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191화 (191/395)

찹- 찹- 찹-

“음…”

몽롱한 정신을 깨우며 눈을 뜨자마자 찹- 작은 손바닥이 내 뺨을 두들겼다. 박자에 맞춰 찹- 찹- 찹- 휘둘러진 손바닥은 운디네의 콧노래에 따라 내 뺨을 인정사정없이 두드렸다.

“일어났어-“

[알아!]

찹- 뭐라 해야 할까, 젤리로 뺨 맞는 느낌? 말캉이는 손바닥의 감촉을 즐기며 부스스-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방안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뜬 머리를 긁으며 운디네에게 물었다.

“페리샤는?”

찹- 찹- 목마 타듯 내 어깨에 올라타 머리를 두들기기 시작한 운디네는 내 질문에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가 부르더니 그냥 가버렸는데? 깨우지 말래서 그냥 자게 했어.]

너무 긴장을 풀었나? 페리샤가 나갈 때까지 알아채지도 못하다니,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책상 위 알 수 없는 붉은 보라색 꽃을 힐끔 흘겨보고 운디네와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

호르미아를 영지로 둔 백작 부인답게 손님용 욕실임에도 제대로 된 샤워기가 있었다. 끼릭- 꼭지를 돌리고 그 밑에 서자 투두둑- 따뜻한 물줄기가 온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후우-“

[따뜻하네-]

참방- 참방-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나 물줄기 사이를 날아다니는 운디네를 구경하며 샤워를 마친 나는 입구에 잘 개어진 뽀송뽀송한 수건을 들어 운디네와 내 몸을 닦았다.

[나는 그냥 흡수하면 되는데.]

“그냥 기분만 내는 거지 뭐.”

팡- 팡- 팡- 물기 하나 없이 전부 닦아낸 나는 옷걸이에 걸어둔 옷들과 벽에 세워둔 검을 그대로 챙겨 들고 갈아입었다. 문득 방에 없는 페리샤 생각이 났지만 그만뒀다. 지나친 과보호도 좋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럼 나도 카사노나 따라갈까? 같이 가도 되나?]

“페리샤는 언제 온다는데?”

[모르겠어- 온종일 바쁘다던데에-]

빙글- 빙글- 공중에서 앞으로 두 바퀴 구른 운디네는 문득 심통이나 아이처럼 부욱- 볼을 부풀리며 나를 노려봤다.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려던 나는 그 모습에 뱉으려던 말을 쏙 집어넣고 손짓으로 운디네를 부른 후 품에 꽉 안으며 말했다.

“그럼 같이 갈까?”

[정말?!]

혹시 모를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 운디네에게 페리샤를지켜달라 할 요량이었지만 백작 부인의 배려에 어제 하루도 같이 쉬었고 지금도 딱히 위험한 상황은 아니라 생각했다. 아무리 백작 부인이라 해도 페리샤가 주는 공물을 무시할 수 없고 과제라는 형식으로 약속까지 했다. 그걸 제쳐두고페리샤에게 손을 댄다?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물론 사람이란 그 속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기에 방심해선 안 됐다. 일단 돌아와서 이야기해보기로 한 나는 헤헤헤- 웃음소리를 내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운디네와 함께 조용히 방에서 나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워우-“

벌컥- 문을 열자 벽 옆에 서 있던 메이드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고 복도는 금방 침묵이 가라앉았다.

“…백작 부인께서 대장간 구역으로 가는 마차를 빌려주겠다 하셔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네. 지금 출발하시죠.”

“저를 따라와 주시길-“

꾸벅- 묵례한 메이드는 도도한 발걸음과 함께 거리를 벌리곤 또각또각- 구두소리와 함께 앞서가기 시작했다. 운디네는 지금 모습을 숨겼기에 마나 사용자나 친화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발견할 수 없어 자기 마음대로 빙글빙글- 하늘을 날며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를 만져본다거나 복도에 걸린 그림을 구경하고 있었다.

“……”

덜컥- 메인홀을 지나 정문에 도착하자 문을 열어주는 메이드, 정문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건 드넓은 정원과 방에서 봤던 꽃이 수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산뜻한 꽃향기와 맑은 공기에 크게 숨을 들이쉬는데 저 멀리 정원 한가운데 테이블이 보였다.

[언니네-]

운디네의 말대로 커다란 테이블 중앙엔 백작부인이 면포를 쓴 채 차를 마시고 있었고 바로 그 옆에 페리샤가 떨떠름한 미소로 찻잔을 들고 있었다. 단둘인데도 저렇게 붙어 앉다니. 신기한 눈으로 보다 메이드를 따라 마차로 향하려는 그때 딸랑딸랑- 백작 부인의 손에 들린 종이 청아하게 울렸다.

“…백작 부인께서 부르십니다. 저를 따라와 주시길.”

빙글- 굳은 목소리와 함께 몸을 돌린 메이드가 척- 척- 척- 잔디를 밟으며 백작 부인에게 향했다. 빠른걸음으로 백작 부인의 옆에 선 메이드는 그녀의 손에 들린 종을 받고 그대로 테이블에 얹었다. 손을 내린 백작 부인은 나른한 한숨을 하아- 소리 내며 뱉은 후 테이블에 턱을 괴고 걸어오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출발?”

짧은 말에 꾸벅- 허리 숙여 인사한 나는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부인께서 만족하실만한 결과를 가져오겠습니다.”

움찔움찔- 내가 부인이라 대답한 순간 옆에 앉은 페리샤와 메이드의 몸이 떨려왔다. 토도독- 토도독- 세 손가락을 테이블에 차례대로 두드리며 소리내기 시작한 백작 부인은 누가 들어도 싸늘한 목소리로 옆에 서 있는 메이드를 호출했다.

“이리 오도록.”

“네, 백작부-“

찰싹- 꽤 세게 휘둘러진 손바닥이 똑같이 면포를 쓴 메이드의 얼굴을 후려쳤다. 자세가 무너져 그대로 잔디 위에 넘어진 메이드는 오뚜기처럼 곧바로 일어나 옷에 묻은 잔디를 털어내며 처음과 같이 백작 부인 옆에 다시 섰다.

“우리 메이드가 제대로 교육을 안 했나 봐요. 제가 다른 호칭을 별로 안 좋아한답니다.”

“그렇잖아요? 백작님의 부인인데 백작 부인이면 되잖아요. 왜 부인, 마님. 그리고… 백작님이라든지.”

백작님, 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순간 정원의 분위기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옆에 앉은 페리샤는 꾸욱- 무릎위에 올린 손을 강하게 움켜쥘 뿐 표정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나 또한 내색하진 않았다.

“그런 건 별로 원하지 않아요. 저를 부를 땐 백작 부인이면 된답니다? 그러니까 이름이, 그-“

“카사노입니다.”

“…? 흐응- 들어본 이름, 같긴 한데 잘 모르겠네요. 그래요 카사노, 다시 가보도록 하세요.”

안내해드리렴- 나른한 목소리와 함께 메이드를 내보낸 백작 부인은 양손을 깍지 끼곤 그 위에 턱을 올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찌나 순진하게 생각한 건지, 페리샤를건들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백작 부인은 페리샤를인질로 나를 쥐고 있는 거였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싸늘해지는 등골과 타오르는 심장, 식어가는 머리를 조용히 갈무리한 나는 안내하는 메이드의 뒤를 따라 주눅 든 운디네와 함께 마차에 그대로 올라탔다.

“……”

“……”

마차는 지나치게 불편했다. 누군가 마차 안에 독이라도 흘려보낸 것처럼 마차 안의 모두가 입을 꾹 닫고 미약한 숨구멍에 의지해 숨을 내쉬고 있었다.

얼어붙은 분위기와 별개로 마차는 거칠게 달렸다. 저택에서 빠져나와 몇십 분째 덜컹거리는 마차는 멈출 줄 모르고 계속해서 빨라지고 있었다. 히히힝- 얻어맞는 말의 가련한 울음소리와 함께 좀 더 달려갈 때쯤 돌연 마차의 속도가 멎었다.

“…여기서부터 대장간 구역입니다. 돌아오실 때도 마차를 지원해드릴 테니 언제든 이 방울을 울려주시길.”

마차가 완전히 멈추자 메이드는 손바닥을 내밀어달라 한 후 내 손바닥에 검은 리본이 묶인 방울을 얹어줬다. 언제든 울리기만 하면 마차를 준비하겠다니, 알겠다고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마차에 앉아 꼼지락거리는 운디네와 함께 갑갑한 마차에서 내렸다.

터벅-

“후우-!”

여태껏 쉬지 못한 숨을 한 번에 들이마시며 찌뿌둥한 몸을 피자 다그닥 다그닥- 마차가 곧바로 떠나버렸다. 정 한번 없네- 라는 생각과 함께 날아다니는 운디네의 발목을 텁 붙잡은 나는 그대로 그녀를 내 어깨 위에 앉히고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하아아- 지루했어어-]

“괜히 내 실수로 맞은 사람하고 앉아있으니까 미안하더라고. 그래서 그랬어.”

[으응, 뭐 그럴 수 있지. 그래도 둘 다 나를 노려볼 땐 무서웠어.]

“…운디네 네가 모습을 드러냈었나?”

내 질문에 찹- 내 정수리를 두드린 운디네가 고개를 내저으며 부정했다.

[아니? 그냥 봐버리던데? 꼭, 누구지- 음, 비슷한 기분인데- 아무튼 그 아줌마는 좀 무서웠고 앞에 언니는 그냥 우연히 본 거 같아.]

“우연히라는게 있나?”

[카사노처럼 마나를 인지하고 보이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친화력이 있어 처음부터 보는 사람도 있고 마나에 계속 노출돼서 정령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는 사람도 있데. 더 자세하겐 나도 몰라-]

운디네 답지 않은 똑똑해 보이는 설명에 나는 오오- 감탄하면서 스윽- 스윽- 얇은 발목을 쓰다듬었다. 꺄르륵- 웃음을 터뜨린 운디네는 발을 통통- 구르며 내 가슴을 두드렸다.

[이젠 완전히 이어져서 그냥 만져도 간지럽단 말이야- 그만해애-]

“알았어, 아! 일단 오늘 절반은 해결하자. 운디네 이렇게 생긴 간판 좀 찾아줄래?”

사락- 품에서 양피지를 꺼낸 나는 첫 번째 대장장이의 주소 옆에 그려진 간판을 운디네에게 보여줬다. 일단 첫 번째 대장장이는 방금 들어온 이 골목 근처에서 대장간을 차렸기에 금방 찾을 게 분명했다.

[네네- 출발!]

푸릉- 휘이잉- 물방울 어린 발이 꾸욱- 내 가슴을 밟고 탄력과 함께 운디네는 하늘로 날아갔다. 꼭 수영선수가 벽을 차고 날아가는 듯한 요령에 감탄한 나는 가만히 있기도 그래 양피지에 적힌 주소와 주변 건물들의 주소를 대입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찾았다- 찾았습니다!]

“오, 어디야?”

그렇게 몇 분, 앞으로 얼마 나아가지도 않았는데 돌연 하늘에서 운디네가 다시 날아왔다. 파앙- 물소리를 내며 내 품에 안긴 운디네는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직진!]

…그냥 걸어가는 게 더 나았으려나? 그래도 고생했으니 운디네의 말랑말랑한 볼을 쮸아압- 빨면서 장난친 나는 조잘조잘 떠드는 운디네와 함께 첫 번째 대장장이의 대장간에 올 수 있었다.

깡-! 깡-! 깡-! 잘 정돈된 하얀 머리와 고집 있어 보이는 얼굴, 누가 봐도 노장이오- 라는 오오라를 뿜는 노인이 대장간 밖 모루 위에서 검을 두드리고 있었다. 대장간 안팎을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제자들과 여러 사람의 모습인 제법 잘 정돈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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