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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1화 (11/221)

〈 11화 〉 10. 말랑한 가슴은 마음을 편하게 한다

* * *

은지의 집에서 두 여성 사이에 파묻히듯 침대에 누웠다. 침대가 좁아 딱 달라붙어야 했는데 이게 또 묘미가 있었다.

두 명이나 되는 미인을 양쪽에 끼고 잠들 수 있는 건 굉장히 가슴 설레는 일이지.

일반적인 평범한 삶을 살아온 남자라면 웬만해선 경험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고.

어찌 됐든 나체로 누워 있는 탓에 맨살이 비벼지며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나고 자라며 느껴본 안락함 중 최고라고 할까.

이탈리아에서 손수 제작한 수백만 원짜리 최고급 침대보다 은지와 하린이의 맨살이 더 좋다. 나보다 약간 차가운 체온도 부드러운 살결도 전부 너무 마음에 든다.

“헤헤... 오빠...”

은지는 내 팔을 베고 누워 품 안에 쏙 들어왔다. 그러곤 내 가슴팍을 쓰다듬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쓰다듬어 주듯이. 그 손길이 좋아 그녀의 머리를 자꾸 쓰다듬게 된다. 사랑받는 법을 알고 있는 여자다.

“크흠, 오빠...”

하린이도 그에 질세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팔을 껴안아 오는데, 가슴골 사이에 팔이 끼여 말랑한 감촉에 기분이 좋아졌다. 부끄러워하면서도 다가오는 모습이 좋다.

은지와 하린이의 애교에 자연스럽게 발기가 되려고 했지만, 이미 두 번이나 격한 사정을 한 뒤라 그런지 자지에 피가 몰리니 조금 아파졌다.

오늘은 더 이상 무리다. 여기서 더 했다간 몸이 버티질 못한다.이십 대에 몸을 좀 더 아꼈어야 했는데.

마음속으로 열심히 애국가를 3절까지 제창하며 발기를 가라앉혔다.

내일이 없는 삶도 아니고. 온전한 상태에서 좀비를 죽이려면 자제가 필요하다.

그래도 좀 더 레벨이 오르고 체력이나 근력 스텟이 늘어나면 2번 이상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아쉽지만 내일을 기약하자. 2번 이상은 아직 시기상조니까. 당분간은 열심히 레벨이나 올려야 한다.

그런 맑은 생각하고 있으니 가만히 나를 쓰다듬던 은지가 말을 걸어왔다.

이게 그 필로우 토크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보다.

섹스 후에 연인들이 나누는 그런 친밀감을 높여주는 대화 말이다.

“오빠. 오빠는 취미가 뭐였어요.”

취미라... 대화를 이어 나가기 좋은 소재다. 특히 공유할 수 있는 취미가 있다면 더 좋다.

“나야 뭐. 게임이 거의 유일한 취미였지.”

가만보니 여자들은 게임을 잘 안 하던가? 심지어 내가 하던 게임은 죄다 콘솔게임이었다. 롤도 스타도 해 본 적이 없다. 애초에 같이할 친구가 있었어야지.

아무튼 이대로 말을 끝내면 대화가 이어지기 힘들 것 같았다.

“영화도 많이 본 것 같다.”

실제로 남는 시간 대부분은 게임 아니면 영화감상이었다.

웹 소설도 많이 읽었지만 역시 여자와 대화하기엔 영화 쪽이 더 무난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런 고민을 할 필요 없이 알아서 재잘재잘 떠들라고 명령해도 되지만 그건 좀 별로다.

서로 간의 호감을 확인한 상대에게 그런 편의주의적인 명령을 내리는 건 뭐랄까 무드가 없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명령을 통해 행동을 촉구하는 건 작위적인 느낌이 든다.난 지금 명령을 벗어나 사람 대 사람으로서 그녀들과 여유로게 대화하고 싶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오랫동안 살아온 나는 늘 혼자서 놀았기 때문에 이렇게 타인과 편안한 분위기에서 취미나 관심사를 가지고 대화하는 일이 꽤 신선하고 즐거웠다.

특히 예쁜 여자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며 웃을 수 있는 건 나 같은 아싸 외톨이에겐 꿈과 같은 일이니까.

물론 그녀들에게 앞으로 명령을 아예 내리지 않는 단 뜻은 아니다.

섹스 중에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는 플레이는 꽤 좋았다.

특히 하린이가 나를 경멸하듯 노려보는 표정이 너무 좋았지.

내 멋대로 강압적으로 다루는 느낌이 들어서 만족도가 높다고나 할까.

“저도 영화 보는 거 좋아하는데. 혹시 오빠, ‘금요일이 사라졌다’ 그거 보셨어요?”

“아~ 그거 재밌지.”

은지는 스릴러나 SF장르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다.

심지어 웬만한 스릴러 영화는 다 챙겨봤다고 자부하던 나도 모르는 고전 영화까지 다 꿰고 있을 정도로 호러 스릴러장르에 진심이었다.

뭔가 멜로 영화나 코미디를 좋아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공포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에선 생기마저 느껴졌다.

역으로 그런 영화쯤은 가뿐히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하린이는 은지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점점 더 내 팔을 꽉 붙잡아왔다.

꽤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그 반응이 귀여워서 은지의 말에 더욱 맞장구를 치며 하린이가 나아게 점점 더 가까이 달라붙어 오는 걸 즐겼다. 내가 부추기자 은지도 더 즐겁게 이야기했고.

“그게 그런 내용이었구나.”

“네. 헤헤. 담에 시간 나면 같이 보면 좋겠다.”

그렇게 말하며 은지는 배시시 웃었다. 그녀도 하린이가 무서워서 나에게 더욱 깊이 안겨 오는 걸 눈으로 살피고 있었다.

은지와 대화하다 보니 문득 든 생각인데 아마 곧 있으면 인터넷이 끊기리라. 그리고 두 달 안에 전기와 수도도 끊어질 것 같다. 그전에 은지가 말한 영화를 볼 수 있을 기회가 생긴다면 좋겠지만...

암울하고 불행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지금 분위기 딱 좋은데 괜한 소리해서 이 부드럽고 달달한 분위기를 씹창내고 싶지 않으니까.

그저 나와 함께 영화를 보고 싶다며 순수하게 기대하는 은지가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 있으니 가만히 우리의 대화를 엿들으며 혼자 무서워하던 하린이가 머뭇거리며 대화에 참여했다. 마치 더는 공포 영화 이야기가 계속 되지 못하게 막겠다는 것처럼.

“저기... 오빠. 혹시 ‘크라운’이라는 영화도 봤어요..?”

내가 봤을 때 하린이는 굉장히 겁이 많은 편인 것 같다. 나의 노예가 됐음에도 겁 없이 나에게 까칠하게 군것도 사실은 내가 무서우니까 더욱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펼친 방어기제가 아니었을가.

서른 살 먹은 사회인으로서 대충 보면 상대방의 성향이나 행동양식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진상들을 워낙 많이 접하며 살아온 인생이라 그런지 상대방의 성향에 대한 파악이 남들보다 아주 약간 더 빠른 편이다.

‘귀엽네...’

대범한 척, 강한 척하지만 실상은 겁이 많고 연약한 부분이 있는 여자.

‘그리고 낯도 엄청 가리는 것 같고.’

이유야 어찌 되었든 하린이가 이렇게 대화에 참여하려 하고 우리와 좀 더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성적인 부분을 넘어서서 일상적인 부분까지 우리와 가까워지려 노력한다는 뜻이니까.

생판 남이었던 우리와 친해져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겁 많고 내성적인 그녀가 이렇게 먼저 말을 거는 건 그녀 나름대로 많은 용기를 낸 행동일 테니. 처음과는 달라지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하린이의 물음에 격하게 반응해줬다.

“아, 그거. 알지. 그 미친 광대 빌런 나오는 거. 개봉하고 바로 본 것 같은데. 재밌었어. 배우가 정신병자 연기 너무 잘하더라.”

“맞아요... 혹시 아울 맨 삼부작도 보셨어요?”

“와. 그거 명작이지.”

“그거 나도 봤어!”

아울 맨 트릴로지를 알고 있다니. 하린이는 히어로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히어로물은 또 꽤 심취해서 봐 왔던 장르라 반가운 소재였다. 특히 재작년에 나왔던 리벤저스 2 엔드리스 게임이 시리즈의 정점이었지.

은지도 같이 맞장구를 치며 그 영화 봤다고 말했다. 그러곤 무서운 이야기해서 미안했는지 하린이를 향해 팔을 뻗어 쓰다듬었다.

하린이는 은지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스콜피온 킹 3편도 보고 싶었는데...”

“그러게. 다음 달이면 개봉인데. 개봉 전에 이리됐네.”

잠시 분위기가 침체 됐다.

우린 당장 다음 달을 기약할 수도 없는 처지니까.

어쩌면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고.

아직은 집안에서 이리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지만. 사실 밖에서 특수 좀비 한 마리만 나타나도 현관문은 금세 뚫린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무법자 놈들이 우릴 가만히 내버려 둘리도 없고.

식량도 얼마 못 가 바닥을 보이리라.

곧 마트에 있는 놈들을 다 죽이고 식량을 약탈해야 한다.

살기 위해서 살인을 밥 먹듯이 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때 과연 이 여자들은 버틸 수 있을까.

부디 은지와 하린이가 독한 마음을 품고 버텨줬으면 좋겠다. 난 나를 배신하지 않는 동료를 원하는 거지 삶의 의욕을 잃어 버린 인형을 원하는 게 아니니까.

“벌써 너무 걱정들 하지 말자! 우리 각성자만 셋이야. 인터넷 보니까 각성자들 엄청 희귀하다던데 우린 벌써 셋이서 한 팀이 됐잖아? 다 같이 열심히 살아남아보자.”

그래서 빠르게 분위기를 전환했다. 침체된 상태는 결코 좋지 않다. 부정적인 사고는 우울감을 몰고 온다. 우울감이 지속되면 결국 죽고 싶어진다.

“오빠 말이 맞아요. 우리 그리 호락호락하게 안 죽을 거예요.”

“네... 우린 한 팀이니까...”

“그래 하린아. 우리 다 같이 힘내자! 할 수 있다!”

“네... 언니. 고마워요.”

사이좋은 모습이 보기 좋다.

애초에 내가 우릴 ‘한 팀’으로 묶어 뒀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지만. 어찌 되었든 사이가 좋고 손발이 잘 맞으면 좋은 거지.

우린 그렇게 영화이야기를 기점으로 서로의 취향이나 취미 등에 관해 알아갔다. 뭐랄까 홀딱 벗고서 살을 맞대며 나누는 이야기라 그런지 좀 더 쉽게 거리감이 줄어들었다.

이미 몸을 한차례 섞었기 때문에 마음의 거리감이 쉽게 줄어들었을 수도 있고. 서로 배신할 걱정이 없는 사이나 마찬가지라 더 가까워진 거일 수도 있고.

그야, 나에게 노예낙인이 찍힌 은지와 하린이는 죽어도 나를 배신할 수 없고. 나 또한 예쁘고 희귀한 여자 각성자를 버릴 리가 없다는 걸 두 여자도 알고 있을 테니까.

내심 나의 노예가 된 것에 불만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다. 그래, 스킬의 효과로 단단한결속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 거지도 모른다. 현실과의 타협은 중요한 덕목이니까.

'그녀들의 처지에선 나의 노예가 된 일을 재해가 일어난 거라 여기고 납득할 수밖에 없겠지. 어쩔 수 있나. 똥 밟았다고 생각해야지. 빠르게 받아들이는 편이 서로에게 좋다.'

그런 의미에서 하린이는 나에 대한 거부감을 지우고 그저 나 장조준이라는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다. 벗어날 수 없으니 별수 없었겠지.

은지야 원래 나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고백했으니 지금, 이 상황 자체를 이미 즐기고 있는 느낌이고.

아무튼 우리 셋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물론 한 시간 남짓한 대화만으로 상대의 모든 걸 알 수는 없지만 심리적 거리감만큼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그리구 언니 오늘 김치찌개 맛있었어요.”

“맞아. 간만에 밥다운 밥이었지.”

“헤헤. 재료만 충분하면 한식엔 자신 있어요.”

까칠하게만 굴던 하린이는 이제 나와 은지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다. 연장자인 은지는 그런 하린이의 행동이 귀여웠는지 웃으며 말을 받아줬다.

나야 중간에서 맞장구를 치며 그녀들이 주도하는 대화에 반쯤 묻혀 따라갔고.

여자랑 대화한다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다니.

매일 나에게 온갖 짜증은 다 부리던 히스테리 가득한 김 대리 그 미친년과는 차원이 다르다.

김 대리뿐만 아니다. 내가 이제까지 살아오며 대화를 나눠본 대부분의 여자들은 존나 예민하고 날카로웠다. 그리고 성격이 드센 걸 넘어 더러웠었지. 그래서 늘 여자와의 대화를 피곤하고 귀찮고 힘든 일이라 여겨 왔다.

하지만 이 둘은 다르다. 뭔가 마음이 편하고.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편해졌다.

“하~암...”

“이제 잘까?”

“네, 오빠.. 잘 자요.. 하린이도.”

“네. 안녕히 주무세여.”

은은히 방안을 비추던 조명을 끄고 우린 뒤엉켜 잠들었다.

은은히 풍겨 오는 여인의 살 내음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손안에 들어오는 가슴의 감촉이 기분 좋다. 나를 껴안고 감싸 오는 그녀들의 팔과 다리가 안정감을 들게 해준다.

오랜만에 정말 깊게 잠든 것 같다.

···

···

···

“으음...”

아무리 인류문명이 멸망해 거리에 좀비가 돌아다닌다고 해도 아침 해는 뜨는 법.

알람을 굳이 맞춰 두지는 않았지만 커튼 사이로 비춰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났다. 하린이는 등을 나에게 딱 붙이고서 새우잠을 자고 있었고 은지는 여전히 내 품에 파묻혀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그녀의 다리가 내 배 위에 올라와 있는데 은지가 워낙 가벼워서 그런지 적당한 무게감이 기분 좋았다.

무엇보다 그녀의 발이 자지에 살짝살짝 닿아서 아침부터 발기되려 하고 있다.

29살이 되고 나서부터 슬슬 모닝발기가 힘들던데. 은지의 발이 본의 아니게 모닝텐트를 쳐주네.

‘만족스럽다...’

정말 최고다. 조금만 더 이렇게 누워 있자.

그런데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점점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다 좋다. 다 좋은데...’

여자가 생기니 이제 안정적인 보금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렇게 다 낡아 빠진 복도식 아파트는 언제든지 좀비들에게 뚫릴 수 있으니까.

‘당장 1, 2년은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어찌 버틴다 해도... 그 이상을 버티기 위해선 마음 놓고 살만한 장소가 필요할 거야...’

차라리 생존자 캠프를 큼직하게 하나 차려놓고 엿 같은 놈들은 대충 걸러낸 다음 실용적인 기술자들만 노예로 만들어서 나만의 왕국을 만드는 건 어떨까.

그러려면 지금의 무력으론 어림도 없겠지. 아무리 각성자가 셋이라곤 해도 우린 아직 레벨 10도 못 넘긴 생 초보나 다름없으니까.

‘하아.. 식량도 문제다. 통조림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결국 최종적으론 농사를 지어야 한단 소린데...’

농사짓는 법이라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특히 한국인으로서 쌀밥을 못 먹는다 생각하니 벌써 앞날이 깜깜해지기에 벼농사짓는 법도 알아봐야겠다.

‘아니, 농사짓는 법을 글로 읽어서 배운다고 쳐도. 직접 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지.’

역시 여러모로 힘겨운 상황이다.

사회 기반이 죄다 망가진 덕분에 모든 걸 자급자족해야 한다.

머리가 점점 더 복잡해진다.

일단은 생각을 비우자. 지금 고민한다고 당장 답이 나오는 문제도 아니고.

‘그래, 지금은 은지랑 하린이 젖이나 만지자.’

생각을 빠르게 정리한 나는 잠든 두 여인의 젖가슴을 주물렀다.

아, 이제야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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