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걱!
“““와아아아아아아아!!!”””
“이런 씨발!”
“크읏!”
맞닿은 검날이 튕겨 나가고 검날이 빛난다. 섬광처럼 날아드는 두 개의 검날이 그은 은빛 실선이 흩어지는 순간 레지나와 필리아는 동시에 주춤거리며 거리를 벌렸다.
-주륵
“아가씨!!!”
“호들갑 떨지 마!!! 귓볼만 베인 거니까, 흐흐- 저 갈보년에 비하면 싸게 가져갔지.”
“…”
“두목, 금방 한 벌 가져다드릴게요!”
“됐어, 본다고 닳겠어?”
걱정하는 선원들을 꾸짖으며 피가 흐르는 귓볼을 매만지는 필리아, 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레지나를 비웃은 그녀는 상처가 아프지도 않은지 성큼성큼 레지나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레지나 또한 부하들의 걱정을 흘려들으며 잘려 나간 가슴께를 훤히 드러내며 허리를 폈다. 귓볼을 벤 레지나와 다르게 옷을 벤 필리아.
그녀의 검은 명치를 가르진 못했지만, 가슴골 사이를 확실히 갈랐는지 레지나의 뽀얀 가슴골이 드러나도록 세로로 새겨진 검흔을 레지나에게 남겨줬다.
“하하, 갈보년답게 남자들한테 젖통 까는 게 자랑스럽나 보네.”
“그러는 네년은 눈깔하고 귓볼을 세트로 맞췄구나, 응?”
“이런 씨발년이…!”
거리가 좁혀질수록 선명하게 들리는 레지나와 필리아의 대화. 얼마나 날이 섰는지 듣기만 해도 귀가 베인 듯한 착각을 느낀 나는 어깨를 부르르 떨며 감탄을 내뱉었다.
“둘이 잘 싸우네.”
-꾸욱, 꾸욱
“응?”
챙, 챙, 챙! 다시 맞부딪히는 검날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그때 잡아당겨지는 옷깃, 눈썹을 펴며 바라보자 불퉁한 표정의 아르실이 내 옷깃을 붙잡고 건의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붙어야 합니다. 필리아님이라면 쐐기 이빨 항구 영주 티치의 맏딸, 돕는다면 포상은 물론이거니와 협력해 레지나도 체포할 수 있습니다!”
빈틈 하나도 없는 완벽한 정론, 여기서 거절하거나 흘려듣는다면 눈가를 그었던 날카로운 손톱이 심장을 파먹을 수도 있었기에 나는 귀를 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바크문! 바짝 붙여주세요, 저 혼자 월선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으웃!”
꾸욱, 앙탈과 함께 발을 짓밟는 아르실을 뒤로하고 나는 점점 가까워지는 둘의 결투를 마저 구경했다.
제복이 반으로 갈라졌는데도 뽀얀 가슴골과 젖가슴을 출렁이면서 재주도 좋게 유두를 드러내지 않는 레지나의 테크닉에 감탄하고 있었지만, 자세히 바라보니 레지나의 새하얀 얼굴은 무척이나 빨겠다.
“후웃, 훗, 흐읏, 흐응, 흐응, 흐읏!”
“남정네들 앞에서 젖통을 까니까 흥분되는 거냐? 어지간히 미친년이구나!”
“닥쳐엇, 그딴, 그딴거 아니니까!”
-푸와아악!
“끄르르르륵!”
이를 갈며 파도를 불러일으키는 레지나와 파도에 얻어맞는 필리아. 둘의 진검승부를 지켜보고 있으니 그제야 레지나의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사악, 사악, 바람에 흔들리는 천에 스치는 레지나의 젖가슴. 본래라면 꽉 동여매 가슴에 붙었을 옷가지가 가슴을 쓰다듬듯 문지른 탓에 몸이 굳은 것 같았다.
길들여놓은 게 사라지진 않았네.
열심히 노력한 결과물이 남아있다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었기에 콧노래를 부르며 텁, 허리에 찬 검 손잡이를 움켜쥐고 후웁, 숨을 크게 들이켰다.
-쿠우우웅!
“크으으읏?!”
“꺄아앗!?”
흔들리는 배 위에서 보이는 건 키스하는 선수상, 레지나의 배에 자리 잡은 인어선수상은 부딪혀온 우리 배의 사자 선수상과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었…
-콰득! 풍더엉!
“오.”
진하다 못해 과격한 키스, 결국 키스 끝에 목이 꺾인 인어선수상은 듀라한이 돼버렸고 쿠웅, 키스를 나누던 대상을 잃은 우리 배의 선수상은 머리를 배에 박으며 다시 한번 원형으로 둘러싼 모두를 뒤흔들었다.
“신성한 결투 중이니까 꺼져 씨발새끼들아!!!”
쿠르르, 어수선한 배 위에서 우리를 향해 쏟아지는 우렁찬 고함, 선원들의 환호를 들으며 뿌듯해하는 한 남자를 발견한 나는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바로 전에 뱉어진 고함을 뒤덮는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신성한 결투는 지랄!!! 레지나 이년아, 서방님 오셨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킬킬, 웃음을 터뜨리며 쿵, 선수상을 밟고 갑판을 넘어갔다.
원형으로 둘러싼 인파가 갈라지고 대치하던 레지나와 필리아에게 천천히 다가가니 새빨갛다 못해 터질듯한 얼굴로 변한 레지나가 내게 삿대질하며 목에 핏줄을 세우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이, 이씨발새끼가, 무슨 개 좆 같은 소리를하는거야!!!”
“카사노라면 그 검은갈기? 검은 수염?”
“검은 수염 병신아.”
“수염이 없는데?”
“가짜 아니야?”
씨발 수염을 밀었으니까 없지.
오늘 아침 아르실이 지저분하다고 꼽주길래 수염을 밀었는데 이런 결과가 발생할 줄 몰랐던 나는 꺼슬꺼슬한 턱을 긁으며 레지나와 필리아, 둘을 바라봤다.
-쿠웅, 쿠웅!
“으읏!”
짧게 침음을 내뱉는 레지나, 나 또한 쿠웅, 쿠웅, 연쇄적으로 부딪히는 세 개의 배가 흔들릴 때마다 헉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저 너머 선원들과 아르실이 타고 있는 배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기에 절대 넘어져선 안됐다.
“개쓰레기 같은 놈, 무슨 낯짝으로 네가 여기에 나타난!”
-서걱!
“크읏! 필리아, 씨발년아!”
“방심하지 마! 개년아!”
서걱, 힘을 실은 횡 베기와 함께 갈라지는 레지나의 옷가지. 방금까지 세로로 베어져 가슴골이 드러났다면 이번엔 방금전 검격탓에 레지나의 밑가슴까지 드러났다.
“”“오오오오오!!!”””
저 정도 노출은 곤란한데, 내 노예가 될 여자 가슴을 보면서 환호를 듣자니 조금 찝찝해진 나는 옆에서 제일 크게 소리 지르는 대머리의 골통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끄으으으윽!!!”
콰직, 손등에서 느껴지는 뼈의 감촉, 완전히 넘어지는 놈의 멱살을 움켜쥐고 다시 일으킨 나는 빠른 손놀림으로 갈색 자켓하나를 벗겨내고 펑퍼짐한 자켓을 홱, 레지나에게 던졌다.
-퍼업!
“웃, 뭘 던지는 거야!”
날카롭게 벼려진 커틀라스를 들었다가 내린 레지나는 옷가지에 얻어맞고 불만을 보였지만 거리를 벌린 필리아를 발견하고 슬쩍 한 걸음 물러나 제복 위에 커다란 자켓을 걸쳐 입고는 단추를 잠갔다.
“흥, 필리아 이 개같은년, 사지를 잘라다 상어 밥으로 던져주지.”
“그러면 나는 네년 사지를 잘라다가 돌려…”
-쿠웅!
발을 구르며 필리아에게 다가간다. 조금 거리가 멀었지만 마나를 두르고 거리를 좁히자 후웅, 흩날리는 필리아의 머리칼과 함께 코끝이 맞닿을 정도로 접했고 곧바로 눈앞의 필리아가 화들짝 놀라며 펄쩍 뛰었다.
“와앗! 너어, 너, 너, 너어!”
***
필리아는 사내를 마주 본 순간 달아오른 얼굴이 따가워 남는 손등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입을 꾹 다물고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저, 저 남자는 나한테 작업 건 놈이잖아!’
그날 자신을 향해 달콤한 말을 내뱉으며 다가온 순간 깜짝 놀라 도망쳤지만, 밤이 찾아오고 나서야 침대를 뒹굴며 얼마나 마음을 졸였나!
내심 또 만나고 싶어 검문소를 어슬렁 돌아다녔지만, 그 남자가 요즘 위명이 자자한 검은 수염 카사노였다니. 필리아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카사노를 흘겨봤다.
‘왜, 왜 저 새끼가 이 항로로 온 거야! 한 번도 온 적 없으면서…!’
들뜬 모습으로 두근거려 하는 필리아와 달리 레지나는 다른 의미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지금도 놈이 개발시킨 몸이 욱신, 욱신, 만져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찰나에 개발시킨 그 주인이 와버렸다.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너무나 욱신거려 일정에 차질이 생길뻔했던 레지나는 메파의 조언으로 카사노가 17일간 한 번도 이용하지 않은 항로로 약탈을 나섰고 성공적으로 약탈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필리아를 만났다.
마침 근질거리기도 하고 치솟던 치욕을 해소할 좋은 기회라 생각해 가슴을 압박하고 결투를 나누던 중이었는데-!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상황이 발생해 이를 갈던 레지나는 꾸욱, 카사노가 건네준 의미 모를 자켓을 움켜쥐면서 내뱉던 욕을 잠시 주워 담았다.
‘그, 그래도 꼴에 남자라고 매너를 보이네. 개쓰레기 같은 새낀 줄 알았는데…’
조금 두근거리는 심장, 하지만 히죽 웃으며 양 검지손가락을 빙글빙글 휘저으며 젖꼭지를 희롱하는 자세를 보이는 놈을 보니 다시 분노가 치솟은 레지나는 후웅-! 피레아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둘 다 덤벼 씨발! 오늘 송장 두 개 치우고 이쪽 바다는 아예 뜨고 만다!”
황자의 끄나풀과 영주의 하나뿐인 딸, 둘을 죽인다면 이쪽 해역에서 돌아다니길 접는 게 더 나은 상황이었기에 농담삼아 뱉으면서도 레지나는 정말 그렇게 될 거라는 상황을 상정하고 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아가씨.”
각자 다른 레지나와 필리아, 둘의 속내를 전혀 모르는 카사노는 슬쩍 필리아의 팔뚝에 팔을 붙이며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남자에 익숙치 않아요- 라고 온몸으로 티 내는 필리아를 찔러보기 위해 한 행동이었지만 정답이었는지 필리아는 펄쩍 뛰어오르며 카사노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내, 내, 내, 내 먹이야! 상관하지 마!”
‘너, 너무 싸가지없게 대답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