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손잡이가 돌아가고 문이 움직였다. 소리 없이 열린 문은 어느새 활짝 열려 고정됐고 나와 페리샤만이 덩그러니 열린 문 앞에 놓여 있었다.
터벅- 터벅- 터벅-
“백작 부인께서 연회장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차에서 만났던 노년의 집사가 앞장서 슥- 팔로 안을 가리키며 터벅이는 구두 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특이하게 응접실이 아닌 연회장에서 기다리고 있다니, 왜 그런가 했지만 집사의 뒤를 따라 연회장 안으로 들어선 순간 이유를 깨달았다.
드높은 천장에 걸려 있는 수가지의 샹들리에가 하나로 어우러져 마치 유리로 된 그림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시종과 기사들은 벽에 붙어 우릴 지켜보고 있었고 고급스러운 테이블과 의자로 가득 찬 연회장의 손님은 나와 페리샤, 둘뿐이었다.
그때 가슴을 어루만지는 듯한 야릇한 목소리가 툭- 고막을 두드렸다.
“어서 와요, 페리샤 휘슬양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연회장 가장 끝쪽, 꽤 높게 장식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새까만 면포를 둘러쓰고 몸에 쫙 달라붙은 검은 드레스, 가슴이나 옆구리 곳곳이 망사로 덮여 있었지만 천박하다기보단 야릇한 옷차림이었다. 백작 부인이 아니라 한 명의 왕 같은 자태에 속으로 감탄하는 와중 백작 부인이 까딱 손짓 했다.
백작 부인의 손놀림에 다가가던 페리샤가 멈칫- 그 자리에 멈춰 서 드레스 끝자락을 움켜쥐곤 우아하게 인사했다. 사락- 가라앉는 드레스와 함께 인사를 마치자 백작 부인이 나른한 목소리와 함께 툭- 팔걸이를 두드리며 페리샤에게 물었다.
“환대에-“
“인사치레는 됐어요, 총명한 페리샤 휘슬양이 왜 저를 찾아왔을까요? 저번부터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공물에 관한 이야기는 아닌 것같고-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백작 부인의 뼈있는 질문에 페리샤는 꾸욱- 입술을 강하게 깨물뿐, 대답하진 않았다. 톡- 톡- 톡- 팔걸이를 두들기는 소리가 멎으며 스윽- 백작 부인이 툭- 다리를 꼬는 순간 페리샤가 담담히 대답했다.
“아버지가 불미스러운 사고를 당해 제가 임시가주를 맡기로 했습니다. 어떻게든 아버지를 치료하고 싶어 백작님의 은헤를 입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후후, 남편도 건강이 좋지 않아 누워 있는 마당에 누굴 도울 수 있을까요? 안 그래요 페리샤 휘슬양?”
“부탁드립니다.”
페리샤는 길게 얘기하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에 나도 부복하려 했건만 스윽- 손을 들어 제지한 페리샤가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붙이고 백작 부인을 향해 간절히 기도하는 사제처럼 자세를 유지하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당돌하네에… 뭐, 성국에서 선물 받은 최상급이나 성녀님 기도 한 번이면 휘슬남작도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겠죠.”
움찔- 성녀라는 말에 페리샤의 몸이 떨렸다. 페리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는지 백작 부인은 능글맞게 손을 내저으며 툭툭툭- 팔걸이를 두드렸다.
“농담인 게 당연하죠, 그런분을 제가 초대할 수 있었다면 후우- 남편이 저리도 가엾게 누워 있겠나요? 고개 드세요 페리샤 휘슬양.”
꾸욱- 페리샤의 머리는 떨어지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을 이어 나가는 백작 부인과 페리샤를 번갈아 보며 상상황 파악할 때쯤, 하아- 한숨 소리와 함께 손을 멈춘 백작 부인이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치만 제가 뭘 믿고 페리샤 휘슬양을 돕겠어요? 공물도 늦고, 들리는 소문으론- 백작 부인에게 향할 월광석이 지하수로에 흩뿌려졌다. 라는데, 저말고 지하수로에 솜씨좋은 네크로맨서나 찾아가는 게 빠를지도요?”
원래 귀족들을 저렇게 이야기하나? 아니면 백작 부인이 저런 걸까? 깐죽거리며 가볍게 내뱉는 말의 무게에 치를 떠는 그때 꾸욱- 손을 강하게 움켜쥔 페리샤가 대답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부인곁에서 돕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은혜를…”
결국 혈육은 혈육인 걸까, 휘슬남작에 대한 정을 떼지 못하고 끝까지 부탁하는 페리샤의 모습에 많은 걸 느꼈다. 하지만 백작 부인은 지루하기만 한지 하암- 대놓고 조롱하듯 하품을 내쉬곤 늘어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요즘 골치 아픈 일이 많은데 전부 페리샤양이 해결해주시겠어요? 월광석이 부족하단 핑계로 계약을 어기는 대장장이들을 처리하고 들끓는 마수와 마물에 뒤덮인 요새도 구하고, 제가 구해 오라면 대륙 반대편에 있는 곳까지 심부름도 곧잘해 오고.”
끝까지 빈정대며 다리 끝을 까딱이는 백작 부인의 모습에 나는 터벅-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움찔- 페리샤의 작은 등이 떨렸지만 나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
“응?”
터벅-
“하지 마요…”
한 걸음 더 내밀자 멀리서 손과 머리만 까딱이던 백작 부인이 더 가까워진 듯했다. 저 작은 등에 얼마나 큰 짐을 얹으려는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임에도 외면하면 그게 남자인가? 내여자라는 이름으로 내 품에 묶어 놨으면 적어도 이런 건 내가 해야 했다.
자그마한 페리샤의 목소리를 외면한 나는 터벅- 터벅- 백작 부인 바로 앞까지 걸어간 후 툭-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모든 걸 제가 홀로 해결할 테니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이게 무슨경우일까.”
또각- 또각- 또각-
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구두 소리에 나는 여전히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또각- 구두 소리가 멎으며 바라보던 바닥에 흑빛 구두가 나타났고 툭- 내 턱에 얹혀진 흰깃털 부채가 꾸욱- 내 머리를 들어 올렸다.
“누군지도 모를 당신이, 제가 지시한 일을 전부 남김없이 해결하겠다고요? 그 대가로 페리샤 휘슬양의 부탁을 들어달라고?”
“네.”
“나는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아. 가뜩이나 골머리를 앓는데 다짜고짜 찾아오겠다며 떼쓴 아이의 투정을 들어 주고 있는데 관심이 갈리도 없고.”
“해 보겠습니다.”
툭- 툭- 툭- 여전히 자신이 의자 위인 줄 아는걸까? 백작 부인은 부채로 내 턱을 박자에 맞춰 두드리며 골똘히 고민하는듯했다. 툭- 부채가 멈추고 흐응- 한숨과 함께 콧소리를 낸 백작 부인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아요, 페리샤 휘슬양- 일어나세요. 당신의 부탁은 들어드리겠어요.”
“다만, 후후- 이 당돌한 남자가 제가 시키는 세 가지 과제를 해결한다면 말이죠.”
또각또각- 또각또각- 시끄러운 구두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일어나던지-“ 라는 백작 부인의 혼잣말에 일어난 나는 연회장을 벗어나는 백작 부인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몸매만이라면 그냥 압도적이었다. 쫙달라붙은 드레스탓에 여실 없이 드러난 군살없는 몸매와 걸음에 맞춰 흔들리는 커다란 엉덩이, 걸음걸이와 함께 휘적이는 팔로도 가리지 못 하는 압도적인 가슴까지. 면포 뒤의 얼굴이 궁금했지만 어떤면에선 저런 쓰레기 같은 년이 저런 몸을 가진 게 안타까웠다.
또각-
걸음을 멈춘 백작 부인은 문 앞에 서 여전히 엎드려 있는 페리샤와 가만히 서 노려보는 나를 응시하곤 해야 할 과제를 내뱉기 시작했다.
“먼저 하나, 요즘 저와 월광석 주조로 계약한 대장장이들의 작업이 늦춰지고 있어요. 명단을 뽑아 집사에게 전달하라할 테니 그들에게 계약을 어기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아오세요.”
또각-
“아 참, 당신? 이리 와.”
까닥- 접혔다 펴지는 얇은 손가락, 검은 면장갑에 덮인 손가락의 명령대로 터벅터벅 걸어간 나는 휙- 백작 부인이 던진 작은 유리병을 그대로 낚아챘다.
“명단에 따로 표시한 대장장이에게 그걸 전해 줘요. 그 인간은 그게 뭔지 알 테니 당신이 전할 말은 마셔라. 그것뿐이예요.”
휙- 몸을 돌린 백작 부인은 커다란 엉덩이를 살랑살랑 먹어달라는 듯이 흔들며 연회장에서 빠져나왔다. 이후 떠나기 전 문 옆에 대기하던 메이드 둘에게 명령까지 내렸다.
“손님들 모셔드리렴, 나는 백작님의 경과를 살피러 가야겠구나.”
“네.”
“네-“
완전히 사라진 백작 부인의 잔향을 눈으로 뒤쫒은 나는 흔들- 팔을 붙잡고 흔드는 페리샤의 어깨를 두드리며 진정시켰다.
“아가씨, 진정하세요. 아직 보는 눈이 많잖습니까.”
“제가 가만히 있으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그럼 그냥 지켜만 봅니까.”
“지켜만 보라고 했으니까요! 하아-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일단 방으로 따라와요.”
한숨 섞인 페리샤의 목소리와 함께 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다가온 메이드들이 꾸벅 인사하며 우리를 방으로 안내했다. 내 담당으로 보이는 메이드에게 아가씨를 따라가겠다하자 알겠다 한 메이드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우리 곁에서 떠났지만.
덜컥-
“그럼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따로 용건이 있으시면 탁상 위에 종을 울려주세요.”
검은 리본이 묶인 벨을 가리킨 메이드는 조용히 물러나곤 텅- 문을 닫아주었다. 페리샤의 방은 나보다 배로 넓었고 침대 또한 커다랗고 부드러웠다. 퉁- 퉁- 엉덩이를 튕길 때마다 느껴지는 탄력에 감탄하며 장난칠 때쯤 진지한 페리샤의 목소리가 쿡- 내 고막을 찔렀다.
“대답해주세요-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아, 그냥 열 받아서 그랬지. 간만 보고 제대로 듣지도 않고 사람 조롱이나 하고 그러니까?”
대책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뭐가 좋다고 내 여자를 조롱하며 저울질하는 여자에게 대들지 않을까? 몇 번이고 할수 있다고 대답하자 조금 붉어진 얼굴로 꾸욱- 내 발을 밟은 페리샤는 조금 기뻐보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백작 부인은 원래 그런 사람이예요, 이제 행밀백작과 결혼한지 반년이지만 어마어마한 소문이 가득하다고요.”
“딱 봐도 그런 여자 같긴 했는데- 무슨 소문이길래?”
순전히 호기심이었다. 악독한 백작 부인이 무슨 짓을 하셨을까- 궁금함에 묻자 생각보다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자기 파벌의 영애 하나가 드레스에 차를 쏟자 알몸으로 돌려보냈다던가 백작이 아픈 이유가 백작 부인이 독으로 천천히 죽인다, 사실 범죄자였다- 소문은 많아요.”
“갈수록 빈약해지네.”
“뭐, 소문이 그런 거잖아요-! 아, 아무튼 백작 부인이 되기 전 과거도 불투명하고 행적이 수상한 건 사실이예요.”
소문의 근원지가 페리샤였나? 아무생각 없이 한 지적에 얼굴을 붉힌 페리샤가 백작 부인에 대한 정보를 하나씩 내놓기 시작했다.
“본명도 모르고 호칭은 오로지 백작 부인, 백작이 백작 부인이 죽으면 죽겠다고 했을 정도로 아끼는 여자에 백작이 병세로 쓰러진 후 무슨 방법인지 모르겠지만 다양한 인맥으로 파벌을 넓히고 있어요.”
“그럼 원래 6황자에게 파벌이 없었던 건가?”
“그건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백작 부인은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한번 자기 마음에 든게 있다면 절대 놓치지 않아요.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한 건데-“
“그래도 세 가지 전부 해결하면 도와 준다고 했으니 잘된 거 아닌가?”
내 대답에 아니에욧-! 빼액 소리 지른 페리샤가 와락- 품에 안기더니 칭얼거리는 말투로 나를 꾸짖기 시작했다.
“말처럼 그리 쉬울거로 생각하면 오산이랍니다. 당장 첫 번째 과제만해도 주인, 카사노님이 어떻게 해결해요?”
“그냥 월광석을 호르미아로 바로 보내고 잘 타이르면 되지 않을까?”
내 대답에 꾸우욱- 턱 끝으로 명치를 누르던 페리샤는 가만히 내 눈만 바라볼뿐 뭐라 따지진 않았다. 다만 내 눈엔 무언의 눈빛이 ‘진심이세요?’ 로 읽혔다.
“뭐, 시에라한테 연락해서 휘슬남작가가 호르미아로 보내야 할 월광석을 바로 보내달라 연락하고 대장장이들과 한번 이야기해 봐야지. 너무 걱정하지 마.”
“안 하게 생겼나요 지금- 언니한텐 무슨 방법으로 연락하려고요?”
페리샤의 질문에 짤랑-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보여줬다. 전등에 밝혀져 반짝이는 붉은 보석이 오늘따라 더 빛나보였다.
“그런, 그렇다면 딱히 더 할 말은 없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아가씨는 운디네랑 놀고 있어요.”
꾹- 눈을 감고 마나를 끌어올렸다. 뭉글뭉글 뭉치는 듯한 마나에 생각을 담자 후웅- 공중에 생겨난 물방울이 이어지며 하나의 원을 그렸다.
[너무 오랜만에 부른 거 같은데-]
그 정도로 오래됐나? 나 없이도 잘노는 운디네였지만 꽤 오랜만의 부름에 불퉁한 건지 통통한 볼이 잔뜩 부풀어 있었다. 퓩- 검지 끝으로 찌르니 오밀조밀한 입술에서 물줄기가 물총처럼 쏘아졌다.
“하하, 그런가? 다름이 아니라 페리샤랑 놀고 있으라고 불렀지.”
“운디네- 오랜만이랍니다!”
[운니? 언니-?]
와락- 간만에 본 운디네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껴안는 페리샤와 그새 들었던 호칭을 까먹은 운디네까지, 귀여운 자매 상봉을 지켜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을 때쯤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백작 부인께서 명단을 보내셔서 전달해드리러 왔습니다.]
“네, 들어오시죠.”
끼익- 페리샤의 대답과 함께 열린 문 너머에는 노년의 집사가 잘 묶인 양피지를 들고 한걸음 물러나 있었다. 얌전히 손 위에 얹혀진 양피지를 받아 든 나는 집사와 페리샤, 운디네가 보는 앞에서 묶인 끈을 풀고 그대로 펼쳐 명단을 읽었다.
[아래 명단에 적혀진 이들에게 일주일 후까지 계약했던 약속량을 해결하겠다는 서약서를 받아올 것-]
공통으로 기입된 문구와 함께 7명의 대장장이의 이름과 주소가 자세히 기입되있었다. 주르륵- 가볍게 읽으며 체크하는 중 따로 동그라미 된 이름 하나를 발견하고 품속의 병을 만지작거렸다.
전부 읽은 후 다시 말아 품에 넣자 집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묶어둔 서약서를 내게 내밀었다. 품 안 가득 양피지를 채운 나는 물러나는 집사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혹시 지원같은 게 있습니다?”
“…백작 부인께선 아무런 지원 없이 카사노님 ‘홀로’ 해결하라 하셨습니다. 그럼 이만-“
무표정한 얼굴로 안내한 집사는 그대로 문을 닫고 떠났다. 꽤 살벌한 분위기에 머리를 긁으며 페리샤와 운디네를 향해 뒤돌아보니 가느다랗게 뜬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둘과 눈이 마주쳤다.
“멋있게 나서놓고 지원은 없냐고 물어 보다니-“
[나는 그냥 언니 따라서 뜨는 중이야-]
귀여운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말캉- 말캉- 양팔에 둘을 둘러 안은 후 그대로 침대에 온몸을 내던졌다. 내게 끌려 쿵쿵- 침대에 쓰러진 페리샤와 운디네는 꺄악- 비명과 꺄르르- 웃음소리를 내곤 조용히 나를 끌어안았다.
“일단 오늘은 푹 쉬세요, 내일부터 바쁠 테니까…”
[카사노 또 뭐하는 거야? 무슨 쉬는 날이 없데?]
“그러게, 이번에 끝나고 같이 놀러 가자. 저번에 구경했던 서커스 어때?”
내 제안에 흥- 콧방귀낀 운디네가 진지한 얼굴로 손가락을 저으며 대답했다.
[이젠 서커스보다 크래프톤에서 유행하는 보드게임이란 게 재밌데. 나도 애들한테 들었어.]
운디네도 나름 잘 챙겨 준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말해주는 정령계 친구들의 이야기는 훨씬 더 대단했다. 어떻게 정령이 그런 것도 아는걸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캉이는 운디네의 배에 얼굴을 파묻은 나는 내일부터 시작될 과제를 어떻게 할까- 생각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