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엉!
바닥을 울리는 작은 쇳덩이, 저 작은게 여지껏 옴짝달싹못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레지나는 큰불만이었지만 불만을 삼키고 눈앞의 사내를 노려봤다.
카사노.
밤새 자신을 희롱하고, 지, 집요하게 유두와 가슴만 괴롭힌 색마, 희롱꾼, 씹새끼!
미소짓는 그의 손엔 작은 열쇠가 들려있었고 그의 허리춤엔 자신의 무구, 피레아가 묶여있었다.
“무슨 수작이야?”
“수작이라니…”
달그락, 바닥에 떨어진 마나구속구를 집어든 카사노가 미소짓는다. 그 미소에 잠시 집중이 흐트러진 레지나는 짜악!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의 뺨을 양손으로 후려치고 눈앞의 남자, 아니- 인생 최악의 원수를 노려봤다.
“기껏 잡아와 좆대로 희롱할땐 언제고 뭐? 이만 나가달라고? 이 개새끼가…”
까득, 이가 갈리고 눈에 피가 몰린다. 하지만 자신의 무구를 빼앗은 저놈의 무력은 동등하거나 그 이상, 밤새 희롱당해 체력이 급격히 빠진 자신의 몸상태로는 도저히 이길수 없는 싸움이었다.
“나가고 싶다면서요, 풀리면 죽여버리겠다면서요? 레지나씨한테 기대하는게 있거든요, 그래서 풀어준거에요.”
“… 니새끼 동료들은 알고 있나?”
“모르죠.”
피식, 헛웃음과 함께 찰칵, 피레아를 뽑아드는 카사노, 머저리 같은 행동에 히죽 웃은 레지나는 걸쭉한 욕설을 내뱉으며 눈앞의 원수를 조롱했다.
“하, 병신아, 꼴에 탐났나보네? 근데 어쩌지? 네놈 같은 자격없는 머저리는 절대 다룰수 없거든.”
파직, 파직!
카사노는 침음을 삼키며 철컥, 검집에서 반쯤 뽑은 커틀라스, 피레아를 납도하고 손바닥을 들었다.
산호가시와 소라고둥에 찔려 피가 줄줄흐르는 손바닥.
확실히 주인을 가리는 무구인가보네, 혀를 찬 카사노는 척, 허리에 검을 걸고 웃어대는 레지나에게 통보했다.
“그럼 뭐 그냥 갖고있죠, 아니면 필리아? 그분한테 진상해도…”
“그씨발년의 이름을 꺼내?”
섬뜩, 바닥에 짙게 깔리는 진득한 살기, 앙앙거리고 울먹이면서 희롱당하던 레지나의 지난 모습과 조금 다른 기세에 카사노는 어깨를 살짝 떨었다가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말이 그렇다는거죠 말이.”
“…풀어주는 이유가 뭐야?”
텅, 카사노와의 문답에서 얻을게 없다 판단한 레지나가 발을 구르며 문가로 다가갔다.
레지나를 길들여 제국의 개로 만들 생각이라고 순순히 말했다가는 반발만 일으키며 죽자고 달려들거같아 단어를 선택한 카사노는 흐음, 흐음, 콧소리를 내며 입술을 두들기고 레지나에게 설명했다.
“계획이 있어서요, 어차피 또 붙잡을 자신도 있고…”
“자신, 자신이라.”
흥, 콧방귀를 낀 레지나는 꾸욱, 허리춤에 감춘 주먹을 움켜쥐며 고민했다.
저놈은 자신을 풀어주려한다. 정말 풀어주는게 계획인거 같은 놈의 말을 믿는다치면, 이곳에서 탈출해 집합장소로 가면 가족들이 자신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거다.
하지만 그게 목적이라면? 내 근거지를 알아내고, 모조리 일망타진하는게 계획이라면?
레지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과 술수에 입술을 짓이기며 고민했고 또륵, 또륵 머리 굴리는 소리를 하품을 찍 내뱉은 카사노는 손을 내저으며 그녀의 착각을 지적했다.
“뭐 사람 붙인다거나 뒷조사한다거나, 미행한다거나 그런거 전혀아니니까 그냥가요. 아니면… 나한테 더 괴롭혀지고 싶나?”
터억, 거리를 좁힌 카사노가 레지나를 벽에 몰아붙이고 쏜살같이 뻗어낸 손으로 그녀의 양손을 움켜쥐어 머리위로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자유를 빼았긴 레지나는 후웅, 무릎을 휘둘러 뻐억, 카사노의 복부를 가격했지만 눈가를 찌푸리며 참아낸 카사노는 남은 손으로 뽈록, 셔츠 위로 솟아오른 그녀의 음탕한 젖꼭지를 꼬집고 마구 비틀었다.
“히이이이잇♥”
바다의 지배자, 푸른 파도 해적단의 여왕, 마녀의 딸- 온갖 이명을 주렁주렁 달고 쐐기이빨항구를 주름잡는 레지나의 입에서 음탕한 교성이 새어나왔다.
침줄기 가득한 입을 쩌억 벌리고 발정난 암캐처럼 혀를 낼름거리며 젖꼭지만으로 절정한 레지나는 까득, 쾌락의 여운을 갈무리하고 빠악, 카사노의 턱에 박치기를 먹이고 거리를 벌렸다.
“아, 맵다, 매워.”
“이 씨발새끼히잇…”
움찔, 움찔, 겨우 참아내고 있었는데- 저놈이 손댄 순간 봉긋 한계치 이상으로 솟아오른 젖꼭지가 사락, 사락, 옷자락에 스칠때마다 아찔한 쾌락을 만들어냈다.
가슴 끝에서 퍼진 전류가 꼬리뼈를 타고 온몸을 헤집는 야릇한 쾌감. 밤새 철저히 교육당한 레지나는 애써 참아내며 툭, 툭, 단추를 풀고 오히려 앞섬을 헐렁하게 만들었다.
“휴우, 가슴골 멋진데.”
“그냥 끝장을보자. 오늘 꼭 죽이고 말거야 이 씨발새끼.”
까득, 이를 갈며 신발밑창에 붙여둔 단검을 떠올린 레지나는 천천히 승수를 따졌다. 선수를 친다해도 빠진 체력의 격차는 좁히지 않는다. 진작 떠올렸으면 됐는데- 방심했던 놈의 목줄기를 썰었으면 이러고 있지도 않았을텐데.
밤새 느꼈던 쾌락의 잔향과 바들바들, 지금도 떨어대는 조교의 결과물을 곱씹으며 혀를 찬 레지나는 자책하며 카사노를 노려봤지만 어느새 거리를 벌려 창틀에 기댄 카사노는 조용히 가라앉은 눈으로 레지나를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빨리가요, 자꾸 지체하면 요원들이 올수도 있으니까.”
“…진짜 풀어주겠다고?”
“이것도 되찾고, 내 목도 썰어야지?”
찰칵, 허리에 찬 피레아를 손에들고 흔드는 씹새끼, 저 능글맞은 낯짝에 주먹을 꽂고싶었지만 겨우겨우 참아낸 레지나는 덜컥, 문고리를 돌리고 마나를 일으켜 단숨에 건물을 덮었다.
‘기감에 잡히는건 없어, 정말… 이놈 혼자야.’
“풀어주는 이유가 뭐지?”
“…알고 싶어?”
피식,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입가를 씰룩이는 카사노, 놀릴 기색 가득한 놈의 낯짝에 레지나는 화악, 얼굴을 붉히며 단검을 뽑아들었다.
“또 잡을수 있으니까, 몇번을 덤벼도 무릎 꿇리고 데려와서 내 마음대로 희롱하고 따먹고 할수 있어보이니까 풀어주는거지.”
더 이상 참을수 없어 달려들기 직전 자신의 귓가에 들리는 한심한, 아니- 상상조차 해본적 없는 문장이 울려퍼졌다.
자신을 낮잡아본다. 여자라고, 마녀의 딸이라고 웃어제끼던 머저리들, 목이 잘려 바다의 망령이 된 그새끼들과 똑같은, 아니- 더 모욕적인 말을 내뱉는 카사노.
“너, 그말 책임 질수 있어?”
“책임질게 있나? 실제로 데려와서 잔뜩 가지고 놀았는데.”
“…방심, 아니- 실수한거야. 정말, 네가 나랑 대등하다 생각해? 제국의 개새끼주제에? 내 구역에서?”
“개새끼를 무시하네, 네 가족들한테 오줌 한번 싸질러주면 내 영역이 될건데, 대등한게 아니고 내가 더 위지.”
“하아.”
이런놈은 처음이었다. 자신에게 속아 죽자고 달려드는 티치의 딸, 필리아보다 거슬리고 역겹고 죽이고싶고 증오스럽다.
자신을 희롱한 저 손, 밤새 자신을 능욕하고 낮은 목소리로 협박하던 고운 입술, 처음부터 끝까지 얕잡아보기만 하는 얕은 눈빛까지.
“너, 결정했어.”
“도망치기로?”
“사지의 힘줄을 끊고 창관에 남창으로 굴리고 배의 오줌받이, 창남으로 만들어 굴려줄게. 약속할게, 정말로.”
“와, 발상이 무섭네.”
-터어엉!
찌르르, 바닥에 박힌 단검이 잘게 떨리다가 피잉, 멈춰섰다.
손잡이만 우뚝 솟은 단검의 형태에 카사노는 피식 웃으며 레지나를 바라봤고 경고를 끝마친 레지나는 조용히 몸을 덜려 덜컥, 문을 열고 다리에 마나를 둘러 파삭, 복도를 부수며 달려나갔다.
“흐읏, 흐웃, 흐우우…!”
타다다닥, 열린 창문을 부수고 항구로 나온다, 바닷길을 따라 항구를 내달리고 익숙한 구역이 눈에 잡히는 순간 자세를 낮춘 레지나는 순찰하는 병사들의 시선을 피해 항구 사이사이를 쥐새끼처럼 돌아다녔다.
감히 나를 쥐새끼처럼 돌아다니게해? 복수할거야, 복수할거라고!
들끓는 복수심을 되새길수록 레지나는 가쁜숨과 달아오르는 몸을 진정시키기 바빴다. 그놈이 밤새 길들여놓은 자신의 몸은 툭, 툭, 헐렁한 옷가지에 닿이기만 해도 찌르르, 야릇한 쾌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선장님…!”
소곤소곤, 판자가 겹쳐진 구석, 몸을 기대고 숨을 고르자 속삭이는 목소리를 확인한 레지나는 곧바로 끼익, 판자를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뚝, 뚝, 뚝-
항구 아래, 종유석이 늘어지고 검은 바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동굴의 초입.
그곳에 착지한 레지나는 찌르르, 몸을 울리는 야릇한 쾌락에 혀를 차며 얼굴을 붉혔다.
“선장님!”
와락, 작은 몸을 내던지며 안겨오는 신하, 메파. 어릴적부터 함께했던 귀여운 부하의 환영에 가슴이 간질거려 살짝 밀어낸 레지나는 툭툭, 메파의 어깨를 두들기며 그녀를 진정시키고 덜덜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메파, 파이프 좀…”
“아, 네 선장님!”
턱, 떨리는 손가락 사이 끼워지는 갈색 파이프, 익숙한 손놀림으로 파이프를 움켜쥔 메파는 회색가루를 가득 붓고 칙, 칙, 성냥에 불을 붙이고 가루에 얹었다.
“후우웁…”
파하, 폐부 깊숙히 스며든 연기가 정신을 일꺠우고 온몸을 휘감는다.
그놈의 손길과 다른 편안한 쾌락에 헤실헤실, 풀어진 입가로 후웁, 연기를 빨아들인 레지나는 푸흐, 순식간에 파이프 하나를 비워내고 툭, 바위위에 걸터앉으며 한숨 돌렸다.
“선장님, 그거 중독이에요. 그런쪽에 너무 약하신거 아니에요?”
“몸이 원래 민감한걸 어쩌겠어, 그리고 이런거 아니면 삶의 낙도…”
삶의 낙, 그러고보니 진짜 기분 좋았었지…
화악, 이를 갈며 얼굴을 붉힌 레지나는 메파의 근황보고와 다음 카사노 습격때 합류하기로 한 해적들의 목록을 들으며 스으읍, 새로운 가루를 파이프에 붓고 깊게 한모금 빨아들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카사노에 대한 감정을 곱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