리통을 잘라 내겠지. 극도의 불안감에 체념하려던 빈델은 기사들의 틈새에 자리한 카사노를 발견하곤 무릎에 힘을 실었다.

파악!

“큭!”

파삭- 빈델에게 밀려 병사의 손에 들린 랜턴이 박살 났지만 다른 병사가 능숙하게 불씨를 밟아내 제거했다. 그치만 정작 중요한 빈델은 병사들을 밀쳐 내고 가게를 빠져나갔기에 지켜보던 남작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부하들을 꾸짖었다.

“뭐 하고 있나! 당장 안쫓아가고!!!”

남작의 호통에 얼타던 병사들이 우르르 가게의 집기를 걷어차가며 뒤쫓았지만 기사들과 카사노는 정자세로 가게에 남을 뿐 뒤쫓진 않았다, 그것조차 남작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충혈된 눈으로 침튀겨 가며 한 번 더 소리 질렀다.

“내 말이 안 들리나? 당장 저 쥐 새끼를 내 눈앞에 데려오라고!”

“그치만 남작님, 더러운 시궁쥐들이 남작님께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주군의 명을 어길 수 없던 기사들은 자세를 풀고 남작의 말대로 뒤를 쫓으려 했지만 아무 관계없던 카사노는 남작에게 성큼 다가와 고개 숙이며 충고했다.

카사노의 말대로 아무 무력없는 남작이 온갖 시정잡배와 뒷골목 인간들이 설치는 지하 수로에 홀로 남으면 위험할게 뻔했기에 기사들도 속으로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남작에겐 오히려 쓸데없는 말대꾸로 들렸기에 그의 화를 돋구었다.

짜악-

“당장 잡아 오라고!!!”

후두둑- 냄새 나는 침을 튀기는 남작을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내려다보던 카사노는 괜히 나서서 뺨이나 맞았네- 라는 생각하며 고개를 푹 숙이곤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아프진 않았지만 기분은 좆같았기에 남작의 불행을 기도한 카사노는 그대로 기사들을 뚫고 빈델의 뒤를 쫓았다. 타다닥- 달려가는 카사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남작은 그제야 분노가 조금 가라앉는걸 느끼며 몇 명의 기사만 병사들과 합류하라 명령한 후 의자에 앉아 손짓 했다.

“데려오도록.”

남작의 명령에 남은 기사 중 한 명이 재빠르게 문을 열었다. 그러자 쿵- 사지와 주둥이가 묶인 드워프가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남작의 앞까지 스스로 기어 오기 시작했다.

“후우…”

스윽- 품에서 능숙하게 크래프톤산 담배를 꺼낸 남작은 랜턴을 직접 들어 훅- 끝에 불을 붙인 후 깊게 숨을 빨아드렸다. 폐부와 침에 젖은 입속 깊이 스며드는 연기에 쾌감을 느끼기도 잠시 꿈틀거리는 드워프에게 짜증이 치솟은 남작은 후우우- 짙은 연기를 그의 얼굴에 내뱉었다.

“켈룩- 켈룩! 케헥- 후웁- 우욱-“

담배 연기는 익숙지 않은지 눈물을 찔끔 흘리며 쿵쿵 발 뒤꿈치로 바닥을 두드리는 드워프에 모습에 피식- 실소를 흘린 남작은 검을 뽑고 대기 중인 기사에게 가볍게 턱짓 했다.

서걱-

“히이이익!!!”

남작의 턱짓과 함께 공기를 가르는 금속음이 들렸기에 드워프는 크게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지만 그가 예상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가볍게 잘린 밧줄과 함께 자유로워진 팔과 다리,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드워프는 빠악- 자기 머리통을 가격하는 묵직한 한 방에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찍었다.

“재갈도 풀게.”

툭-

“베헵- 우욱, 남, 남작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발 목숨만큼은 살려주십시오!!!”

재갈이 풀리고 입이 열리는 순간 드워프는 수십 수백 수천 번 머릿속으로 떠올린 사과를 망설임 없이 내뱉으며 남작의 발치에 얼굴을 문질렀다. 지하수로를 오가며 썩은 물이 묻은 부츠였지만 드워프는 살수만 있다면 엉덩이도 대줄 수 있다 자부했기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쯧, 버러지같은 게… 됐다. 냄새 나는 이곳에 잠시라도 있고 싶지 않으니 어서 안내해라.”

남작의 요구에 당황한 드워프는 입만 뻐끔거릴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화가 치솟은 남작은 부츠 밑바닥으로 드워프의 뒤통수를 짓밟으며 다시 한번 설명했다.

“쥐 새끼랑 네놈이 손잡고 빼돌린 내 물건! 어디 있는지 어서 안내해!”

그제야 남작의 요구를 이해한 드워프는 싸아- 등골에 흐르는 식은땀 한 방울을 오롯이 느끼며 겨우 입을 떼 작은 목소리로 남작에게 변명했다.

“아, 그게, 그… 남작님, 노하지 마시고 들어 주십시오. 그게- 물건은 이미 전부 넘겨 버렸습니다. 정말입니다. 지금 저에겐 월광석 한톨조차도 없습니다요.”

드워프의 대답에 남작은 온몸을 휘감는 열기가 치솟다 못해 머리에 몰려 자기 머리를 짓이길 것만 같아 결국 분을 참지 못하고 드워프의 뒤통수에 얹은 발을 몇 번이고 휘둘렀다.

뻐억- 뻐억- 빠악- 콰직-

단단한 구둣발로 머리통을 짓밟자 나무판자에 부딪치며 살벌한 소리를 내고 기어코 뼈까지 부러지는 소리가 나왔지만 남작은 참지 않았다.

몇 번이나 참고 몇 번이나 넘어간 결과가 이모양 이꼴이었다. 당장 행밀 백작이 오늘내일 한다지만 백작 부인은 건재했다. 사교회와 제국 여러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그녀에게 밉보인다? 아무리 행밀 백작의 충신이라지만 귀족들의 인맥에서 버려지는 건 시간문제일게 분명했다.

“게헥- 끄흑, 데바- 데바, 요서해 주시시오…”

몇 번이나 짓밟은 탓에 힘이 부쳐 숨을 고를 무렵, 만신창이로 발치에 놓인 드워프가 피에 묻은 얼굴을 밑창에 문지르며 애원하고 있었다. 벌레 같은 몰골에 조금 유쾌해진 남작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낮은 목소리로 통보했다.

“네놈이 내 물건으로 해처먹은 모든 걸 가져와라. 모든 기록과 물품, 그리고 돈까지. 알았나?”

귀족답지 않은 천박한 말투 너머로 엿보이는 살기에 드워프는 억울하다못해 서러워 눈물이 줄줄 흘렀지만 슬픔 못지않은 분노를 조용히 갈무리하며 고개를 숙였다.

밑바닥의 증오를 아무것도 모르는 남작은 분명 방심하는 순간이 올게 뻔했다. 그때 복수해도 늦지 않으니 지금은 바짝 엎드려 기회를 노려야 했기에 남작의 명령대로 그간 벌었던 것들을 하나씩 모아 그의 앞에 끌어모았다.

“많이도 해먹었구나, 밖에 전부 옮겨두도록.”

네- 네! 당찬 대답과 함께 기사들이 바닥에 놓인 물건들을 하나씩 가게 밖으로 옮겼다. 묵직한 자루와 끝없이 쌓이는 상자에 수레까지 끌고오라고 명령한 남작은 코끝을 맴도는 악취에 그대로 가게를 빠져나갔다.

**

“하아, 하아, 크흐, 후웁! 하아!”

쫓아오는 병사들을 피해 나간 빈델은 그동안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탈출할 궁리를 떠올렸다. 인파를 뚫으며 나가야 병사들도 쫓지 못할 거란 결론을 내린 빈델은 곧바로 쏘아지듯 앞으로 달렸지만 이내 모루에 놓인 자루를 보고 눈을 질끈 감으며 그대로 낚아채듯 어깨에 메고 달리기 시작했다.

“달려, 잡아라!”

병사들을 독촉하는 기사의 고함을 들으며 힘겹게 달리던 빈델은 가게에 들어가기 전과 달리 통로를 가득 메운 인파를 확인한 후 입술을 질끈 씹으며 그대로 어깨에 맨 자루를 뒤집고 전부 쏟아 냈다.

-콰르르르르,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다듬어진 바닥에 월광석이 쏟아지며 데굴데굴 굴러 갔고 굴러간 월광석은 그대로 행인들의 발에 걷어차이거나 기울어진 바닥에 따라 흘러가는 둥 하나의 달빛 파도가 되어 통로를 가득 채웠다.

“뭐야! 월광석이잖아?”

“돈되는 거야, 얼른 챙기라고.”

“무슨 일인진 모르겠는데 재수도 좋구만.”

갑작스러운 사건임에도 지하수로 주민들은 개의치 않으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자기 주머니나 가방에 월광석을 차곡차곡 담기 시작했다. 그 가치를 모르던 걸인들조차 가느다락 손가락으로 챙겨 갈 정도였으니 통로에 아비규환이 벌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끄악, 밟지마! 비키라고, 씨발 새끼야! 빠악- 크흑, 이 새끼가!

단순한 광석줍기에서 한 줌의 시비가 곁들여지자 바닥에 구르는 월광석 더미에 피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하수로를 메운 오물 냄새는 금세 비릿한 피 냄새에 묻혔고 빈델은 가뿐한 몸을 이끌고 그틈으로 파고들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막아, 막아라! 전부 막아, 남작님의 사유물이다!”

“거지새끼들아. 더러운 손 안떼?”

기사들의 명령에 빈델을 쫓던 병사들은 방패를 휘둘러가며 거지나 행인들이 챙긴 월광석을 뺏기 시작했다. 정리를 맡긴 기사들은 뒤늦게라도 빈델을 쫓아갔지만 이미 사라진 그를 찾긴 어려울게 분명했다.

“꼭 시체 파먹는 구더기들 같네.”

사람을 패가며 피 묻은 월광석을 강탈하는 병사들과 뒤섞여 그들에게 받아 낸 월광석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기사들, 뺏기지 않으려고 단검이나 몽둥이를 휘두르는 양아치와 베어넘기는 놈들까지. 빈델의 행동하나에 난리가 난 광경을 평가한 카사노는 혀를 내두르며 조용히 자리에서 벗어났다.

‘뭔가 저택으로 갈 거같단 말이지.’

궁지에 몰린 빈델이 어디로 도망갈까- 생각해봤지만 그가 얼마를 가진지도 모르고 평소 무슨 생각하는지도 몰랐기에 카사노가 추측할 수 있는 건 빈델의 욕망뿐이었다.

‘머리가 돌아버려서 페리샤를 찾으러 갈수도 있고. 놓친다해도 제깟놈이 제국 상대로 도망치겠어?’

주된 피해자는 남작이었지만 빈델에게 당한 건 행밀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한낱 집사가 남작과 백작이 가진 모든 수단에서 벗어날리가 없었기에 카사노는 조급함을 버리고 지하 수로 이곳저곳을 살피며 빈델의 흔적을 뒤쫓았다.

한편 병사와 기사들을 차근히 떨어트린 빈델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크아아! 씨발!”

어떻게든 평소에 봐둔 비상통로로 도망친 빈델이었지만 하나하나 갈 때마다 막혀 버려 갈 곳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인파에 휩싸여 쉽게 뚫지 못하거나 뒷골목 주민들의 구역싸움, 하다못해 통로 앞에서 죽기직전까지 얻어맞고 있는 잡배들까지.

온 세상이 자기 불행을 바라는 것만 같은 억지스러운 상황에 빈델은 입술을 깨물며 겨우 찾은 멀쩡한 출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드워프의 가게에 가까운 건 흠이었지만 어차피 기사와 병사는 자신이 벌인 일의 뒷정리하고 있을 테니 문제 될게 없었다. 아니 없다고 생각했다.

사다리를 발견하고 달리던 빈델은 옆골목에선 느껴지는 시선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언제 나와 같이 뺀질한 미소를 띄운 카사노가 자신을 발견하고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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