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쏴아아아아!!!
오두막 하나가 세워진 작은 섬.
쐐기 이빨 항구와 멀리 떨어진 외딴섬이지만 그 주변에 정박한 배들은 하나같이 이름있는 배들이었다.
다양한 조각이 새겨진 선수상을 달고 번뜩이는 대포와 하늘을 찌를 기세의 돛대를 자랑하는 여러 배들이 파도에 얻어맞는 걸 지켜보며 후우, 연기를 내뿜어낸 레지나는 다가오는 부하, 메파의 모습에 파이프를 품에 집어넣었다.
“선장님, 또 피고 있어요? 그거 독한 거라 조금씩만 피워야 한다니까요.”
“…냅둬, 이거 아니면 계속 거슬려서 그래.”
“뭐가요?”
-툭!
“아흑!”
무슨 헛소리냐는 듯 어깨를 때리는 메파의 손길 탓에 상체가 흔들리자 출렁이는 젖가슴 끝이 옷자락에 스친다.
등골을 훑는 야릇한 쾌감에 흠칫, 어깨와 허리를 떤 레지나는 이를 갈며 메파를 노려봤지만 순진한 부하는 선장의 반응을 이해 못 하겠다는 눈으로 흘겨보고 후다닥 거리를 벌렸다.
“후우우…”
‘고작 하루 당한 것뿐인데, 왜 이러는 거야…!’
하루, 고작 하루였다.
그 쓰레기 같은 놈의 손길에 마구 울어대고 자존심도 내려놓고 앙앙거렸지만 그건 고작 하루인데-
치솟는 울분에 까득, 이빨을 간 레지나는 날카로운 이빨을 혀로 핥다가 퉤엣, 침을 내뱉으며 오두막을 바라봤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면 지랄하겠지.”
제국과 쐐기 이빨 항구 사이 해역은 해적과 제국, 왕국 모두에게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해역이었다.
대륙 중앙에 위치한 대륙이 몽환의 밀림에 붙어있는 호르미아로 물건을 나르고 그 밑에 있는 항구도시에 물품과 교역품들을 날라 쐐기 이빨 항구가 있는 중역을 지나치면 성국과 다른 왕국들의 해역에 곧바로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제국으로선 동쪽에 다른 왕국들을 가로질러 항구를 이용하는 것보다 서쪽에 있는 영지인 호르미아를 중간 유통지로 두고 아래로 내려가기만 하면 됐기에 당연한 선택이었다.
왕국들 또한 제국과 성국사이를 가로막는 커다란 산맥 탓에 육로로 인한 교역에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그 탓에 해로를 타고 단번에 항구로 오는 제국의 상선들은 그들에게 가뭄 중 내리는 단비와도 같았다.
그런 해적들의 눈에 보이는 제국과 왕국, 둘 다 목 빠지게 기다리는 소중한 교역품들, 어설픈 상선과 제국의 해군들이 지키는 것치고 어마어마한 가치의 보물들은 해적들의 눈을 돌아가게 만들기 충분했다.
본래라면 해적들의 세력 따위로 제국에게 덤비는 건 무리였겠지만- 대륙의 정세는 수상했다.
굳건해야 할 제국은 알 수 없는 이교도들과 마왕을 추종하는 무리가 제국 내부를 좀먹어 황실의 피까지 스며든 게 아니냐는 소문까지 나돌았고 성국 또한 이세계의 문물을 다루는 크래프톤과 기싸움을 벌이다 외교에 밀려 봉쇄된 것 마냥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다.
제국과 성국의 꿀을 받아먹던 기타 왕국들은 기둥들이 흔들리자 맥없이 휩쓸렸고 그 탓에 느슨해진 대륙 내부에 집중하느라 해역에 신경 쓰지도 못하게 됐다.
모든 상황과 운, 신마저 해적들의 손을 들어주는 듯한 착각에 해적섬과 여러 무법 항구를 거점으로 둔 해적들이 제국 해역에 와 설치게 되는 건 한순간이었고 돈맛을 본 해적들의 씀씀이 덕에 항구들도 되살아났다.
하지만 입소문이 타 불청객이 늘수록 집주인의 심기를 거스르는 법, 제국 안팎을 둘러보느라 지친 황제의 귀에 들린 날파리들의 소식은 황제를 분노케만들기 충분했고 황제의 이빨은 곧바로 해적들에게 향했다.
아니- 향해야 했지만, 불행히도 황제의 이빨은 하나였다.
황제가 제국의 안팎을 둘러본다면 그 제국의 안팎을 쏘아다니는건 황제의 이빨, 6황자 오베론의 몫이었다.
물론 오베론의 이름으로 대대적인 해적들의 토벌을 시행하고 해적들의 토벌이 이뤄지긴 했지만 갈 곳 없는 해적들과 망해버린 상단의 상선들 또한 해적으로 둔갑하는 요즘, 해적들의 증식은 멈추지 않았고 오베론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대륙으로 향했다.
해적들은 고통스러운 지옥에서 해방된 기쁨에 몸서리를 쳤고 오베론에 대한 칼을 갈며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레지나 또한 오베론에게 신세 진 게 있어 해적들의 분노에 공감했고 같이 칼을 갈았지만…
-콰아앙!
“레지나, 내 사단에 있던 놈 중 몇이 그 새끼한테 잡힌 줄 알아? 자그마치 넷이야, 넷!”
“그건 씨발 대머리 네가 관리를 똑바로 안 하니까 그러지. 그 새끼가 여기 온 지 보름하고도 하루가 됐는데 네 새끼 애들 넷이 잡혔으면 그건 네 문제 아니야?”
“이런, 개좆같은…”
-터엉!
피이잉, 탁자 정중앙에 박힌 단검이 흔들리자 꿀꺽, 테이블을 둘러싼 해적들이 침을 삼키며 레지나를 흘겨봤다.
나름대로 이름 있는 놈들 넷이나 모았는데 애새끼처럼 징징대다니, 그놈만 한 놈은 없는 건가?
“크읏!”
“왜, 왜 그래? 미안해. 부하들이 잡혀서 말실수를 좀 했네.”
‘왜 자꾸 그 새끼 생각이 나는 거야 씨발…!’
어렴풋이 떠오르는 능글맞은 낯짝에 분통을 터뜨린 레지나는 천천히 테이블에 앉은 놈들을 둘러봤다.
상선만 털어대는데 미친 돼지 새끼, 덤보
사단을 거느리며 쪽수로 밀어붙이는 검은 해골 해적단, 스칼
항해마다 배를 바꿔 상선 호위에 스며들어 뒤통수를 치는 배신자. 하긴
신대륙을 찾겠다며 상선들과 교역선을 털어 자금을 모으는 낭만 해적, 톰슨
제국 남서 해역에서 레지나를 제외하면 가장 이름을 떨치는 해적들을 모아냈지만, 레지나는 괜히 꺼림칙해졌다.
돼지처럼 침 튀겨가며 그놈을 잡으면 돈은 누가 갖니, 해치우는 쪽에게 혜택이 있냐 떠들어대는 놈들의 낯짝을 보고 있자면 도저히 그 남자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레지나, 뭔가 불만인 거 같은데.”
“…여기서 그놈을 직접 만나본 놈 있어?”
“없지, 아- 한 명 있지 않나? 당신 그놈과 만나서 대패했다고 들었는데.”
낄낄낄- 또 시작이다. 더러운 침을 테이블에 튀겨가며 실실거린 놈들이 누런 이빨을 보이며 돼지처럼 입을 벌리는 순간 참지 못한 레지나는 빠악! 웃어대던 덤보의 코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꾸히이이익!!!”
“이런 씨발, 덤보, 덤보, 덤보!!! 내가 대패를 해서 네놈들을 끌어모았던, 내가 그 새끼를 죽이는 데 실패했던 그게 우리 연합이랑 무슨 상관이야. 어?”
“이런, 씨바려히…!”
“지금 나보고 욕한 거야? 어? 덤보, 덤보, 이 씨발 돼지 새끼야, 나보고 그런 거냐고!!!”
피잉, 테이블에 박힌 단검을 빼내고 출렁이는 턱에 내민다. 레지나의 심기를 거스르기 싫었던 셋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레지나의 분노를 지켜봤고 푸들거리는 턱살을 좁혀 단검 날을 피한 덤보는 새는 발음을 최대한 똑바로 내뱉으며 레지나에게 사과했다.
“미한, 미안…! 잠시 정신이 나갔나 봐, 레지나- 미안해. 이, 일 얘기로 돌아가자고. 나는 네 제안에 뭐든 따를 테니까…!”
덤보의 굴욕적인 사과를 들은 레지나의 눈썹이 천천히 내려갔다.
단검을 거둔 레지나가 힐끔 시선을 돌리자 나도 저럴 생각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세 놈, 그들의 태도를 보는 순간 바닥까지 내려간 레지나의 자신감이 미친 듯이 치솟아 올랐다.
“그래. 나한테 계획이 있고 이것만 성공하면 당분간 제국의 꿀은 우리가 받아먹는 거야.”
텅, 단검을 눕혀 테이블에 얹은 레지나는 메파에게 손짓한 후 협력을 위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모조리 그들에게 풀었다.
“검은 수염, 카사노 그 새끼는 제국의 6황자 오베론의 부하야. 황자의 명령으로 해적들을 토벌하러 온 씹새끼지.”
“그 새끼가 황자의 부하라고?”
“나, 난 영락없는 현상금 사냥꾼인 줄 알았어…!”
“그런 품위 없는 자가 제국의 녹봉을 받아먹는 자라니, 흐음.”
연극을 보는 것처럼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이는 놈들의 시답잖은 대답에 피식 웃은 레지나는 텁, 메파가 내민 양피지를 움켜쥐고 거칠게 내던졌다.
-파라라락!
테이블을 구르는 양피지 뭉치, 기술도 좋게 하나씩 배분된 걸 확인한 레지나는 톡, 톡, 테이블을 두드리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계획은 간단해. 그놈은 나를 잡고 싶어 해, 물론 나도 그 새끼를 잡아족치고 싶어.”
“그, 그러면 유인할까?”
“씨발 닥쳐 덤보, 내가 이야기하고 있잖아.’’
“…”
-타앙!
“백병전으로 붙자고 할 거야, 그 새끼는 자기 실력에 취해있는 머저리거든. 나를 잡아낼 생각에 눈이 돌아간 새끼니까 거절하지도 않겠지. 그때 우리 다섯이 확 덮치는 거야.”
“너무 간단한 계획 아닌가?”
“그럼 씨발 넌 계획이 있어 톰슨?”
테이블을 내려치며 열변을 토하는 레지나에게 딴지건 톰슨은 흉악한 살기에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돌렸다.
“도망치지 못하게, 확실히 에워쌀 수 있는 곳까지 유인할게. 너희들은 그 근처에 잠복해있다가 내가 나눠준 신호 마법 양피지를 갖고 신호를 보내.”
“내가 신호를 보내면 확인한 놈이 신호를 보내, 그럼 확인한 놈이 또 보내고, 5명이 전부 합류하고 카사노를 덮친다. 이게 내 계획이야.”
“해역 하나에 흩어져있다가 신호를 보고 집합하자는 건가, 그동안 혼자서 상대할 수 있겠나?”
하긴의 질문에 나머지 셋의 시선이 레지나에게 향했다.
상대할 수 있겠냐고? 지금의 레지나가 듣기엔 정말 머저리 같은 질문 그 자체였다.
“당연하지, 이 바다에서 그놈을 가장 죽이고 싶은 놈은 바로 나일꺼야. 바다에 맹세할 수 있어.”
“…그래, 레지나 네 실력은 아니까 믿겠다. 나는 참여하지.”
“나도! 당신보단 못해도 나도 그 새낄 죽이고 싶다고.”
“흠, 검은 수염이라면 여태 처리한 해적들의 보물과 배, 현상금으로 가득 차 있는 보물선이겠군. 나도 가세하지.”
“덤보.”
생각보다 손쉬운 셋의 수락에 레지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돼지, 덤보를 바라봤다.
푸들거리는 턱살을 흔들며 코피가 멎길 기다리던 그는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고 지어낸 듯한 분노어린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무, 물론이지. 돈이 있으면 내가 빠지는 거 봤어? 작전은 언제야? 응?!”
“내일, 내일 내가 카사노 그 씨발놈을 이끌고 산호섬 근방으로 오겠어.”
“산호섬이면 주변에 해안절벽도 있고 괜찮지. 레지나가 머리를 좀 썼군.”
머리를 좀 썼단 말에 레지나의 눈썹이 찌푸려졌지만, 그녀는 참았다. 동맹을 맺기 전이었으면 몰라도 동맹을 맺은 직후 폭력을 사용한다면 헐거운 해적들의 동맹에 균열이 갈 게 분명한 탓이었다.
"내일 보자고, 동지들."
"레, 레지나. 기왕 동맹을 맺었는데 술이라도..."
"이런 씨발 덤보."
"..."
축 늘어진 턱살을 경멸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레지나는 단검을 챙겨 들고 오두막을 빠져나왔다.
쏴아아, 파도가 몰아치고 배가 흔들린다.
크래프톤에서 들었던 폭풍전야- 라는 말을 떠올린 레지나는 철컥, 허리에 찬 마법 공학 총기의 시제품을 만들어준 괴짜 년을 떠올리며 카사노에 대한 분노를 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