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294화 (294/395)

“히익!”

“하아, 하아, 하아!”

“제발 살려줘!!! 부탁이야, 제발!!!”

가벽을 부수느라 울린 요란스러운 소리를 들은 걸까? 포박된 산적들은 하나같이 걸걸하게 울어대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자들을 납치한 것과 산적 짓을 한 것, 그것 두 가지만으로도 그들이 제국의 이름하에 처형되는 건 당연하니, 겁에 질릴 만도 했다.

“장부에 대해 자세히 아는 놈 있나?”

촤락, 손에 든 장부를 흔들며 바닥에 널브러진 산적들을 바라봤다. 데굴데굴, 수많은 눈깔들이 바닥을 구르며 고민하는 소리가 절로 들려오는 광경에 나는 터벅, 터벅, 산적들을 향해 다가가며 나지막이 말했다.

“한 놈 죽어야 쉽게 입을 여나?”

“모르, 모릅니다!!! 장부는 두목만 알고 있습니다. 정말이에요.”

“맞습니다. 나리,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착하게 살겠습니다…!”

“그런 대답을 듣고 싶은 게 아닌데…”

파락, 파락, 장부를 넘기며 산적들의 절규를 흘려들은 나는 빼곡히 기입된 내용들을 살피며 고민에 빠졌다. 금액과 매입한 상인으로 보이는 수많은 이름이 확실히 적혀져 있지만 거래하는 장소 같은 건 하나도 적혀있지 않았다. 다만 단편적인 정보만으로도 노예들을 판매하고 기재한 장부임은 확실했기에 이것만으로도 큰 단서였다.

“기왕이면 확실한 걸 가져다주고 싶은데…”

“제, 제가 장부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파멜 이 개자식! 혼자 살겠다고!”

“장부에 금액이랑 상인 이름만 적혀있던데, 따로 거래하는 장소는 어디 적혀있지?”

산적들의 저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파멜이라는 산적의 앞에 다가간 나는 곧장 본론부터 그에게 물었다. 꾀죄죄한 얼굴의 그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무어라 말하기 전 히죽, 못생긴 미소로 내게 말했다.

“헤헤, 그전에 확실히 살려주시는 건 맞습니까? 나리? 제가 좀…”

“아아…”

살려달라, 거래할 심산이었구나. 팔락, 팔락, 장부를 부채 삼아 휘두르며 파멜이란 놈의 낯짝을 가만히 바라봤다. 정보의 가치를 아는지 내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실실 쪼개는 쓰레기 같은 얼굴, 방 안에 들어가자 마자 겁에 질려 울부짖던 여인들의 얼굴과 비교되는 면상에 나는 씨익 웃으며 손을 뻗었다.

-콰악!

“으우웁! 그붑, 흐으으으!!! 으으우!!! 가아아아아악!!!”

콰득, 콰득, 콰득, 다섯 손가락 전부에 힘을 싣고 쥐어짜듯 안간힘을 다해 골통을 움켜쥐었다. 천천히 잡아들자 무릎 꿇은 파멜의 머리가 천천히 하늘로 떠오르며 카득, 카득,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히죽거리던 입꼬리는 잔뜩 일그러져 철판을 긁는듯한 소름 끼치는 비명과 절박한 울음만을 내뱉었다.

“씨발, 동등한 줄 아나 본데 뒤지기 전에 하나라도 아는 거 뱉으면 편하게 보내주려고 물어본 거야. 네 새끼 소굴 뒤엎으면 흔적 하나라도 나올 게 뻔한데 사람 만만히 보는 것도 정도가 있지.”

나도 착한 놈은 아니다. 그래도 웬만하면 사람에게 친절해지려 한다. 그게 그만큼 돌아오니까. 죄 없는 마을 주민들에게 목줄 채워 끌고 온 새끼들이, 사람들에게 대가를 받고 팔아먹은 쓰레기가 살아남으려고 그 사람들의 정보로 저울질한다? 열불이 뻗쳐 참을 수가 없었다.

-퍼억!

“으으으으으!!! 하아, 하아, 하아, 끄아아아아…!”

“알아도 안 들어  씨발아. 손모가지를 잘라버릴까, 한 번만 더 입 놀리면 그땐 끝이다.”

부들부들, 역겨운 낯짝을 흙에 파묻고 떨어대는 산적, 알맞은 옷을 입은 듯한 편안한 광경에 나는 펄럭이던 장부를 고이 포개고 품에 넣었다. 황자에게 넘기기 전 확실히 알아보기로 한 나는 죽은 것처럼 조용해진 산적들을 둘러보며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생각나 그들을 바라봤다.

“날붙이 하나라도 몸에 갖고있는 새끼. 전부 손들어.”

움찔, 움찔! 날붙이란 단어에 얌전히 고개를 처박던 산적들의 몸이 떨려왔다. 스텔지아의 마법을 우습게 보는 거 아니지만, 궁지에 몰린 쥐도 물어대는 법, 저놈들이 하나라도 날붙이를 챙기고 있으면 소동이 날 수도 있으니 미리 거둘 심산이었다.

“저어…”

툭, 툭, 발끝으로 산적들이 허리춤에 찬 단검이나 도끼를 빼내고 한데 모은 나는 조용히 호출하는 목소리에 불퉁한 얼굴로 그쪽을 바라봤다. 앳돼 보이는 산적 놈, 바들바들 떨어대는 놈에게 다가간 나는 싸늘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뭐.”

“소, 손이 묶여있는데 손을 어떻게… 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새끼가.”

빠악, 말꼬리를 잡는 산적의 머리통을 후려친 나는 몸을 돌려 산적들의 신발 밑창까지 전부 탈탈 털며 날붙이란 날붙이를 모조리 수거했다. 투둑, 투둑, 떨어지는 단검과 손도끼, 한손검을 한데 모아 정리한 나는 뒤치다꺼리나 해댄 거에 불만을 느끼다가 괜히 짜증이 나 앳된 산적에게 다시 다가가 그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빠악!

“씹새끼.”

우중충해 보이는 산적들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가벽을 부수고 묘하게 넓어졌지만, 바닥에 널브러진 쓰레기 탓에 오두막은 여전히 지저분했다. 그런 오두막 바닥 곳곳에 앉아 쉬던 여성들은 커다란 덩치의 나를 보고 흠칫, 놀랐다가도 스텔지아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경계를 늦추고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밖에 시끄럽던데, 누구 죽이기라도 했어요?”

“제가 무슨 사람 죽이는데 미친놈이에요? 본보기로 혼 좀 낸 게 다예요.”

“눈 돌아가면 무섭길래, 여기 있는 아가씨들한테 설명했어요. 베르바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하니 좋다고 하네요.”

“잘했어요.”

스윽, 스윽, 손등으로 말랑한 뺨을 살짝 문지르자 가냘프게 눈을 뜨고 흘겨본 스텔지아는 흥, 콧방귀와 함께 살짝 뺨을 내 손등에 얹고 애교부리는 고양이처럼 얼굴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은근히 내 손길을 즐기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그때 툭, 무언가가 남은 내 손을 두드렸다.

“이게 뭐예요?”

“따로 찾은 장부예요. 암시장이랑 노예시장 좌표 같던데, 계산해보니 제국 영토는 아니고 대륙 곳곳인 모양이에요.”

“처음에 챙긴 장부에 없다고 했더니 따로 써놨구나. 잘됐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었어요?”

스텔지아가 찾은 장부를 반기는 목소리에 텁, 내 가슴에 손을 얹은 스텔지아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숨길 것도 아니었기에 밖에 있었던 사단을 설명하자 쿡쿡, 웃은 스텔지아가 내 가슴에 얼굴을 얹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참 불같네요, 그렇게 화가 났었어요?”

“사람 납치하고 약탈하는 새끼들이 자기 목숨은 챙기려는 게 좆같아서 그랬어요.”

“그래도 여기서 죽여봤자 당신 업보만 되니까 귀찮은 짓 하지 마요. 조용히 데려가면 알아서 죗값을 치를테니까.”

스윽, 가냘픈 스텔지아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그녀를 내려다보자 괜히 쑥스러웠는지 홱, 고개 돌린 스텔지아가 앙칼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내가 무슨 틀린 말이라도 했나요?”

“아뇨, 너무 정론이라서 쳐다본 건데요?”

이게 원래 성격인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스텔지아의 성격에 내심 고민할 무렵 내게서 떨어진 스텔지아가 풍만한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오두막 입구로 걸어갔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황자님께 드릴 선물이 두둑하니까요. 어설픈 산적들 치곤 얻어가는 게 많네요?”

오두막 입구에 서서 묶여있는 산적들을 훑어본 스텔지아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가볍게 손뼉 쳤다. 그러고 보니 스텔지아는 황자의 명성을 드높이는 데 관심이 많았다. 어설픈 산적들은 몰라도 노예시장과 노예업을 하는 상인들의 정보를 얻은 건 확실히 큰 성과였다.

“흐음… 저놈들은 그냥 밖에다 세워둘 거죠?”

“그래야죠, 뭐 모포라도 주려고? 황자님이 그런 거 좋아해요?”

내 질문에 서서히 고개를 저은 스텔지아는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산적들을 둘러보며 조용히 말했다.

“아뇨, 쓸데없는 살생을 선호하지 않을 뿐, 죄인은 정당한 죗값을 치르게 하는 걸 올바르다고 생각하세요. 저딴 놈들 신경 써줄 것도 없죠. 그만 쉬도록 할까요?”

“그러면 그냥 내버려 두죠, 뭐…”

끝말을 흐리며 문가에 기댄 스텔지아의 뒤에 선 나는 밖에 널브러진 산적들을 바라봤다. 황자가 바라는 처우를 위해 살려준다고 하자 긴장이 풀렸는지 납작 엎드려 빌빌거리던 산적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어 아주 미세하게 히히덕거리며 떠들기 시작했다.

“미친 새끼들…”

저딴 정신머리니까 산적 질이나 하고 있겠지. 혀를 내두르며 스텔지아와 같이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때 문가에 기댄 스텔지아가 제법 찌뿌둥했는지 으으으, 야릇한 소리와 함께 허리를 쭉 펴며 몸을 풀었다.

로브를 입고 있음에도 커다란 젖가슴이 한차례 출렁이고 뿌득, 뿌드득, 우렁찬 뼈 소리가 스텔지아의 작은 몸에서 새어 나왔다. 제법 쑥스러웠는지 조금 볼을 빨갛게 물들인 스텔지아가 나를 힐긋 돌아보는 그때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통 하난 큼직하네…”

도저히 흘려들을 수 없는 저열한 희롱, 내뱉고도 미약한 미소를 짓는 쓰레기와 눈이 마주친 나는 툭, 내게 손 뻗는 스텔지아의 손등을 살짝 누르고 오두막 밖으로 빠져나가 성큼성큼 산적들 한가운데에 뛰어들었다.

-빠악!

“끄아아악! 아윽, 아윽, 끄윽, 끄으으윽!!!”

-뻐억, 뻐억, 뻐억!

살려준다는 소리에 긴장이 풀렸겠지, 그 탓에 해선 안 될 말을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거다. 기름기가 덕지덕지 묻은 머리통을 움켜쥔 나는 그대로 바닥에 내려찍고 주륵, 주저앉은 코에서 흘러내리는 핏줄기를 보고 이놈의 머리통을 스스로의 무릎에 찍어버렸다.

-빠악, 빠악, 빠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투둑, 투둑, 피가 튀고 침이 흘러내렸다. 완전히 주저앉아 돼지보다 납작해진 콧잔등과 눈물을 흘려대는 산적, 처참한 몰골에 손을 놓고 그대로 집어 던진 나는 시큰거리는 코를 손등으로 긁으며 말했다.

“부족해? 응? 몸이 좀 간질거렸나 본데, 밤새 한번 즐겨볼까?”

“아히미다, 아히에여, 제성함미다, 제성함미다!”

바들바들, 어깨를 떨어대며 사죄하는 산적의 모습에 너무 욱했나 순간 후회가 들어 하아, 한숨을 내뱉고 몸을 돌렸다. 바짝 엎드려 떨어대는 산적과 얻어맞은 산적을 보고 겁먹은 다른 쓰레기들. 요새에서 거의 죽을뻔한 이후로 감정의 제한이 풀린 듯한 상태가 괜히 신경 쓰였지만 일단 진정하기 위해 다시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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