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은년, 지가 뭔데 오라마라야? 확 엎어버릴까.”
“진정해요, 아침에 저혼자 다녀올 테니까 걱정하지마시고요.”
“같이 안가고?”
끔벅, 귀엽게 눈을 깜빡이는 모습에 툭, 턱에 손을 올린 나는 검지를 굴려 턱을 긁으며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개인적으로 볼일도 있고, 저 혼자서도 충분하니까요, 필리아님한테 나쁜말 하는것도 듣고싶지않고.”
“그그그래? 그럼 어쩔수 없지…!”
귀엽게 굴긴.
“그럼 배로 돌아가볼까?”
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몸을 돌린 필리아는 조금 아쉽다는 얼굴로 내게 돌아가자 권유했다. 아마도 레지나 때문에 흥이 깨지기도 했고 내일 오전에 약속을 잡았으니 내가 술을 마시지 않을거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잠시만요.”
“응?”
품에 넣어둔 이공간 주머니를 꺼내고 그 안에 손을 넣었다. 난데없이 뭔가 꺼내는 모습에 필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내가 꺼낸 물건을 보곤 하나 남은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물어왔다.
“신발은 갑자기 왜…?”
“구두가 불편해보이셔서요. 제가 잠시 맡아둘 테니까 자아…”
툭, 신발을 바닥에 두고 자세를 낮춰 필리아의 발목을 살짝 움켜쥐었다.
“아으…!”
투욱, 구두를 벗기자 뻘겋게 벗겨진 뒤꿈치. 익숙치않은 구두에 까진 살갗이 생각보다 심각해 필리아의 작은 발을 신발위에 올려둔 나는 붕대까지 꺼내 발목에 몇바퀴 감고 끊어냈다.
“일단 뭐라도 두르는게 나을테니까요.”
“응…”
붕대를 감은 발목을 살짝 붙잡고 신발을 신겨주자 움찔, 발가락 끝을 오므린 필리아는 새빨개진 얼굴로 신발을 신으며 중얼, 내게 무언가 물었다.
“내, 냄새는 안나지?”
“전혀 안나는데요?”
“꺄악!”
걱정하는 모습에 장난치고 싶어 발을 코쪽으로 잡아당기며 능청스럽게 대답하자 소녀처럼 비명을 지르는 필리아, 귀여운 모습만 자꾸 보여줘 장난치고 싶게 만드는 그녀의 마력에 혀를 내두른 나는 갈색 신발을 무난히 신기고 통, 통, 발끝을 두드리는 필리아에게 신기 편한지 물었다.
“응, 무척 편해. 고마워, 신경써줘서…”
꾸욱, 통통한 입술을 앞니로 짓누르고 무척이나 수줍어하는 필리아, 항구에서 스쳐지나가며 들은 모습은 무척이나 걸걸하고 난폭하다지만 내가 항상 봐온 필리아는 무척이나 온순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거절하지도 않겠지.
“아…!”
꾸욱, 얇은 허리에 팔을 휘감고 살짝 잡아당겨 가슴과 가슴이 짓눌린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풍만한 감촉을 음미하며 톡, 이마를 맞대자 후욱, 뜨거운 열기가 이마에서 전해져왔지만 지금이 적기였기에 나는 이마를 떼지 않고 오뚝한 코 끝에 코를 얹은채 필리아에게 물었다.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약속한 시간을 즐겨도 될까요?”
“으, 응, 나는 괜찮지만 카사노는 괜찮겠어? 내일…”
“그건 내일의 저에게 맡겨야죠.”
“그게 뭐야…”
걸걸한 말투는 사라지고 얌전한 소녀 같은 말투로 대답하는 필리아, 수줍어하면서도 분홍빛 눈동자에 가득 담긴 호의는 오늘 그녀의 몸을 맛볼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안겨주었다.
***
“그러니까아아~!”
-챙강!
억누르지 못한 완력으로 휘두른 유리잔이 테이블에 부딪히자 파삭, 아랫부분이 무너지고 유리깨지는 소리가 났다.
아찔한 파열음에 바텐더와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쏟아졌지만 분홍색 머리칼을 펄럭이며 눈을 부라리는 필리아에게 덤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소란은 잦아들었다.
“덥다아아아…”
철퍽, 테이블에 뺨을 얹고 입술을 뻐끔이며 술주정을 부리는 필리아, 답답하다고 로브를 벗어던진지 오래인 그녀는 힐끔거리는 손님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드르륵, 의자를 내쪽으로 당기며 중얼거렸다.
“많이 더워요?”
툭, 알코올탓에 뜨겁게 달아오른 뺨에 손등을 얹자 스윽, 안대를 매만진 필리아가 내 손을 움켜쥐곤 헤실헤실 풀린 미소로 대답했다.
“응, 더워, 옷 벗고시퍼어, 이거 불편해애…”
“벗을줄은 알고요?”
“……”
꿀꺽, 풀린눈으로 침을 삼킨 필리아는 스륵, 매끈한 종아리를 내 다리에 휘감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사락,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 하나 남은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아니이… 누가, 벗겨줘야 하, 하, 할지도…”
많이 부끄럽나보네.
본래 이런쪽과 거리가 먼 필리아였는지 방금전보다 더 새빨개진 얼굴로 입술을 달싹이며 나를 유혹해왔고 나는 차가운 필리아의 손을 쓰다듬다가 뭔가 허전함을 느끼고 슬쩍 그녀에게 물었다.
“반지는 왜 뺐어요?”
꾸욱, 앙증맞은 약지를 움켜쥐고 다정히 묻자 헤에- 멍청한 미소를 지은 그녀는 드레스 자락에 숨겨둔 목제함을 꺼내곤 뽈칵, 곱게 꽂혀있는 반지를 보이며 입꼬리를 씰룩였다.
“너어어무 귀해서, 잃어버릴까봐아~ 안껴서 서운해쬬욤?”
이런 말투는 어디서 배웠데. 누나처럼 구는 짜증나는 말투에 피식 웃은 나는 검지와 중지 마디로 필리아의 코를 꼬집고 쫘악- 기름을 짜내듯 쥐어짰다.
“으갸악!”
장난스러운 분위기로 넘어가서 그런걸까, 무드가 깨짐과 동시에 필리아는 불퉁한 얼굴로 퍼억, 내 가슴에 박치기를 하더니 가녀린 손으로 꾸욱, 가슴팍을 움켜쥐곤 달짝지근한 목소리로 내게 물어왔다.
“…자꾸 헷갈리게 하지마…”
“뭘요?”
“…나, 급하단 말이야… 시집도 가야하고, 자꾸 나한테 장난치듯 다가오고- 나 놀리는거자나아…”
그런 눈치는 있었구나. 확실히 필리아를 대할때마다 과장되게 반응한것도 있으니 필리아가 눈치챌만도 하다 판단한 나는 스윽, 흐트러진 머리칼을 귀뒤로 넘겨주고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으흐으으…♥”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자 바르르, 얇은 허리를 떨며 몽롱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필리아, 천천히 내 목에 팔을 휘감은 그녀는 강압적인 손길로 꾸욱, 내 뒤통수를 눌렀고 생각보다 저돌적인 리드에 당황한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필리아의 몸을 끌어안고 천천히 입술을 덮었다.
-쪼옥…
“응…”
후욱, 입술이 이어지고 이빨을 핥으며 밀려들어오는 달콤한 숨결, 설탕을 녹여 빚은듯한 뜨거운 한숨을 들이쉬며 쪼옵, 입술을 맛보자 할짝, 앙큼한 혀가 먼저 마중나왔다.
야한여자같으니라고.
“쪼옵, 츄웁, 츄웃, 후움…”
터업, 게걸스럽게 입술을 뒤덮는 앙증맞은 입술, 대각선으로 머리를 튼 필리아는 나를 잡아먹을듯이 입술을 거칠게 탐하고 내 입안을 핥고 수줍게 뻗어진 내 혀를 톡, 톡, 건들곤 쯔륵, 천천히 휘감기 시작했다.
야성적이면서도 게걸스러운 난폭한 키스, 내가 여자, 필리아가 남자가 된듯한 폭력적인 키스에 우리는 서로의 눈동자에 빠져들어 키스했고 스윽, 통통한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후욱, 인중을 간지럽히는 콧김을 얻어맞던 그때 쭈웁, 우리는 천천히 입을 뗐다.
“…들어가서 마저할까?”
“응…”
쿵쾅쿵쾅, 한발짝 떨어진 필리아지만 그녀의 얼굴만 봐도 심장소리가 절로 들렸다. 더없이 새빨개진 얼굴로 수줍게 고개숙인 필리아는 꾸욱, 내 소매를 붙잡고 의자에서 천천히 내려왔고 보이지 않는 목줄이 채워짐을 확신한 나는 그녀를 이끌고 천천히 우리가 타고 왔던 배로 향했다.
“후아아아…”
쏴아, 쏴아아- 청량한 파도소리와 함께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 휘날리는 머리칼을 검지로 정리하던 필리아는 몽롱했던 눈가를 손등으로 문지르고 한결 또렷해진 눈으로 나와 나란히 걸었다.
-삐걱, 삐걱…
늘어지는 갑판소리와 함께 툭, 어깨를 붙이는 필리아. 식었던 얼굴이 붉어지고 살짝 벌어진 입술에서 끈적한 한숨이 뱉어지는걸 보고 적기라 판단한 나는 몸을 돌려 턱, 필리아의 어깨에 손을 얹고 지긋이 그녀를 바라봤다.
“다왔네요.”
“응, 다 왔어…”
힐끗, 저 사다리만 타고 오르면 된다고 내게 신호를 보내는 필리아의 눈빛에 살짝 고개숙인 나는 본격적으로 그녀를 시험했다.
“제가 오늘 필리아를 따라온 이유가 뭔지 알아요?”
“도와주려고…?”
“저는 레지나를 굴복시키려고 찾아온거에요, 기가 너무쎄서 쉽게 꺾이지 않길래- 어딜 가든 쫓아가 굴복시키고 있어요.”
“굴복?”
숙적인 레지나의 이야기라 그런걸까? 총기가 돌아온 필리아는 입술을 짓이겨 경청하기 시작했고 툭, 작은 이마에 이마를 맞댄 나는 필리아의 눈을 들여다보며 전부 설명했다.
“…저는 제국의 명령으로 레지나를 체포하러 왔거든요. 이걸 말해주고 싶어서 꺼낸 이야기였어요.”
“체포라니, 아니- 제국 사람이었어?”
“제국에선 그녀를 생포하거나 죽이라고했지만 개인적인 계획이 있어서요, 그녀를 굴복시켜서 제 사람으로 만드려고 했죠.”
“그걸 나한테 이야기하는 이유가 뭔데.”
취기에 젖은 눈동자가 또렷해지고 흐물흐물했던 필리아의 기세가 날카로워졌다.
처음 검문소에서 만난 날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그녀의 모습에 매력을 느낀 나는 이마를 떼고 쪽, 장난스럽게 필리아의 볼에 입맞췄지만 볼끝이 살짝 빨개질뿐, 그녀는 당황않고 내 눈을 바라봤다.
“협조, 까진 바라지도 않아요. 제 아무리 무법항구라지만 믿을수 있는 제사람이 있다는건 무척이나 안심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필리아님을 제 편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뽈칵
“아…”
몸을 밀착하는 동안 빼돌린 작은 목제함. 함을 열자마자 달빛을 머금은 하늘빛 보석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툭
반지를 꺼내들어 필리아의 손등에 얹는다. 그림 그리듯 천천히 아래로 내리며 톡, 바들거리는 약지 끝에 건 나는 빙글, 빙글, 반지를 돌리며 필리아를 애태웠고 반지 안쪽으로 그녀의 약지를 긁으며 넌지시 물었다.
“곧 제 여자가 될사람한테 거짓말하기 싫어서요.”
“누, 누가 네 여자라는거야.”
당혹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조금 후퇴하는 약지, 하지만 꿈틀거리는 입꼬리와 주저하는 손짓을 읽은 나는 천천히 반지를 끼워주며 작게 속삭였다.
“반지도 받아주셨잖아요?”
“내돈으로 산거잖아, 애초에 내꺼였다고…”
-쪼옥
가볍게 맞닿았다 떨어지는 입술, 붉은 입술을 바르르 떨며 푸욱, 눈을 내리까는 필리아의 왼손에는 약지 깊숙히 끼워진 하늘빛 반지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