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381화 (381/395)

“빠, 빨리빨리들 준비해!!! 방심하지 마! 알았어!”

“네 선장님!”

‘아이 씨, 냄새 나는 거 아니야? 괜찮나? 피 튄거 아니야?’

카사노라면 피 냄새와 땀 냄새를 풀풀 풍기는 여자를 안고 싶어 할 리가 없다, 간단한결과를 도출한 레지나는 킁킁, 옷냄새를 맡고 머리를 정돈하며 마치 데이트를 앞둔 여성마냥 몸가짐을 가다듬었다.

“선장님!”

“우왁!!!”

목부근을 당겨 냄새를 맡고 겨드랑이를 살짝 들어 땀에 젖진 않았나 확인하던 도중 들려오는 부하의 목소리.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화들짝 놀란 레지나는 놀란 고양이처럼 펄쩍 뛰었다가 큼큼, 헛기침을 내뱉으며 되물었다.

“무슨 일이야.!”

“거의 접근했습니다, 바로 넘어가실 건가요?”

수련을 끝낸 레지나의 강함을 알고 있는 부하의 초롱초롱한 눈빛, 비공식적인 결투의 결과는 카사노와 레지나만이 알고 있었기에 부하들은 마치 ‘선장님이 이기실거야!’ 라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며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그, 그래.”

‘그래, 밀리진 않았잖아- 아니, 오히려 내가 이길뻔했지. 방심했을 뿐이니까 응, 보여주자! 보여주는 거야.’

터엉-

나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배와 배 사이에 얹혀지는 널빤지와 사다리. 코앞까지 다가온 적수의 모습에 꿀꺽, 군침을 삼킨 레지나는 나부끼는 돛 아래 팔짱을 낀 채 미소 짓는 카사노를 발견하고 흐읍, 숨을 참았다.

소매를 걷어붙여 드러난 탄탄한 팔과 몇 번이고 봐온 능글맞은 얼굴.

자신을 발견한 그는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이를 드러냈고 왠지 모를 두근거림에 홱- 고개를 돌린 레지나는 촤악- 피레아 끝에 맺힌 핏방울을 털어내고 단숨에 카사노의 배로 뛰어들었다.

-쿠웅!

갑판을 파고드는 발자국과 함께 튀어 오르는 먼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먼지를 손으로 내저으며 흩날린 제국병사들은 각자 허리에 찬 무기를 뽑아 그녀를 상대할 준비를 마쳤지만 카사노의 명령이 먼저였다.

“괜히 나서다 죽지 말고 푸른파도 해적단 전원 생포하세요.”

끄덕, 구호도 수긍도 없는 깔금한 믿음. 충직한 병사들은 판자와 사다리를 밟으며 건너오는 해적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곧 넓은 갑판위에 남은 건 레지나와 카사노뿐이었다.

“목숨 아까운 줄은 아나 보네, 잘 생각했어.”

“레지나, 본명은 모르겠다만 뭐… 그동안 즐거웠다.”

“뭔 씨발 즐거웠다야, 쎈척도 정도가 있지.”

뭔가 꺼림칙한 분위기의 카사노, 느긋한 미소는 사라지고 덤덤한 무표정으로 돌아간 그는 평소에 뱉던 희롱이나 안부따윈 한 번도 입에 담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마치 타인처럼 레지나를 상대하고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카앙!

가볍게 튀는 불똥, 손목이 저릿한 감각에 화들짝 놀란 레지나는 삐익, 갑판 위를 미끄러지며 카사노의 목젖을 노리고 검 손잡이를 찍었지만 카사노는 머리를 젖히며 손쉽게 피했다.

“정신 차려요.”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찌그러지는 복부, 살얼음판에 번지는 거미줄 같은 균열마냥 온몸에 퍼지는 고통에 레지나는 잠시 헛기침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났지만 차가운 카사노의 태도에 불이붙은 그녀는 데굴, 데굴, 눈알을 굴리며 좀처럼 싸움에 집중하지 못했다.

‘애들이 보고 있어서 일부러 이러나? 그냥 이렇게 된 거 애들보는앞에서 안아도 될 건데…’

마지막, 끝, 지난번 카사노가 뱉었던 말들을 조합해 무언가 추측한 레지나는 자신을 따먹기 위해 카사노가 밑밥을 깔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에 어울려주기로 했다.

“너나, 정신 차려…!”

빠악, 턱 끝을 후려치는 뒤꿈치- 깔끔하게 먹힌 킥과 돌아간 턱에 이 정도면 기절할 거라 판단했던 레지나는 곧바로 피레아를 내리고 자세를 풀었지만 휘청이던 카사노는 턱, 갑판을 손으로 짚고 장작패듯 레지나의 다리를 걷어차 그녀를 넘어뜨렸다.

“크읏…!”

“본실력을 내야죠, 안 그래요?”

칼날위에 선뜻 날카로운 모습의 카사노, 협박하고 조롱할 때 몇 번 보인적있던 날 선 모습이지만 묘한 카리스마가 섞인 호쾌한 모습에 레지나는 꿀꺽, 군침을 삼키며 데구르르 눈을 굴리며 반격할 준비를 마쳤지만 푸욱- 목덜미를 스치는 검날이 그대로 갑판에 박혔다.

“아니면 그냥 잡히던가.”

속뜻이 훤히 내비치는 항복권유, 끝을 보자더니 결국 이런 목적이었구나- 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린 레지나는 열심히 싸우는 부하들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로브와 다투는 메파를 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고 카사노에게 한 가지를 제안했다.

“애, 애들은 풀어 줘. 내가 혼자 잡힐 테니까…”

“아니, 오늘은 전부 생포해야 해서.”

“그러면…”

카앙, 뻐억-!

느슨하게 쥐었던 손잡이를 고쳐잡고 목 옆에 꽂힌 검날을 눕히지 못하게 막아 세운 뒤 발을 투웅, 튕긴 레지나는 곧바로 카사노의 오금을 걷어차며 불리한 자리를 빠져나왔다.

“덤벼 씹새야.”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이를 드러내며 웃자 마주웃는 카사노, 기분이 좋아진 그의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레지나는 기왕 이렇게 된 거 합을 겨뤄보는 느낌으로 카사노에게 달려들었고 곧 불붙은 둘의 검격은 하나로 이어진 배 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이목을 이끌었다.

-카앙! 카앙! 카앙!

압도적인 속도와 활동력으로 갑판을 누비며 카사노를 뒤흔드는 레지나, 그런 그녀에게 밀려 고전하는 듯 보이는 카사노도 의외의 변수로 빈틈을 파고들어 충분히 레지나에게 큰 위협을 안겨 줬다.

비등비등한 싸움, 수련으로 레지나가 얼마나 강해진지 두 눈으로 지켜봤던 부하들은 대등한 카사노의 실력에 두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지만 섬에서 겨뤄봤던 카사노는 그녀가 진심이 아님을 충분히 피부로 체감했다.

‘많이 여유롭네, 웬만하면 별로 쓰고 싶지 않은 수였는데…’

살랑살랑, 오랜 주인을 만난 듯한 강아지처럼 구는 레지나를 모른 척 무시하기도 버거워진 상황.

이대로 시간이 끌릴수록 불리한 건 자신이라 판단한 카사노는 사전에 아르실과 합을 맞춘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목에 걸어 둔 작은 피리를 꺼냈고 카앙, 불똥을 튀기며 거리를 벌리는 레지나를 보고 곧바로 피리를 입에 물고 삐익- 짧게 불었다.

-쫑긋, 쫑긋!

인간의 귀엔 들리지 않고 경지의 벽을 두들기는 레지나조차 아주 미약하게 들리는 피리소리.

두척의 배에 있는 인물 중 피리소리를 들을수 있는 건 단 한 명, 피리의 주인인 아르실이었다.

‘알겠습니다.’

일기토가 밀릴 경우 피리를 불 테니 들리면 부탁한대로만 해 달라던 카사노의 부탁, 아르실은 잠시 기억의 저편에 묻어둔 약속을 꺼내며 카앙, 팔뚝만 한 커틀라스를 휘두르는 메파의 팔을 발톱으로 붙들고 찌익- 로브를 찢으며 저 높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꺄아아아악…!!!”

여태껏 맹금류 특유의 날카로운 발톱과 들고 있던 단검으로만 덤비던 적이 팔과 어깻죽지를 붙잡고 날아오르자 당황한 메파.

그녀는 귀를 찢을 듯한 커다란 비명을 지르며 홰액, 홰액- 뻗어지는 만큼 커틀라스를 휘두르며 최후의 저항을 펼쳤지만 빙글, 빙글, 하늘을 활공하는 아르실의 다리엔 전혀 닿지 않았다.

-카앙!

‘좀 더 빠르게.’

돛대를 등진 카사노를 폭풍처럼 두들기는 은빛 칼날.

-서걱!

‘좀 더 강하게.’

쿵, 돛대와 부딪혀 갈 곳잃은 카사노의 어깨를 찌르는 검 끝, 하지만 검과 부딪혀 힘을 잃은 검 끝은 돛대의 절반만 벨뿐 어깨를 베진 못했다.

-카아앙!

‘좀 더…!’

우우웅, 무언가 들끓는 고양감과 함께 자신을 가두는 벽과 마주한 레지나, 카사노와 부딪치며 벽 너머 무언가를 엿본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 취해 벽에 손을 얹고 찬란하게 빛나는 승리를 발견하기 직전까지 도달했지만 작은 소음이 일어났다.

“꺄아아아아악!!!

“메파?”

사람 키의 수십 배는 넘는 돛대 끝에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떨어지는 메파, 비정한 얼굴의 맹금류수인이 날개를 펄럭이며 지켜보고 있는걸 확인한 레지나는 펄럭펄럭- 바람에 얻어맞으며 갑판으로 떨어지는 충직한 부하의 모습에 타앗, 갑판을 박차고 몸을 돌렸다.

-터업!

“꺄악! 꺄악! 꺄아아악!”

“가만히 있으면 다칠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추락도 한순간의 걱정이었을까? 방관하던 수인, 아르실은 곧바로 떨어지던 메파의 어깻죽지를 붙잡고 그녀가 쥔 커틀라스를 떨어트리며 패닉에 빠진 그녀를 진정시켰다.

부하가 안전해진 걸 확인한 순간 긴장이 풀린 레지나, 그녀는 조금 전까지 카사노와 싸우며 벽을 넘기 직전이었음을 자각하고 다시 몸을 틀며 그와의 싸움을 이어 나가려 했지만 다가오는 건 몇 번이나 봐 왔고 또 묶여 봤던 묵빛 사슬이었다.

-철컥!

“이, 씨발- 야비한 새끼가…!”

“이러면 못이길거 같아서. 마지막인데 꼴사납게 지면 좀 부끄럽잖아?”

“이런, 씨발, 풀어- 풀어 이 새끼야아아…!”

조금만 더, 한 걸음만 더 나아갔으면 가로막던 벽을 부술수 있었는데- 순간의 원통함에 지배당한 레지나는 뻐억, 마나를 일으키지 못하는 주먹으로 카사노의 콧등을 두들기고 돛대에 그를 몰아넣으며 난타를 먹였지만 단단한 그의 몸엔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했다.

“반항이, 후우- 거세네!”

덜걱, 마나를 실은 주먹이 일렁이며 사라진 순간 돌아가는 턱끝, 돛대를 등진 카사노는 그렇게 한 방에 레지나를 쓰러트리곤 앞으로 넘어지는 그녀를 어깨로 받아 내며 후우,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아르실! 고생했어요.”

“네에…”

풀썩, 패닉에 빠진 메파를 갑판에 내려놓으며 손등으로 땀을 닦아내는 아르실.

로브가 벗겨지며 여태 감췄던 외모가 모두에게 드러났지만 카사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깟 외모는 몇 번이고 보여 줄 수 있다 생각한 그녀는 미약한 미소를 지으며 세리느의 갑판에 남은 해적들을 바라봤다.

“얌전히 생포당하면 목숨은 보장하겠습니다, 이미 선장과 간부는 제압당했으니 당신들도 항복하세요.”

철그럭, 철그럭, 티잉-

힘없이 갑판위에 떨어지는 갖은 병장기.

여전히 표독스러운 눈으로 아르실과 카사노를 노려보는 해적들이었지만 그들의 손에 레지나와 메파가 달려 있음을 알고 있는 그녀들은 얌전히 두 팔을 들고 밧줄에 포박됐다.

어찌 보면 싱거운 싸움, 하지만 그 싸움 끝에 제국 상선 수십척, 여러 왕국의 함대와 상선, 같은 해적까지 모조리 잡아먹은 바다의 아귀 푸른파도 해적단이 또다시 카사노의 손에 생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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