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292화 (292/395)

“인사도 없이 도끼질이라.”

-푸욱!

“아극, 그륵, 그르르르륵!”

-터엉!

일직선으로 뽑아 든 검을 목에 찔러넣은 나는 가속을 받아 그대로 검날의 반을 나무 기둥에 박아넣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푸슉, 파악, 벌어진 틈새에서 검붉은 피가 솟구치기에 재빨리 검을 뽑아낸 나는 분수처럼 솟구치는 피를 피해 뒤로 물러났다.

뚝, 뚝, 검붉은 피가 검에서 흘러내려 흙에 스며들었다. 점점 산맥이 어두워져 눈앞조차 까맣게 물들어가는데도 그 광경은 눈앞에 태양이라도 핀 것처럼 훤히 눈에 들어왔다.

“깜짝 놀랐네요, 술 냄새가 묘하게 풍기는 걸 보니 한잔 걸친 모양인데.”

툭, 갈색 가죽 신발 끝으로 시체의 몸을 뒤집은 스텔지아는 푸슉, 푸슉, 피가 역류하는 시체를 질색하면서도 꼼꼼히 살펴봤다. 더러운 산적소굴이니 귀찮니, 하면서도 도울 생각 가득이라니, 기특한 모습에 쪽, 그녀의 이마에 작은 선물을 남겨줬다.

“징그러워.”

-꽈악

“그에엑!”

검지와 중지로 가볍게 코를 꼬집자 돼지 멱따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절로 웃음이 나와 큭큭 웃으며 손가락을 그녀의 옷소매에 닦자 스텔지아는 화들짝 놀라 팔다리를 휘저으며 내게 짜증을 냈다.

“마저 올라가 볼까요.”

“…마음대로?”

노골적인 콧방귀와 함께 몸을 돌린 스텔지아가 무덤덤하게 대답하고 산맥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관심 가져달라고 저렇게 애원하니 무시하기도 그래 꽉! 목줄을 잡아당긴 나는 서서히 기울어 넘어진 스텔지아를 강하게 끌어안고 조용히 산턱을 올랐다.

“후읏, 아파아…”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주제에 꾸욱, 꾸욱, 부드러운 살결을 내 몸에 문지르며 꽉 안겨든 스텔지아는 나중에 아예 목덜미에 코를 박고 코끝을 움찔거리며 귀찮게 엉겨 붙었다. 지구에서 봤던 고양이와 개냥이 같은 행동이 절로 떠오른 나는 얌전히 안아 든 손으로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올라가다 작은 불빛을 발견하고 그녀를 밀어냈다.

“흐음…”

눈을 찌푸리고 산맥을 들여다보며 오감을 집중했다. 스텔지아의 옷스치는 소리가 들리고 타들어 가는 기름과 헝겊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용의 꼬리처럼 일렁이는 작은 횃불이 점점 아래로 내려오는 걸 발견한 나는 손을 뻗어 스텔지아에게 수신호를 짧게 보내고 스릉, 허리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터벅, 터벅, 터벅

일렁이는 작은 불씨가 가까워지고 우리의 발소리와 뒤섞인 하나의 발소리도 조금씩 커졌다. 이제 집중하지 않아도 일렁이는 횃불 옆에 자리한 얼굴까지 보이는 그때, 횃불을 든 남자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발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똥 싸러 니기미 어디까지 내려가-!”

서걱, 빠르게 뻗은 은빛 실선이 남자의 목을 가로질렀다. 툭, 툭, 데구르르- 기울어진 산턱을 따라 구른 머리통이 저 멀리 사라지고 털퍼덕, 머리를 잃은 초라한 몸뚱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텁

천천히 앞으로 넘어지면서 시체가 놓친 횃불을 움켜쥔 나는 잠시 시체를 향해 횃불을 들이밀며 남자의 행색을 살펴봤다.

대충 걸친 가죽 갑옷과 풀풀 풍기는 퀴퀴한 냄새와 뒤섞인 술 냄새, 거기에 묘하게 익숙한 냄새까지 맡은 나는 산적들이 연회 겸 납치한 사람들과 무언가를 했단 걸 알아채고 허리에 걸친 손도끼를 빼 들며 스텔지아를 바라봤다.

“필요해요?”

“흥, 저 같은 마녀에게 그런 조잡한 손도끼는 필요 없답니다.”

“근데 일일이 잡고 올라가기 귀찮을 거 같은데…”

“무시라니…”

턱, 턱, 턱, 손도끼의 넓은 면으로 허벅지를 두드리며 짧은 고민을 이어 나갔다. 지금도 일렁이는 횃불이 아래로 춤추며 내려오고 있었다. 두 명이나 조용하니, 체계적으로 움직이겠지. 굳은 머리를 굴리며 고민하는 와중 톡, 톡, 가볍게 두들기는 손길에 고개를 돌리니 새초롬한 얼굴의 스텔지아가 옅은 미소를 띠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법 한 번이면 조용히 올라갈 수 있죠. 기다려보세요.”

새초롬하게 다가온 주제에 웃음을 참는듯한 스텔지아의 모습에 무언가 불안했지만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수락에 미소 지은 스텔지아는 지휘봉을 휘젓듯 검지 하나를 피고 허공에 수놓듯이 무언가를 그리더니 톡, 내 가슴에 손가락을 얹었다.

파라라락, 비늘처럼 피어오른 하얀 꽃잎들이 내 몸에 차곡차곡 달라붙었다. 빼곡히 온몸을 덮은 꽃잎이 투두두둑, 끝없이 달라붙고 통통하게 부풀어 오를 때쯤 꽃잎의 파도가 멎고 스텔지아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후흐흐, 은밀하게 흐흐, 자연에 스며드는 의태 마법이에요호호!”

탁, 탁, 자기 허벅지를 두드리며 크게 웃은 스텔지아는 포옥, 나를 끌어안으며 품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냈다. 왜 이렇게 웃어대는지 몰랐지만, 손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양강아, 아하하, 귀여워!”

히죽, 은근한 비웃음과 함께 귀엽다고 칭찬한 스텔지아는 내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니 복슬복슬한 꽃잎에 얼굴을 문지르며 끝도 없이 쫑알거렸다. 귀여워 보이니 무해할 거라는 둥, 그렇게 아끼는 아가씨들한테 보여드리면 좋아하겠네요. 등등, 듣다 보니 짜증이 솟구쳐 꾸욱, 그녀의 코를 꼬집었다.

“으굿!”

“조용히 갑시다.”

꾸욱, 팔하나로 스텔지아의 옆구리를 끌어안으며 천천히 산턱을 올랐다. 조용해진 스텔지아와 함께 천천히 오를수록 새하얗던 꽃잎이 검게 물들고 흐릿한 산속 풍경과 하나가 된 것처럼 겹치기 시작했고 옆에 딱 붙은 스텔지아의 모습도 흐릿하게 보였다.

사뿐, 사뿐, 의태 마법덕에 발소리도 아예 없고 별다른 소음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꼴불견 같은 모습치곤 좋은 성능에 감탄하는 그때 화악, 눈앞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시발 소리 난 거 맞아?”

“여자소리가 났다니까, 내 귀 못 믿어?”

“니새끼 귀 하나 특출난 건 다 알고 있지. 샅샅이 뒤져보자고.”

“하아, 앙칼진 년, 목소리 듣기 좋던데 젖통 한번 꽉! 주무르고 싶네.”

우르르, 새빨간 횃불을 하나씩 쥔 산적들이 내려오며 조롱 섞인 희롱을 내뱉고 있었다. 열댓 명은 돼 보이는 머릿수에 무시할까, 아니면 처리하고 갈까 고민하는 그때 얌전히 안겨있던 스텔지아가 발끈한 얼굴로 입술을 짓이기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쓰레기가…”

-딱!

“응?”

“뭐야.”

의태 마법에 파묻혔는데도 똑똑히 들리는 손가락 튕기는 소리, 분노한 스텔지아가 고운 손가락을 앞으로 뻗고 손가락을 튕긴 순간 콰드드득! 솟구친 수많은 나무뿌리들이 얼타는 산적들의 발목에 휘감겼다.

“허어!”

“끄아아아아아!”

숨을 급하게 들이켜는 놈도 있는가 하면 콰드득, 콰득, 다리를 타고 휘감는 두꺼운 나무뿌리 탓에 비명을 지르는 산적도 있었다. 다만 겁에 질린 비명이 산맥을 울리기 전 미친 듯이 자라난 뿌리가 콰득, 벌어진 입을 채우고 누에가 실로 고치를 만들 듯 산적들이 뿌리에 가둬져 그대로 바닥에 빨려 들어갔다.

터억, 터억, 뒤집힌 흙이 바르게 펴지고 방금까지 뿌리가 솟구치며 난장판이 됐던 산턱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깨끗해졌다. 눈 깜짝할 새에 생매장된 산적들과 남은 뿌리들이 흙을 토닥이며 높이를 맞추곤 산적들처럼 흙에 스며들어 그대로 사라졌다.

“후후, 겁먹으셨나요?”

스텔지아의 마법으로 손쉽게 정리된 현장을 감탄하며 구경하자 의기양양한 말투의 스텔지아가 내게 기어오르며 착 달라붙었다. 가슴을 끈적하게 쓰다듬으며 나를 놀리듯 질문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산적 소굴을 청소하기 전 위계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콰악, 스텔지아의 젖가슴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흐응?!”

종이 구기듯 우악스러운 손길로 움켜쥐며 강하게 잡아당기자 다릿심이 풀렸는지 스텔지아는 풀썩이며 잠시 주저앉았다. 다만 남의 머리에 기어오른 주제에 멋대로 쉬려는 게 열받은 나는 움켜쥔 젖가슴 그대로 스텔지아를 일으키고 고통과 쾌락이 뒤얽힌 얼굴로 한숨 쉬는 그녀에게 조용히 말했다.

“기어오르지 마, 응? 일부러 그러는 거지. 괴롭힘당하고 싶어서, 발정 난 몸 쑤셔달라고 일부러 사람 속 들쑤시는 거잖아.”

턱, 움켜쥔 가슴을 놓고 선명한 쇄골을 쓰다듬으며 풍만한 가슴골에 손을 밀어 넣었다. 땀이 차서 차박, 차박, 손을 저을 때마다 부딪히는 음탕한 젖가슴을 괴롭히다가 천천히 가슴 끝에 손을 뻗은 나는 볼록 솟은 음탕한 젖꼭지를 움켜쥐고 엄지와 검지로 살살 굴리며 그녀를 희롱했다.

“으응, 흐응, 흐응, 흐응, 하아아…!”

“암캐 같은 냄새 풀풀 풍기면서, 일부러 기어오르는 거잖아.”

“하아, 하악, 하악, 헤에엑…”

뚝, 뚝, 어느새 내민 혀를 타고 늘어난 군침이 바닥에 떨어졌다. 굶주린 개처럼 눈을 빛내며 헤픈 얼굴로 나를 응시한 스텔지아는 도톰한 입술을 달싹이며 내게 말했다.

“누가, 누가, 일부러 그런데요…? 무슨 말을…”

히죽, 진한 미소와 함께 모르겠다는 어투로 대답한 스텔지아는 내 손만을 끝까지 바라보며 내 행동을 기다렸다. 솔직하지 못한 년 같으니라고. 홀로 중얼거린 나는 텁, 그녀의 흑단 같은 머리칼을 강하게 움켜쥐고 천천히 아래로 찍어누른 뒤 푸욱, 내 고간에 그녀의 이쁜 얼굴을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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