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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3화 (3/221)

〈 3화 〉 2. 스킬이 이상하다

* * *

망연자실하다.

고작 3일 만에 세상이 이상해져 버렸다.

“휴우... 그나마 각성이라도 해서 다행이다...”

좀비들이 돌아다니는 세상에서 어찌 되었든 뭔가 능력을 손에 넣은 건 굉장한 행운이다. 어쩌다 보니 아직 살아남은 것도 대단한 행운인데 각성까지 할 줄이야. 상태창을 보아하니 내 행운 수치가 대단히 높은 것 같은데 그 덕분일까.

행운 수치만 무려 666... 어라? 왠지 눈에 익숙한 숫자인데... 이거... 666은 악마의 숫자 아닌가?

내 기억 상으론 영화 ‘오멘’에서 사탄의 자식을 상징하던 숫자 같은데. 그래서 내 직업이 이계신관이라는 이상한 직업이었나?

이거 시작부터 찝찝하다. 행운수치부터 ‘너는 타락 한다.’라는 복선이 깔린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다.

‘껄끄럽다고...’

내가 모르는 곳에서 신적인 존재가 나를 보며 웃고 있는 기분이 들어 조금 두려워졌다. 나에게 뭔가 원하는 게 있어서 이런 암시를 넌지시 던져 주는 건지. 아니면 그저 단순히 신의 유희 거리로 전락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놀아날 생각 따윈 전혀 없다.

“그런데 스킬은 어찌 선택하는 거야?”

그런 의문을 가진 순간 눈앞에 창이 떴다.

[스킬을 선택하십시오]

[1. 인신 공양]

[2. 변형된 시야]

[3. 차오르는 살점]

[4. 촉수소환]

“허어... 시발... 뭐야 이게.”

직업이 컬티스트라서 그런지 스킬 이름들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진짜 무슨 악마의 자식이 되어 버린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아니, 인신 공양이라니... 촉수소환은 또 뭐야...’

이번에도 의문을 가지는 순간 대답이라도 해주는 듯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인신 공양: 산자를 제물로 바쳐 업을 쌓고 ‘신’과 가까워지길 바랍니다.]

스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었다.

‘설명 개살벌하네... 신과 가까워지면 절대 안 될 것 같은데...’

멸망한 세계에서 사람을 죽일 일이야 분명 자주 생기긴 하겠지만 이 스킬은 마치 자발적으로 돌아다니며 살인행각을 벌이라는 악마의 계시 같아서 좀 별로다. 까딱 잘못하면 미친놈으로 몰려서 내가 잡혀 죽겠다...

[변형된 시야: 눈동자가 변화합니다. 어두운 공간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어두운 장소나 밤중에 돌아다니기 좋은 스킬이다. 눈동자가 도대체 어떻게 변한단건지 전혀 감도 안 오지만... 효과만 놓고 봤을 땐 좋은 스킬 맞다.

[차오르는 살점: 외상이 빠르게 낫습니다. 약간의 고통이 동반됩니다.]

“오오. 좋은 스킬... 맞겠지?”

이것도 야간시야 만큼이나 효과하나만큼은 멀쩡한 스킬이다. 약간의 고통이 동반된다는 문구가 좀 걸리지만... 그래도 일단 습득해 두면 좋은 스킬 같다. 앞으로 다칠 일이 얼마나 많이 생길지 모르니까. 진짜 문제는 마지막 스킬인데...

[촉수소환: 이계의 촉수를 소환합니다. 소환진 근처의 적들이 으깨집니다.]

촉수소환도 효과만 보면 꽤 좋은 스킬이다.

스킬 명이 하나같이 어딘가 나사 하나씩 빠져 있지만 이 이계신관이라는 직업 뜻밖에 개꿀 직업일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다 해 먹는 히든 직업인가?

“일단...”

일단 당장은 인신 공양은 익힐 생각이 없다. 활용하려면 빼박 사람을 찾아 죽여야 하는데 멸망초창기부터 사람 죽이고 다니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그랬다간 연쇄살인범으로 몰려 내가 잡혀 죽을 테니까. 그리고 신과 가까워지라니. 뭐 하는 신인지도 모르겠고 사람을 죽이라고 말하는 신이랑 가까워져서 좋은 점이 과연 뭐가 있을까? 뭔가 끔찍한 일만 더 생길 것 같은데...

무슨 생존자 캠프를 하나 몰살 시키라는 병신 같은 퀘스트라도 받으면 끝장이다. 이건 별로다. 개별로. 생존자 캠프를 하나 부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지...

변형된 시야도 당장 얻을 필요가 없다. 정 어두우면 손전등이라도 찾아서 쓰면 되지. 물론 어두운 곳을 잘 볼 수 있는 거로 끝날 것 같은 스킬은 아니긴 한데 당장 익힐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남은 건 차오르는 살점과 촉수소환이다.

“촉수소환 선택.”

당장 어디 다친 곳도 없고 공격 기술부터 익히는 게 좋지 않을까. 차오르는 살점을 익히면 자체 회복이 가능하니 분명 좋긴 하지만 끌리진 않는다. 고통이 동반된다는 설명도 좀 껄끄럽고. 왠지 악의적으로 고통을 줄 것 같아서.

[스킬이 적용됩니다.]

스킬을 습득하는 순간 스킬 사용법이 머릿속에 각인됐다. 그게, 마치 송곳으로 뇌를 살짝 쑤신 느낌이라 순간 바닥에 주저 않을 만큼 아팠다.

“크아악...!”

머릿속에 여러 가지 정체불명의 글자가 둥둥 떠다닌다. 그리고 어떻게 스킬을 사용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격통이 가시고 입에서 침이 몇 방울 뚝뚝 떨어졌다.

주문을 외우며 손으로 오망성을 그리면 된다. 그럼 둥근 원이 생기며 촉수가 뻗어 나가 전방의 적을 붙잡아 으깨거나 때려 부수는 구조의 스킬이었다. 어찌 잘 응용하면 적의 발밑에 소환진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개 쩔잖아...”

당장 써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나 소모량이 무려 6이나 되는데다 하루 소환 3번이라는 제한까지 달려 있었다. 쳐죽일 놈도 없는데 스킬을 남발 할 순 없지. 이건 절체절명의 순간에 즉사기로 쓰는 기술이다.

“다음, 업적보상...”

업적, 즉 도전과제를 달성하면 얻을 수 있는 보상.

어떻게 해야 업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 상세한 정보가 없으니 이건 그냥 달성하면 행운인 느낌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

[보상을 선택하십시오.]

[1. 좀비 기피제]

[2. 좀비 해독제]

[3. 인벤토리 5칸]

“오...”

좀비 기피제는 2시간 동안 좀비들이 공격하지 않는 스프레이였다. 총 3번 사용 가능하다. 토탈 6시간 사용 가능하다니 대박이다. 좀비 해독제는 물리고 나서 5분 안에 먹거나 먹이면 해독되는 개 쩌는 물건이고. 인벤토리 5칸은 말 그대로 인벤토리가 5칸 생긴단다.

“하아... 이거 고민되네.”

하나같이 유용하거나 당장 필요한 보상이다. 심지어 언제 또 업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다음에도 이런 호화로운 보상이 나오리란 법이 없다.

‘좀비 기피제...’

좀비 기피제를 얻는 순간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좀비들이 나를 공격할 일도 없을 테니 약효가 떨어질 때까지 좀비들을 패죽이면 렙업도 금방하지 않을까? 더구나 사용횟수가 무려 3번. 상당히 좋은 보상이다.

‘해독제도 포기하기 힘든데.’

사실 이게 진짜 대박 아이템이긴 하지. 거의 여분 목숨 하나 챙기고 가는 느낌이니까. 이걸 얻어 두고 있다가 좀비에게 물리면 바로 까마시면 된다. 만약에 나중에 귀중한 동료가 생겼을 때도 이거 한 병이면 좀비에게 물려도 눈물 질질 짤 필요 없이 먹으면 되고.

‘인벤토리 5칸도...’

역시나 유틸성에서 지리는 보상이다. 뭐든 5개까지 집어넣을 수 있다니. 더구나 앞선 보상이 소모성이라 쓰면 사라지지만 인벤토리는 영구보상이다. 뭐든 집어넣을 수 있고 뒤질 때까지 사용 가능 하니까.

“정신 나갈 것 같네...”

당장 내 목숨과 연결된 물건들이라 그런지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래. 좀비 기피제로 가자. 해독제는... 시발 안 물리면 그만이지. 인벤토리도... 아 존나 아쉽네... 가방 메고 다니면 되니까.’

기피제가 우선이다. 당장 집에 먹을 거라곤 라면 몇 봉지뿐이다. 슈퍼든 마트든 당장 나가서 음식이 동나기 전에 털어야 내일을 도모할 수 있다. 인벤토리를 선택해도 당장 저 좀비들을 어쩌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좀비에게 들키지 않을 방법을 눈앞에 두고 인벤토리에 정신이 팔려 스프레이를 놓치고 싶지 않다. 인벤토리도 결국은 저 비정상적인 것들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어야 의미가 있으니까.

‘한번 사용에 2시간... 연달아 쓰면 6시간. 이걸 잘 활용하면 알차게 파밍해서 한 달 이상 버틸 물건을 털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무기야 만들어서 쓰든 주워서 쓰든 철물점만 털어도 빠루 하나는 가뿐히 나올 거고. 대충 이리저리 우리 동네 털다 보면 6시간 금방 지나겠지만 그만큼 알찬 서리가 가능할 것 같다.

“좀비 기피제 주세여.”

[보상을 지급합니다.]

창이 사라짐과 동시에 작은 스프레이 하나가 생겨났다. 설명서가 붙어 있었는데 대충 얼굴에 한번 찍 뿌리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좋았으...”

­쾅!쾅!쾅!

­우어어어!!

“후우...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을 거야...”

이제 우리 집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오려는 저 좀비 새끼들을 조질 방법이 생겼다. 그냥 스프레이 뿌리고 나가서 난간으로 밀면 끝이다.

밖으로 나갈 준비를 철저히 하고 스프레이를 쓰자. 시간 낭비하면 짜증 나니까.

“무기도 하나 장만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일단 프라이팬은 손잡이가 덜렁거려서 더 못쓰겠다. 무기로 쓸 만한 물건이 없을까? 우선 부엌을 뒤져 그나마 쓸 만해 보이는 물건을 찾았다.

“식칼이라...”

식칼은 좀비에게 그다지 유용한 무기가 될 것 같진 않다. 이미 뒤진 놈들에게 자잘한 상처를 더 입혀봐야 죽지도 않을 거고 문자에선 무조건 머리를 박살 내거나 목을 잘라 내야 죽는데 식칼은 리치도 너무 짧고 둔기로도 쓸 수 없다. 그래도 사람을 죽이기엔 괜찮은 물건이니 일단 챙겨두고.

다시 집을 뒤져 적당한 길이의 무기를 찾던 중 장롱에서 야구방망이를 찾았다.

“아, 내가 이걸 까먹고 살았네.”

혼자 살다 보니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면 호신용으로 쓸 방망이가 필요하겠다 싶어서 재작년에 장만해 둔 야구 배트다. 이거라면 충분히 좀비들의 두 개골을 부술 수 있겠지. 스프레이 뿌리고 나가서 뚝배기 다 깨버리면 되겠다.

‘그럼 무기는 이걸로 됐고.. 집에 먹을게 있나?’

냉장고에는 캔 맥주 2개와 생수 3통 뿐이었다. 김치조차 없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요 며칠 게임만 해서 그런지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고 먹을 거라곤 즉석 밥 2개와 컵라면 1개가 전부였다.

당장 일주일도 못 버틸 것 같다. 역시 나가서 뭐라도 털어야 한다.

‘역시 식량조달도 시급하고... 물과 전기, 가스가 끊기면 그때부터가 진짜 맨땅에 헤딩이니까 생수도 쟁여두면 좋을 것 같고...’

2020년대에 들어서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기후변화는 극에 달했고 22년인 지금에 와서는 겨울과 여름은 극도로 춥고 더워졌다.

과장 조금 보태서 여름엔 낮 중엔 밖을 돌아다니기 힘들 정도로 덥고, 겨울엔 밤중에 돌아다니다가 저체온 증에 걸리기 딱 좋은 극한의 추위다.

‘추우면 최대한 옷을 껴입는 수밖에 방법이 없지...’

저체온 증으로 죽는 건 순식간이다. 몇 번이나 비슷한 생존게임을 플레이해봤기 때문에 비교적 잘 알고 있다. 사람은 뜻밖에 너무나 간단하게 죽는단 사실을.

살을 맞대고 잘 여인도 없으니 옷이라도 최대한 잘 챙겨 입어야 한다.

‘롱 패딩은 움직이기 힘드니까 패스... 얇은 옷을 많이 껴입으라 한 것 같은데.’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것 같은 생존지식을 떠올리며 장롱을 마저 확인하던 찰나 뭔가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무지 성으로 현관문을 박박 긁어대는 좀비들과는 달리 규칙적인 소음이었다. 그건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뭐야... 옆집사람 살아 있었나 보네..?”

옆집엔 여자 혼자 산다. 나이는 잘 모르겠고 가끔 출근할 때 마주친 적 있다. 서로 인사는 크게 안 하고 간혹 옆집여자와 그 남자 친구가 다투던 소리는 들었었지. 거의 서로 죽일 듯이 싸우던데. 2달 전쯤부턴 좀 덜했던 것 같다.

어쨌든 규칙적인 노크 소리에 벽에 귀를 가져다 댔다.

­똑똑똑. 저기요...

벽에 귀를 대니 옆집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살아 있어요?”

­아, 네! 다행이다...!

여자는 굉장히 반가운 목소리로 기뻐했다.

­저기요... 저희 집에 오실래요?

이 여자 아마 3일 동안 꽤 신박한 체험을 한 것 같은데... 이리 쉽게 외간 남자를 불러들이다니. 어쩌지? 가 봐야 하나? 설마 함정이면 어쩌지...

“어, 문밖에 좀비들 개 많은데...”

­저기... 베란다로 오세요. 거기 화재대피용 경량칸막이 부수고 들어오면 돼요

“오!”

베란다 수납장에 있던 잡동사니들을 전부 끄집어내고 야구방망이로 칸막이를 부쉈다. 조금 힘줘서 치니까 금방 벽이 부서지며 옆집과 이어졌다.

“어, 어서 오세요.”

옆집여자는 어색하게 나를 맞이했다.

오랜만에 본 옆집 여자는 꽤 예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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