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16. 잡아라, 죽여라, 노예로 만들어라
* * *
“오늘이 무슨 요일이었지?”
“오늘 2월 3일 목요일이요...”
“젠장...”
벌써 오후 3시. 6시만 되도 해가 저버릴 테니까 뭔 갈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다.
그렇지만 지금부터 움직여야 한다.
남은 기한은 곧 끝나버릴 오늘을 포함해 금, 토, 일 사일뿐.
월요일이 되는 순간 좀비들은 집단을 이룰 것이며 더욱 흉포하게 날뛰기 시작하겠지.
그전에 수를 써야 한다.
“스프레이 남은 횟수가...”
“오빠랑 하린이가 한 번씩 남았고.”
“은지 언니가 두 번이요.”
“하아... 아찔하네...”
아파트엔 우리 말고 다른 생존자도 많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다음 주 월요일부터 죄다 죽는다고 봐야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 낙후된 아파트에선 미래를 도모할 수 없다. 떠나야할 때가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오고 말았다.
“오빠...”
“주인님. 우리 이제 어쩌죠?”
“흠음... 잠시만 생각 좀 해 보자. 둘 다 이리 와.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네에...”
벌써 겁에 질린 은지와 하린이를 껴안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공지엔 분명 좀비들이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며 생존자들을 추적하고 적극적으로 공격할 거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분명히 이때까지는 좀비들은 조금 병신 같긴 했다. 하지만 그건 전부 좀비 기피제가 있었던 덕분이다. 이제 월요일부터는 이 미친 새끼들이 펄쩍펄쩍 뛰어다니면서 사람을 공격한단다. 지금도 충분히 잘 뛰는 좀비들이지만 월요일 이후엔 아예 파쿠르까지 할 기세다.
‘하아... 존나 곤란한데...’
아직 집에 좀비가 침입한 적도 없고. 좀비에게 습격당할 거란 걱정도 사실 크게 없었다. 언제까지고 저 튼튼한 현관문이 우릴 지켜 줄 거라 믿었다.
물론 특수 좀비가 집문을 박살 내고 들어오는 사례들을 여러 차례 보았지만 이 동네에선 아직 한 번도 특수 좀비를 마주친적이 없었으니까. 그랬는데 이렇게 빨리 밸런스 패치가 이뤄질 줄이야.
당장 월요일 밤부턴 일반좀비가 대거 특수 좀비로 변하겠지. 그놈들이 이제 숨어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올 거다. 더구나 걔중엔 좀비들을 통솔하는 개체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인터넷에서 살펴본 특수 좀비들은 아파트 현관문 정도를 금방 박살 낼 만한 피지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고층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 인간지네들이 벽을 타고 기어 올라올 테니.
아무런 안전장치도 뭣도 없는 이런 노후화된 싸구려 아파트는 거의 뭐 놈들의 처지에선 맛 좋은 도시락같아 보이겠지?
어디 부자가 마련해 둔 방공호라도 찾아가야 하나.
차라리 생존자들이 다수 모여 있는 곳에 가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좀비들이 뭉쳐서 집단으로 공격해 온다면 각성자들도 단합해서 싸우는 편이 더 낫겠네.
아니면 어디 섬으로 도망가던지...
‘그래, 일단은 마트를 접수하자...’
마트를 차지한 놈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삼아서 방어진을 확실히 구축하는 거야.
적어도 거긴 먹고 죽을 음식은 차고 넘칠 테니까.
‘적어도 10렙까진 올리고 나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좋았을 것을...’
우린 이제야 겨우 5렙됐다.
아직 익힌 스킬들도 제대로 사용해 본 적 없는 이런 상태로 특수 좀비들이 창궐하는 걸 맞이해야 한다니.
내가 종말 직후 3일을 허투루 날려 버리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든 시각은 지금도 흐르고 있고 더 지체되기 전에 슬슬 움직여야 한다.
“일단 당장 무기가 없으면 곤란하니까. 철물점부터 다녀올까 생각중인데. 어때?”
“오빠, 가려면 지금 당장 가요. 공지 읽은 사람들 전부 지금 발등에 불 떨어졌을 거야.”
“남은 기간 동안 최대한 뭔가를 해 보려고 하겠죠... 바로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럼 다들 옷 챙겨 입고. 스프레이는 지금 바로 쓰지 말고 좀 더 위기 상황일 때 쓰자.”
“네.” "알겠어요, 주인님."
스프레이는 이제 최대한 아껴야 한다. 상황이 이리될 줄 모르고 오늘 써버렸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가 없으니. 아마 진즉에 좀비 기피제를 다 써버린 놈들은 지금쯤 울고 있겠지.
“좋아. 가방도 챙겼고...”
“주인님 어깨에 파스 붙였어요?”
“오빠, 손목 보호대는?"
"그것도 했고. 난 이제 준비됐어...”
내 몸 상태를 걱정해주는 은지와 하린이.
솔직히 좀 피곤하긴 한데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피곤하진 않다.
한 가지 불안한 건 야구방망이인데... 부러지기 직전이지만 당장 몇 번은 더 쓸 수 있다.
철물점까지만 뚫고 가면 되니까 그때가지만 버텨다오.
“저도 준비됐어요.”
“출발해요, 주인님.”
은지와 하린이는 급한 대로 새로 급조해 만든 식칼 창을 들었다.
테이프로 칭칭 감아두긴 했지만 역시 믿고 쓸 만한 무기는 아니다.
좀비를 몇 번 찌르면 피에 젖어 테이프가 헐거워지고 식칼이 덜렁거릴 테니까.
그래도 지금은 이거라도 들고 있는 편이 좋다.
“가자.”
덜컹.
밖으로 나갔다. 다행이 오늘 오전 중에 주변의 좀비들을 싹 다 잡아 죽인 덕분에 근처에 좀비는 한 마리도 없었다.
“후우...”
스프레이를 뿌리지 않고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 우린 극도의 긴장감을 맛보며 앞으로 나아갔다.
“우어어...”
그때 어딘가에서 좀비 특유의 음침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씹...”
하린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허나 심장이 뛰지 않는 좀비를 심박추적 스킬로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지.
“하린아 마나 아껴.”
“네, 죄송해요...”
“괜찮으니까 일단 계속 가자...”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뒤따른다.
나오기 전에 몇 번이나 주위를 살피라고 일러뒀기 때문에 둘 다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조그마한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전후좌우 사방을 살피며 따라왔다.
그때 길가에 세워져 있던 자동차 사이로 뭔가 튀어나왔다.
“우어어...!”
“씹새...”
후웅 퍼억!
“우어...!”
퍼억! 퍼억!
자동차 옆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좀비.
너무 놀라서 소리 지를 뻔했지만, 이를 꽉 깨물고서 놈을 때려잡았다.
살짝 뒤돌아보니 은지는 눈을 크게 뜨고서 침을 꿀꺽 삼켰고 하린이는 식칼창을 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둘 다 아직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아서 겁먹은 모습이다. 익숙해지면 괜찮아지겠지.
그래, 그나마 비명 지르지 않은 게 어디야.
“후우...”
철물점을 향해 도로 옆 인도를 따라 걸어갔다.
도로 곳곳에 세워진 차들과 널브러진 좀비의 시체들. 우리가 아닌 생존자들이 처리한 놈들 같다. 아니면 잠들어 있는 상태거나.
간혹 자동차 안에서 우리를 향해 소리 지르는 좀비도 보였다. 안전벨트를 풀지 못하고 좀비가 된 모양이다. 하나하나 죽이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둔 채 지나쳤다.
이곳저곳 좀비들이 이를 딱딱 거리거나 의미불명의 울음소리를 내며 돌아다니고 있다. 우린 극도의 긴장상태로 몸을 낮추고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아직 우릴 발견한 좀비는 없다. 너무 긴장하면 피로도가 높아질 것 같아서 분위기를 환기 시키기 위해 은지와 하린이에게 말을 걸었다.
“후우... 좀만 더 가면 철물점이니까...”
말을 이어 나갈 틈도 없이 일이 일어났다.
휘웅 쿵!!
콰장창!!!
“읍...!”
“시발....”
우리가 나아가던 방향에 있던 차동차 위로 뭔가 떨어졌다.
얼핏 보기론 사람이 추락한 것 같은데...
“...!”
떨어진 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린 사람이었다.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자였다. 여자라...
다가올 현실을 버티지 못하고 자살했나 본데...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긴 하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뛰어내린 게 아닐까.
다음 주 월요일이면 난이도가 급증할 테니 좀비에게 뜯겨 죽는 것보단 투신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거다.
“젠장... 오빠... 좀비들 몰려와요..”
떨어진 여자 덕분에 승용차의 천장이 내려앉으며 완전히 박살 났다.
또한 깨진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옆에 세워진 차에 맞아 자동차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하니...
“우어어어!!!!”
커다란 소음에 반응한 좀비들이 일제히 자동차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우어어어어!!”
“끼아아아!!!”
“어아어아아아..”
이대로 가는 건 무리다. 저 많은 놈들의 어그로가 끌리면 답이 없다.
“주, 주인님...”
너무 놀란 하린이가 내 소매를 붙잡았다. 두 눈에 눈물이 살짝 맺혀 있는 거로 보아 많이 놀랐나보다.
심지어 눈을 꼭 감고 떨고 있었다.
갑자기 눈앞에서 사람이 투신자살하는 걸 목격했으니 충격 받을 만하다.
“둘 다 정신 차려. 아직 죽기 싫잖아.”
“네...”
“마, 맞아요... 우린 안 죽을 거예요.”
저 여자가 다가올 미래를 못 버티고 투신자살을 하든 말든 우린 우리 갈 길만 제대로 가면 그만이다. 하나하나 마음 썼다간 멘탈 깨진다.
“우린 저쪽으로 빠지자.”
소음 덕분에 넓게 분포해 있던 좀비들이 한곳으로 집중됐다.
우린 그 틈을 타 얼른 길을 건너 좀비가 없어진 곳을 빠르게 걸어갔다.
현장을 서둘러 지나가며 흘낏 곁눈질로 봤는데 차체에 처박힌 시체를 끌어내려 좀비들이 뜯어먹고 있었다.
‘우욱...’
뿜어져 나오는 선혈. 뽑혀 나오는 내장과 뜯겨나간 팔다리가 모자이크도 없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하린이도 그걸 봤는지 작게 헛구역질했다. 은지는 아예 입을 틀어막고 있고.
이미 숱하게 좀비 대가리를 깨부수며 고어한 장면에 내성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내성이 생긴 건 아니었나 보다.
좀비의 썩은 내장과 선혈이 쏟아지는 사람의 시체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다 왔다...”
소란을 뒤로하고 나아간 우린 드디어 철물점 맞은편에 도착했다.
철물점의 셔터는 반쯤 찢겨 있었다. 또한 주위엔 생존자로 보이는 것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가방을 메고 있는 모습이 좀비들과 싸우며 여기까지 온 것 같은데...
죽어 있는 시체의 수는 총 셋. 둘이 어른이고 하나는 아직 중·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애였다. 가족이 아니었을까.
“다 죽었나 봐요...”
“오빠 저 사람들 가방 뒤질 거죠?”
“그래야지. 일단 확인 사살해. 갑자기 일어나서 다리라도 물면 끝장이야.”
“... 네.”
“알겠어요...”
은지와 하린이는 내 말에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천천히 각자의 무기를 쥐고서 시체들로 다가 갔다.
나는 쓰러져 죽어 있던 애의 머리를 야구 배트로 으깼다. 아직 어린 애의 머리를 깨부수는데 거부감을 느낄 것 같아서 내 손으로 끝장냈다. 그동안 은지와 하린이도 식칼창을 찔러 두 남녀의 확인 사살을 끝마쳤다.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들이 메고 있던 가방을 대충 뒤졌다.
“이 아저씨 가방엔 옷이랑... 이거 보석함? 오빠 이거 챙길까요?”
“오. 챙겨 챙겨.”
현금은 몰라도 귀금속은 쓸모 있을지도 모른다.
“어, 주인님. 여기 아줌마 가방에 진통제랑 상비약 있어요. 챙길게요.”
“좋아. 약도 챙기고... 대충 다 확인한 것 같으니까 바로 들어가자.”
“네!”
“그래요.”
시체들에게서 귀금속과 상비약을 챙겼다. 그것들 말고는 챙길 만한 물건이 딱히 없었다.
“우어....”
철물점 안에는 이미 좀비로 변해 버린 주인 아재와 그의 아내로 보이는 시체가 있었다. 아내로 보이는 시체는 무슨 헐크에게 처맞은 것처럼 구석에 처박혀 뭉개진 맥주 캔처럼 찌그러져 있었다.
“우욱... 미친...”
“시발... 사람이... 으깨져 있네...”
“주, 주인님... 저 토할 것 같아요..”
“참아.”
“네에...”
물건들이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지만 약탈당한 흔적은 딱히 없다.
고로 저 아줌마가 저리 처참한 몰골로 파괴당한 건 사람의 소행이 아니란 거지.
그저 압도적인 힘을 가진 무언가가 이곳을 습격해 대 때려 부수고 죽인 다음 떠난 게 아닐까 싶다.
아마 여기에서 공구 좀 챙겨보려던 저 일가족이랑 철물점 아재가 싸우는 소리에 특수 좀비가 꼬인 게 아닐까? 그 특수 좀비에게 생존자들은 전원 몰살당했고 철물점 아재와 그의 아내도 죽은 거겠지.
그런데 셔터를 저리 종잇장처럼 찢어 버리고 사람을 다진 고기로 만들 정도의 괴력을 가진 특수 좀비라니... 소름 끼친다. 혹여나 마주치면 끔찍할 것 같다.
“...삼고빔 받아라”
퍽! 후웅 퍼억!!
빠가각!!
좀비 아재의 머리를 으깨자 타이밍 좋게 야구 배트가 부러졌다.
“딱 맞춰서 박살 났네.”
대충 아재 시체를 철물점 밖으로 내던지고 우린 공구를 챙겼다.
“하아... 시발... 빠루...”
나는 드디어 그토록 염원하던 공구를 하나 찾았다.
흔히 빠루라 부르는 물건. 일명 쇠지렛대. 게임 속 캐릭터는 이거하나 들고 외계인들을 도륙내던데... 과연 묵직함이 장난 아니다.
이걸로 좀비의 대가리를 후려치면 단박에 박살 나지 않을까? 정말이지 좀비 사냥에 있어서 완벽한 무기를 손에 넣었다.
‘검고 우람하군...’
그리 쇠 지렛대에서 은은하게 풍겨 오는 쇠 냄새를 음미하고 있자 은지는 전에 쓰던 것보다 훨씬 튼튼해 보이는 통짜 쇠로 이루어진 망치를 두 개 챙겼다.
“오빠 어때요?”
“진짜 미치광이 살인마 같다.”
“헤헿...”
나와 은지가 손에 딱 맞는 전용무기를 찾은 그때 우리 중 제일 근력이 높은 하린이는 이리저리 공구 선반을 기웃거리더니 30인치 몽키 스패너를 하나 꺼내 왔다.
“오... 몽키 스패너..”
“꿀꺽... 좀비 학살자..”
은지가 감탄하며 엄지를 들어 올리자 하린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믿음직한 눈빛을 보내준다.
방금 전 투신하는 거 보곤 놀라서 눈까지 꼭 감은 주제에 몽키 스패너 하나 들었다고 제법 용기 있는 척하는 게 귀엽다.
“흐흐... 귀엽긴. 이제 무기 다 챙겼으니까 다른 공구도 챙기자. 은지야 거기 공업용 커터칼 부피줄이게 포장지 다 뜯어서 챙기고 칼날도 가방에 담아.”
“네!”
“하린이는 거기 절단기 챙겨.”
“어... 볼트커터요?”
“어 그거. 옳지.”
무한 파밍이다.
튼튼한 공업용 커터 칼은 언제 어디서나 쓸모가 있으니 챙겨둬야 한다.
택배 포장을 뜯을 때는 물론이고 사람을 고문해 굴복시킬 때도 필요하겠지.
절단기는 뭔가 끊을 일이 생기면 써야 하고.
가령 자물쇠라거나 혹은 손가락 같은 것들 말이다.
“오빠! 송곳도 챙길까요?”
“오! 송곳! 좋지, 좋지. 손 다치니까 조심해서 챙겨.”
“주인님. 여기 장갑이요! 뭉텅이로 있어요.”
“좋아 다 챙겨!”
그밖에 다용도 가위나 접목칼도 여러 개 챙겼다.
점점 가방에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니퍼 같은 일상생활에 유용한 공구나 카운터에 있던 라이터와 점화기, 토치까지 싹 챙기니 서서히 해가 저물었다.
챙길 만큼 챙겼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더 챙길게 없는지 철물점을 둘러보며 떠날 채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부르릉! 부아아앙!
오토바이 배기음이 들려왔다. 그것도 여러 대다.
“뭐야 여기. 벌써 털린 것 같은데요. 철물점 안에 사람 있으면 어쩌죠?”
“어쩌긴 임마. 총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일단 내가 먼저 들어가 볼 테니까 영철이랑 진구는 입구 지키고. 하일이랑 혜성이는 따라 들어와라.”
“예! 형님!”
웬 패거리가 철물점 앞에 모여 들었다.
우리 말고도 공지를 읽은 인간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하는구나.
저놈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다 죽일까? 아니면 노예로 잡을까. 각성자 있으면 그 새끼만 노예로 삼자.
나의 눈짓을 받은 은지와 하린이는 전투 준비했다.
하린이는 묵직한 가방을 벗어두곤 몽키 스패너를 꽉 쥐었고 은지는 망치를 양손에 하나씩 들었다.
그리 전투 준비가 끝난 순간 패거리의 우두머리가 겁도 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야. 선객이 있었잖아. 오, 여자가 둘이나 있네?”
철물점 안으로 기어들어 온 새끼는 내가 아는 놈이었다.
마트 앞에서 보초 서던 새끼들 중 하나. 저놈은 총이 있다. 빨리 붙잡아야 한다!
“알라쿰”
내가 주문을 외우는 순간 놈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쇠 파이프를 놓고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스킬을 사용한다 싶으니까 경찰서에서 노획한 권총을 꺼내 쏘려는 거겠지.
아마 여기까지 올 때는 좀비들을 죽인다고 쇠 파이프만 들고 있었나 본데, 이상하다 싶으면 총부터 꺼냈어야지 등신아.
“이, 이런!”
“르뤼에.”
놈의 손에 뒤늦게 권총이 쥐어졌다. 나는 이미 영창을 끝낸 상태고.
푸확!!!
보랏빛 마법진이 떠오르며 다섯 가닥의 촉수가 순식간에 뻗어 나가 총을 꺼낸 남자의 머리와 팔, 다리를 옭아맸다.
“으웁!!! 으으!!!”
“뭐, 뭐야!!! 이 거 뭐야!!! 형님!”
뒤따라 들어오던 두 놈을 향해 은지와 하린이가 달려들었다.
“흐아!”
쏘아지듯 달려 나간 하린이가 전력을 다해 몽키 스패너를 휘둘렀고 연달아 은지가 다른 놈의 얼굴에 망치를 휘둘러 코뼈를 으깨고 광대를 파괴했다....
“시발!!!”
입구에서 망을 보던 두 놈은 급히 타고 왔던 오토바이에 올라 도망가려 했지만 돌팔매질을 익힌 하린이가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져 두 놈을 때려 맞췄다.
“끄아아!!!”
“욱... 시발..!”
순식간에 다섯 놈이 제압됐다. 그중 둘은 즉사했고.
하린이에게 몽키 스패너로 처맞아 머리가 함몰된 새끼와 은지에게 망치빵을 당한 놈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후우. 어디 보자. 하린아 밖에 두 놈들 끌고 들어와.”
“예. 주인님.”
촉수로 사로잡은 놈을 내 쪽으로 당겼다. 당장에라도 터트릴 것처럼 촉수를 조였더니 뭔가 개수작을 부리려던 놈은 눈을 크게 뜨며 비명을 질렀다.
“우우웁!!! 우웁!!!”
“왜. 총만 있으면 다 될 것 같았어? 그러면 총부터 들이밀고 봤어야지.”
“웁... 웁...”
“은지야 송곳 좀 줘.”
“네.. 오빠, 여기.”
“좋아.”
놈의 입을 살짝 풀어줬다.
“이. 이 시발 새끼들... 너희들 우리 형님이... 끄아아아!!!!”
쓸데없는 소리를 하려는 놈의 허벅지에 송곳을 쑤셔 박았다. 바빠죽겠는 데 형님은 무슨. 지금 느그 형님 찾아봐야 돌아오는 건 송곳뿐이란다.
“은지아 다음.”
“네.”
은지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송곳을 건넸다. 내 행동이 무서울지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다. 마음 약하게 먹어봐야 돌아오는 건 배신과 칼빵뿐이니까. 숱한 게임과 영화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내가 말 걸기 전에 입 열면 뒤진다.”
“읍... 으흑... 네..”
“너희 중에 각성자 있었어? 너 따라 들어오던 놈들은 죽었고 망보던 놈들은 아직 살아 있는데.”
“저.. 저요! 제가 각성잡니다! 클래스 워리어! 전사! 쓸모 있습니다! 살려 주십쇼!”
[상대가 당신에게 굴복했습니다.]
“저 두 놈은 각성자 아냐?”
“예! 나머지 놈들은 떨거지 입니다!”
“오케이. 하린아. 은지랑 그 두새끼 죽여.”
"...네."
"알겠습니다, 주인님..."
"아, 은지야 가기 전에 왼손 엄지에 송곳 좀 살짝 찔러 주라."
"네."
읏... 역시 아프다.
은지는 최대한 아프지 않게 살살찔러줬지만 역시 살살 찌른다고 안 아픈 건 아니었다.
놈을 무릎 꿇리고 피가 흐르는 엄지를 놈의 기름진 이마에 가져다 댔다.
치이이익!!
"으아아!!!"
연기가 피어오르고 놈의 영혼에 노예의 낙인이 찍힌다.
[플레이어 ‘박성오’를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노예가 된 걸 축하한다. 박성오.”
이놈으로 마트를 한번 휘저어야겠군.
써먹기 좋은 패가 하나 굴러 들어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