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12. 좀비잡고 레벨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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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어제 남은 김치찌개로 대충 끼니를 때운 우린 씻고 나갈 준빌했다.
하루 종인 은지와 하린이를 붙잡고 침대에서 뒹굴고 싶지만 그럴 순 없으니까.
레벨도 올려야 하고. 예쁘장한 여자 각성자가 있으면 붙잡아서 노예로 만들어야 하고.
남자 각성자나 의료 종사자, 기계를 다룰 줄 아는 공돌이 같은 전문분야의 기술자들도 미리미리 붙잡아 노예로 만들려면 꽤 바쁘다
더구나 당장 한달을 버틸 음식도 없으니 식량도 구해야 하고.
물론 지금 당장은 레벨을 올리는 게 급선무다.
좀비 기피제를 전부 쓰고 나서도 거리를 돌아다니려면 그만한 무력을 키워야 한다.
“어? 인터넷 끊겼다...”
그때 한참 웹서핑을 하며 특수 좀비를 검색하던 은지가 울상을 지었다.
그러자 하린이가 앨범에 저장된 사진들을 몇개 보여 주며 말했다.
“일단 당장 발견된 특수 좀비에 대한 정보는 전부 다운로드해 뒀어요.”
“오, 잘했어. 어디 보자.”
하린이의 폰앞에 모인 우린 모자이크 하나 없이 적나라하게 찍힌 좀비의 사진과 부과적인 설명들을 확인했다.
“특수 좀비들 이름은 공식적인 건 아니고 그냥 사이트에서 임의로 붙인 거라네요.”
“그래? 어디 보자... 빗치...??”
아니, 아무리 비공식 네임이라 해도 빗치라니. 가랑이라도 벌리는 핑챙좀비인가?
“인간을 발견하면 비명을 지르는 여성형 좀비... 여성형 좀비인데 어그로를 엄청 끄니까 비치인가 봐요.”
“네이밍 센스 괴랄하네. 다른 놈은?”
“우욱... 이건 인간지네요...”
“이런... 뭐 이런 새끼가 돌아다녀...”
인간의 상반신만 다닥다닥 붙어 있는 그로테스크한 사진이 나왔다.
보는 순간 정신력이 깎여나갈 것만 같은 그런 끔찍한 생김새다. 아무리 특수 좀비라지만 저건 좀 심한 거 아닌가 싶다.
“이런 게 돌아다닌다고?”
“여기저기서 발견 됐나 봐요. 여기 쓰인 설명으로는 생각보다 흔한 특수 좀비라네요. 특히 아파트가 많은 주거단지에서 기어나온대요.”
“어... 주로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 고층의 생존자를 집중적으로 노림... 하아... 고층사는 부자들도 다 좆됐네.”
상반신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도 기어오르기 쉽게 진화한 결과겠지. 이런 놈이 아파트 외벽을 기어 올라 숨죽여 생존중인 사람들을 습격한다니. 상상만으로 공포영화 두 편은 나왔다.
“후우... 아무리 징그러워도 특수 좀비를 잡으면 경험치를 더 주니까. 스프레이 효과 유지될 때 최대한 잡아야 해. 특수좀비 발견하면 무조건 죽여.”
아무리 징그럽게 생겼어도 다른 방법이 없다. 일반 좀비 열 마리보다 특수 좀비 한 마리가 더 경험치를 많이 주니까. 스프레이의 유효시간이 짧은 만큼 이런 놈들이 눈에 띄면 보이는 족족 잡아 죽여야 한다.
“그럼 이제 다들 준비됐지?”
“네. 오빠.”
“저도 준비됐어요, 주인님.”
서로의 스킬은 이미 확인해 뒀다.
컬티스트인 나는 ‘촉수소환’과 ‘노예낙인’이다. 촉수소환은 하루에 3번밖에 쓸 수 없으니까 일반적인 좀비보단 적대적인 각성자를 상대로 할때 필살기처럼 사용하기 위해 최대한 쓰지 않고 아껴 둬야하고 노예 낙인도 마나 소모가 극심하니 마구잡이로 쓰기 어렵다.
그러니 혹여나 밖에서 각성자를 붙잡게 되면 지난번 업적보상으로 뽑았던 '억압용 입마개'를 사용해서 힘을 봉인시킨 다음 집으로 끌고 와서 노예로 만들기로 했다.
여기서 각성자 노예가 만약 남성일 경우 이리저리 막 써먹을 대가 많을 것 같다.
‘그런데 노예가 좀비에게 물려서 좀비로 변하면... 노예 상태가 유지되나?’
갑자기 떠오른 궁금증. 다음에 쓸 모 없는 놈 하나 붙잡았을 때 실험해 보면 되겠지.
다음은 섀도워커인 은지. 은지는 그림자에서 무기를 뽑아내는 ‘그림자 직조’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마나 소모량은 무기 하나당 2정도라는데 이 무기가 내구도 3짜리란다. 3번 정도 휘두르면 부서진다고 봐야 하는 무기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실용성은 충분하다. 당장 손이 비었을 때 무기를 뽑아낼 수 있고 적들이 스킬의 존재를 모를 경우 은지에게 기습당하기 딱 좋다. 암살자 계열 다운 스킬이다.
끝으로 바바리안인 하린이. 하린이는 살아 있는 생물의 심장 박동을 들을 수 있는 ‘심박추적’ 스킬을 가지고 있다. 일정 거리 안에 있는 사람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는 데 이 또한 대인 전에 특화된 스킬이다.
‘적은 눈치채지 못하게 자기만 몰래 상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메리트가 있지...’
벽 너머에 있는 적들도 ‘일정 거리’안에만 들어오면 파악이 가능하니 인간탐색에 있어선 최고의 능력 같다.
중요한 건 발동중에 마나가 소모되고 하린이도 몇 번 써본 적이 없어서 일정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모른단 점이다.
‘그런거야 차차 알아나가면 되지.’
우리 셋이 보유한 스킬은 대충 이렇다. 좀비 사냥보단 각성자 사냥에 어울리는 스킬 조합이다. 마치 인간사냥꾼과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 상태로 조금만 더 성장하면 우리 셋이서 충분히 마트 털 수 있겠는데... 다이소도 마찬가지고.’
그런 생각 하며 야구 배트를 집어 들었다.
은지는 호신용으로 사뒀다는 망치를, 하린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활과 옷걸이 봉에 식칼을 테이프로 감아 만든 창을 챙겨들었다.
“다들 마스크 끼고.”
“네! 꼈어요, 오빠!”
“저두.”
“응, 좋아.”
혹여나 좀비의 피가 입에 튈 수도 있고 얼굴이 알려져 신원이 밝혀지면 나중에 곤란할지도 모르니까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썼다.
특히 은지와 하린이는 상당히 예뻐서 불한당이나 무법자 놈들에게 시비가 걸릴 수도 있다. 법도 도덕도 없는 세상에서 힘도 없으면서 예쁜기만한 미모는 오히려 독이 될 확률이 크지.
혈기 왕성한 놈들이라면 여자만 발견했다하면 납치감금 후 성 노리개로 돌려쓰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 이미 그러고 있겠지.
당장 나만 해도 예쁜 여자를 발견하면 아마 높은 확률로 붙잡아 노예낙인을 찍으려고할 테니까. 이런 시대니까 인간성을 진즉에 버리고 쾌락에 빠지는 놈들도 많으리라. 여자라면 무조건 좋다고 달라들 놈들...
나는 여자라고 다 받아주는 그런 부류의 인간은 아니다. 난 내 나름의 선정 기준이 있다. 미모는 기본이고 거기다 장애나 정신병을 비롯한 골치아픈 병이 없어야 하며 최종적으로 각성자여야 한다.
진짜 무슨 얼굴이 개연성인 연예인급 외모가 아닌 이상엔 저 세 가지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굳이 군식구로 맞이할 의향이 없다. 노예 삼더라도 은지나 하린이 같은 대우를 해주진 않겠지.
이 둘은 사실상 동료 같은 개념이지 진짜 노예라 생각하진 않으니까.
“오늘은 레벨을 최대한 많이 올리는 게 목적이니까. 스프레이 뿌리고 2시간 동안 이 근처에 있는 좀비들 싹 치우자.”
“네!”
“그리고 사람 죽여야 할 때 괜히 주저하지 말고. 쓸데없이 자비 베풀다가 역공당하면 짜증 나니까. 죽여야 할 상황엔 거침없이 죽여. 특히 하린이 너. 처음 나 보자마자 활로 쏴 죽였으면 노예 될 일 없었던 거 알지?”
“네... 주인님.”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간담이 서늘하다. 만약 하린이가 냉혹한 생존마였다면 나를 바로 죽여 버리든 다리나 팔을 쏴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고 가방을 뺏어 사라졌겠지. 활에 맞은 나는 고통에 스킬사용을 실패하고 그대로 좀비 밥이 됐을 가능성이 컸다.
멸망초기라 아직은 어수룩한 인간이 많다.
그래, 살인에 깊은 거부 반응을 보이는 자들은 물론이고 과거의 도덕규범과 인권이란 허상에 대한 믿음을 가진 이들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겠지.
과연 그들은 어디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상대가 각성자든 아니든 방심하지 않을 거다. 죽이거나 노예로 만들거나. 둘 중에 하나뿐인 양자택일을 강요할 거다. 그래야 내가 죽지 않고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다. 살기 위해서 타인을 소모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난 정말 기꺼이 타인을 짓밟고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
“은지는 멸망하고 처음 밖에 나가는 거니까. 미리 하나 경고하자면 시체 썩은 냄새 생각보다 엄청 심해. 혹시나 갑자기 토하면 곤란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주의 할게요.”
“좋아. 이제 가자. 스프레이 얼굴에 뿌려.”
칙, 칙, 칙.
지금부터 120분 카운트다운.
2시간 안에 최고의 효율을 뽑아야 한다.
덜컹.
우린 밖으로 나왔다. 2시간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좀비를 죽여야 한다.
“가자가자!”
내가 선두, 중간이 은지 맨 뒤가 하린이다. 일단 이런 상태로 1층까지 내려간다.
“우어어!!!”
분명 전날에 하린이를 데려올 때 대충 다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좀비들이 또 기어 올라와 돌아다니고 있다. 어쩌면 위층에서 내려온 놈들일지도 모른다.
“죽어..!”
복도를 걷고 있는 좀비의 머리통을 사정 봐주지 않고 내리쳤다.
후웅 콰직!!
대충 뚝배기를 때려 바닥에 눕히면 뒤따라오던 은지와 하린이가 빠르게 바닥에 엎어진 좀비를 처리한다.
“우어...!”
콰직!
[좀비 처치로 40코인을 얻었습니다.]
좀비 1마리당 평균 5코인쯤 받는다. 단박에 40코인이 들어온걸 보면 은지와 하린이가 죽인 좀비의 코인도 전부 나에게 들어오고 있다.
노예인 그녀들은 자체적으로 뭔 갈 얻을 수 없다. 전부 내 것이 된다. 스킬 선택권한도 나에게 있고. 물론 스킬은 그녀들과 상의해서 찍을 생각이지만.
우린 빠르게 복도의 좀비들을 패죽이며 아래로 내려갔다. 눈에 띄는 좀비들은 전부 두번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박살내며.
“너무 쉬워서 굳이 안붙어 다녀도 될 것 같아요!”
1층에 도착하자 은지가 그리 말했다.
좀비의 뚝배기가 너무 간단하게 터져 나가니 신이 났나보다.
“그럼 너무 멀리 가진 말고 서로 보이는 위치에서 알아서 죽이자!”
“예!”
“네, 주인님.”
스프레이를 뿌린 우린 무적이었다. 좀비들을 얻어맞으면서도 반응도 못하고 죽었다. 이거 각성자들은 대부분 받았을 특전일 텐데 성능이 너무 좋다.
비록 2시간 간격으로 총 3번밖에 사용 못 하지만. 그 정도면 상당히 많은 좀비를 쳐 죽일 수 있을 것 같다.
[노예 ‘이은지’의 레벨이 1 올랐습니다.]
[노예의 스킬을 선택하십시오.]
“아싸!!! 오빠! 나 렙 올랐어요!”
역시 제일 열심히 뛰어다니며 좀비 대가리를 깨부수더니 은지가 가장 먼저 레벨 업 했다.
공포 스릴러 마니아답게 좀비 따위는 하나도 두렵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손맛이 좋다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다 무서울 지경이다.
뭐랄까 피를 본 순간부터 은지의 눈이 돌아간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내면에 감춰져 있던 살인마로서의 본능이 일깨워진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나만의 착각인지 아니면 저 작고 귀여운 은지의 본성인지.
“오! 나도 방금 봤어! 좋아! 그거지! 우리 은지 잘한다!”
“헤헤..! 오빠! 스킬 지금 찍을 꺼에요?"
얘가 지금 무슨 소릴. 당장 좀비 죽일 시간도 모자란데 스킬 찍고 있을 틈이 어디 있나.
“좀 있다 집 가서 찍자!”
“네! 오빠!”
그리 활기찬 은지에 반해 하린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반인의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후우... 후우...”
[노예 ‘성하린’의 레벨이 1 올랐습니다.]
[노예의 스킬을 선택하십시오.]
물론 그녀도 각성자이자 나의 노예답게 좀비는 아주 잘 때려잡긴 했다. 다만 피와 살점, 뇌수를 보며 정신적으로 좀 괴로워할 뿐이지...
그래도 은지의 레벨업과 거의 비슷하게 하린이도 레벨이 올랐다. 하린이도 노력했으니 칭찬해 줘야지.
난 허리를 숙이고 숨을 헐떡이는 하린이의 등을 두드려 줬다.
“잘했어.”
“고마워요...”
그녀는 극도로 공포 영화를 싫어하는 약한 심장의 소유자답게 터져 나간 좀비의 머리통이나 시체를 보며 속이 안 좋아졌는지 컨디션이 나빠졌다. 그래도 지금 와서 돌아갈 수는 없다. 좀비 기피 스프레이가 너무 아까우니까.
“좀만 더 고생하자.”
“네... 익숙해질게요..”
“그래, 우리 하린이 할 수 있다. 힘내.”
“네..!”
힘내야지. 별수 있나.
그리 응원의 말을 남기고 나도 다시 좀비 대가리를 터트리며 돌아다녔다.
대부분의 좀비들은 우리의 존재를 파악조차 못한 채 얻어맞고 나자빠져 죽어 버렸다.
“약해... 너무 약하다... 좀비 새끼들 개좆밥이야!”
[레벨이 1 올랐습니다.]
[직업스킬을 선택하십히오.]
멍청한 좀비의 대갈통을 깨부수다 보니 어느새 나도 레벨이 올랐다.
솔직히 이 정도 난이도면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재앙 일주일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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