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8. 고백 받다
* * *
해냈다. 아무런 문제없이 은지를 노예로 만들 수 있었다.
“하아. 하린아. 손가락에 피나니까 연고랑 밴드 좀 가져와라.”
“네. 잠시만요.”
내 가방에 연고와 밴드가 들어 있는 걸 하린이도 안다.
하린이는 그걸 가지러 옆집으로 넘어갔다.
무거운 침묵. 적막함이 감도는 부엌.
손가락에서 흐르는 피와 은지를 번갈아 봤다.
무릎 꿇은 채로 허망하게 나를 올려다보는 은지.
“왜? 무슨 문제 있어? 말해 봐.”
“저, 저. 죽이려는 거 아니었어요?”
“응?”
죽이긴. 이렇게 귀엽고 예쁜데. 절대 안 죽이지. 평생 내 옆에 잡아두곤 따먹을 거다.
“아, 아니... 식칼부터 잡아서... 영락없이 저 죽이려는 줄 알고... 그 티비에 한 번씩 나오는 연쇄 살인마 뭐 그런 건 줄 알았어요.”
“하하하. 설마. 너 같은 애를 죽이면 너무 아깝지.”
내 대답에 어딘가 조금 안심한 표정의 은지.
죽임 당하지 않는 단 사실을 알게 된 것 만으로도 조금 안심한 것 같다.
하린이와는 좀 다른 반응이다. 하린이는 노예가 되고 나서도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는데. 은지는 오히려 어딘가 편해보이기까지 한다.
“오빠. 아니, 주인님.”
“응? 왜? 주인님 어색하면 오빠라고 불러도 돼.”
처음부터 순종적인 것도 꽤 마음에 들고.
은지는 조금 풀어 줘도 되겠다.
물론 하린이는 알짤 없다. 반항하는 맛이 있는 하린이는 무조건 나를 주인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하린이가 인상을 구기며 부르기 싫은데도 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나를 주인님이라고 불러줄 때면 좀 많이 꼴리거든.
“그럼, 오빠. 저 궁금한 게 있는데.”
“응. 말해 봐.”
보드라운 은지의 머릿결을 살살 쓰다듬으며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하린이가 반창고와 연고를 가져올 때까지는 은지랑 대화나 나눌 생각이다.
따먹는 건 하린이가 보는 앞에서 따먹을 거니까.
그래, 기왕 부엌에서 노예로 만든 김에 알몸에 앞치마만 걸치게 해야겠다.
“저 노예로 만들어서 뭐 할 생각이었어요?”
“뭐 할 생각이었냐고? 그야... 뭐 당연히 따먹을 생각이었지.”
"헤헷. 진짜요?"
따먹을 생각이었다고 하자 은지가 얼른 내 다리를 껴안으며 얼굴을 비벼왔다.
얘, 왜 이래.
너무 순종적인 느낌인데... 이거 나쁘지 않다.
날 경멸하듯 쳐다보는 하린이를 억지로 따먹는 것도 좋지만, 예쁘고 귀여운 은지가 이렇게 알아서 들러붙어 주는 것도 좋다.
그래, 은지는 약간 강아지 같다. 하린이는 까칠한 고양이 같고.
고양이와 강아지 두 마리라. 평생 질릴 일은 없겠다.
“오빠. 저요. 오빠가 굳이 노예로 안 만들었어도 알아서 벌릴 생각이었어요.”
“뭐? 진짜?”
이, 이게 무슨 소리지?
뭔가 고백받은 것 같은 기분... 심장이 두근거린다.
“거짓말하지마라... 진실만 말해.”
“네에... 그런데 진짠데. 저 오늘 오빠 밥 든든히 먹이고 잘 때 유혹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저런 예쁜 애를 데려와서 좀 실망했었어요.”
“뭐...?”
이게 무슨... 진실만을 말하도록 명령했는데도 그녀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이 녀석 진짜 나를 덮칠 생각이었구나.
“왜? 내 어디가 좋아서?”
“그야... 덩치도 있고. 직장은 어딘지 몰라도. 성실해 보이고.”
크흠. 내가 좀 성실하게 일하러 다니긴 했지. 덩치도 좀 있고.
“가족도 없는지 명절마다 집에만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저도 본가에 안간지 오래됐으니까.”
난 가족이 없어서 갈 곳이 없었던 거였지만 은지는 연을 끊어서 가지 않았다. 그런 부분에서도 공감대가 형성이 됐구나. 신기하다.
“그리고 또... 자상할 것 같아서요. 사실 제 전 남자 친구가... 조금 폭력적이었거든요. 나쁜 남자라고 좋다 했더니 개 나쁜 쓰레기 자식이었어요... 아이구. 제가 괜한 이야길했네요... 미안 해요. 전 남친 이야기해서. 아무튼 그냥 그런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오빠한테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조금 부끄러운 듯 연심을 고백해오는 은지.
의자에 앉으며 그녀를 일으켜 세워 내 무릎 위에 앉혔다.
여자에게 이런 칭찬과 고백은 살아생전 처음 받아본다.
더구나 거짓말을 못 하는 상태에서 하는 말이라 더 진정성이 와 닿았다.
뭐랄까. 꿈만 같은 일이군.
그래 나쁜 남자 좋을 거 하나도 없다. 자상한 남자가 최고다.
“밴드 찾아왔습니다...”
그때 딱 맞게 하린이가 면봉과 연고 그리고 반창고를 찾아왔다.
“엄지에 발라줘.”
하린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린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 손가락에 연고를 세심히 발랐다.
“그런데 오빠. 오빠랑 하린이랑 화장실에서 떡 치는 소리 다 들린 거 알아요?”
“아... 다 들렸어? 앗 따거!”
이런! 일부러 소리 감추려고 샤워기 물까지 틀었는데.
그 와중에 당황한 하린이가 상처 부위를 면봉으로 꾹 눌렀다.
아파죽겠네.
“다 들렸어요. 그런데 콘돔 끼고 한 거예요?”
“응? 아니.”
“그럼 노콘으로 안에 싸셨어요?”
“응.”
“우와...!”
“괜찮아 임신 안 해.”
원래 무작정 질싸하고 은지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은지는 오히려 좋아할 것 같아서 그냥 지금 말해야겠다.
그러자 약을 바르던 하린이도 귀를 쫑긋 세웠다. 집중해서 듣는게 눈에 다 보인다.
“내 노예가 되면 내가 임의적으로 불임상태로 조정할 수 있어. 그래서 불임으로 설정해 두면 임신 안 해. 생리도 멈추지 않을까 싶다.”
그리 말하자 은지는 완전 좋다며 발딱 선자지에 엉덩이를 비벼댔다.
말랑 쫀득한 감촉의 엉덩이가 자꾸 자극해서 너무 좋았다.
“그럼... 저 속이신 거예요?”
하린이는 다시 눈물 글썽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봤다.
“응. 아까 준 약, 그거 그냥 두통약이야.”
“큭... 젠장... 완전 속았어...”
분하다는 듯 부들거리는 하린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하린이를 바라보자 마치 내 관심을 독차지 하고 싶다는 양 은지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오빠. 사실은 오빠 맨날 혼자서 자위하는 소리도 다 들렸어요. 몰랐죠? 제가 듣고 있는 거.”
“어, 전혀 몰랐는데. 그게 들려?”
가끔 소리를 켜 놓고 딸치긴 했는데... 설마 옆방에서 듣고 있었을 줄은.
이 아파트 얼마나 방음이 안 되는 거야.
“네. 제가 경량칸막이부터 부수라고 한 이유 알아요?”
“아, 아니. 왜?”
“저 맨날 오빠 자위할 때마다 거기에 귀대고 앉아서 같이 자위했어요. 헤헤... 저 좀 너무 변태 같죠..?”
하. 은지는 정말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뭔가가 있는 친구다.
난 은지의 가슴을 왼손으로 주물렀다.
하린이만큼은 크지 않아 조금 아담한 느낌이지만 상관없다.
은지는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으니까.
“하읏... 오빠...”
젖꼭지를 살짝 꼬집자 날 뜬 숨을 내뱉는 은지.
더욱 적극적으로 엉덩이를 비벼온다. 은지는 가벼워서 마치 안마 받는 것 같다.
난 기분 좋은 무게감을 느끼며 은지의 샴푸향이 나는 머리에 코를 박고 향을 음미했다.
이런 여자가 나를 좋아했다니.
정말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다.
세상이 이리 멸망하지 않았다면.
내가 멸망 초기에 일찍 죽었다면.
그리하여 컬티스트란 직업을 얻어 노예낙인 스킬을 얻지 못했다면.
아마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없었겠지.
“밴드 다 붙였습니다. 주인님.”
내가 은지를 사랑스럽게 껴안고 있어서 질투라도 낫나. 아니면 피임약으로 속여서 삐진 걸까.
하린이의 말투가 아까보다 더 딱딱해졌다.
“흐흐. 잘했어, 하린아.”
“큭... 네, 주인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하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다.
하린이도 참 귀여운 녀석이다. 어떻게 노예가 두 명 다 이렇게 귀엽지?
행운 666은 무적이고 노예낙인은 신이다.
“그럼 우리 밥이나 마저 먹을까?”
“네! 좋아요!”
우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저녁을 먹었다.
멸망한 세계. 식량이 무엇보다 귀중한 지금 아깝게 밥을 남길 순 없지.
무엇보다 오늘 좀 많이 움직였더니 배가 고팠다. 그리고 곧 은지와도 열심히 피스톤 운동하려면 많이 먹어 둬야지.
“오빠~ 아~”
은지가 계란 말이를 먹기 좋게 잘라 내 입가에 가져다 줬다.
“흐흐흐... 냠.”
행복해서 절로 웃음이 나온다.
굳이 나의 명령 없이 알아서 애교를 부려주니 기분이 안 좋을 수 있나.
노예로 만들고 따먹을 거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마자 은지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나에게 호감을 표하고 있다.
마치 고백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해맑게 웃는 은지를 보고 있으니 벌써 아랫도리가 단단해져서 바지를 찢고 나올 기세다.
그래서 바지를 슬쩍 벗었다.
“쯧.”
덜렁이는 자지가 밖으로 꺼내지기 무섭게 하린이의 부드러운 발이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었다.
내가 자지를 꺼낸 건 어찌 알았는지 혀를 차며 다리를 뻗어오는 하린이.
그녀는 자지를 엄지발가락으로 붙잡았다. 그대로 꼼지락거리며 귀두를 자극했다.
“크읏...”
하린이는 굳이 나에게 애교를 부린 다거나 하는 식으로 눈에 보이게끔 티는 안내지만 은연중에 슬쩍슬쩍 내 눈치를 살피며 내가 좋아할 것 같은 행동만 골라서하고 있다.
심지어 아까보다 더 적극적으로 발을 움직인다. 마치 은지에게 싸줘야 할 정액을 중간에서 가로채려는 듯이.
밥은 먹는 둥 마는 둥하며 내 자지를 발가락으로 자극하고 문지르는 데에 온 집중을 다하는 모습이다.
설마 피임약 속인 것 때문에 이런 식으로 보복하는 걸까?
이런 보복은 오히려 포상인데.
어찌보면 이 녀석도 참 변태다.
아까 화장실에서 나에게 박힐 때도 그렇게 내가 싫다는 티를 내면서도 오히려 보지는 꽉꽉 조이더니.
싫은 척, 아닌 척 겁나 하면서 사실을 이 모든 상황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 물론 질내사정은 진심으로 싫어하는 느낌이었다.
아니, 질내사정 자체보단 임신하게 된다는 사실이 겁나는 듯했다.
이런 멸망한 세계에서 애를 제대로 낳을 수 있을지도 모를뿐 더러 임신 기간 중엔 활동에도 제약이 생길 테니까.
애를 가지는 순간 여러모로 생각하기도 귀찮은 애로사항들이 꽃피게 된다.
아무튼 내가 아무리 질싸를 해도 절대 임신하지 않는단 사실을 알고 나서 그런지 하린이도 묘하게 적극적이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저녁 식사였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세상이 멸망해 버리고 나서야 나는 인생의 행복을 하나하나 찾아가고 있다.
식사를 끝마친 우린 식탁을 대강 치우고 양치를 했다.
“하아. 잘 먹었어, 은지야. 우리 소화시키고 할까?”
“네, 좋아요. 오빠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말해 줘요.”
“흐흐흐. 그래.”
그런고로 잠시 소화도 시킬 겸 거실에 앉았다. 티비를 틀어 봤지만 역시 지지직거리는 화면만 나올 뿐 아무것도 방송하지 않았다.
“그런데 은지야. 너 업적보상 뭐로 뽑았어?”
“저도 오빠 따라서 그 좀비 기피 스프레이 뽑았어요. 그게 당장은 제일 나아 보여서...”
“응. 잘했어.”
자연스럽게 내 옆에 딱 달라붙어 앉는 은지와 조금 거리를 두고 앉았지만 결국은 내 옆으로 다가오는 하린이.
양팔에 한 명씩 껴안고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젖가슴을 주물렀다.
말랑말랑한 감촉에 절로 스트레스가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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