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366화 (366/395)

‘씨바알, 언제, 언제 올라가는 거야아…!’

물빛 여인의 손을 잡고 바다를 헤엄치는 카사노, 그가 쥔 밧줄 끝에 묶인 레지나는 보글보글, 숨 참는 것이 한계에 임박해 공기 방울을 내뱉으며 따가워 미치겠는 두 눈을 끔벅이곤 이를 갈았다.

간절한 욕설을 들은 걸까? 여인의 손을 잡고 잠잠해진 바다를 편안히 헤엄치던 카사노는 힐끔, 레지나를 흘겨보고 여인에게 손짓했고 여인은 웃으며 후욱, 커다란 공기 방울을 만들어 레지나에게 던져 주었다.

-포옹!

“후아아아아…!!!”

보골보골보골- 커다란 공기 방울에 얼굴을 처박은 레지나는 웨엑, 퉤엣- 짜디짠 바닷물을 뱉어내고 한참 동안 맑은 공기를 들이켰고 이후 자신을 엿먹인 정령인 것도 까먹고 여인에 대한 감사를 몇 번이고 되뇌이며 투욱, 팔다리에 힘을 풀고 카사노가 이끄는 대로 이끌렸다.

“하아아아아…”

마나가 담긴 커다란 공기 방울을 한 손으로 움켜쥐어 헬멧처럼 쓴 레지나는 흔들, 흔들, 해류에 따라 흔들리는 시야에 휙, 뒤로 드러눕곤 멍하니 해면 위를 바라봤다.

‘이제 어쩌지…’

한숨 돌렸겠다, 거기에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온몸을 지배하자 축 늘어지게 된 레지나는 당장에라도 팔을 뻗어 밧줄을 당기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앞으로에 대해 고민했다.

결국 정령까지 불러냈다면 카사노에게 패배하는 건 예정된 사실, 이기기 위해 피땀 흘려가며 수련하고 수없이 많은 적들을 베어넘겼는데 결국 이모양 이꼴이라니.

한심한 자기 몰골에 눈물이 핑 돈 레지나는 방울안에 손을 넣어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낸 후 잠시 코를 훌쩍이다 문득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푹 빠져 버렸다.

수많은 공기 방울이 밤하늘 별처럼 수놓인 깊은 바닷속.

푸른 밤하늘을 헤엄치고 있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빠져든 레지나는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 시답잖은 고민에 빠진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스러워 짜악, 방울을 뚫고 자기 뺨을 때렸다.

‘이전까지 다짐했던 건 다 잊었어? 병신이었어 난, 구해 준 건 고맙지만… 이젠 끝을 맺어야 해.’

여인과 손을 꽉 맞잡고 헤엄치는 카사노. 뭔가 지켜보기만 해도 분통터지는 뒷모습에 이를 갈며 헤이해진 마음을 다잡은 레지나는 꾸욱, 움켜쥔 피레아를 천천히 검집에 밀어 넣었다.

그때 후욱- 발목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밧줄, 알 수 없는 신호에 고개를 갸웃하던 그때 후웅-! 레지나는 해류를 가르고 화살처럼 쏘아졌고 꼬로로록-! 공기 방울을 내뱉으며 카사노에게 끌려다녔다.

철퍽, 해파리와 부딪치고 가랑이사이를 파고드는 매끈한 물고기들, 불쾌하고 야릇한 경험에 꼬로록-! 거품을 뱉으며 욕지거리를 내뱉자 힐끔 돌아본 카사노는 음흉한 미소를 짓고는 파앙! 한 번 더 화살처럼 저 앞으로 날아갔다.

스으윽-

바다를 헤엄치는 카사노와 그에 이끌리는 자신을 뒤덮는 검은 그림자, 엄청난 크기의 그림자에 고개를 갸웃하던 그때 조금 전과 같은 팽팽함이 발목에서 느껴졌고 또 한 번 입을 벌리는 순간 화악-! 거세게 잡아당겨진 레지나는 그렇게 포옹-! 고향같던 바다에서 겨우 탈출했다.

-터어엉!

“으긋?!”

찌르르, 허리를 울리는 아찔한 고통에 허리를 붙잡고 뒹굴 구르자 삐걱, 갑판소리와 함께 커다란 돛이 시야에 들어왔다.

“흐으, 흐으, 흐으…”

갑판을 짚고 일어나자 시야에 들어오는 드넓은 배, 꺾인 돛대 두 개와 우뚝 솟은 돛대 하나, 젖은 갑판, 꺾인 대포등을 보니 파도에 휩쓸린 난파선임을 알아챈 레지나는 찢어진 돛의 상태를 보고 방금 파도에 휩쓸린 걸 알아냈다.

‘미안하게 됐네.’

갑판에 전부 나와 있었는지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는 범선 안. 죄책감을 느낄일이 별로 없는 레지나긴 해도 자신이 일으킨 파도에 한 집단이 단숨에 사라졌단 사실은 그녀에게도 큰 짐으로 다가왔다.

‘부디 평안하길.’

자기 복수로 희생된 목숨, 명복을 빌어 주는 게 도리인 만큼 레지나는 짧은 기도를 마친 후 끼익, 갑판을 짚고 일어나 아작난 듯한 허리를 뚜둑 펴며 일어났다.

“후우우…”

배 난간에 엎드려 헐떡이는 카사노, 바닷속을 헤엄치며 자신을 구해 준 여인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고 밧줄을 쥐고 있는 카사노는 숨을 고르며 등을 내보이었다.

지금이 가장 적기임을 확신한 레지나는 쿵, 쿵, 쿵-! 쏘아지는 화살처럼 갑판 위를 내달리며 카사노가 반격하기 전 그의 목을 향해 피레아를 내질렀다.

후웅-

공기를 가르며 쏘아지는 검날, 이대로만 나아간다면 카사노의 뒷목을 꿰뚫고도 남았겠지만 그보다 먼저 카사노의 대응이 빠르게 이어졌다.

-뻐억!

“으욱!”

비틀거리는 몸으로 달려든 탓에 텅 빈 명치가 걷어차인 레지나. 덧댄 판금 갑옷 덕에 충격은 덜했지만 지잉- 울리는 충격은 계속해서 그녀의 몸을 헤집었고 레지나는 결국 힘없이 밀려나 반쯤 꺾인 돛대에 부딪혔다.

“하으, 흐으, 흐읏, 크으으윽…!”

곱게 당할 때도 됐것만 시도 때도 없이 받아치는 카사노. 레지나는 뺀질거리는 사내가 미소를 머금는걸 보고 승리를 확신했단 걸 깨달았다.

또, 또 이렇게 패배하는 걸까?

“아니-!”

고오오-

주륵, 뜨거운 핏물이 인중을 타고 흐르고 픽, 픽-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머리를 울린다. 당장 그만두라는 경종이 머릿속을 댕댕 울렸지만 이미 모든 걸 쏟아붓기로 결심한 레지나는 척, 떨리는 손으로 카사노를 가리켰다.

마나로 인해 넘실거리는 푸른 머리칼, 한 줌의 마나까지 모조리 긁어낸 레지나는 잠잠해진 파도의 해류를 지배하고 출렁, 출렁, 커다란 범선을 뒤흔들며 전조를 보였고 카사노는 문득 시야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뒤집힌 세상.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압력이 눈을 짓누르는 순간 뒤집힌 범선은 철썩이는 파도에 처박히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사방에 흩날리는 물방울과 우드득, 커다란 범선이 으스러지고 꺾이는 소리가 바다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레지나의 마지막 한수는 부족한 마나탓에 끝까지 파도를 지속하지 못했고 흘러간 파도는 그대로 바다에 스며들어 범선을 다시 떠밀었다.

출렁!

-쏴아아아아…

잠잠해진 파도, 출렁이는 파도를 타고 유랑하는 범선을 보며 안심한 카사노는 반쯤 꺾인 돛대에 기대 한숨을 내쉬었고 삐꺽이는 갑판을 밟으며 다가오는 레지나에게 지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잠시만, 잠시만 쉬자고.”

“닥, 쳐어어…”

뚝, 뚝, 핏방울이 턱을 타고 흐르고 지친탓에 흘러내리는 구슬땀이 온몸을 적시는데도 레지나는 갑판을 걸으며 다가왔고 그 모습에 지친 카사노는 하아, 한숨을 내쉬며 검을 고쳐쥐었다.

“그대로 가라앉았으면 뒤졌잖아…”

“어차피 발악이야, 남은 힘으론… 후우! 물고기밥으로 만들긴 무리였으니까.”

처억, 자세를 잡고 오른발을 뒤로 빼는 레지나, 그대로 앞으로 달려든다면 옆으로 쳐 낸후 마운팅을 해야겠지. 레지나의 자세를 보며 차근차근 계획을 세운 카사노는 끼익, 기댔던 돛대에서 허리를 뗐다.

“기껏 구해줬더니 목숨을 못 버려서 안달이구나.”

“구해 줘? 말은 바로 해야지 씨발아, 따먹고 싶어서 안간힘을 쓰는 거잖아.”

스윽, 밧줄이 묶인 발을 들어 보며 히죽 웃는 레지나. 피에 더럽히고 바닷물에 젖었음에도 아름다움은 퇴색되긴 커녕 오히려 퇴폐미를 뽐내 당장에라도 저 입술을 맛보고 싶게 만들었다.

카사노는 달려들기 직전의 표범처럼 허리를 숙이는 레지나를 흘겨보고 옅은 미소와 함께 그녀의 욕설에 대답을 돌려줬다.

“은인한테 욕이라니- 인성이 덜됐네.”

패앵!

한번 손에 휘감아둔 밧줄을 팽팽이 당기고 머리를 숙인 카사노, 돌진하며 어깨를 내민 그는 자세가 무너져 앞으로 넘어지는 레지나의 머리를 어깨로 찍으려 했지만 흐느적거리며 무너진 레지나는 곧바로 묘기를 선보였다.

콰악!

날이 선 피레아를 갑판에 박고 앞으로 돌며 역으로 발을 당긴 레지나. 레지나가 무너지는 걸 상정하고 돌진하던 카사노는 당겨진 방향 그대로 고꾸라졌고 타앗, 갑판을 박차고 착지한 레지나는 거슬리는 밧줄을 검 끝으로 잘라 냈다.

-빠악!

“크으, 하아, 씨발 손이 맵네!”

재빨리 갑판을 짚고 일어났지만 그대로 안면을 얻어맞은 카사노, 다행히 판금장화나 검에 얻어맞은 게 아니었기에 입술이 터지는 걸로 그친 그는 카각, 갑판을 긁고 덤벼드는 레지나를 수직으로 벴다.

-채앵! 채앵! 채앵!

올려 베는 검을 쳐 내고 곧바로 이어지는 연격을 쳐 내는 레지나,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흘러내린 땀이 시야를 가로막아도 홀린 듯이 모든 검을 쳐 낸 레지나는 빠악, 무방비했던 카사노의 복부를 걷어차 거리를 벌렸고 천천히 상황을 지켜봤다.

“후우, 후우, 후으으으…!”

한계 이상으로 파도를 조종하고 지쳐가는 자신과 달리 아직 여유가 있어 보이는 카사노. 지금, 이 상황을 뒤집으려면 다시 한번 파도를 일으켜 배를 뒤집는 게 아닌 카사노를 바다에 빠트려야 했다.

최소한의 마나를 끌어모은 레지나.

바다의 해류를 피부로 느끼며 단련된 그녀의 오감은 실처럼 가느다란 마나를 뽑아내 파도에 스며들게 만들었고 길게 뻗은 물줄기는 바다에서부터 파삭, 파삭, 범선을 꿰뚫고 갑판 아래를 파먹으며 천천히 쏘아졌다.

-터벅, 터벅, 터벅

또 무언가 집중하는 레지나를 의심스레 바라본 카사노는 거리를 유지하며 다가오고 쏘아진 물줄기는 카사노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한걸음,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뻗는 순간 마나를 머금은 물줄기는 카사노의 고환을 꿰뚫고 두개골을 헤집을 테지. 만족한 레지나는 삐이이- 거슬리는 이명을 참아내며 마지막 발악을 다가오는 카사노에게 쏘아냈고-

퍼억-!

살이 뚫리고 풀썩, 갑판을 두들기는 둔탁한 소리. 흐려진 시야를 손등으로 문지르며 승리를 직감한 레지나는 히죽, 히죽, 멋대로 움직이는 입꼬리를 손가락으로 쓸며 맑아진 시야로 눈앞을 바라봤다.

“하아, 헤에, 헤헤, 헤헷, 흐으, 흐흣, 흐흐흐흐…”

검은 머리칼, 기다란 팔다리, 핏줄이 도드라진 단단한 팔뚝.

여기저기 베이거 뚫린 상흔이 가득한 사내는 갑판에 엎드려 주르륵, 새빨간 피 웅덩이를 만들어냈고 쿨럭, 마른기침을 토하며 헐떡이고 있었다.

“이겼어, 흐으, 흐으으으-! 이겼다아아아…”

풀썩.

기나긴 싸움으로 지친 레지나는 그대로 미끄러지듯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두 다리를 쭉 폈다.

완전히 바닥을 꿰뚫은 물줄기, 카사노가 엎어진 뒤편에 남은 흔적을 기분 좋게 바라보던 레지나는 긴장이 풀려 힘이 하나도 실리지 않는 팔다리를 흐느적거리며 도움을 강구할 방법을 찾으려 했고-

그러다 문득 이상한걸 느꼈다.

앞으로 엎어져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카사노, 그 뒤편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고- 계획대로 쏘아진 물줄기가 카사노를 아래에서부터 관통했다면 정수리까지 뚫려 뇌가 헤집어져야했다.

궤도가 틀어질 수도 있고 마나가 흩어져 단순한 물줄기로 변한 파도가 무너졌을수도 있다. 하지만 그 상황을 눈으로 담아내지 못했던 레지나는 뭔가 이상해지는 걸 느끼고 꿀꺽, 입에 고인 침을 삼키며 카사노를 바라봤다.

-텁!

“하아, 뒤지겠네 진짜…”

“씨, 발.”

판금장화째 우그러뜨릴 기세인 아찔한 악력, 보호받는 발목이 얼얼해질 정도로 발목을 강하게 움켜쥔 카사노는 찢어진 이마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퍼억, 발목을 당겨 레지나를 잡아끌었고 그렇게 짧은 욕지거리를 내뱉은 레지나의 몸은 하늘을 날았다.

-빠아아아악!!!

“쿠엑…!”

꼴사나운 비명과 함께 지잉- 지잉- 허리를 울리는 엄청난 고통. 배트처럼 휘둘러진 레지나는 얇은 허리를 돛대에 찍어대는 카사노에게 반항하기 위해 쥐고 있던 피레아를 부웅, 부웅, 힘겹게 휘둘렀지만-

허나 뻐억, 뻐억, 도끼질하듯 자신을 휘두르는 카사노에겐 검 끝 하나 닿지 않았다.

-뚜두둑…

부서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울리는 나무 꺾이는 소리. 끼기긱- 소름 돋는 소리를 내며 넘어지는 커다란 돛대와 마주한 레지나는 하아, 진심으로 짙은 한숨을 내뱉으며 두 손을 늘어뜨린 후 철퍽, 바닥에 떨어졌다.

“좆같네…”

뻐억, 기울어지는 돛대에 얻어맞고 쿠당탕 갑판을 뒹구르는 레지나. 이후 레지나를 내던지고 무너진 돛대를 피해 도망쳤던 카사노는 삐꺽이는 다리를 움직이며 완전히 작살난 레지나를 멍하니 내려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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