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316화 (316/395)

-카각!

날아온 갈고리가 돛대에 박혔다.

“자, 넘어가자아아아!!!”

팽팽하게 당겨진 밧줄 끝에 매달린 해적이 끼야호오-! 함성을 지르며 매달리는 걸 발견한 나는 곧바로 밧줄을 베었다.

“끼야아아악!!!”

-풍덩

“지랄 났네.”

타잔처럼 날아오던 해적은 밧줄이 끊기자 꼴사나운 모습으로 바다에 떨어졌다. 그걸 비웃으며 뽑아 든 검을 치켜들자 한창 선원을 내려치던 해적이 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여기, 이상한 새끼가악?!”

푸욱, 사선으로 찌른 검이 미간에 박혀 뒤통수를 뚫고 나왔다. 푸륵, 틈새로 흘러나오는 피가 튀기기 전에 뻐억, 배를 걷어차 휘청거리던 해적에게 날려버렸다.

“감사합니다!”

“다쳤으면 설렁설렁 싸우고 있어요.”

팔이 덜렁거리기에 대충 물러나라 말해주자 선원이 감동했단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타다닥, 뛰어갔다.

남정네의 감동어린 얼굴은 영 보기 싫어 헛구역질하던 그때 후드를 푹 눌러쓴 아르실이 단검 두 개를 치켜들며 내 옆에 붙었다.

“전투 중 부상병이 발생해도 지금은 전시입니다.”

“제가 두 명 몫을 하면 되지 않을까요?”

“…믿어보겠습니다.”

-쐐애액!

아르실과 잡담을 나누는 와중 묵직한 추 하나가 내게 날아왔다. 가볍게 피했지만, 쇠사슬 끝에 달린 추는 뱀처럼 살랑거리며 퍼억, 되돌아가는 와중에도 나를 한 대 치고 돌아갔다.

“이런, 퍽치기당했네.”

“퍽치기가 뭡니까?”

“이런 거죠.”

덜걱, 바닥에 떨어진 갈고리를 줍고 붕붕붕, 가볍게 돌리며 추를 거두고 있는 해적을 바라봤다. 원을 그리는 갈고리를 보며 비웃던 해적은 후웅,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날아온 갈고리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이 거리를 어떠케헥-!”

콰직, 코가 무너지고 이빨이 사방에 튀었다. 동료의 이빨에 얻어맞은 해적은 경악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호응, 갈고리를 당겨 수거한 나는 끝에 물든 피를 탈탈 털며 아르실에게 설명했다.

“이런게 퍽치기입니다.”

“…열심히 퍽치기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바크문 선장에게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펄럭, 로브에 감춰진 날개를 짧게 펄럭이며 달려가는 아르실을 지켜본 나는 그녀가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하고 타닥, 배에 연결된 해적선으로 달려갔다.

“역시 뭐든 본진을 털어먹는 게 제일 빨리 끝나지.”

***

“카사노님…”

서걱, 단검 끝에서 걸쳐진 덧없는 생명의 무게를 느끼며 아르실은 저 멀리 해적선 갑판을 뛰어다니는 남자를 지켜봤다.

퍼억, 골통을 부수는 갈고리를 놓고 매듭 묶은 밧줄을 내던져 해적의 목에 걸어버린다.

골통에 갈고리가 박힌 해적을 걷어차 바다에 빠트리자 밧줄에 묶인 해적이 교수형에 처해지는 죄인처럼 바다로 빨려 들어갔다.

“저 미친 새끼부터 어떻게 해봐!!!”

“저기 봐, 상어 도축자 마르켈이다!!!”

쿵, 쿵, 콰직! 갑판을 닻으로 부수며 누군가 다가왔다. 문신으로 뒤덮인 덩치, 화려한 이명을 가진 마르켈이 카사노를 내려다봤다.

아르실은 마르켈이란 이름을 떠올리다가 자기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 카사노를 향해 소리쳤다.

“마르켈은 현상금이 걸린 이민족입니다!!! 30골드나 걸린 악명 높은 놈이니 주의하십시오!”

“귀여운 목소리군, 족쇄를 채우고 매일 밤 지저귀는 소리를 듣기엔 안성맞춤인 목소리야.”

카사노를 위한 경고가 끝나자 마르켈이 기다란 혀를 낼름거리며 아르실을 흘겨봤다. 질척하고 역겨운 눈빛에 구역질이 치솟았지만 아르실은 욕지거리를 삼켜내고 카사노를 바라봤다.

‘전투 능력은 확실히 뛰어나지만, 수배범 상대로는 역부족일 수도…’

“남의 직장동료는 건드는 게 아닌데.”

“하하, 떨거지 몇 죽였다고 설치지 마라, 너 같은 놈은-“

서걱.

피잇, 음흉하게 웃는 마르켈의 목에 실선이 그려졌다. 어두운 피부에 그려진 빨간 실선이 피잇, 진해지는 순간 투욱, 무거운 대가리가 갑판을 데굴데굴 굴러 카사노의 발치에 떨어졌다.

“역겨운 새끼.”

퍼억, 걷어차여진 마르켈의 머리통이 밧줄에 매달려 히이햐아~ 소리치던 해적과 부딪혔다. 풍덩, 바다에 떨어진 두 머저리를 지켜본 카사노는 슬쩍 아르실을 향해 몸을 돌리고 찡긋, 한쪽 눈을 감았다.

“이거면 현상금 받을 수 있죠?”

현상금이 30골드라는 건 그 상대가 무시할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거다. 제국 가정 평균 생활비가 3골드이니 마르켈이 이근방 해역에서 어느 정도의 악명을 떨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지표였다.

“…현상금은 대부분 머리통을 보고 지급합니다.”

“이런.”

저 남자라면 믿을 만하다, 처음으로 인간에 대한 불신감을 조금 내려놓은 아르실은 대해양을 비추는 별자리 같은 눈망울로 카사노를 응시했다.

***

머리털인지 뭔지를 썰자 미친 듯이 날뛰던 해적들의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

“이 씨발 새끼들!”

“넘어올 거면 곱게 넘어오지 왜 돛대에 갈고리를 박고 지랄이야, 지랄이!”

뻐억, 뻐억, 밧줄로 묶은 해적들의 골통을 후려치는 선원들과 짬밥이 안되는 선원들이 시체를 치우며 갑판을 뽈뽈뽈 뛰어다녔다.

“하, 항복이오. 항구로 데려다주시오. 부탁이오…!”

“이 새끼가 선장이에요?”

“카사노님.”

뒤처리 구경을 끝낸 나는 바크문과 아르실 앞에 무릎 꿇은 중년 남자를 천천히 훑어봤다. 넝마 같은 제복, 대충 걸친 해적모와 누런 이빨. 그런데도 제일 때깔이 좋은 걸 보니 확실히 선장이 맞는 듯 했다.

“카사노님이 마르켈을 처리한 덕에 쉽게 해결됐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니에요, 아르실을 모욕하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죠.”

“…농담이군요.”

“농담 아닌데.”

움찔, 작은 어깨를 떤 아르실이 힐끗, 주황빛 눈으로 나를 흘겨보곤 홱, 고개를 돌렸다. 뜬금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감수성을 이해 못하는 것도 잠시 신난 얼굴의 바크문이 내 손을 덥석 움켜쥐었다.

아, 남자가 갑자기 악수라니.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역시 아르실님이 믿을만하다고 말씀하신 최고의 인재답습니다. 정말, 앞으로의 항해가 든든해진 기분입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이런 사고를 겪었는데 별문제 없는걸 보니 선장님의 실력이 더욱 믿음직스러워졌군요.”

“하하하!!! 그런 칭찬을 하시다니, 저는 동성애자가 아닙니다.”

“저도 아닙니다.”

핀트가 어긋난 농담을 흘려들은 나는 묶어둔 해적 선장을 선원들에게 내던져줬다. 떨거지들 같은데 현상금이 합쳐서 40골드라니, 너무나 달콤한 수익에 침이 절로 고였다.

“햐아, 아르실. 원래 현상금이 이렇게 퍼주는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르켈과 저 선장은 상선들만 집요하게 털어대 제국과 왕국이 벼르고 벼르던 수배자들이라 금액이 높았던 겁니다.”

“아아, 근데 그런 거치곤 너무 약하던데요.”

“…마르켈이 몸담근 갈기 수염 해적단 정도면 이근방 해역에서 중상위권에 드는 해적단입니다. 물론 저희 배가 제국의 지원을 받는 만큼 우수한 선원들이 많고 특히…”

힐끔, 나를 바라본 아르실이 크흠, 헛기침을 내뱉곤 고개를 돌렸다.

“아무튼 무척 대단했습니다. 실없는 농담만 내던지는 줄 알았는데…”

“하하, 분위기 좀 풀려고 한 거죠. 그리고 귀엽다고 한 게 뭐가 나빠요.”

“…부인만 셋.”

스윽, 익숙한 몸놀림으로 한 걸음 물러난 아르실이 끼익, 울타리에 기댔다.

타륜을 조종하는 바크문과 뛰어다니는 선원들을 지켜본 나는 조용히 아르실의 옆에 섰고 끼익, 나무 소리를 들으며 움찔 떤 아르실은 단검을 꺼내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레지나 그 여자는 어느 정도예요?”

“레지나, 말입니까.”

“아까 그 덩치랑 비교하면 어때요? 본 적 있어요?”

내 질문에 스윽, 스윽, 헝겊으로 단검을 닦아내던 아르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 해역에서 제가 타고 있던 배에 홀로 날아왔던 전적도 있습니다.”

“오, 그 정도예요?”

“…레지나의 푸른 파도 해적단은 이근방 해역 해적단 중 가장 강하고 결속도 뛰어납니다. 거기다 레지나 개인은 마나까지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실력을 갖췄습니다.”

“아하.”

“하지만 제가 본 카사노님의 실력이면 레지나를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여자가 가진 무구를 생각하면 힘겨울 수도 있지만…”

“그 소라랑 산호로 덮인 커틀라스요?”

“그러고 보니 마주쳤다고 했었군요.”

“네, 그게 무구였어요?”

“고대 해상왕국에서 만들어낸 무구라고 합니다. 다양한 마법과 신비로운 금속, 천년에 한 번 나타나는 소라를 가공해 고정했다는 둥, 소문이 무성한 환상의 무구입니다.”

“이야, 나도 그런 게 있으면 편할 텐데.”

“레지나는 배경부터 특이한 해적입니다. 비록 소문이지만… 바다의 마녀가 거둬들인 아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바다의 마녀요?”

“인어와 세이렌이 모시는 바다의 수호자, 라고 합니다만 아무도 본 적은 없습니다. 바다 마녀의 이야기도 술에 취한 레지나가 술집에서 떠들어댄 게 항구에 떠돌아다닌 것뿐이고요.”

“그러면 그냥 술주정일 수도 있겠네요.”

“제국에선 이미 그렇다고 생각하고 더 조사하고 있진 않습니다.”

“아, 첩보부였죠?”

찌릿, 까먹은 사실을 떠올리며 되묻자 아르실의 눈동자가 나를 꼬집었다.

“레지나, 레지나… 한번 붙어봐야 가늠이 될 거 같은데.”

턱을 긁으며 레지나에 대해 고민했지만 쉽게 상상이 안 됐다. 나와 비슷한 실력에 고대 무구라니, 그럼 못 이기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일단은 부딪혀봐야 했다.

“아, 항구가 보입니다.”

“현상금은 어떻게 처리하죠?”

“황자님께서 미리 언질 주신 바로는 절반은 선원들과 선장에게 균일하게 나누고 절반은 저와 카사노님이 가지라 하셨습니다.”

“…저 속이는 거 아니죠?”

“후, 들켰습니까?”

“진짜?”

깜짝 놀라 아르실을 바라보자 펄럭, 거세게 불어온 바람이 아르실의 후드를 벗겨냈다.

“농담입니다.”

싱긋, 옅은 미소를 지은 아르실이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별다른 고생 없이 끝난 첫 항해의 여운을 즐기며 바람을 느꼈다. 온몸을 휘감는 바람과 향긋한 바다 냄새. 곧 떠날 사람이니 적응할 리는 없지만- 한순간의 여흥이라 생각하니 무척이나 달콤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났다.

“하아, 시발, 좆됐네?”

턱과 인중을 덮은 꺼슬꺼슬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레지나는커녕 머리칼 한 가닥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니.

심히 좆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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