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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가 다운로드 됨-18화 (18/221)

〈 18화 〉 17. 잡아라, 죽여라, 노예로 만들어라 (2)

* * *

“배신금지. 명령외의 자해 금지. 팀원들한테 개수작질도 금지다. 알았으면 대답해라.”

“예... 알겠습니다.”

굴욕적인 표정으로 머리를 땅에 박은 박성오.

놈의 머리를 지그시 밟으며 인간 하나를 또 내 멋대로 부릴 수 있다는 쾌감을 만끽했다.

‘정말 야무진 외출이야. 무기도 챙겼고 노예까지 하나 얻었으니.’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큰 이득을 봤다.

성과가 아주 좋아. 조금 피곤한 걸 빼면 말이지.

그런데 어째선지 멍하니 시체를 보고 있는 두 여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죽어 있는 시체를 보며 울적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모습.

첫 살인이라 그런지 여러 가질 생각하고 있나보다.

‘거부감이 들 만하지...’

멸망이 시작된 지 아직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둘 다 저런 연약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간다. 살인은 고사하고 벌레하나 죽이길 두려워했을 여인들보고 하루아침에 미치광이 살인마가 되라는 건 욕심이다.

당장 하린이만 해도 어쭙잖은 인류애 때문에 나를 죽이지 않았다가 이리 노예가 됐으니까.

“둘 다 괜찮아?”

“네.. 괜찮아요. 어차피 겪었어야 할 일이니까...”

“저도,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주인님.”

둘 다 애써 밝은 척 웃고는 있지만 속이 어떨지는 모르겠다.

그나마 멘탈이 튼튼한 내가 위로해 주는 수밖에.

“이리 와.”

“네...”

“오빠...”

둘을 껴안고서 등을 쓰다듬으며 달래줬다.

은지는 몸을 살짝 떨고 있었고 하린이는 이번에도 눈을 꼭 감았다.

“앞으로 숱하게 사람을 죽여야 할지도 몰라. 그래도... 그래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둘 다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알겠지?”

“네, 오빠. 저 노력할게요.”

“저도 각오했습니다, 주인님.”

다행히 둘 다 의지를 내비쳤다. 살인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지만 주저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아주 좋은 각오다. 언제까지고 우울해하고 있을 수는 없지.

살아남기 위해 망설임 없이 타인을 죽일 수 있다는 마인드가 중요하다.

생존 앞에서 도덕이나 윤리는 언제나 뒷전이 되는 법이니까. 죽기보단 죽이는 쪽을 택해야 한다. 본인들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좋아. 그럼 박성오. 우리 다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눠볼까?”

은지와 하린이도 대충 잘 달랬으니까 이제 박성오 이 새끼를 심문해야겠다.

마트에 자리 잡은 놈들의 인원이 총 몇 명인지 각성자는 몇이나 있고 무기는 뭐가 있으며 식량은 얼마나 남았는지도 전부 알아내야 한다.

또한 이놈이 언제까지 돌아가야 의심받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써먹어야 할지도 고민해야 하고.

“박성오.”

“큭... 예.”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거짓 없이 대답해라.”

“예... 알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 질문이다.

우리가 죽이거나 제압해야 할 놈들이 총 몇 명이나 있는가.

“마트엔 현재 거의 서른 명 정도가 있고... 붙잡아 온 여자가 대략 열 명 쯤 됩니다...”

붙잡아 온 여자라. 역시 이 새끼들 노리개를 잔뜩 잡아 뒀군.

꽤 구미가 당긴다. 부디 다들 상태가 좋기를.

“각성자는.”

“저를 포함해서 총 일곱 명입니다.”

“아는 대로 정보 다 불어.”

“어... 일단 워리어.. 그러니까 전사가 넷이고... 아처 하나에 파이터가 둘입니다.”

다행히 우리 같은 특이 직업은 한 명도 없었다. 이러면 난이도가 좀 떨어지지. 워리어나 아처, 파이터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이 될 때 이미 찾아봤으니까. 셋 다 아주 기본적인 전투직들이었다.

굳이 희귀도를 따지자면 노멀 중에서도 노멀한 녀석들이지. 물론 그것도 얻지 못한 생존자들이 수두룩하지만 어찌 되었든 각성자들 중에서는 평범한 놈들이란 소리였다.

‘역시 히든 클래스는 잘 없구나.’

나는 요상하리만치 높은 행운수치 666덕분에 컬티스트라는 히든클래스를 얻었고 나의 영향 때문인지 은지도 섀도워커라는 특이한 직업을 얻었다.

나와 운명적으로 마주친 하린이도 바바리안이란 아무도 얻지 못한 클래스였고.

클래스 자체만 놓고 보면 우리가 월등히 우월하다. 문제는 그놈들 개개인의 강함인데.

각성자 일곱 명 사이에서 우두머리를 자처할 만큼 강한 녀석이라...

“우두머리 레벨은.”

“그게... 제가 알기론 9정도였습니다.”

“9라고? 벌써?”

체감상 일반좀비를 아무리 잡아도 레벨 5를 넘기기 힘들었다. 일반좀비만으로 레벨 5의 벽을 넘어 6으로 올라가려면 진짜 온종일 잡아 죽여야겠지.

“사람으로 올렸겠네.”

“그렇죠... 마트를 노리고 오는 놈들을 다 때려잡고서 9까지 오른 걸로 압니다. 완전 미친놈이라서 심심하면 사람을 죽여요.”

역시 세상이 미쳐 버리니 덩달아 미친놈들이 살기 좋아졌구나. 특수 좀비도 아니고 사람을 죽여서 벌써 레벨 9까지 올리다니. 얼마나 죽였을지 감도 안 온다.

“그놈은 클래스가 뭔데?”

“클래스는 파이터고 자칭 무투가랍니다. 원래 복싱을 배운 놈입니다. 1대 1로 무기 없이 싸우면 무조건 자기가 이긴다면서 엄청 자신감 넘치던데... 주먹질로 좀비 대가리 터트리는 거 보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참 상대하기 껄끄러운 놈이겠네.

클래스가 없어도 원래부터 싸움 잘하는 놈이란 뜻이니까. 스탯과 스킬을 얻은 지금이라면 얼마나 강해졌을지 상상도 안 간다. 더구나 레벨 9라.

그런 놈이 총까지 쥐고서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아직 마트가 함락이 안 된 거였어. 오는 족족 다잡아 죽였을 거고 여자가 있다면 붙잡아서 노리개로 만들었을 게 뻔하지.

그런 놈을 잡아 죽이면 경험치를 얼마나 줄지 궁금하다. 보아하니 일반인을 죽이는 것보다 같은 각성자, 그중에서도 레벨이 높은 놈들이 경험치를 더 짭짤하게 주던데.

‘아, 아니지. 무심코 죽인다고 생각했네... 이러면 안 되는데.’

사람을 함부로 죽이면 쓰나.

노예로 삼아야지.

“흐흐흐...”

군침이 싹 돈다. 레벨 9짜리의 노예라니. 심지어 싸움도 기깔나게 잘하는 놈 같은데 얼마나 굴리기 좋을까.

‘안 그래도 담주 월욜부터 난이도가 겁나게 오를 텐데... 절대 죽이지 말고 꼭 노예로 만들자...’

좋아. 레벨 9짜리 우두머리는 무조건 사로잡는다. 억압용 입마개와 내 촉수소환이라면 쉽게 굴복시킬 수 있으리라.

그럼 어찌 그놈을 케이크처럼 쉽게 노예로 삼느냐인데...

“너랑 느그 대장이랑 친해?”

“예? 어 친한 것 같은데...”

“둘이서 긴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냐고.”

“그렇게까지 친하진 않습니다. 저는 각성자들 중에선 말단이고. 합류한지도 얼마 안 돼서. 당장 돌아다니고 있는 것만 봐도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말단이라 뺑이치고 있던 겁니다.”

“하. 도움 안 되는 새끼.”

괜히 박성오의 뒤통수를 때렸다.

그런데 이 새끼 머리도 안 감나?

손에 개기름이 묻어 기분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그럼 너거 대장놈은 주로 누구랑 붙어 다니냐?”

“그게, 자기 동생이랑 거의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딴 놈들은 다 불안하다면서 둘이서만 엄청 친합니다.”

“흐음 그래? 그 동생 놈도 그럼 각성자겠네? 그놈도 운동하던 놈인가?”

“예. 그놈도 자기 형이랑 똑같은 파이터입니다. 태권도 단증이 있다던데. 확실히 발차기로 좀비 대가리 터트리는 거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새끼 레벨은?”

“듣기로 7정도 인걸로 압니다.”

형제가 쌍으로 살인기계들이구만. 마음에 든다. 둘 다 무조건 사로잡아서 노예로 만들어 개처럼 굴려줄 생각하니 피로가 조금 풀리는 기분이다.

“나머지 각성자들 레벨은.”

“그게 저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일단 제가 4고 나머지 전사직 달고 있는 애들이 아마 대충 3에서 5정도 될 거 같습니다. 궁수는 6인걸로 알고 있고요. 근데 그 새끼 활이 없어서 답이 안 나오는 놈입니다.”

궁수가 활이 없다니 웃길 노릇이다.

‘하린이가 활이 있으니 궁수도 붙잡아서 노예로 만들어야겠어. 파이터 둘에 궁수하나... 전사놈들은 일단 마나가 차는 데로 노예로 삼으면 될 거고... 뭐, 전사야 흔하니까 하다 안 되면 그냥 죽여도 상관없으려나?’

전사, 즉 워리어는 흔하디흔한 클래스다. 각성자들 중에선 워리어가 제일 많다.

노리개로 붙잡힌 여자들에게 좀비 잡아 보라고 하면 워리어로 각성하는 인간이 몇 나오지 않을까?

아직 좀비를 한 마리도 안 잡아본 사람도 수두룩할 테니 각성자의 수가 적다기보단 자기 가능성을 파악하지 못한 사람의 수가 더 많은 걸지도 모르지.

“권총은 몇 자루 있어.”

“세 자루 있습니다. 죽은 경찰들한테서 노획했는데 탄약은 장전된 것 말고는 없었습니다. 거기다 약실이 첫 탄은 비어 있고 두 번째는 공포탄이라... 실상 실탄은 3발뿐입니다. 실탄이 토탈 아홉 발인데 그마저도 다섯 발인가 썼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권총엔 공포탄 한 발 밖에 없습니다. 사실상 그냥 협박용 장식이죠.”

“허. 진짜 좆도 없었구나.”

“네...”

권총이 장식이었다니. 처음부터 우릴 협박할 생각으로 꺼냈는데 그전에 내 촉수에 붙잡힌 거겠지.

“그럼 남은 탄약은 누가 가지고 있는데?”

“우두머리가 4발 다가지고 있습니다.”

옥상에서 항상 경계근무서는 궁수 놈도 권총을 들고만 있을 뿐 공포탄뿐인 장식이란다.

우두머리가 4발 전부 가지고 있다니. 확실히 나처럼 노예 낙인도 없는데 타인에게 탄환을 맡기는 건 좀 불안하겠지.

그럼 그때 내가 봤던 옥상에 서 있던 놈의 권총에는 총알이 없었단 소리로군. 전부 놈들의 블러핑이었다.

“흠. 우두머리랑 그 동생 놈 이름은?”

“그러니까 하진성, 하진우 형제입니다.”

“하씨 형제군. 놈들은 주로 어디 있는데?”

“그놈들은 주로 2층에 전자제품 코너에서 포커 치면서 놀고 있습니다.”

"그렇구만..."

슬슬 해가 지고 있다. 곧 어두워지겠지.

“후우... 은지야, 하린아.”

“네, 오빠.”

“말씀하세요, 주인님.”

“너희 지금 많이 피곤해?”

“어...”

“확실히 말해줘야 해.”

“저는 아직 할 만해요.”

“저도 거뜬해요. 오빠는요?”

“나도 괜찮아. 그럼 우리 오늘 바로 마트 털자.”

“어...”

“지금바로요?”

“그렇지. 일단 은지랑 나는 어두워도 시야에 문제가 없고, 하린이는 심박추적 쓰면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

“확실히 우린 밤에 더 유리하겠네요.”

“주인님의 결정에 따를게요.”

어둠을 틈타 놈들을 해치우자. 우리는 밤에 움직이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좋아. 박성오. 너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마.”

“예?”

“일단 전투 중에 대장 놈이 총 꺼내면 무조건 네가 선두에서 총을 뺏든지 우리 대신 맞든지 해라. 실탄을 낭비시켜.”

“예...? 자, 잠깐만요. 지금 저보고 총 맞아 죽으라는 겁니까?!”

고기 방패가 되라는 말에 황당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는 박성오.

총 든 우두머리를 제압하라는 말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나 본데.

이 새끼는 아직도 자기 처지를 이해 못한 것 같다.

“그러니까 노예인 거야. 죽으라면 가서 죽어야지. 주인한테 말대꾸하지 말고.”

“으윽... 네.”

“그런고로 우리 성오쿤이 팀 대표 ‘총알받이’ 가 됐다. 축하한다.”

나의 차가운 말에 박성오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이제야 자기 처지를 확실히 파악했군.

노예란 그런 거다.

결코 주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것들.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은지와 하린이처럼 예쁘면 내가 옆에 끼고 사는 거고.

아니면 이렇게 적재적소에 써먹고 버리는 거지.

이 새끼가 귀중한 히든 클래스도 아니고. 기본직종 중에서도 가장 흔한 각성자라면 쓰고 버려도 크게 아쉽지 않다.

마트에만 전사 직업이 세 명이나 더 있다는 데 아쉬울게 어디 있나.

특히나 이 빌어먹을 놈은 머리를 안 감아서 내 손에 개기름을 묻게 했다.

"출입구는?"

"흐윽... 정문 말고는 전부 막아 놓고 돌아가면서 감시 중입니다."

"좋아. 그럼 네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들어가서 뒷문을 열어. 우린 거기로 들어갈 테니까."

"흑... 예... 알겠습니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박성오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은지와 하린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둘 다 움찔 몸을 떠는데 왜 저러는 거지?

“왜? 무슨 일 있니?”

“아, 아니에요 오빠. 하하.”

“머, 멋있는 주인님...”

“흐흐. 싱겁긴. 그럼 일단 박성오가 정문으로 들어가서 뒷문을 열어 주면 우리도 숨어서 들어간다. 총만 없으면 별거 없는 새끼들이야. 우두머리 놈이 급해서 총 꺼내 쏘면 우리 성오쿤이 몸 빵 좀 해주고. 은지랑 하린이는 나를 지키면서 각자 잘 싸우면 되겠다.”

나는 오늘 쓸 수 있는 촉수소환 횟수가 2번 남았다. 이걸 쓰면 상대가 격투기를 배웠든 뭘 했든 그냥 끝장이다. 그러니 마나를 아껴야 한다.

나를 전력외로 치고 은지와 하린이가 그 하씨 형제들에게서 최대 15초 정도만 버틸 수 있다면 무조건 이긴다. 내가 영창할 시간만 끌어 준다면 우리의 승리라 할 수 있다.

하린이야 근력을 강화시키고 거친 피부에 파괴자의 주먹질까지 사용한다면 하나는 금방 제압할 거고. 은지는 숨어 있다가 마비 독니가 묻은 그림자 단검만 잘 맞춰도 무조건 이긴다.

‘이후엔 한 놈은 기절시키고 한 놈은 억압용 입마개를 씌워서 능력을 봉인한 다음 마나가 회복되는 데로 노예로 만든다.’

내 계획대로 잘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박성오가 얼마나 잘 움직여 주냐에 따라 이번 작전에 난이도가 좀 많이 달라질 것 같다.

이쯤에서 박성오에게 희망을 주며 사기를 증진시켜야겠군.

“성오쿤.”

“흐윽... 네...”

“울지 말고. 사내새끼가 뭘 그리 울어.”

“흐읍... 네. 그쳤습니다.”

“자, 봐바. 네가 총알을 잘 피하면 되는 일이잖아 그치? 내가 막 불가능한 일 시킨 거 아니잖아.”

“네...?”

“그래. 별거 없어. 3발만 피하면 되겠다. 그치?”

“네...”

“너도 4렙 전사라며. 스킬 써서 막 슉슉 피하면 되겠네.”

“흐윽....”

“진짜 별거 없다, 야. 여유롭게 해. 그럼 너도 살고. 나는 노예 안 죽어서 좋고. 그치?”

“네...”

그의 눈은 여전히 죽은 동태눈이다.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걸까.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

우린 마트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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