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라의 재교육이 끝난 직후, 이젠 정말 가봐야 한다며 서둘러 씻은 라우라가 집을 떠났다. 떠나는 그 순간까지 새하얀 복부에 새겨진 문신은 빛나지 않았기에 나와 라우라는 이어서 하자는 신호를 눈으로 나누고 헤어졌다.
이후 라우라와 나눈 흔적을 전부 치운 나는 찌뿌둥한 허리를 펴며 창밖을 바라봤다. 어젯밤 연회장에서 몸을 섞었던 마녀들이 전부 웃으며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하나, 전부 배를 쓰다듬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쉽네…”
보조제의 효과가 끝나고 정신이 개운해지자 연회장에서 있었던 일들이 뭔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내 자의로 박아댄 건 맞지만 떠올리는 순간 둥실둥실 떠다니면서 엿보는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기에 아쉬웠다.
-똑 똑 똑
“음?”
창가에서 떨어진 나는 난데없이 울리는 노크 소리에 당황했다가 이내 조용히 문으로 다가갔다. 수많은 마녀가 길가에 서서 떠들어대는데 무슨 일이 생기겠어- 라는 간단한 이유였다.
-벌컥
“응?”
“아, 계셨군요.”
싱그러운 바람에 흔들리는 회색 머리칼이 향긋한 향기를 가져다 내 코에 안겨주었다. 툭, 낡아 보이는 두루마리를 내민 리비아는 살짝 고개 숙인 채 내 눈도 보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 할 말만 내뱉기 시작했다.
“선물이에요. 제가 어렵게 구한 저주의 주술인데, 사용하는 방법은 자세히 써놨으니 저주하고 싶거나 평생 괴롭히고 싶은 사람에게 사용하세요!”
텁, 두루마리를 움켜쥐고 무어라 이야기하려는 그때 손이 가벼워진 걸 눈치챈 리비아는 잘근, 입술을 깨물며 그대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어찌나 빠른지 눈 몇 번 깜빡인 사이 점이 된 리비아는 자신의 향기만 남겨두고 그대로 떠나버렸다.
“카사노님…?”
날씬하고 길쭉한 여인, 리버가 쭈뼛거리며 내 이름을 불렀다. 슬쩍 뒤를 바라보니 마녀들 몇몇이 손에 뭘 한 아름씩 싸 들고 문 앞에 줄을 세워놓고 있었기에 당황한 나는 리버가 내민 작은 상자를 밀어내며 모두에게 들리도록 외쳤다.
“저기, 선물은 됐으니 전부 돌아가 주세요. 제집도 아니고-”
“에이! 리비아 고년꺼는 받아놓고 저희는 왜 안 되는 거죠?”
“맞아요! 우리 선물은 받기 싫으신 건가요?”
“저, 정말 귀한건데… 저희한테 베푼 만큼 뭔가 돌려드리고 싶어서…”
말도 끝까지 안 했는데 마녀들의 원성이 귀를 찢고 고막을 두드렸다. 거의 시위가 벌어지기 일보 직전의 난장판이었기에 나는 들었던 손을 내리고 마녀들을 설득하기보다 눈앞의 마녀부터 설득하기로 했다.
“리버 씨, 선물 같은 건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룻밤의 추억을 같이 간직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선물이…”
“주, 주문서를 몇 개 챙겨봤어요. 제 마법을 너무 마음에 들어 하시는 거 같아서…!”
텁, 손바닥에 얹힌 작은 상자. 그 순간 리버의 마법을 떠올린 나는 이 마법이 살면서 내게 어떤 경험을 안겨줄지 잠시 고민했고 내 손은 말없이 상자를 움켜쥐고 천천히 잡아당겼다.
“아, 마음에 드시는구나…! 다행이다. 후후, 저는 이만 가볼게요…!”
쭈뼛쭈뼛, 큰 키와 걸맞지 않게 귀엽게 굴던 리버가 떠나버렸다. 그러자 리버의 뒤에 가려져 있던 마녀가 스윽 한 걸음 다가오더니 후드를 벗곤 꾸욱, 하얀 이로 입술을 깨물며 나를 노려봤다.
“레이븐 씨.”
“…이거.”
툭, 내 손바닥에 얹히는 묵직한 한손검에 나는 고개를 들어 레이븐을 바라봤지만, 그녀는 이미 행렬에서 벗어나 저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결국 한번 무너진 댐처럼 한번 시작된 마녀들의 선물행렬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텁, 텁, 마녀들이 건네주는 선물을 바닥에 쌓으며 기억나는 여인들의 이름을 불러주기 반복했던 나는 행렬의 끝, 마지막 남은 작은 키의 마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그, 누구죠?”
스윽, 가느다란 손가락이 로브를 거세게 움켜쥐더니 거칠게 벗겼다. 저물어가는 노을에 물든 은색 머리칼과 뚱한 얼굴, 꽤 화가 많이 났는지 심술 가득한 입술이 삐죽, 내밀어져 있었다.
“라엘라.”
“뭔가요? 우리 집에 내가 왜 줄을 서서 들어가야 하죠?! 그리고 저 선물더미들은 뭔데요?!”
“진정, 진정해. 나도 몰라, 갑자기 시작된 거라.”
“폭거에요, 강탈이에요! 변태처럼 언니들에게 손대더니 이젠 언니들의 재산까지 축내고 있어요!”
투닥투닥-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가슴팍을 두드리는 라엘라의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내 가슴팍쯤 오는 그녀의 겨드랑이에 푹, 손을 넣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끼야아아악!!!”
“하하, 끼야악이래.”
“숙녀의 몸에 함부로 손대다니! 짐승! 변태! 카사노!”
“소란스럽군.”
“아앗!”
듣기 좋은 미려한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뜬 라엘라는 퍽, 내 손을 당수로 내려치곤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그러곤 빙글 몸을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와락 끌어안곤 나를 가리키며 일름보짓을 하기 시작했다.
“저 자식이 언니들을 속여먹어서 재산을 빼앗았어요! 저 물건들이 증거품이에요!”
빠악!
“꺄우우웃!”
쥐방울만한게 너무 까불기에 정수리에 꿀밤을 먹여주자 너무 맛있었는지 라엘라가 방방 뛰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걸 보고 피식 웃은 라우라는 라엘라의 눈을 피해 내 볼에 쪽, 키스하곤 나를 밀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했군. 딱 봐도 누군가 먼저 시작하니 하나둘 경쟁하듯 준비한 거겠지.”
“리비아님이 가장 앞에 줄 서 있던데요? 저주의 주술이라면서 두루마리를 주고 갔어요.”
“리비아가 주술을? 그 아이는 강력한 주술의 마녀, 그 아이가 선물로 건네줄 정도의 주술이라면 아주 뛰어난 주술이겠군.”
“주술 같은 건 쓸 줄도 모르는데요.”
“마나를 다루고 무언가를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면 주술의 소양을 배우기 적합하지. 뭐, 거절하는 것도 카사노 그대의 뜻이니까.”
스윽, 라우라의 뒤편에 쌓인 선물들을 바라본 나는 기왕 마녀들이 챙겨준 선물이기에 전부 챙겨가겠다고 말했다. 그 대답에 싱긋 웃은 라우라는 내 볼을 쓰다듬으며 촉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부 호의로 준비한 선물이니 돌려주지 않고 받아준다면 기뻐하겠지. 다정하구나.”
“그럼 라우라님 선물도 있나요?”
라엘라의 눈치를 살피며 라우라의 하얀 귀에 조용히 속삭이자 움찔, 어깨를 떤 라우라는 할짝- 축축한 혀로 자신의 붉은 입술을 핥으며 고혹적인 미소와 함께 끈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선물은… 밤에 주도록 하지.”
쪼옥
탐욕에 젖은 서로의 입술을 맞춘 우리 둘은 조용히 떨어져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후 라우라가 준비해온 음식을 먹으며 라우라와 라엘라, 나 셋이서 영양가 없는 잡담하며 평화롭게 보냈고 하암, 하품하기 시작한 라엘라를 빛나는 눈으로 바라본 라우라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라엘라, 피곤하니?”
“우움, 아뇨오…”
꿈뻑, 꿈뻑- 아이처럼 고개를 떨구며 조는 주제에 눈가를 비빈 라엘라는 하아아암- 커다란 하품을 내뱉고 스윽, 고개를 떨궜다. 익숙하다는 듯이 라엘라의 겨드랑이와 무릎 뒤에 손을 끼운 라우라는 그녀를 안아 들고 조용히 라엘라의 방으로 향했다.
쿵, 방문이 닫히고 소곤소곤, 무어라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각보다 방음이 잘 안되는구나. 하나 알아낸 나는 라우라가 따라준 차를 호록- 마시며 향을 음미했고 끼익, 나무 문을 열고 나온 라우라는 교태로운 미소를 지으며 쿵, 방문을 닫았다.
“귀엽네요. 성인인데도 저렇게 아이 같다니.”
“후후, 그만큼 정도 많고 애교도 많은 아이지. 그대한테 앙칼지게 굴어도 속으로는 그대를 좋아할 테지.”
“원래 저 나이대 마녀들이 다 저런가요?”
“으응, 아니다. 라엘라가 유독 어리광이 많아. 아직 인간도 제대로 만난 적 없고 마을 밖에 있을 때도 다 무너져 가는 마을에 홀로 살아남아 있었지.”
“그때 구해주신 게 라우라님이군요.”
내 추리에 싱긋 웃은 라우라는 라엘라의 방문을 힐끗 바라보고 내 무릎에 걸터앉았다. 허벅지 너머로 느껴지는 말랑한 살결에 조금 흥분한 나는 발기한 귀두 끝으로 라우라의 엉덩이를 찌르며 꾸욱, 그녀를 끌어안았다.
“이런, 벌써 흥분했나.”
“음탕한 엉덩이로 유혹하니까 그러죠.”
“하아, 나는 그냥 걸터앉은 것뿐인데…”
쪼옵, 끈적한 한숨을 내뱉은 라우라가 내게 키스해왔다. 향긋한 입안을 꾸물거리는 혀로 헤집은 나는 꿀꺽, 혀를 타고 넘어오는 타액을 마시며 하얀 정장 너머 라우라의 젖가슴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쭈웁, 쭈웃, 후움, 응긋, 후우, 파하… 쪼옵-!”
달아오른 라우라의 차가운 숨결이 내 얼굴을 식혀줄 때마다 나는 도리어 미친 듯이 흥분했다. 얼음물 같은 그녀의 타액을 받아먹으며 촉촉하게 젖은 입안을 맘껏 맛본 나는 정장 안에 갇힌 라우라의 젖꼭지를 꾸욱, 엄지로 짓누르며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음탕한 속옷 있어요?”
“…무슨 의미인지 잘…”
스윽, 벨트로 고정된 빡빡한 바지춤 안으로 손을 밀어 넣은 나는 찔걱, 젖어있는 라우라의 보지를 어루만지며 그녀에게 속삭였다.
“창녀들이나 입을법한 음탕한 속옷, 있냐고.”
“흐으응♥ 서, 선물 받은 거라면… 하나… 하지만 그건 너무…”
“입고와. 알았죠?”
명령을 끝내고 그녀의 귀에서 입을 뗀 나는 싱글 웃으며 한 번 더 대답을 묻고 파앙! 라우라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화악, 얼굴을 붉힌 라우라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방으로 재빨리 뛰어 들어갔고 나는 뻐근한 허리를 풀며 방으로 향하다 문득 라엘라의 방을 바라봤다.
라엘라의 작은 나무 문은 아주 조금 열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