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189화 (189/395)

똑똑똑- 예상이 맞았는지 곧바로 마차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나는 페리샤와 가볍게 눈을 맞춘후 문을 열었다. 모자를 벗고 공손하게 인사한 마부가 페리샤를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백작령 앞에 도착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검문소에 백작 부인께서 준비하신 마차가 대기 중이어서요, 바로 그걸 타고 가시겠습니까?”

힐끔- 마부의 전언에 내 눈치를 살핀 페리샤는 알겠다는 내 신호에 곧바로 그러겠다 대답했다.

“아, 그럼 내리셔서 곧장 갈아 타시면 됩니다. 짧은 기간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아가씨.”

“아니예요, 덕분에 편하게 호르미아까지 올 수 있었답니다? 여기 자그마한 성의예요.”

스윽- 미리 가방에서 꺼내둔 주머니를 마부에게 건넨 페리샤는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저 멀리 검문소 앞에 대기 중인 검은 마차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곧바로 페리샤의 가방을 짊어진 후 그녀의 뒤를 따랐다.

“짐은 제가 옮겨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마차 위에 얹혀진 짐을 푸는 마부에게 짧게 묵례한 나는 곧바로 페리샤를 앞질러 텅- 마차 안에 짐을 싣고 문 옆에 서 있는 메이드와 집사 앞에 마주 섰다. 또각또각- 여유롭게 걸어온 페리샤는 스윽-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꾸벅 인사하는 메이드를 향해 조곤조곤 말하기 시작했다.

“마중을 나와주신다니, 환대에 감사드려요.”

페리샤의 감사 인사에 노년의 집사가 허리를 굽히며 정중히 사양한 후 척- 팔을 뻗어 페리샤에게 안내했다.

“아닙니다, 백작 부인께서야말로 영지의 업무로 바쁠 텐데 찾아와줘서 정말 감사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타시죠.”

터벅터벅- 백작 부인의 전언을 읊은 집사는 곧바로 익숙한 몸놀림으로 마차 위에 올라타 말들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옆에 서 있던 메이드는 마부가 옮겨 주는 짐을 차곡차곡 받아 마차에 싣기 시작했기에 먼저 마차 안에 올라탄 나는 페리샤의 손을 붙잡고 그대로 당겨 앉혀준 뒤 텅- 문을 닫았다.

“백작 부인도 벌써 남작의 소식을 들었나 보네요.”

아직 남들의 공간 안이었기에 슬쩍 존댓말을 던졌다. 그런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페리샤는 진중한 얼굴로 자기 입술을 쓰다듬으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호르미아에서 나오는 희귀한 재화와 다양한 부산물, 그걸 원하는 귀족들에게 자기 파벌로 들어오라하며 휘하의 많은 귀족들과 여러 정보를 공유하는 게 백작 부인이예요. 그러니 아버님에 대한 소식도 틀림없이 들었겠죠.”

“귀족도 파벌싸움이 심한가요? 제가 알기론 이미 황태자가 있는 걸로 아는데.”

황제에 대한 이야기는 별 관심 없었다. 내가 제국 관계자를 본다니, 황제는커녕 황자 알몸도 죽을 때까지 볼일 없을게 뻔했다. 그런 내 질문에 살짝 식은 눈으로 보던 페리샤가 큼- 헛기침과 함께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이덴리히 3세 황제가 노예폐지제를 필두로 귀족파벌 전부와 척을 졌죠, 애초에 제국소속 노예말고도 귀족들의 영지에 있는 노예 대부분이 폐지되면서 자유민이 됐거든요.”

“오, 그래서요?”

“그 이후 귀족들의 총애와 충성을 받는게 로이만 황태자님이예요. 자기 아버지인 황제 앞에서 노예제의 부활을 주제로 논쟁했거든요. 이미 황태자 책봉 한 이후기도하고 황제께서도 별생각이 없는지 여전히 황태자기도하고요.”

“그럼 백작 부인도 황태자 파벌인가요? 아가씨도?”

“저흰 이야기가 좀 달라요. 그, 황자중에 황제의 칙명을 받들어 제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임무를 수행하는 6황자님이 계시는데 그분을 지지하신답니다.”

“황자가 황제의 칙명을 받아 제국을 돌아다니면서 일한다고요?”

내 질문에 팡- 펼친 부채를 펄럭이던 페리샤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이어 나갔다.

“…백작 부인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니까요, 저희는 호르미아 바로 근처 영지인데다 백작 부인의 지원이 없으면 귀족위를 파는 것밖에 안 남는 아무 영향력도 없는 남작 위니 6황자님이 어떤 분이어도 지지해야 한답니다.”

그러고 보니 딱히 휘슬 남작령의 특산물이라던가 대단한점을 보진 못했다. 열심히 농사짓는 농지민과 백작 부인에게 바칠 공물만 챙기는 남작,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뭐, 말 그대로 제국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을 해결하는 황자님이신데 왜 지지하는진 잘 모르겠어요.”

“그러면-“

덜컹- 조용히 달리던 마차가 소리내며 천천히 멈춰 섰다. 드르륵- 쿵- 드르륵- 마차 천장에서 들리는 짐내리는 소리와 주변을 오가는 분주한 발소리에 도착한걸 깨달은 나와 페리샤는 힐끔- 창문 너머를 내다 봤다.

“오…”

호르미아에 오면서 저 멀리 끝에 자리 잡은 거대한 저택은 몇 번이나 봤다. 하지만 한 번도 이 앞에 내가 오리라곤 생각도 못 했기에 나도 모르게 한심한 감탄사가 나와 버렸다.

검푸른 빛 벽돌과 회색벽돌이 조화롭게 섞여 지어진 저택은 매일매일 누군가 마법으로 관리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윤이 났다. 저택 담장을 두르는 수많은 덩굴과 정돈된 수풀, 가지런한 잔디와 주택 몇채만한 커다란 정원까지. 몽환의 밀림 바로 옆에 근거지를 둬 밀림의 재화를 빨아먹는 영주의 저택다웠다.

똑똑똑-

[도착했습니다. 짐은 저희가 옮겨드릴 테니 먼저 방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끼이익- 집사의 말과 함께 마차 문이 열렸다. 먼저 재빠르게 마차에서 벗어나온 나는 또각또각- 우아한 모습으로 내려오는 페리샤가 넘어지지 않게 손을 잡아 이끈 후 정문 앞에 대기하는 집사와 함께 조용히 저택으로 들어갔다.

창문밖에서 볼 땐 그냥 커다란 저택같았지만 막상 가까이서 보니 검푸른 괴물이 입을 벌린 채 우리를 맞이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괜한 망상에 쿡- 페리샤의 뒷목을 찌르며 장난친 나는 미세하게 느껴지는 시선의 주인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다가 집사의 안내에 따라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호위 기사님은 이곳입니다.”

쿵- 대답도 듣지 않고 방문을 닫는 집사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그것도 잠시, 꽤 넓은 방에다 침대 옆 가지런히 놓여 정장과 여러 옷가지에 숨이 턱 막힌 나는 일단 갈아입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톡- 톡- 단추를 풀고 윗옷을 벗었다.

“뭔가 살찐거 같은데.”

단련을 한 게 도대체 얼마만일까? 걸어만 다니면 여자를 만나는 복에 겨운 상황에 게을러진 내 몸을 꼼꼼히 관조한 나는 방 한가운데 놓인 검은 보석으로 장식된 전신거울에 이런저런 자세를 잡으며 시간을 때웠다.

반짝- 보석이 반짝였지만 떼갈수도 없으니 관심을 껐다. 지이익- 툭- 어차피 갈아입어야 하니 바지도 벗자- 하는 생각에 단추를 풀고 바지를 내렸다. 팬티도 갈아입어야 하나? 생각하는 찰나 똑똑똑- 일정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실례합니다. 백작 부인께서 시중들라 하여 왔으니 문을 열도록 하겠습니다.]

당돌한 통보에 뭐라 대답하려는 찰나 벌컥- 문이 열렸다. 새까만 메이드복과 새하얀 레깅스, 새까만 구두. 거기에 새하얀 두건과 새까만 면포를 쓴 두 메이드는 내 모습을 보고 멈칫- 하곤 이내 착착착 바닥에 떨어진 옷과 걸린 옷을 들어 정리하면서 내게 입히기 시작했다.

스윽- 스윽- 스윽-

타인이 입혀주는 탓에 몸 곳곳에 천스치는 느낌이 나며 쿡쿡 부드러운 손가락이 몸을 찔렀다. 묘하게 몸을 주무르는 듯한 손놀림에 목이 말랐지만 뭐라 하진 못했다. 내 정면의 메이드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틱- 틱- 틱- 단추를 잠그면서 정확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

새까만 면포라 그 너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만 같았다. 살짝 떨리는 동공과 익숙한 숨소리, 몇 번이나 마주쳤던 것만 같은 상황에 입술이 떨어질 때쯤 등 뒤에 서 있던 메이드가 단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끝났습니다. 잠시 후에 시종을 불러 안내해드릴 테니 잠시 쉬고 계십시오.”

꾸벅- 내 몸에서 떨어져 단정한 인사를 건넨 둘은 폭풍처럼 왔다가 폭풍처럼 떠나버렸다. 방안에 남은 향긋한 여인의 향기와 기시감에 툭툭툭- 발을 굴린 나는 괜히 머리가 복잡해지는것 같아 털썩- 침대에 누우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일단은 페리샤와 백작 부인 앞에 대면해야 했다. 근데 왜 호위 기사로 올라가있는 거지? 기사도 아닌데. 한번 꼬리에 꼬리문 생각은 결국 계속 내 머릿속을 흐트려놨고 결국 시종이 찾아올 때까지 나는 단 1초도 쉬지 못하고 방에서 끌려 나갔다.

터벅터벅- 터벅터벅-

안내해드리겠단 말 의외엔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는 시종을 따라 구분안 가는 통로를 몇 분이고 걸었다. 그 끝에 만난 페리샤의 얼굴은 1년 만에 만난 애인의 얼굴보다 더 반가웠다.

툭- 페리샤의 옆에 서자 먼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찌른 페리샤가 속사포 같은 조언을 내뱉기 시작했다.

“제가 먼저 이야기 꺼내달라하기 전까진 대화에 끼어들지 않기, 백작 부인이 아무리 뭐라그래도 끼어들지 않기, 백작 부인이 무슨 요구를 해도 끼어들지 않기.”

“…무슨 아이한테 어디 놀러가기 전에 경고하는 것만 같군요.”

“후훗- 그만큼 조심해야 한다는거예요. 아시겠죠? 제말 꼭 들어 주셔야 한답니다?”

꿈뻑- 믿는다는 의지가 담긴 연하늘빛 눈동자가 눈꺼풀에 덮여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그런 눈으로 바라보면 쉽게 거절할 수 없는걸 알면서도 써먹는 페리샤의 수법에 나는 시종들 몰래 쿡- 페리샤의 손등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가씨를 지킨다는 것만큼은 양보 못하겠어요.”

“후후, 여기서만큼은 저만의 기사님, 무슨 일이 있어도 저를 지켜 주시는 건가요?”

“당연하죠.”

꾸욱- 누가 먼저라할 것 없이 얇은 새끼손가락이 휘감겼다. 손가락만 이어져 있음에도 더 기분 좋은 온기가 전해지는 것만 같아 행복한 미소를 띤 우리였지만 또각- 시종의 구두 소리가 멎으며 거대한 검푸른 빛 문 앞에 선 순간 미소는 자연스럽게 지워졌다.

백작 부인에게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방문하는 것이다- 라는 이야기만 들었을 때 솔직히 큰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페리샤만 보호해주면 되겠지- 라는 간단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페리샤의 저택과 압도적인 차이를 실감한순간부터 점점 긴장됐다. 여긴 호랑이굴이였고 이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도저히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방안에서 홀로 고민과 고민을 거듭하며 마차에 올라탄 페리샤는 알면서도 벌어진 입에 걸어들어온 것이다.

아무 자각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책임이 없는 건 아니었다. 꾸욱- 새끼손가락에 걸린 가느다란 약속을 굳게 붙잡은 나는 숨을 크게 들이키며 지금이라도 호랑이 입 안으로 굳은 다짐과 함께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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