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382화 (382/395)

“훌륭했습니다 카사노님.”

“에이, 그런 말하지 마요.”

훌륭한 게 하나도 없었는데.

아르실의 입발린 칭찬에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를 바라본 나는 날개를 퍼덕이며 펼친 날개로 몸을 감싸는 그녀의 모습에 재빨리 품속에 넣어 둔 주머니에서 접어둔 로브를 꺼냈다.

“자, 이거 입어요.”

“아, 감사합니다.”

“고생했어요, 괜히 저 때문에 사람들한테 보여줘서 기분 나빴죠?”

“아닙니다, 제국을 위해 힘쓰는 분들께 기분 나쁠리가요. 다만 제가 보이는 게 익숙지 않아서… 그래서 그랬습니다.”

꼼지락꼼지락, 작은 손으로 로브를 펼치고 힘겹게 걸치는 아르실, 날갯죽지와 가슴에 걸리는 순간 포박된 해적들의 눈길이 집중되고 그녀들의 잡담이 들려왔다.

“와 존나 크다.”

“선장은 쩁도 안 되겠는데?”

“…”

화악, 노골적인 칭찬에 조금 붉어진 아르실의 볼. 귀여운 반응에 로브끝을 잡아 내려 준 나는 토실토실한 볼을 움켜쥐고 떡 주무르듯 손바닥위에 얹혀진 볼살을 굴리며 아르실과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항구로 갑시다, 너무 멀리까지 왔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음, 아까 바크문 선장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항구까지 복귀하는데엔 삼일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삼일…”

“아직 해역 중심이긴 해도 황도에 계신 오베론 황자님께 연락을 드릴수 있습니다, 레지나를 생포했단 비보를 전달할까요?”

얌전히 이번 항해의 결과를 보고하겠다는 듯 말하는 아르실이었지만 슬쩍 후드 밑에 드러난 두 눈의 감정은 작은 의심이었다.

하긴, 몇 번이나 놓치고(풀어 주고) 시간을 질질 끌었으니 아르실의 처지에서 의심할 만했기에 납득한 나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종지부를 찍어도 내가 찍어야 했고 다잡은 물고기를 풀기 전 지울 수 없는 낙인은 꼭 필요했기에 내가 먼저 나서기로 했다.

“안 그래도 따로 연락 드렸어요, 항구에 도착하면 기별이 와 있을 테니 번거롭게 그러지 않아도 돼요.”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배를 나포하고 감시할 인원을…”

“아, 저희 선상 감옥 공간은 어느 정도죠?”

“감옥말입니까…? 일단 푸른파도 해적단 전원은 수용 가능합니다.”

제국의 지원을 받아 구한 배인 만큼 대형 범선이었기에 공간은 널널한가 보다. 선장실만 들락날락하느라 감옥은 가 본적 없었던 나는 갑판을 뒹구는 푸른파도 해적단을 훑어보며 잠시 고민했다.

거래를 마치고 왔다고 들었는데 거점에서 씻고 재단장을 하고 왔는지 깔끔한 몰골의 여인들. 개 중 한두 명은 좀 특이한 외모(예를 들면 주점에서 싸웠던 여인)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대부분 준수, 아니 미인에 속하는 외모였다.

레지나에게 찍을 낙인의 재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계획이 원활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확신한 나는 아르실의 어깨를 두들기며 작은 부탁을 남겼다.

“그럼 전부 감옥에 투옥해주세요. 저는 잠시 준비할 게 있어서.”

“…치이.”

아르실과 만나고 한 번도 본적 없는 투정, 수인이라 해도 아르실 또한 여인.

해적들을 훑어보며 입맛을 다시는 나를 보며 불퉁한 표정을 짓는 색다른 모습에 피식, 웃게 된 나는 선원들에게 지시하러 가는 그녀를 붙잡고 자세를 낮춰 그녀의 귓가에 입을 맞췄다.

-쪼옥.

“으웃!”

“…다 끝나면 오붓한 시간을 한번 가져볼까요?”

“…”

몇 번 그렇고 그런 분위기를 넘보긴 했지만 결국 넘지 못했던 일선, 쐐기이빨항구를 떠나기전 아르실을 맛보지 못하면 후회가 생길거 같아 넌지시 권유했지만 대답 없는 아르실이었다.

“싫어요?”

침묵을 고수하며 고개를 숙이는 아르실, 미약한 불안감에 대답을 보채며 고개를 숙이자 아르실의 얼굴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들바들, 미소 짓는 입꼬리가 경련하고 평소 가늘게 뜨던 눈은 똘망똘망 빛을 발한다. 누가 봐도 들뜬 여인의 미소에 웃음이 터진 나는 꾸욱, 얇은 허리를 살짝 안아주었고 이내 작은 목소리가 데구르르, 갑판을 구르며 귀에 꽂혔다.

“조, 좋습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 니다…”

맹금류치곤 무척이나 소극적인 데이트 수락, 귀여운 모습에 미소를 지은 나는 지휘하러 떠나는 아르실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허리를 펴고 다음 계획을 잠시 점검했다.

***

-쿠웅!

“아윽, 씨발 살살 밀어!”

“닥쳐!”

철컥, 열쇠가 돌아가자 굳게 잠기는 쇠창살.

잠깐 기절한동안 끌려왔기에 정신 차린 레지나는 자신을 인솔하는 선원에게 반항하며 시간을 끌었지만 힘없는 반항은 도리어 짜증을 불러일으켜 벽에 머리를 찧는 보복을 당하게 됐다.

“개새끼가아…!”

찌릿한 고통에 눈살을 찌푸린 레지나는 묶인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포박의 강도를 슬쩍 살펴봤다.

발목에 채워진 마나제어 구속구를 제외하면 밧줄로 둘둘 말린 허술한 포박, 항구로 돌아가는 동안 자신을 맛볼 카사노의 사심이 가득한 포박임을 알아챈 레지나는 히히-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벽에 몸을 기댔다.

“선장님, 괜찮아요?”

“어? 어, 괜찮지.”

꾸물, 꾸물, 애벌레처럼 감옥 바닥을 기며 다가오는 메파, 앙증맞은 몸집에 귀여운 행동이 섞여 절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 레지나는 슬쩍 메파를 바라봤다.

철구가 달린 족쇄와 두꺼운 철제 수갑, 어째 선장인 자신보다 더 꽁꽁 묶어둔걸 보니 순간 울화가 치미긴 했지만 레지나는 쓸데없는 경쟁하고픈 생각이 없었기에 입을 닫았고 바닥을 기던 메파는 투욱, 턱을 뻗어 레지나의 통통한 젖가슴에 턱을 얹고 얌전히 그녀의 몸에 기대왔다.

“휴우우… 뭔가 맥없이 잡혔네요, 괜찮을까요? 전원이 잡힌건 처음인데.”

“어? 어?”

맥없이 잡혔다라, 그 소리에 레지나는 괜히 초반에 어설프게 싸웠던 걸 메파가 눈치챈게 아닌가 싶어 뿌드득, 뿌득, 뼈 소리를 내며 앓는 소리를 흘렸다.

“씹새끼 존나 쎄졌네. 방심한 것도 있지만 그으, 갑자기 훅 덤빌줄 누가 알았냐?”

“아, 그랬어요? 저도 갑자기 절 붙잡고 하늘을 날아서 당황했지 뭐예요.”

“시발… 미안하다 메파. 못난 선장이라 제대로 구하지도 못하고 전부 붙잡히게 만들었네.”

“선장님…”

감동한 눈빛을 보내며 몸을 문질러오는 메파, 물론 입에 발린 사과가 아니라 진심이 어느 정도 섞인 사과였기에 죄책감이 조금 사라진 레지나는 쿨쩍, 코를 먹으며 몸을 들어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게 벽에 착 붙었다.

‘몸이라도 아껴야지…’

이후 다른 감옥에 터억, 터억, 집어넣어지는 부하들을 보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메파와 레지나, 오랜 항해생활로 못 볼 꼴을 봐서 여유로운 것도 있고 생포가 목적임을 눈치챈 그 둘은 당장의 위협이 없음을 인지했기에 사소한 대화를 나누며 부하들을 둘러봤다.

“어유, 저년 코깨진 거 봐, 셀리! 내가 나대지 말랬지!”

“선장이 잡혀서 그런 거아니에요오!”

“선장님, 아까 그 수인년 젖통봤어요? 진짜 선장보다 두 배는 되는 거 같던데.”

“야! 지랄하지 마, 어떻게 내 두 배야, 하, 참내…”

“아까 보니까 카사노 그 새끼랑 붙어먹는 거 같던데요? 근데 두 배는 좀 과장이긴 한데 진짜 존나 컸어요.”

“…씨발 진짜야? 카사노 이 개줫만한 새끼가…”

부하에게 친근한 농담을 던지며 자칫 가라앉을 뻔했던 감옥의 분위기를 되살리는 레지나, 뭐 후반의 대화는 그리 유익한 대화는 아니었지만 메파는 그런 레지나를 대단하다는 듯 지켜보다 터벅, 터벅, 무거운 발소리에 턱끝으로 레지나의 가슴을 찔러 그녀의 이목을 끌었다.

“하웃…!”

“뭐, 뭔 반응이 그래요. 카사노가 오는 것 같아요!”

“아, 응.”

난데없이 젖꼭지를 정확히 찔려 야릇한 교성을 흘려버린 레지나.

부하 앞에서 상스러운 소리를 낸게 쪽팔렸던 그녀는 큼큼, 목을 가다듬으며 허리를 곧게 펴고 저 멀리 계단을 바라봤고 터벅, 터벅, 걸음 소리가 가까워지자 발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사노…!”

“…”

한 번도 보인적없던 무감정한 눈으로 자신을 훑어보며 메파를 둘러보는 그, 차가운 눈빛에 어깨가 흠칫 떨렸지만 검품하듯 감옥 안의 해적들을 몇 번이고 둘러본 그는 철컹, 달려드는 레지나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얌전히 감옥에서 기다려, 항구까지는 삼일이 소요되니까… 그동안 밥은 잘챙겨줄게. 알았어?”

“삼일…”

꿀꺽, 무릎을 바닥에 문지르며 상체를 일으킨 레지나는 카사노의 고간과 눈높이를 맞춘채 입에 고인 침을 삼켰다.

삼일, 삼일, 삼일…

그동안 선장실에 불려가 미친 듯이 범해지겠지?

카사노의 음흉한 속셈을 읽은 레지나는 마시멜로를 선물 받은 아이마냥 들떠 쿵, 일으켰던 몸을 다시 낮추고 벽에 등을 기댄 채 살랑, 살랑, 엉덩이를 흔들며 여전히 차가운 낯짝의 카사노를 바라봤다.

“……”

그리고 그런 카사노와 레지나를 수상하다는 듯 바라보는 한 쌍의 눈, 레지나의 감옥메이트이자 충직한 오른팔인 메파는 들뜬 레지나와 그녀의 시선이 꽂히는 곳을 발견하고 까득, 이를 갈며 카사노를 노려봤다.

“?”

난데없는 강렬한 시선에 눈썹을 치켜든 카사노는 발정 난 레지나와 흉흉한 눈빛의 메파를 번갈아 보다 좋은 수가 떠올라 챙겨 왔던 감옥 열쇠를 꺼냈다.

“…!”

순식간에 안색이 밝아졌다가 큼큼, 헛기침과 함께 무표정을 가장하는 레지나.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본 메파는 명석한 머리를 굴려 단서를 조합해 단숨에 결과를 도출해냈다.

‘이 새끼, 선장한테 손댔구나!’

많이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단 나은 꼴.

메파는 마약에 준하는 회색불가사리 가루를 갖다줄때의 선장보다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한 카사노를 노려보며 순진한 선장을 더럽힌 씹새끼를 향해 악에 받힌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열어봐 이 씹새끼야! 목덜미를 물어뜯어 줄게, 아니- 그 쥐좆만한 좆을 그냥 찢어버릴 거야, 내 말 들려?!”

[오오오오오오!!!]

생포당핬음에도 꺾이지 않는 부선장의 패기에 환호하는 푸른파도 해적단, 그리고 앙칼진 반응에 피식- 미소를 보인 카사노는 철컥, 굳게잠긴 자물쇠에 열쇠를 넣고 돌리며 슬쩍 감옥에 있는 여성들을 샅샅이 훑어봤다.

발가벗겨 속살까지 핥아대는 듯한 끈적한 눈빛, 여성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음흉한 시선에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는 그때 레지나가 벌떡 일어나 쿵, 쿵, 아직 열리지 않은 문에 머리를 찧으며 선장으로서 응당 해야 할 말을 내뱉었다.

“애들은 풀어 줘! 그리고 씨발- 손댈거면 나한테 손대! 우리 애들은 손대지말고 이 씹새끼야, 들려? 들리냐고!”

[와아아아아-!!!]

“선장…”

“사리사욕 채우려고 안간힘을 쓰네.”

“……”

본인이 자처해 희생하려는 선장의 눈물겨운 선택에 환호하는 해적단과 진실을 아는(카사노와 즐기는걸 엿들었던) 셀리와 메이, 그리고 메파는 짜게 식은 눈으로 날뛰는 선장을 흘겨봤지만 레지나는 부하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카사노만을 바라봤다.

‘왜 이렇게 뜸 들이는 거야!’

감옥에 갇힌 부하들은 하나같이 무거운 족쇄를 달고 수갑을 찬 채 포박된 상황, 하지만 자신은 마나제어 구속구만 덜렁 찼을 뿐, 온몸을 꽁꽁 옭아맨 밧줄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철컥, 끼이이익…

‘그래, 빨리 데려가! 새끼, 제대로 묶지도 않고 뭘 뜸 들이는 거야. 일단 오늘은 얌전히 안기고 밤에 애들 전부 풀어 주고…’

굳게 잠겼던 철문이 열리고 성큼, 카사노가 들어오자 점점 폭주하는 망상.

일단 밀회를 즐기고 이후 부하들을 풀어 주는 둥 작은 이익을 취하는 계획을 차근차근 세우던 레지나는 휙, 지나치는 카사노를 의문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밀회를 즐길 생각으로 달아오른 몸이 차갑게 식어가는 상황.

그렇게 레지나를 지나친 카사노는 터엉, 열린 철문이 벽을 두들기는 순간 벽에 기대어 자신을 노려보던 메파를 번쩍 안아 들었다.

“…?”

“…?”

뭐야 씨발.

감옥 복도에 적나라하게 울리는 짧은 욕설.

쿠웅, 철문이 닫히고 자물쇠가 잠긴다. 침묵으로 가라앉은 복도를 흘겨보던 카사노는 꾸욱, 품에서 날뛰는 메파를 고쳐안고 엉덩이와 허리에 팔을 감아 날뛰지 못하게 꽉 끌어안은 채 사이좋게 계단을 올랐다.

“응?”

터벅, 터벅, 터벅.

“응? 응?”

-터엉!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사라진 카사노와 메파.

그렇게 싸늘한 침묵만이 가라앉은 감옥 복도는 누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숙연해졌고 여전히 상황 파악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이던 레지나는 조용해진 감옥과 사라진 메파의 존재를 곱씹다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철커엉-! 쇠창살에 머리를 처박았다.

-뚜둑!

자유로운 두팔에 힘을 불어넣자 맥없이 끊기는 밧줄, 벽을 넘기 직전까지 경험한 몸은 더 이상 밧줄로도 옭아맬수 없었고 레지나는 허망함에 두 손을 바르르 떨다가 철컹-! 쇠창살을 움켜쥐고 캉, 캉, 캉, 마구 흔들며 살기를 내뿜었다.

“씨발, 뭔데…!”

'그러니까요...'

지금 이순간만큼은 하나가 된 푸른파도 해적단.

그녀들은 선장의 절규에 공감하며 사라진 메파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