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걱- 활을 걸고 시위에 화살깃을 걸며 눈을 감고 운디네를 호출했다. 다급한 의념에 푸릉- 원을 그리며 뛰쳐나온 운디네가 아비규환의 현장에 크게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운디네, 요새 안에 돌아다니면서 불이 붙거나 불붙은 사람을 발견하면 빨리 불을 꺼트려! 부탁한다!”
[응! 카사노도 조심해…!]
입술을 꽉 다문 운디네가 결의에 찬 얼굴로 병사와 기사들의 파도에 뛰어들었다. 쿠웅- 쿠웅- 성벽을 짓밟으며 마음에 드는 요리를 고르는 듯이 대가리를 까딱이는 와이번의 모습에 나는 이를 빠득 갈고 우우웅- 마나를 일으키며 화살을 당겼다.
지나치게 팽팽해진 활과 한계 이상으로 당긴 나는 활이 부서지기 전 화살을 놓았다.
피이이이잉- 파악-!
[크에에에에에엑-!!!]
선을 그리며 날아간 화살이 크게 벌린 아가리로 병사를 삼키기 전 와이번의 입안에 틀어박혔다. 싱싱한 속살 안에 깃이 안보일 정도로 깊숙이 박히는 순간 쿠웅- 다리를 헛디딘 와이번이 요새 바닥에 떨어졌다. 다행히 병사와 기사는 아래 없었기에 짐마차 한대만 깔고 앉은 와이번은 바닥을 긁으며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걸 목격한 마일드가 크게 소리쳤다.
“지금이다!!!”
서걱! 서걱! 서걱!
검에 마나를 두른 기사들이 땅을 긁는 발을 베어냈다. 듬성- 고기 자르듯 잘린 발가락과 함께 고꾸라진 와이번은 끄에에엑-!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후웅- 꼬리로 기사들을 쳐 내고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했다.
“그악-!”
“으으윽!”
바로 앞에서 근접한 바람에 족쇄를 들고 접근하던 기사들이 무게에 못 이겨 그대로 넘어졌다. 성벽에 뛰어오른 소니아가 날아오를 준비하는 와이번에 뛰어들며 푸욱- 직각으로 검을 내리꽂았지만 베어내진 못했다.
[키에에에엑!!!]
“소니아경!”
휘청- 와이번이 몸을 뒤집으며 하늘에 떠올랐다. 파삭- 무너지는 성벽과 종탑을 긁으며 선회한 와이번은 두개골을 찌르는 검에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대가리를 흔들었고 손을 놓친 소니아가 그대로 떨어졌다.
“크흐으으읏-!”
펄럭펄럭- 와이번에게 얻어맞았는지 살짝 부은 눈가와 함께 바람에 주황빛 머리칼이 나부꼈다. 이미 반점으로 바뀐 와이번을 눈으로 쫓던 나는 종탑 가까이 떨어지는 소니아의 모습에 근처에 널린 짚을 한아름 끌어안고 점점 가까워지는 소니아를 향해 뛰었다.
“으으읏-!”
질끈- 몸이 뒤집히면서 눈을 감은 소니아가 내 위로 떨어졌다. 받아 낼수 있겠다- 안도감이 온몸을 느슨하게 만들었지만 홀로 감탄한 나는 꾸욱- 팔다리에 힘을 주며 떨어지는 소니아를 향해 짚을 내밀고 쿠웅-! 그대로 소니아가 내 위에 떨어졌다.
“후우-!”
마나를 둘러 땅에 굳게 서 있었기에 넘어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충돌에 팔만 가볍게 떨렸지만 참아낸 나는 핑핑 도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소니아에게 칭찬을 건넸다.
“잘했어요.”
“으으읏-!”
홰액- 팔로 눈가를 덮은 소니아가 고개를 돌렸다. 아이처럼 구는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그대로 양팔을 들어 턱- 소니아의 발이 땅에 닿이게 한 후 그녀를 밀어냈다. 털어내듯 떨어져 바닥을 딛고 일어선 소니아는 불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화염이 일렁이는 요새에 물을 흩뿌리는 운디네를 발견하고 뛰어가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런 소니아의 뒤를 따라갔고 우리가 도착한 성문 앞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끄아아아악-!”
“크흑, 제발, 제바아알-!”
“눈이, 눈이 안 보여-“
바닥을 기거나 구르며 고통을 토해내는 병사와 발버둥 치는 병사, 와이번을 격퇴했지만 요새에 심각하게 남은 자상에 얼굴을 굳히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는 와중 나와 소니아를 찾은 마일드가 땀에 젖은 얼굴로 뛰어오더니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무사했군, 정말 다행이야! 저 정령은 카사노 자네의 정령인가?”
“네, 저와 계약한 운디네라고 합니다.”
“그런가, 정말 다행이야. 정령이 아니었으면 병사의 절반은 타죽었겠지.”
하아- 한숨과 함께 꾸욱- 얼굴을 손바닥으로 덮은 마일드는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떨리는 눈동자가 잠시 소니아를 향했지만, 이내 마음을 굳혔는데 마일드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와이번의 꼬리에 정통으로 맞은 기사 셋이 쓰러졌네. 뼈가 나간 건지 장기가 다친 건지 모르겠지만 겨우 포션으로 응급처치를 끝마쳤지만 당분간은 못 움직이겠지.”
하아- 한숨을 내쉬며 포션을 사용했단 소리에 소니아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하지만 큰 사건을 겪고 나서 깨달았는지 공과사를 구분하려는 모양이었다. 한숨을 내쉰 소니아는 포션에 대해 묻지 않았고 마일드 또한 그 모습에 만족스러웠는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남은 포션은 세 병이지만, 그들이 움직이지 못한다면 다시 사용해야겠지. 미안 하게 됐네 소니아경.”
“아니, 아닙니다. 그만큼 소중한 전력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사실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카사노- 전부 끝났어-]
마침 화재를 전부 진압했는지 조금 지친 낯의 운디네가 뽈뽈- 내게 날아왔다. 말캉- 안겨드는 운디네를 쓰다듬어 준 나는 등을 쓸며 칭찬했다.
“고생했어, 운디네 아니면 큰일 날뻔했네.”
[헤헤, 칭찬은 아끼지 않아도 된대.]
더 해 달라는뜻의 애교에 턱을 검지로 살살 긁으며 미소를 지었다. 꿀꺽- 침을 삼킨 소니아는 우리 둘을 빤히 지켜보다 홱- 고개를 돌렸다. 나와 운디네를 지켜보던 마일드는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골치가 아팠는지 이마를 긁으며 말했다.
“그래도 병사들이 너무 많이 다쳤군, 안 그래도 부상자가 있는데 큰일이야.”
“사실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마일드경.”
“응? 뭔가?”
그의 태도에 나는 까딱 운디네에게 손짓 했다. 요새를 충분히 둘러보고 온 운디네는 내 신호에 눈을 감고 마나를 관조하다 조금 답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가진 마나로는 6명 정도? 근데 완전 치료하는 것도 아니고 가볍게 다친 사람만 가능해.]
“사실 제 정령 운디네는 마나로 치료수란 걸 만들어 낼수 있습니다. 다리가 부러진 부상도 치료할 수 있지만 마나가 더 많이 필요하고요.”
“그런, 정말인가! 다행이군. 경미한 부상의 병사들이 대부분이니 그대의 정령만 있으면 치료 가능하겠어.”
병사들의 수를 파악하고 오겠네- 마일드는 그렇게 요새 바닥에 뒹구는 병사들에게 향했고 나는 옆에 멍하니 서서 입을 벌리고 있는 소니아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은 어둠을 헤매다 겨우 만난 구원자를 보듯이 운디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오늘 카사노가 채워주면 열 명도 가능할 수도-]
말캉- 교태부리며 나를 껴안는 운디네의 모습에 나는 말캉이는 뺨을 주무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락에 신난 운디네가 내게 엉겨 붙으며 조잘조잘 떠들다가도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공간 마법 같은걸 사용할 수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예전에 미네르바와 에릴다가 지켜보는 앞에서 한 실험 얘기인듯했다. 야생 정령 태생이기에 공기에 분포된 마나로 충분히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운디네지만 그 상태에서 대부분의 물건을 들고 정령계를 통해 이동하면 물건이 전부 사라졌었다. 포션이나 주문서, 검, 갑옷, 음식따위가 사라졌지만 에릴다와 미네르바가 붙들고 마법을 새긴 물건들은 간혹 가능했다.
달그락- 목에 걸어 둔 목걸이를 바라본 나는 나중에 미네르바가 알아서 해주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하며 운디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치료수만 있으면 치료 가능하단게 정말인가?”
운디네와 떠드는 와중 터벅- 우리에게 한 발 다가온 소니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꿈뻑- 커다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운디네에게 턱짓한 나는 팔짱을 낀 채 둘을 바라봤다.
[얼마나 다쳤냐가 중요한데. 요.]
“매, 매우 심각하지만 목숨만 유지할 수 있다면 상관없다.”
[한번 보면 알지도. 요?]
“그렇다면…!”
안색이 밝아진 소니아에게 뭐라 이야기하기 전 마일드가 밝아진 낯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운디네도 데려가려다가 버려진 강아지처럼 눈을 그렁거리는 소니아의 모습에 나는 그냥 둘을 내버려 두고 마일드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끄으으으윽-!”
“크흑, 제발, 죽여 줘어어-!”
“씨바알, 씨발, 씨바아아알-!!!”
악에 받친 비명과 고통에 찬 신음이 굴러다니는 바닥에 병사들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겁에 질려 퍼덕이는 말 세 마리를 진정시키는 담당관을 지나친 나는 마일드에게 물었다.
“이들 전부입니까?”
내 질문에 고개를 내저은 마일드가 하아- 품에서 조용히 담배를 꺼내며 텁- 입에 물었다. 기사들은 크래프톤 담배를 되게 좋아하나? 라는 생각을 흘려보낸 나는 불을 피우고 뻐끔이는 그의 입술을 바라봤다.
“아닐세, 후우- 우리 요새에 병사가 쉰명인데 지금 부상자가 서른일세. 그중 중상은 열 명이니 그들을 태우고 담당관이 호르미아로 돌아가기로 약속했네.”
“그런가요. 다행입니다.”
“다만 소니아경한테 무어라 할지 모르겠네.”
꾸욱- 미간을 주무르며 담배 연기를 내뱉는 마일드의 얼굴은 어두웠다. 하지만 소니아를 데려와 처참하게 망가진 짐마차와 부서진 보급품, 투레질을 하며 겁먹은 망아지처럼 구는 말들을 보여주면 그녀도 납득하겠지.
“그녀도 납득할 겁니다. 저 허름한 짐마차에 열 명도 과하게 태운 거죠.”
이미 짐마차에 병사들을 눕히는 기사들을 바라보며 얘기하자 하- 자조어린 웃음을 내뱉은 마일드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주군은 우리를 왜 이곳에 보낸 건지… 도통 알 수가 없군.”
조악한 환경과 처참한 일상을 겪으며 피폐해진 마일드의 눈에 까맣게 타들어 간 병사들이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